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문지연의 좌충우돌 인도 유랑기-41화: 여행기를 마치며 3


인도를 다녀온 사람들의 반응은 보통 두 가지다. 애정 혹은 진저리. 애정은, 드넓은 대지 위에 우뚝 솟은 수많은 문화유산, 그 속에서 맥을 잇는 다양한 사람들의 삶에 대한 경의다. 반면 가난, 더러움, 무질서와 끊임없는 골탕, 치근거림은 인도를 몸서리치게 만드는 이유다. 필자는 두 가지를 모두 경험했다. 인도에 두 번이나 가면서 때마다 다시는 안 오겠다고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가도 순간순간 용솟음치는 감동과 환희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인도는 그래서 애증의 또 다른 이름이다. 멀리 떠나 있는 지금 이 순간만큼은 기억을 곱씹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그때 그 시절의 인도 유랑기를 펼쳐본다.



#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 아잔타 석굴 사원군에는 앉아서 사원군을 이동할 수 있는 가마가 종종 눈에 띈다.

배낭여행 중에 여행객으로부터 사기, 강도, 폭행 피해 등을 당했다는 소식을 심심찮게 들었다. 필자 역시 면전에서 직접 당하기도 했으며 소문으로 전해들은 피해사례도 상당했다. 여행을 다녀온 뒤에도 뉴스를 통해 성폭행, 살인 등 끔찍한 사건에 관한 얘기를 심심찮게 확인했다. 각종 사건사고의 피해를 미연에 막아보고자 인도 여행을 하면서 느꼈던 주의할 점을 몇 가지 풀어본다.

‘아무거나 먹지 말라’

자이뿌르에서 가이드북을 펼쳐 놓고 가야할 곳의 방향을 고민하고 있을 때 한 남자가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남자는, 한국말로 인사를 건네며 친근함을 표시했다. 쫀득쫀득 귀에 달라붙는 우리말이 어찌나 반갑든지. 게다가 입 꼬리를 귀에 걸어놓고 생글생글 웃어 재끼는 그의 모습은 꽤나 선해보였다. 돌이켜 보건데 그것은 ‘나 착한 사람’임을 강조하기 위한 한낱 퍼포먼스에 불과했다.

그러나 순간에는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그에 대해 ‘위험인물X’, ‘착한 사람O’라고 판단하며 함께 식사까지 했더랬다. 덕분에 필자는 난생처음 ‘약 탄 밥’을 먹었고 이로 인해 복통과 배탈, 설사로 이틀간 죽을 뻔 했다. 그 과정에서 그에게 신용카드 번호와 여권번호를 노출했고 심지어 주얼리 불법반입을 제안 받았으며 주유비까지 강탈당했다.(자세한 내용은 제3화, 32화를 참조하세요.)


# 영상 50도를 향하던 뜨거운 한 여름의 함피. 하늘은, 파란색 계열의 물감 중에서 가장 맑고 진한 색을 흩뿌린 듯 늘 청명했다. 그래서 더욱 아름답게 기억되는 함피다. 왼쪽으로 비루파크샤 사원이 눈에 띈다.

여행 중에 만난 20대 초반의 한 한국남자는 어느 현지인의 친절함에 속았다가 짐과 돈을 몽땅 잃어버렸다고 하소연을 해왔다. 그는 길을 몰라 헤매고 있을 때 다가온 한 남자와 이야기를 나눴고 이 남자가 건넨 음료를 거리낌 없이 받아마셨다. 그런데 아뿔싸! 음료를 마시자마자 곯아떨어지고 말았다. 일어났을 때는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 더욱 끔찍한 일은 가방과 지갑을 몽땅 털렸다는 사실이었다.

“음료에 수면제를 탔던 게 확실해요. 누군가 덤벼오면 힘으로 제압할 수 있다고 자신했는데 이런 건 정말 예상외네요. 설마 남자에게까지 이럴 줄이야.”

그는 “그나마 수면제여서 다행이었다”며 새삼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의 경우처럼 상대방의 호의를 거절할 수가 없어 음료를 받아 마셨다가 봉변을 당했다는 고백은 많아도 너무 많았다. 때문에 모르는 사람이 건네는 음료는 일단 신중하게 바라봐야만 한다. 심지어 슈퍼마켓에서 물이나 음료 등을 살 때조차 뚜껑이 제대로 닫혀 있는 지를 꼭 확인하도록 한다.



