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 쪽방촌을 아십니까-13> ‘장사꾼’에서 ‘건설노동자’로 고승범 씨



대한민국은 세계 10위권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경제대국이다. 빌딩숲을 이루고 있는 대한민국 수도 서울 도심 속 번화가는 외국인 관광객들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지난 60년간 급속하게 성장했고, 국민들의 삶의 질 역시 전반적으로 향상되었다는 점을 부정하는 이는 없다. 그러나 변화의 바람과 무한경쟁 구도 속에서 낙오된 이들도 생겨나기 마련이다. 
동자동, 영등포, 청량리, 동대문 등 서울 도심 곳곳에는 최하층에 해당하는 도시 빈민의 삶이 상존한다. 빌딩숲 사이에 가려진 쪽방촌이 여전히 군데군데 숨어 있다. 이중 ‘동대문 쪽방촌’은 쪽방촌 가운데서도 가장 열악하면서도 철저하게 외면당하고 있는 곳이다. 대형 쇼핑몰이 몰려있는 동대문 한복판에 자리해있지만 인근에 사는 주민들조차 그 존재 자체를 모르는 이들이 많다. <위클리서울>은 ‘숨겨진’ 동대문 쪽방촌과 그 안에 깃들어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시리즈로 담고 있다. 이번 호엔 꽤 오랫동안 장사를 하다가 그만두고 지금은 건설현장을 누비며 삶을 살아내고 있는 고승범(가명. 54) 씨 스토리다.


세 번의 장사 그리고 실패

고승범 씨는 젊은 시절 자신의 가게만 세 번 열었다가 닫았다. 열정 외엔 별로 가진 게 없었던 20대 시절 서울의 한 재래시장에서 과일 도매상으로 청춘을 보냈다. 장사가 적성에 맞는다고 생각했지만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경험 없는 젊은 상인은 기라성 같은 오래된 장사꾼 선배들에게 뭐로 보나 상대가 되지 않았다.

“첫술에 배부를 순 없었죠. 과일 가게는 하나의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시장 상인들과 손님들의 스타일을 눈여겨봤죠. 장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손님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손님들의 성향은 또 얼마나 다양한지 꼼꼼히 지켜봤어요. 다양한 인간 유형이 있다는 걸 깨우치게 된 계기였죠.”과일 가게를 접은 뒤엔 한동안 고민에 빠졌다. 젊은 사람들을 공략할 수 있는 새로운 매개가 필요했다. 과일장사로 성공을 거두진 못했지만 먹거리만이 여전히 살 길이라고 여겨졌다. 젊은이들 취향에 맞는 카페를 열기로 했다. 

“몇 평 안 되는 자그마한 가게였어요. 대학가 쪽이라 처음엔 손님도 많았죠. 당시만 해도 카푸치노 같은 게 낯설 때여서 여학생들이 주로 찾았어요. 커피숍이나 호프집과는 모든 면에서 다를 수밖에 없었어요.”

장사가 잘되는 편이었지만, 얼마 안 가 스타벅스 등 외국계 커피 전문점들이 도시를 ‘점령’하면서 여느 커피숍과 마찬가지로 고 씨의 가게도 문을 닫게 된다. 당시 고 씨는 결혼 적령기를 훌쩍 넘긴 상태였다. 



“바쁜 나머지 아가씨 만날 시간이 없었죠. 지금 생각하면 핑계 같기도 해서 후회스럽지만…. 이후 다른 사업을 고민했어요. 과일가게나 카페 모두 쫄딱 망한 건 아니었거든요. 조금씩 남긴 부분이 있고 그것으로 다른 사업을 고민했죠.”

앞서 두 사업은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고 씨는 스스로 장사에 소질이 있다고 여겼다. 그저 운이 따르지 않았을 뿐이라고 스스로를 위안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선택한 건 술집이었다. 90년대 후반만 해도 수입맥주를 판매하는 곳이 그리 많지 않았다. 고 씨는 ‘맥주창고’ 등 수입맥주를 판매하는 가게를 벤치마킹해 세계 여러 나라의 맥주를 맛볼 수 있는 일명 ‘세계맥주’ 가게를 오픈했다.    

“당시만 해도 젊은 사람들이 수입맥주에 환장할 때였어요. 다양한 맥주를 맛볼 수 있는 가게가 별로 없었기에 희소성이 있었죠. 미군들부터 대학생까지 많은 손님들이 가게를 찾았어요. 그 때 꽤 돈을 벌었죠.”

고 씨 역시 다양한 맥주를 시음하며 맥주 전문가로 거듭났다. 주량이 센 편은 아니었지만 당시 맥주 맛에 흠뻑 빠졌었다고 했다.

“요즘 뉴스에도 나오던데 우리나라 맥주는 사실 맛이 없잖아요. 북한 대동강맥주가 한국맥주보다 훨씬 낫다고 하니 말입니다. 몇 안 되는 대기업들이 장악하고 있다 보니 맥주 맛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죠. 외국 맥주시장엔 예전부터 중소기업들이 많았어요. 자유롭게 경쟁할 수 있었던 거죠.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독과점이다 보니 다 거기서 거깁니다. 전 지금도 우리나라 맥주 잘 안 먹어요.” 



