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가는 ‘밀양 송전탑’ 공사, 절규하는 주민들



765kV 고압송전탑을 둘러싼 경남 밀양 현장에서의 갈등이 점점 커지고 있다. 지난 2일 한전이 공사를 재개한 이후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던 현장의 주민 30여 명이 공권력에 희생돼 병원에 이송됐고, 20여 명이 경찰에 연행됐다. 밀양 송전탑 건설 논란은 더 이상 밀양 주민과 한국전력간의 갈등 문제가 아니다. 시민사회, 정치, 종교, 국제사회 등 각계의 촉각을 곤두세우는 문제로 부상했다.
밀양 송전탑 건설을 둘러싼 갈등은 9년여 동안 이어져온 상황이다. 그동안 주민과 시민사회는 송전탑이 인체에 미치는 악영향, 자연환경 훼손, 송전탑 건설 주변 땅값 폭락 우려 등 꾸준히 문제를 제기해왔다. 그러나 정부와 한전은 ‘보상 문제’만 언급하고 있는 상황. 주민들은 ‘송전탑 건설 전면 백지화’가 불가능하다면 대화를 통해 보상이 아닌 송전탑 우회나 지중화 작업 등의 대안을 마련하자고 요구하고 있다. 한전은 대화를 거부하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도 3000여 명 규모의 경찰 비호 아래 송전탑 설치용 기초 자재, 콘크리트 구조물, 건설장비 등을 실은 트럭을 현장에 투입하고 있다. 현장에서는 여전히 공사를 막다가 부상을 당하거나 연행된 주민들이 속출하고 있다. 연로한 주민들은 급기야 서울까지 올라와 밀양 현지 상황을 호소하고 있다. 




밀양송전탑 건설 현장에선 한 달 가까이 주민과 한전, 경찰이 뒤섞여 마찰을 빚고 있다. 연로한 주민들은 “공사를 멈춰라”고 절규하는 반면 한전은 아랑곳 않고 공권력을 투입해 공사를 빠르게 진행하고 있다.

한전은 지난 22일 경남 밀양에서 송전탑의 기초 공사 마지막 과정인 콘크리트 작업을 처음으로 시작했다. 주민들의 극한의 반발 속에 송전탑 공사를 재개한 지 21일 만이다. 한전은 수차례에 걸쳐 송전탑 건설 예정지인 밀양시 단장면 바드리마을 입구에서 경찰의 보호를 받으며 레미콘 운반차 19대를 4차례 송전탑 현장으로 진입시켰다. 이 과정에서 주민 등 100여명이 차량의 통행을 몸으로 막으려다가 경찰에 제지당했다. 여성 활동가 1명은 콘크리트 작업을 마친 뒤 내려오는 레미콘 차 앞에 드러누웠다가 경찰에 들려 나가기도 했다.

한전은 이날 부북면 위양리 126번 송전탑 현장에서도 헬기로 콘크리트를 실어 타설 작업을 시작했다. 126번 현장은 산길이 가파르고 좁아 레미콘 차의 접근이 어렵다. 84번 현장은 230㎥, 126번 현장은 500㎥의 콘크리트가 각각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84번 현장은 6~7일에 걸쳐 3차례 차량으로 콘크리트 운반이 이뤄졌다. 헬기로 공수하는 126번 현장은 옮길 수 있는 콘크리트 양이 1.2㎥ 정도로 제한돼 400차례 이상 수송해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전은 콘크리트 타설 작업을 마치면 지상 공사인 철탑 조립을 시작한다.



송전탑 반대 주민 10여 명은 24일에도 헬기 비행장이 있는 밀양댐 인근에서 항공유를 실은 탱크로리의 진입을 막으려다 경찰과 충돌했다. 이 과정에서 주민 김모(78. 여) 씨가 이마에 부상을 입고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다.

‘밀양송전탑 반대대책위’ 공동위원장 김준한 신부는 “경찰들이 반대 주민들을 끌어내는 과정에서 김 할머니의 이마를 가격했다”고 주장했다.