# 인도의 대표 건축물 타지마할. 무굴제국의 황제 샤자한이 왕비 뭄타즈 마할의 죽음을 애도하며 만든 묘지다. 순백의 대리석 곡선을 타고 흐르는 우아함은 넋을 놓을만큼 신비롭고 고혹적이다.

‘친절함을 경계하라’

낯선 곳에서 길을 몰라 헤매고 있을 때 누군가 다가와 목적지를 안내하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그러나 함정은 여기에 숨어있다. 먼저 다가오는 사람과 과도한 친절. 두 가지를 항상 경계해야한다.

여행 중에 길 한 복판에서 가이드북이나 지도를 펴들고 머리를 긁적이고 있으면 영락없이 누군가가 다가왔다. 먼저 다가오는 사람은 항상 남자였다. 그에게 필자가 가려는 곳의 방향을 물으면 “잘 아는 곳이다”, “마침 나와 같은 방향”이라며 동행을 제안했다. 심지어는 필자가 가려는 숙소나 레스토랑을 들먹이며 “친척이 운영하는 숙소”, “내가 운영하는 레스토랑” 등 기가 막히게 맞아 떨어지는 대답을 내놓기까지 했다. 옆집의 입양 딸이 알고 보니 내 딸, 죽도록 사랑한 남자가 알고 보니 아버지 원수의 아들 등 구태하고 진부한 드라마 소재처럼 황당하게 들어맞는 꼴이 나중에는 우습고 기가 찼다. 물론 콧방귀를 뀌는 경지에 오르기 전까지는 어리석게도 그들의 말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특히나 첫 여행 때는 처음 하는 배낭여행이란 점에서 순한 양의 탈속에 감춰진 늑대의 얼굴을 전혀 구분하지 못해 수시로 속아 넘어가곤 했다.

그때 델리에서 만났던 한 일본인 청년은 두 현지인을 철석같이 믿었다가 낭패를 봤던 경험담을 들려준 바 있다.

델리에서 아그라로 떠나려했던 그는 비행기 표를 대신 사다주겠다는 두 남자의 말을 철썩 같이 믿고 돈을 내줬다가 티켓은커녕 소위 ‘알거지’가 됐다고 했다. 그는 여행 경비를 빼앗기고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된 뒤로는 어쩔 수 없이 동네 조그만 관광안내센터에 머물며 일을 도왔다. 필자 일행은, 센터에서 동양인이 방문했다하면 그를 내세우는 것으로 미뤄 그를 호객꾼으로 내세우는 것이라고 짐작했다. 괜찮은 외모의 동양인이 추천하는 여행상품이면 좀 더 믿고 이용할 수 있겠다는 신뢰를 주는 정도의 역할이랄까. 사실, 필자 일행이 스리나가르에 가기로 결정했던 이면에는 그의 추천도 한 몫 했다.
여행 중에 친절을 베푸는 사람을 의심 없이 따라갔다가 돈을 몽땅 빼앗겼다는 사례를 헤아릴 수 없이 접했다. 한 남자를 쪼르르 쫓아갔는데 막다른 골목길에서 돌변, 칼을 꺼내들고 돈을 빼앗아 갔다는 사례도 접했고 한 캐나다인은 현지인으로부터 식사 초대를 받았다가 돈을 몽땅 빼앗겨 한 달 내내 삶은 달걀과 푸석한 빵만 먹었다는 얘기도 전해 들었다.

명심해야할 것은 먼저 다가오는 사람을 무조건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특히 동행을 제안하거나 그곳이 아는 곳이라고 장담하는 사람들은 더욱 의심하고 볼일이다. 물론 그 중에는 진짜 친절을 베풀려는 순수한 마음도 있겠지만 어차피 진심과 가심을 구분 못해 피해를 당하는 것이니 일단은 무조건 몸을 사리고 보는 것이 낫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할 때는 가급적 가족 단위의 사람들을 찾는 것이 좋겠다.