다시 장사 얘기로 돌아왔다. 고 씨는 10년 전 또 다시 가게를 접는다. ‘세계맥주’라는 타이틀조차 ‘반짝’하고 말았던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손님 수가 점점 줄더라고요. 사실 가격이 비싼 편이었거든요. 초기엔 처음 보는 외국맥주들이 신기해서 들르는 손님이 많았는데, 문제는 단골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겁니다. 결국 국산맥주에 비해 다소 높은 가격이 원인이었어요. 당시 유사하게 장사를 하던 다른 가게들도 오래 못 버텼어요. 2000년대 중반부터 세계맥주 판매하는 가게들은 내리막길을 걸었죠.”

하지만 최근 들어서면서 그 유사한 가게들이 속속 생겨나면서 다시 한 번 부흥기를 맞고 있다. 제2의 전성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가게들이 눈에 뜨인다. 고 씨 역시 최근 그런 맥주가게에 가봤다고 한다. 

“얼마 전 궁금해서 가보니까 가격이 싸더라고요. 그리고 파는 방법이 좀 달라요. 우리 때는 얼음에 여러 종류의 맥주를 마구잡이로 집어넣어서 팔았거든요. 요즘은 냉장고에서 꺼내 먹으면 돼요. 그리고 손님들이 볼 수 있도록 냉장고에 맥주 가격을 적어놨죠. 가격이 싸긴 한데, 이것도 요즘 가게가 너무 많아요. 우리 때보다 몇 배는 많은 것 같아요. 얼마나 갈지 두고 봐야죠.”
 


‘구멍가게’ 운영하는 게 꿈

맥주가게를 끝으로 고 씨는 장사와는 담을 쌓았다. 장사는 자신의 운명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이미 마흔을 훌쩍 넘긴 그에게 남은 건 빈 몸뚱이 뿐. 형제들은 결혼한 이후 뿔뿔이 흩어졌다. 

“없는 살림에 다들 결혼까지 했으니 팍팍하죠. 서울에 사는 형님 한분 빼고는 다들 지방으로 내려갔어요. 부모님도 모두 돌아가셔서 홀로 남았죠. 발붙일 곳이 없었어요. 입에 풀칠하기 위해 그동안 이 곳 저 곳 공사 현장이라면 전국 팔도 안 가본 곳이 없습니다.”

집도 절도 없이 돌아다닐 순 없었다. 그래도 쪽방촌이 살만하다는 얘기를 듣고 7년 전 이곳으로 들어왔다.



“요즘은 지방 내려갈 일이 별로 없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지방까지 가는 팀이 많았거든요. 밥 주지, 재워주지, 돈쓸 일도 없지 해서 자주 밖으로 돌았어요. 그래서 비싼 월세보다 쪽방이 낫겠다 싶었죠. 방에 머물 일이 거의 없었으니까요. 그렇게 쪽방촌과 인연이 닿았어요.”

3년 전 지방에서 일을 하다 머리를 크게 다친 고 씨는 규모가 큰 현장에는 더 이상 나가지 않는다고 했다.

“다행히 뇌에 문제는 없었어요. 하지만 일종의 트라우마죠. 아직 나이가 젊어 불러주는 곳이 많지만 아파트 공사현장 등엔 나가지 않습니다. 오랜 기간 일했고 그래서 용역회사 사장이랑 친하니까 그 정도는 배려해줍니다. 집이랑 가까운 곳에 주로 배치해줘요. 일단 현장에 나가면 일은 잘 해내니까요.”

지난해 오토바이 한 대를 장만했다는 고 씨는 현장에서 부르면 곧바로 달려 나간다. 여름철엔 특히 일이 많다.

“올 여름엔 예년에 비해 일이 많이 없었어요. 현장에서 바로 전화를 걸어올 때도 있어요. 보통 새벽부터 일한다고 하지만 세상도 변했어요. 예전처럼 꽉 막히지 않았어요. 예전엔 비오면 무조건 그날 일 접었잖아요. 요즘은 오전에 비오면 일기예보에 따라서 오후까지 각자 집에서 대기해요. 어쨌거나 일당은 쳐주니까 대기하다가 부르면 뛰어나가는 거죠.”



한때 잘나갔던 과거를 떠올리면 미련이 남을 법도 하다. 공사현장 떠돌며 쪽방 생활하는 것보단 그때가 나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이제 장사에 대한 미련은 없다고 했다.

“자기 사업 한다는 건 그만큼 위험이 따라요. 스트레스도 많이 받거든요. 자기가 모든 걸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으니까요. 그런 스트레스 받는 것보다 차라리 남의 밑에 들어가 주는 돈 받으며 사는 게 편해요. 다시는 그런 모험 하고 싶지 않기도 하고…. 저도 좀 있으면 60이니, 모험보다는 안전하게 돈 모으며 저축하는 길을 택해야죠.”

한때 열혈 장사꾼이었다가 지금은 건설현장을 누비는 고 씨. 그에게도 꿈은 있다. 훗날 이곳 쪽방에 자그마한 슈퍼마켓, 아니 구멍가게를 차리는 것이다. 단순 장사만을 위한 게 아닌 이웃들과 어울려 사는 삶을 위한 것이기도 하단다.

“물론 쪽방 촌에 구멍가게들이 몇 곳 있어요. 그런 곳들과 경쟁하고 싶진 않아요. 주민들이 정말 필요로 하는 그런 조그마한 가게를 운영하고 싶습니다. 언젠가 그럴 날이 오겠죠.”

공민재 기자 selfconsol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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