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 안보와 국경 장벽이 노동자, 여성들의 인권과 천혜의 자연 훼손시켜
국토 안보와 국경 장벽이 노동자, 여성들의 인권과 천혜의 자연 훼손시켜
  • 승인 2013.10.30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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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한창세의 고대와 현대의 만남 ‘멕시코’ : 티후아나 편 2회



멕시코’ 하면 먼저 선인장이 떠오른다. 멕시코는 여러 면에서 일찍부터 나에게 운명적으로 다가왔다. 초등학교 5학년 때는 체육선생이 전교생에게 포크 댄스(Folk Dance)를 가르친다고 점심시간 전, 운동장에 집결시켜 멕시코 전통음악인 ‘베사메무쵸(besame mucho)’ 음악에 맞춰 남녀 쌍쌍이 춤을 췄던 기억이 난다. 이 음악은 ‘레이 카닙싱어즈(ray caniff singers)’가 편곡했는데 당시 세계적으로 대히트한 경음악이다. 어린나이에 들었지만 학교에서 매일 듣다보니 멕시코 특유의 애잔하면서도 멋진 멜로디가 와 닿았다. 중학교 때는 그림에 관심이 많아 당시 서양화가인 미술 선생님과 친하게 지냈는데, 그분이 갑자기 멕시코로 이민을 가버려 무척 아쉬웠다. 크면 멕시코로 찾아가서 미술선생님을 만나겠다고 결심했을 정도였다. 이렇듯 어린 시절부터 ‘멕시코’는 알게 모르게 직간접으로 내 곁에 늘 있어 왔다. 그리고 멕시코는 결혼이라는 결코 간단하지 않은 인연으로 내게 다가왔다. 결혼과 함께 멕시코로 건너가 생활하면서 겪었던 일들을 펼쳐본다.[편집자 주]




# 티후아나는 가난한 멕시코인에게 꿈을 이루는 국경도시다. 이곳을 넘으면 미국에서 달러를 벌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살면서 알게 된 멕시코는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매우 심각한 상태였다. 특히 PRI당이 무려 80여 년간 1당 통치를 하다 보니 정부 관료들의 부패와 도덕적 해이가 극에 달한 상황이다.

무엇보다 불안정한 정치와 경제 불안으로 빈부의 차이가 크다. 이번 호에서는 여행보다 현지에서 살면서 보고 느낀 다양한 사회적 이슈를 통해 이 나라가 가진 정치적 정체성과 미국과 이웃하고 있는 지리적 특성상 내포된 갈등 등을 조명해본다.

‘군대’와 ‘정치’에 밀리는 이민자의 눈물

티후아나는 멕시코 최대 국경도시로 미국과 인접해있어 양국 간 내재된 불안과 긴장을 늘 안고 있는 지역이다. 국경이란 근본적으로 ‘국민’보다, ‘국가’라는 이익이 첨예하게 부딪치는 현장이다. 미국은 국경문제에서 ‘국가보안’을 우선시하고, 멕시코는 ‘마약통제’를 관장한다.

멕시코는 국민들이 미국 국경을 넘어가는 것을 ‘생명을 잃을 무모한 일’로 정부차원에서 엄격히 금지하고 있지만, 국경지역에 ‘밀입국 금지’라는 표시판을 설치한 것 외에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 상태다.

반대로 미국 입장에서는 불법입국자를 잠재적 테러분자로까지 여긴다. 1999년에 발생한 9.11 무역센터 테러사건 이후 밀입국자들에 대한 정보파악과 경계강화를 놓고 멕시코와 미국정부의 고민이 상충한다.

가난한 멕시코인들이 세계 최고 부국인 미국국경을 몰래 넘어가 취업해서 벌어들이는 달러 송금액은 멕시코 GNP중 두 번째를 차지할 정도로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짭짤한 ‘수입원’이지만, 미국의 입장에서는 불법이민자들을 수수방관할 수 없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로 여긴다.

국경이란 이렇듯 보이지 않는 치열한 안보쟁탈 지역이다. 한편으론 양국 모두에 긴밀한 필터링 역할도 한다. 미국에서 국경문제는 연방정부의 국토안보부가 관할하고 있다. 멕시코와 미국 간 영토문제를 직접 통제하면서 ‘국토안보’를 이유로 무려 40억 달러를 들여 3차 국경장벽을 건설하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과 멕시코 사이엔 해묵은 문제가 늘 상존한다. 빈국인 멕시코 여성 밀입국자와 여성 마약 밀매상, 인신매매 문제가 그것이다.


