<재래시장 사람들을 찾아서> 신길동 영진시장





발길은 뜸했다. 장바구니는 비었거나 가벼웠다. 상인들의 깊은 한숨만 가득했다. 영등포구 신길동 영진시장의 풍경이다. ‘떨이요 떨이!!’ 쉴 새 없이 외쳐대도 손님들은 무심한 표정으로 지나친다. 턱 없이 오른 물가 때문이다.

시장 입구 야채가게 여자주인은 “비싸다고 잘 사가지 않는다. 싫은 소리 안 들으려고 무 한 개에 겨우 200원 남기고 파는데도 좋은 소리 듣기가 힘들다”고 했다.

“노동 강도에 비해 주어지는 소득이 너무 적어요. 다른 것은 다 올랐는데 사람값만, 인건비만 10년째 그대로입니다, 거참…. 물가는 갈수록 치솟고 장사는 점점 더 힘들어집니다.”

그는 하루 3만원을 남기지 못할 때도 많다고 했다.

“2만원 남을 때도 있고 3만원 남을 때도 있어요. 월세 내고 나면 남는 돈 거의 없어요. 그나마 나이 들어서도 돈을 만질 수 있는 것이 이 일뿐이라 계속하는 거죠. 이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요. 자식들에게 손 벌리지 않으려면 많이는 못 벌어도 매일 나와야죠.” 





주인의 표정이 밝지 않다.

“예전엔 남편이 많이 도와줬어요. 이제 남편도 다른 직업을 찾아 나갔어요. 둘이서 장사해선 죽도 밥도 안 되더라고요. 어떻게든 살림에 보탬이 되려고 허드렛일을 하고 있죠. 시장 상인들 대부분이 그럴 겁니다. 부부가 같이 하다가 둘 중 하나가 나가서 다른 일을 하는 경우가 많아요. 이곳에서 잘나간다는 닭집만 해도 10년 전엔 하루 200마리를 팔았거든요. 요즘은 50마리 팔기도 버겁다고 할 정도니 둘이 앉아 장사를 할 수 있겠어요? 전반적으로 다 그렇습니다. 가격은 두배 이상 뛰어오르고 판매량은 절반 정도 줄었다고 봐야 해요. 불황이 ‘잉꼬부부’들마저 떼어놓네요.”

주인은 때마다 시장을 방문하는 ‘높은’ 사람들의 진정성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요즘 재래시장들이 다 어렵잖아요. 이 시장, 저 시장 찾아 상인들과 얘기를 나누던데, 진정성이 있는지 의문입니다. 그들이 다녀간 이후 변화됐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거든요. 만약 우리 시장에 오면 상가 건물을 새로 지어주겠다는 식의 보장을 해줘야 하는데, 다른 시장에 가서 그런 생산적인 얘기를 나눴다는 소식 못 들어봤어요. 그저 보여주기 용일 뿐….”
옷가게 주인은 지난 추석 명절에도 낭패를 봤다고 한숨을 지었다.

“상인들은 명절 때 바짝 돈을 모으는 게 중요해요. 그런데 이번 추석엔 주문이 별로 없었어요. 평상시와 별반 차이가 없었죠. 추석과 가을 맞아 한 달 전부터 가을 옷을 많이 들여놨는데, 날씨가 쌀쌀해져도 주문이 거의 들어오지 않습니다. 게다가 곧 겨울이 올 것 같으니….”





효자 상품인 양말 역시 불황을 비켜가지 못했다.

“예전에는 명절을 전후해 양말선물세트가 불티나게 팔렸어요. 하지만 작년과 올해에는 그마저도 거의 안 팔렸어요. 대부분이 대형마트로 가기 때문이죠. 대형마트는 포장만 우리와 비슷할 뿐, 오히려 낮은 단가를 맞추기 위해 품질이 낮은 제품을 써요. 대형마트에 비해 재래시장의 상품이 더 좋다는 것을 소비자들이 알아줬으면 좋겠습니다.”