한편 한전은 내년 5월까지 주민 반대로 완공하지 못한 밀양시 4개면 전체 송전탑 52기를 모두 완료한다는 목표아래 공사 현장을 꾸준히 늘려갈 방침이다. 현재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곳은 단장면 7곳, 상동면 2곳, 부북면 1곳 등 10곳이다.



서울로, 서울로

밀양 현장에서의 거센 반발이 먹혀들지 않자 주민들은 급기야 상경까지 감행하고 있다. 지난 2일 밀양 단장면 반대대책위 위원장인 김종회(42. 남) 씨의 대한문 무기한 단식농성을 시작으로 밀양 주민들의 상경이 줄을 잇고 있다. 주민들은 지난 21일부터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밀양주민들과 밀양의 친구들 공동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밀양 송전탑 문제해결을 위한 대국민 호소 릴레이 765배를 통해 서울 시민들에게 송전탑 문제를 알리고 있다.

주민들은 청와대를 향해 “송전탑 갈등은 보상으로 풀릴 수 없다. 일생을 국가와 사회를 위해 묵묵히 노동하며 헌신해온 주민들의 삶터를 파괴하지 말아 달라. 현장 주민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달라”고 호소했다.

주민 이종분(70. 여) 씨는 “평생 농사만 지으면서 정직하게 살아왔는데 도대체 왜 이 난리를 피우느냐”며 “큰 돈 없이 어렵게 살아도 그동안 행복했다. 행복하게 살고 있는 마을을 왜 파괴하려는 것이냐”고 했다. 

이 씨는 “공사를 밤새도록 해서 소음이 심하다. 차라리 서울 올라와서 농성하는 게 낫다”며 “새벽부터 공사한다고 난리를 치니까 뜬눈으로 보낼 때가 많다. 요즘은 평생 먹어보지도 못한 수면제까지 먹게 됐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남우(71. 남) 씨는 “평생 정부가 하는 일에 반대 한 번 안하고 살아왔고, 정치가 뭔지도  모르고 조용히 살아왔다. 제가 살고 있는 마을 자체가 평화롭고 조용했기 때문”이라며 “그런데 갑자기 어느 날 포클레인이 들이닥치고 송전탑을 짓는다고 한다. 이렇게 국민을 대놓고 죽이려는 정부가 어디 있느냐”고 격분했다.

이 씨는 또 “한참 수확해야할 철인데 서울에 와서 이러고 있다”며 “밀양에 남은 사람들도 농성장 움막에서 익어가는 나락을 보며 가슴만 치고 있다. 공권력 철수시키고 마음 편하게 가을걷이를 하고 싶다”고 토로했다.

그는 이어 “매일 농성을 하다보면 농사일도 제대로 못한다. 농사를 할 수도 없고, 농성을 해도 공사는 계속되니까 주민들의 상실감이 이만저만이 아니다”며 “송전탑은 예정대로 건설되고, 주민들은 농사 못 지어서 굶어죽을 판이고, 땅값은 똥값이 돼서 후손들에게 물려줄 땅도 없다”고 눈물을 글썽였다.

