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별명의 달인
<신간> 별명의 달인
  • 승인 2013.10.31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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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효서 지음/ 문학동네






올해로 등단 26년째, 198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마디」로 작가생활을 시작한 구효서의 신작 소설집이 출간되었다.

삶이 깊어갈수록 소설세계 또한 다채로워진 대표적 전업작가이자 리얼리즘에서 모더니즘, 신비주의와 낭만주의 등 다양한 문체와 알레고리로 독자를 꾸준히 매혹해온 그다.

『시계가 걸렸던 자리』 『저녁이 아름다운 집』을 잇는 여덟번째 소설집 『별명의 달인』은 앞선 두 소설집에서 천착한 탄생과 소멸의 문제에서 벗어나 삶 그 자체를 조망한다.

죽음에 대한 사유 끝에 따라붙기 마련인 허무의식이 이번 소설집 곳곳에 스민 것은 그러므로 놀라운 일이 아닐 터, 그것이 삶에 대한 포기나 체념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데 이 소설집의 빛나는 힘이 있다. 요컨대 삶은 유한하며 우리는 삶의 의미를 끝내 모를 것이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아니라, 그런 까닭에 끊임없이 재질문할 수 있다는 것이다.

‘끝’에 대해 ‘끝’까지 생각해본 이만이 가질 수 있는 성찰의 힘. 매일 무거운 SENS R530 노트북을 짊어지고 중랑천 도로를 따라 공릉도서관으로 향하는 작가 구효서의 힘이다. 

표제작 「별명의 달인」의 화자는 학창 시절 자신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었던 친구를 찾아간다. “당신은 제대로 아는 게 없어”라는 말을 버릇처럼 하던 화자의 아내가 어느 날 갑자기 떠난 뒤였다. 화자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의 내?외면적 특징을 놀랄 만큼 잘 찾아내어 ‘별명의 달인’이라 여겨진 옛 친구. 그 친구라면 아내가 외치던 말의 뜻을 알 것 같았고, 자신에게 무엇인가 말해줄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그를 만나 지난날을 회상하던 화자는, 옛 친구에게 별명 짓기란 재미가 아닌 공포와 고통을 모면하기 위한 방편일 뿐이었음을 떠올린다.

친구들의 반감을 사던 옛 친구의 “너스레와 공연한 자존심” 뒤에는 타인에 대한 빈틈없는 파악이 불가능한 데서 오는 두려움이 있었다. 우리는 타인과 관계 맺으며 자기만의 틀로 상대를 규정하게 마련이다. ‘별명의 달인’은 자신의 이해방식으로 타인이 규정되지 않는 것을 견뎌내지 못하는 인물이었던 것. 그러나 필연적으로 불가능한 ‘온전한 이해/규정’이었으므로, 그의 아내가 그가 지어준 별명을 버리고 떠났을 때 ‘별명의 달인’은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각자 아내를 잃고 ‘길 없는 길’ 앞에 선 화자와 ‘별명의 달인’, 두 사람은 타인에 대한 이해의 영점에 서서 스스로를 돌아보는 새로운 질문을 하게 될 것이다.

정리 이주리 기자 juyu2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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