# 740년 경 남부 왕들과의 전쟁에서 이긴 남편을 기념하기 위해 로카마하데비 여왕이 세운 비루파크샤 사원. 비에 젖어 쓸쓸해 보이면서도 운치가 흐르는 사원의 내부 모습이다.

‘나는 연예인이 아니다’

인도에서 가장 부담스러운 것 중에 하나는 거리의 시선이다. 동물원의 원숭이를 보는 것처럼 필자의 움직임을 노골적으로 좇는 경우가 많았다. 지방이나 관광지에 가면 더했다. 내리 꽂는 시선은 거의 연예인을 바라보는 수준이다. 삽시간에 달려들어 사진을 찍자는 경우도 허다했다. 뭣 모르던 9년 전에는 나는 ‘인도 스타일’인가 보다는 착각을 할 정도였다. ‘인도에서 좀 통하는 스타일이라 남자들의 대시가 이리 많은가’라는 엄청난 자아도취도 살짝 하곤 했다. 그러나 정확한 것은 나는 결코 연예인이 아니며 남자들의 대시는 모두 거짓말이라는 것이다.

9년 전에 인도에서 이런 얘기를 들었다. “한국여자랑 결혼하면 차가 생기고 일본 여자랑 결혼하면 집이 생긴다.” 이런 생각으로 작정하고 달려드는 사기꾼들이 많다는 것이다. 자이뿌르에서 만난 남자도 시종일관 ‘스위트하트’를 남발하며 필자에게 무한 관심을 드러냈다. 델리에서는 어떤 남자가 안면을 튼 지 몇 시간 만에 ‘아이 러브 유’란 말을 쏟아내는 탓에 뼈 속부터 닭살이 돋아나는 이색 체험을 했고 어느 박물관에 갔을 때는 밑도 끝도 없이 필자에게 관심을 드러내던 한 직원이 전화번호를 달라며 쫓아와 기겁했던 일도 있다. 또 길거리를 걸을 때면 느닷없이 다가와 끈적끈적한 눈빛으로 추파를 던지는 몹쓸 남자들도 많았다. 정말이지 느끼함이 정점을 이루는 구토 유발 직전의 상황들이었다.

조양 또한 두 세마디도 안 나눈 한 남자로부터 느닷없이 “결혼하자”는 불쾌한 고백을 전해 듣기도 했다. 단언컨대 정말 많은 한국여성들, 특히 혼자 온 여성들이라면 수 없이 경험했을 일이다. 

혹자들은 말한다. 그 큰 눈을 껌뻑이며 진심으로 얘기하는 데 어찌 단 칼에 거절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상대방에게 미안해서 매정하게 대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경험으로 미뤄 이것은 어디까지나 대단한 착각이다. 진심어린 애정이 아니니 그리 미안할 것도 없다. 미심쩍거나 아니라고 생각될 때는 주저 없이 ‘노’를 외쳐야만 한다. 그래야 여행을 상처 없이 끌고 나갈 수가 있다.



# 새끼를 꼭 끌어안은 채 망고를 쥐고 있는 함피의 원숭이. `동물의 왕국` 함피에는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절로 미소 짓게하는 다양한 동물들이 참으로 많았다.

‘흥정의 달인이 돼라’

인도 여행의 대표적 관문 중에 하나인 델리에 첫 발을 디딘 필자는 가장 먼저 마주한 오토릭샤의 황당한 장삿속에 울화통이 치솟았었다. 릭샤 이용료 때문이었다. 차비는 정가도 없고 기본요금도 없는 그야말로 부르는 게 값이었다. 종로1가에서 종로5가 정도 되는 가까운 거리를 현지인에게는 보통 20루피를 받는다면 만만한 외국인에게는 300루피를 부르고 봤다. 흥정을 해 100루피로 갔더라도 릭샤왈라는 다섯 배는 족히 남기는 셈이었다. 가격은 아침이 다르고 저녁이 달랐으며 같은 시간이라도 이 릭샤와 저 릭샤 또한 달라도 한참이나 달랐다. 거리에 따라 요금을 부과하는 미터기는 어디까지나 장식용일 뿐이었다. 게다가 릭샤왈라는 항시 배짱을 부리기 일쑤요, 어떤 때는 어깃장까지 놓으며 ‘싫음 말고’ 식의 뻔뻔한 영업 행태를 보이고는 했다. 그런데도 릭샤말고 다른 교통수단이 없을 때는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오토릭샤, 사이클릭샤 등을 이용할 때는 무조건 흥정부터 해야 한다. 흥정한 가격이 릭샤에 타는 모든 인원수를 포함하는 것임을 확인하고 돈은 내릴 때 지불하는 것이 중요하다. 50루피로 흥정했는데 내릴 때가 되면 1인당 50루피라고 우기는 경우가 있고 미리 줬을 때는 엉뚱한 곳에 데려다놓고 줄행랑치는 경우가 다반사기 때문이다.