# 현재도 미국 국경 장벽을 넘어 다니는 어린 아이들


# 강철판으로 국경을 길게 쳐 놓은 모습이 미국과 멕시코 양국간의 밀입국문제를 보여준다.


# 구경을 넘다가 사망한 사람들의 관을 죽은 년도를 써 놓은채 국경 장벽에 세워 둔 장면

마약과 여성 성매매가 큰 이슈임에도 언제나 ‘군대’와 ‘정치가’들이 국경문제를 다룰 때면  국가적 차원에서 ‘국경’과 관련한 순위에서 밀려난다. 양국간 국경 지역에 거주하는 인구의 절반이 여성이지만, 항상 묵인되어 온 여성들의 목소리가 점차 거세지고 있다.

멕시코 티후아나 여성들은 여성 살해와 직장 내 성희롱, 인공임신중절수술 여성을 감금하는 바하 캘리포니아 주의 ‘중절금지법(낙태금지법)’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여성들이 이렇듯 불만을 토로하는 것은 여성에게만 잘못을 돌리고, 여성의 옷차림이 불량하면 ‘헤픈 여자’로 여기며 ‘여성의 성’을 강압하는 멕시코 교회와 주 정부의 정책 때문이다.

멕시코에서는 여성성매매가 합법이지만 낙태는 불법이다. 반면에 미국에서는 인공임신중절수술과 마리화나 매매가 합법이어서 서로 끊을 수 없는 유혹의 ‘검은 거래’가 있게 마련이다. 또 멕시코나 미국에서 관련 범죄가 ‘불법’이라 해도 실제로 범법행위가 없으면 문제는 없다. 규제할 대상이 아닐 뿐이지만, 마약조직범죄나 성매매에 대해 깊이 알고 있는 부패한 정부 관리들에 의해 ‘범법 행위’가 오히려 조장되기도 한다.



# 미국 국경을 밀입국하다 죽은 한 주민을 마을 사람들이 장례 치르는 모습

 
여성증오살해, 국토안보 이유로 ‘뒷전’

이런 상황이다 보니 미국과 멕시코 국경지역은 늘 뜨거운 감자를 안고 있다. 멕시코에서는 성매매 여성이 건강검진을 받지 않았다면 여성만 처벌을 당한다.

또한 티후아나에서 가까운 미국의 샌디에이고 여성이 성매매 호객행위를 했다면 멕시코 여성처럼 동일하게 처벌을 당하는데, 성매매 여성만 처벌을 하고 성 구매자는 제외한다는 점은 양국이 같다.

무엇보다 양국 국경지역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여성 살해’도 문젯거리다. 여성 살해는 멕시코와 이웃국가인 과테말라 등에서 발생하는 여성혐오 살인범죄를 말한다. 살인피해자 나이는 다양하고 살해방식도 매우 잔인하다. 그런데도 멕시코 당국은 살인범에 대한 수사와 법적처벌을 하지 않아 불만이 깊다.

특히 과테말라는 여성 살해로 피해를 입은 여성이 무려 5000여 명에 달한다. 멕시코 국경지대에서 발생하는 여성 살해는 ‘불법이민자’ 문제와 함께, 이들을 마약조직원으로 낙인찍는 미국 경찰과 국경경비인력과도 관련이 있다. 미국의 ‘국경 안보’와 획일화된 멕시코의 국경정책이 골치 아픈 여성범죄를 제외하기 때문이다.


# 국경 초소 근방에는 가난한 멕시코 서민들이 노점상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 티후아나 국경에서는 마약과 성매매가 가능해 다양한 사건사고가 빈발한다.


# 티후아나를 거쳐 미국으로 유입되는 마약을 압수한 경찰

따라서 군대와 무기를 중요시하는 ‘안보’만을 강조하게 되면, 국경수비군의 특성상 유연하지 못하기 때문에 여성범죄는 계속된다. 국경지대의 속성인 끝없는 여성 살해와 이민자 사망, 국경지역 생태계 파괴도 간과할 수 없다.

현재의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은 과거에는 아름다웠던 자연생태 지역이었다. ‘안보’만을 앞세우는 무모한 정책이, 무고한 제3세계 사람들을 제1세계로부터 완전 격리시키기 위해 세워진 ‘높은 장벽’이 접경 지역의 자연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다.
이 티후아나 국경지역엔 천혜의 풍요로운 강이 있어 중남미 모든 대륙에서 날아온 370여 종의 다양한 철새들의 낙원이었다. 그러나 국경이 세워지면서 국경 벽에서 무너지는 시멘트와 흙먼지 등 각종 쓰레기들이 강어귀에 버려지고 쌓이면서 하천의 생태계 역시 급속하게 파괴되고 있다.

미국과 멕시코 양국은 ‘안보’와 ‘성매매, 마약’을 이유로 무수한 여성 살인을 방관하고, 자연생태계를 훼손하는 무모한 소모전을 치르고 있다. 보다 지혜로운 정책으로 양자가 ‘윈-윈’하는 ‘솔로몬의 지혜’를 발휘할 때가 아닐까하는 생각이다.

<한창세 님은 언론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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