주인은 이제 양말 단체 구입이 마지막 ‘수입줄’이라고 한다. 

“직장이나 동호회 등 단체로 구입해가는 게 수입줄인데, 이런 식으로 가다간 내년이면 다른 시장에서도 문 닫을 의류점들이 수두룩할 겁니다. 남대문 시장도 요즘 안 된다고 하잖아요. 정부에서는 이제 상품권 얘기를 꺼냅니다. 사실 우리 같은 업종 사람들에겐 큰 의미가 없거든요. 우리 가게는 하루에 2장 받기도 힘든 게 현실이에요. 재래시장 상품권으로 전체 경기를 살려본다고 하지만 사실 이게 유통이 제대로 안 되는 단점도 있어요.”

상인은 산더미처럼 쌓인 물건을 팔기 위해 지나가는 손님들의 소매를 잡아끈다.

“안 된다, 안 된다 하면 정말 장사가 안 되죠.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이렇게라도 말하고 적극적으로 나서야죠. 그래야 마음이라도 편하니…. 요즘 같아선 우리 같은 사람들 굶어죽기 딱 좋아요. 매출이 절반이하로 떨어져서 그런지, 시장에 오는 사람들도 예년보다 절반은 줄어든 것 같아요. 더군다나 요즘엔 시장 근처서 외제 옷을 무허가로 파는 외국인들이 극성이에요. 단속도 제대로 안 해서 우리 입장이 난처하죠. 또 이 사람들 옷이 잘 팔려요. 젊은 사람들한테 인기가 많죠. 이들까지 가세하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네요.”





그는 무엇보다 큰 문제는 30대 초중반의 구매력 있는 젊은 부부들이 점점 시장을 찾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했다.

“젊은 사람들이 안 오면 끝이에요. 한참 돈 쓰고 다닐 세대들인데…. 이 사람들 잡으려면 주변 시설 개선을 해야 해요. 주차장 등 편의시설을 제대로 갖추지 않으니 젊은 사람들이 찾질 않죠. 한편으론 유행처럼 급작스레 늘어난 고층상가들도 영향을 미쳐요. 이 시장이 상대적으로 작아 보이거든요. 아니, 시장의 존재감 자체가 쭈그러들죠. 지나가다가 보면 이게 시장인지 일반 주택가 진입로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니까요.” 

10년째 반찬가게를 하고 있는 주인은 “그나마 파전 등은 젊은 손님들이 많이 찾는다. 명절에도 찾는 손님이 많았다”고 했다.

한 손님은 튀김 1만원 어치를 사고 주인에게 1000원 어치를 덤으로 달라고 조르기도 한다. 시장은 흥정이 있어야 살아나는 법이다. 하지만 인파가 몰리는 곳은 분식집, 족발집, 순대국집 등 먹거리 가게 몇 군데뿐이었다.

한 분식점에서는 떡볶이를 1인분에 1000원에 팔고 있다. 주인은 단골들이 많아서 가격을 올릴 수 없다고 했다.





“우리가게 손님들은 10년 넘는 단골이 많아 가격을 올릴 수 없어요. 마진이 별로 없기 때문에 많이 팔아야 해요. 손님들은 언제든지 편하게 이곳을 찾아요. 게다가 인근에 자취하는 대학생들이 있어서 단골도 늘고 있죠.”

주인은 떡갈비까지 준비 중이라고 했다. 떡볶이만으로는 장사를 유지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분식만 팔다가는 유지하기 힘들 것 같더라고요. 요즘 크고 작은 재래시장 가면 2000원짜리 떡갈비가 유행이더라고요. 옛 향수가 그리워 재래시장을 찾는 아주머니와 고기 좋아하는 젊은층들을 공략하려는 거예요. 분명 잘 팔릴 것이라고 봅니다.”

먹거리 등 일부 품목만 근근이 유지하고 있는 영진시장에도 희망의 빛이 깃들길 기원해본다.

공민재 기자 selfconsol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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