종교계와 정치권, 시민사회 등도 대한문 앞 농성에 적극 참여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용길 노동당 대표는 “언론과 국회를 통해 알려진 일부 내용을 보면, 신고리 5~8호기와 삼척, 영덕 등 신규 핵발전소 건설계획이 포함된 시나리오가 언급되고 있다”며 “특히 현재 강행되고 있는 밀양 송전탑 건설공사는 신고리 5~8호기는 물론 노후한 고리 1~4호기의 수명을 연장하기 위한 사전작업이라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이어 “신고리 5~8호기 건설이 중단될 경우, 기존 송전선로 용량이 남게 된다”며 “이는 고리 1호기 노후 원전을 멈추면 밀양 송전탑을 세우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장하나 민주당 의원은 “에너지기본계획 수립단계에서 원전비중을 줄이는데 공동으로 인식하고, 노후 원전 폐쇄까지 검토되는 상황이라면 최고령 고리 1호기 등 노후 원전 재가동을 전제로 진행 중인 밀양 송전탑 공사는 최소한 에너지기본계획이 발표되는 연말까지라도 중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제사회도 한국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국제앰네스티는 지난 24일 한국 정부와 한전에 대해 “밀양 송전탑 건설 공사를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앰네스티는 성명을 통해 “정부와 한전은 주민과 진정한 협의를 진행하고, 해당 공사가 인권에 미칠 영향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는 주민들은 대부분 고령자로 경찰 공권력에 의한 인권 침해를 당하고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앰네스티는 “송전탑 건설이 주민들의 건강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분석한 한전 내부 보고서도 있으나 협의 과정에서 이러한 정보는 공개되지 않았다”고도 지적했다. 앰네스티는 특히 “송전탑 건설로 인해 부정적인 영향을 받은 사람들에게 충분한 보상과 대안을 제공할 수 있을 때까지 송전탑 건설을 중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캐서린 베이버 국제앰네스티 아시아태평양국장은 지난 5월 밀양을 방문해 인권 침해 실태를 조사한 바 있다.



공사 포기해야

시민사회가 제기한 송전탑 공사 문제점에 대한 감사가 받아들여질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쏠린다. 감사원 관계자는 “감사에 따른 공익성과 실익성, 관련 수사·재판 여부 등에 대한 검토를 거쳐 감사에 착수할지 기각할지 판단한다”며 “다른 감사청구건도 있기 때문에 착수 여부가 나올지는 검토 과정을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전국 230여 개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한 ‘밀양송전탑 서울대책회의’는 지난 23일 밀양 송전선로 건설사업의 ▲타당성 ▲밀양지역 선로 설계 적절성 ▲특수보상 적법성과 형평성 등에 대해 감사원에 감사를 청구한 바 있다. 서울대책회의는 “100조원대 부채를 안고 있는 한전의 부실 재정을 고려할 때 밀양 송전선로를 폐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사업 타당성은 물론 부적정한 정책 결정자에 대해 감사를 해 오류를 바로잡고 책임자에 대해 징계를 요청한다”고 밝혔다.

대책회의는 ‘신고리~북경남 765㎸ 송전선로’ 건설 필요성이 없어져 밀양 송전탑 공사를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신고리~북경남 송전선로 사업의 근거인 전력수급기본계획이 바뀐 점 때문이다. 이 송전선로는 2004년 만들어진 2차 전력수급계획에 신고리~북경남~신충북~신안성 구간에 대용량 전력을 수송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2006년 3차 전력수급계획에는 북경남~신충북~신안성 구간이 폐기됐다.



대책회의는 “수도권 전력 공급이 목적이 아니라 영남지역 전기 공급시설의 ‘대단위 전원단지와 대용량 부하 밀집지역 간 전력수송’을 목적으로 하는 765㎸ 송전설비로 건설될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더구나 부산·울산·경남과 대구·경북지역 전력소비량 대비 발전량은 166%, 139%에 달한다.

대책회의는 현재 공사 중인 신고리~북경남 노선에 대해서도 감사를 청구했다. 이 송전선로는 신고리 핵발전소에서 부산 기장, 양산과 밀양을 거쳐 창녕 북경남변전소까지 191개 송전탑을 건설하는 것인데, 밀양시 4개면 52기 공사만 남았다.

대책회의는 또 주민거주지와 경작지 등을 우회하거나 최단 거리로 노선을 정한 것이 아니라면서 “경제성이나 수용성을 고려하지 않은 불합리한 노선”이라고 주장했다. 밀양 주민들도 노선 문제를 제기해 왔다. 특히 밀양시 산외면 희곡리 일대 101~109번 노선을 언급하며 “지역 권력자의 토지를 우회하기 위한 취지라는 주민들의 의견 등을 고려해 철저한 진상조사로 현 노선의 타당성 감사를 요청한다”고 밝혔다. 지난해엔 희곡리 보라마을 이치우 씨가 공사강행에 반발, 분신사망하기도 했다.

오진석 기자 ojst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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