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기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자신을 자유로운 인간의 상징인 조르바와 동일시하며 살아 펄떡이는 말에 유난히 집착하던 언어 천재 이윤기. 서양 언어와 문화의 전문가이면서도, 작가의 이름을 딴 ‘이윤기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우리말을 가장 생기 있고 다채롭게 쓰는 작가로 평가받았던 이윤기. 그의 유일한 글쓰기 산문집 『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가 나왔다.

이 책은 그가 평생 자신의 언어를 부리며 살아갈 모든 이들에게 전하는, 작가의 영혼과 글쓰기의 태도에 대한 모든 것이다. 여기에 실린 39편의 에세이에는 첫 문장의 설렘부터 퇴고의 고뇌까지, 그리고 1977년 등단의 두근거림부터 창작과 번역의 세계를 오가던 시기의 고민까지 모두 녹아 있다. 독자들은 이 산문집을 통해 그의 글쓰기 인생을 엿보고, 언어에 대한 그의 예민한 감각이 어떻게 펄펄 살아 있는 문장을 만드는지 확인하게 된다. 또 그는 자신이 오독하고 오역했던 사례 등 숨기고 싶은 실패담도 모두 털어놓고 철저한 자기반성을 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무엇보다 자유의 상징 조르바에게 생생한 입말을 입히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사정을 읽으면 한 고집 있는 글쟁이의 투쟁이 얼마나 많은 독자를 즐겁게 했는지 이해하게 된다.

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는 글쓰기의 기술에 대해 말하는 책이 아니다. 대신 이 책은 그 어떤 글쓰기 책보다 예비 글쟁이들을 자극하고 그들의 숨은 욕망을 일깨운다. 이 산문집은 이윤기가 창작을 하고 번역을 할 때 느끼고 생각했던 것들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집필 노트와 다름없기 때문이다. 조르바에게 살아있는 입말을 입혔기에 펄쩍펄쩍 뛰어오르는 조르바의 춤이 진정한 생명력을 얻을 수 있었던 것처럼, 예비 글쟁이들은 어떤 언어로 누구를 춤추게 할 건지 새로운 의욕에 불타게 된다.

이 집필 노트가 예비 글쟁이들에게 특히 의미가 있는 건 이윤기가 자신의 실패담을 숨기지 않고 공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유식해 보이고 싶어서 폼 나는 한자어를 고르고, 멋있게 보이고 싶어서 제 생각을 비틀다 정작 재미없고 죽은 말만 쓰게 된 자신의 경험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어리석은 사람은 한 명도 등장시키지 않고, 독자들을 가르치려고만 들었던 초기 소설에 대한 자기반성도 빼먹지 않는다. 또 그는『장미의 이름』의 초판 번역에서 저질렀던 수많은 오독과 오역까지도 모두 털어놓는다. 개정판 『장미의 이름』이 번역문학 연감 <미메시스>에서 “해방 이후 가장 번역이 잘 된 작품”으로 선정됐다는 사실을 떠올려보면, 철저한 자기반성이야말로 좋은 글쓰기의 가장 중요한 자산이라는 걸 새삼 깨닫게 된다. 자신의 실패담을 먼저 고백하기에 “멋있게 보이고 싶다고 제 생각을 비틀지 말라”거나 “당신의 글에서 당신의 모습이 조금씩 사라져야 한다”는 그의 충고가 더 큰 설득력을 갖는다.

정리 이주리 기자 juyu2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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