또 ‘원하는 숙소에 데려다 달라’고 할 때 어떤 릭샤왈라는 폐업했다거나 방이 찼다며 다른 곳을 제안하는 경우가 있다. 숙소, 여행사 등과 연계해 커미션을 받는 것이다. 엄청난 바가지요금에 시달리는 것은 물론 범죄에 노출되는 위험천만한 상황에 처할 수 있으니 이 경우 무조건 거절해야만 한다. 필자 역시 공항에 내리자마자, 데려다 달라는 숙소 모두 “공사 중이다”, “만실이다” 등의 주장을 펴는 릭샤왈라의 말에 속아 그가 안내하는 숙박료 80달러짜리의 후진 호텔에 묵었던 적이 있다. 가져간 경비의 3분의 1가량 되는 돈이었다. 첫 단추를 잘 꿰지 못한 연유였는지, 심지어 이날부터 일정은 몽땅 꼬여버리고 말았다.





# 불교미술의 진수, 아잔타 석굴사원 내부모습. 사원군은 높이 70m, 길이 1.5km에 이르며 기원전 2세기 아잔타시기부터 굽타 왕조 시대에 이르기까지 29개가 제작됐다.

‘밤거리 활보는 금물’

밤에, 특히 홀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 대중교통뿐만 아니라 밤에는 가급적 거리를 활보하지 않도록 한다. 여전히 치안 상태가 불안한 곳이 많기 때문이다. 인도에서 만난 20대 초반의 두 여대생이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뭄바이에서 해가 저물 즈음 산책을 하고 있는데 남자들이 뒤통수에 대고 낄낄 거리며 성희롱 발언을 해 기겁했던 적이 있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여대생도 델리에서 저녁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들어가는데 느닷없이 허리춤으로 손이 다가와 까무러칠 뻔 했다고 알렸다. 밤기차에서 잠을 자는데 이불 아래로 손이 스물 스물 기어들어왔다 거나, 달리던 릭샤가 잠시 정차했을 때 행인이 불쑥 손을 집어넣었다는 황당한 얘기도 왕왕 전해 들었다. 필자 역시 스리나가르로 가는 버스 안에서 덮고 있던 이불 밑으로 옆자리 남자의 손이 들어와 기겁했던 기억이 있다. 

걸인을 만났을 때는 동전 한 닢을 쥐어주는 행위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원 루피 플리즈’를 외치며 달려드는 아이가 안쓰러워 동전을 쥐어준 적이 있는데 순식간에 어디서 나타났는지 걸인들이 필자를 에워싸 깜짝 놀랐던 적이 있다. 조양은 한 소녀에게 돈이 없다고 하자 따귀를 한 대 얻어맞기까지 했다. 많은 여행객들은, 제 딴의 선행이 오히려 화가 돼 돌아올 수도 있고 어린아이들이 모은 돈은 어차피 조직에 몽땅 상납하는 구조로 알려져 있으니 차라리 먹을 것을 쥐어주는 것이 낫다고 조언한다.

아울러 기억할 것은 인도는 삶의 모든 것이 종교에서 비롯되는 나라라는 점이다. 때문에 섣부른 종교비판은 금해야 한다. 또 지역마다 종교의 색이 강하기 때문에 지역의 종교에 맞는 최소한의 옷차림이나 예의는 준수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여행 할 때 주의해야할 이모저모가 비단 인도 안에 국한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곳이 어디든, 낯선 곳에서는 항상 경계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 나 자신을 지키는 사람은 결국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ohora88@naver.com<문지연 님은 언론인이며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습니다. 다음 호에 이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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