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극한의 추위속 천막농성 중앙대 청소노동자 그리고 ‘100만원 짜리’ 대자보



학점관리. 취업대란. 교수는 쉬어도 학생은 쉬는 법이 없다. 대학엔 이제 방학도 없다. 도서관은 붐빈다. 학내 건물마다 스터디 열풍이다. 세상은 변했다. 학점관리와 취업대란이어서 뿐만 아니다. 최루탄 냄새가 가시지 않던, 강의실에까지 담배 연기 풀풀 풍기던 80년대 대학이 아니다. 학생들은 무엇보다 쾌적한 환경을 요구한다. “지저분하면 공부가 안 돼요.”
쾌적한 환경 조성은 이제 대학의 가장 중요한 덕목 중 하나다. 머문 시간이 긴만큼 오염도도 높아지기 마련. 오염이 싫은 학생들에게, 쾌적한 환경을 요구하는 학생들에게 청소는 늘 뒤따른다. 학생들의 스터디 강도가 높아진 만큼 청소노동자들이 노동 강도도 높아지기 마련이다. 자식 뒷바라지 하는 부모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말까지 나온다. 세상은 변했다. 그런데 청소노동자들의 처우는 전혀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여타 대학도 마찬가지지만 중앙대는 특히나 열악하다. 고령의 청소노동자들이, 그것도 대부분 여성인 이들이 경사가 급한 건물 외곽청소까지 도맡아 하면서 사고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사고가 나도 산재는 없다. 그래서 청소노동자들이 나섰다. 외곽인원 확충하고 산재 등 처우개선에 나서라며 파업에 돌입했다. ‘안녕들하십니까’ 열풍을 타고 대자보까지 나붙었다. “청소 못해줘서 미안하다.”

학교 측 반응은 학생과 청소노동자 모두를 경악케 했다. 대자보를 붙일 경우 100만원씩 벌금을 청구하겠다는 것이다. 도서관에서 공부하던 학생들도 뿔이 났다. 학생들은 급기야 ‘100만원 짜리’ 대자보를 붙이기 시작했다. 이를 지켜보던 중앙대 교수들도 학교 측을 규탄하는 대자보 붙이기에 동참했다. <위클리서울>은 청소노동자와 대자보 문제로 어수선한 중앙대를 찾았다.   

 



대부분 학생 문제 의식 느껴

방학 시즌이지만 여느 대학과 마찬가지로 정문으로 가는 길목은 활기가 넘쳤다. 학교를 빠져나오는 이들과 종종걸음으로 학교에 들어가는 이들. 취업 문제로 방학조차 반납한 대학생들의 현실이 대학 정문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도서관으로 향하던 김모(26. 남) 씨는 올해 4학년이 된다. 학점도 중요하지만 취업 준비에 몰두하고 있다고 했다.

그런 가운데도 청소노동자들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은 남달랐다. 부모님 뻘인 청소노동자들이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추운 겨울 천막농성을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은 가뜩이나 ‘안녕하지 못한’ 학생들에게도 공통의 관심사다.

“청소노동자들에게 대자보·구호 등 외치면 회당 100만원 내라고 했대.”
“미쳤네. 미쳤어.”

바쁘게 도서관을 향하던 김 씨 역시 “짜증이 난다”며 학교 측의 태도를 꼬집었다. 김 씨는 “공부하느라 바쁘지만, 지금 학교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학생들도 알고 있다. 방학이어서 평소보다 학생들이 결집되기 힘든 상황이라 그렇지 문제가 계속 방치되면 어떻게 될지 모를 일”이라고 했다. 그는 “학교를 가장 학교답게, 깨끗하게 만들어주는 분들을 그런 식으로 취급하는 현실에 대다수 학생들이 분노하고 있다”고 했다.  

청소노동자들의 천막농성장은 학교 정문과 불과 100미터도 되지 않는 거리에 있다.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 역시 천막농성장 앞에 줄을 잇고 있다. 학교의 주요 시설로 이동하기 위해선 반드시 거쳐야 하는 코스다. 농성장에선 대자보를 찬찬히 살펴보는 학생들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평소 사회 문제에 관심이 없던 학생들조차 학내 청소노동자 문제에는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





특히 학교 측이 청소노동자들에게 대자보를 붙이거나 구호 등을 외칠 경우 회당 100만원씩 청구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논란은 더욱 커지고 있다. 학교 측이 법원에 대자보를 붙일 경우 100만원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가처분 신청을 낸 건 지난 3일 한 언론에 의해 드러났다. 아직 법원이 결정을 내리진 않았지만,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당장 먹고 사는데 정신이 없어 현실 문제에 관심이 없었다는 복학생 장모(27. 남) 씨는 “이건 뭐, 진짜 막가자는 것 아니냐. 처음엔 무슨 소린지 몰랐는데 100만원 청구하겠다는 방침을 전해 듣고선 ‘멘붕’ 상태에 빠지기도 했다”며 허탈해했다. 장 씨는 “평소 공부만 하던 친구들도 이 문제에 대해선 ‘민주주의에 대한 중앙대의 심각한 도전’으로 인식하고 있다. 밥 먹을 때나 커피 마실 때나 청소노동자와 대자보 문제는 늘 입에 오르내린다”고 했다.

천막농성장은 민주노총 산하 학교비정규직노조와 청소노동자들이 지키고 있다. 노동문제에 관심이 없었던 학생들조차 더러 농성장을 찾는다. 호두과자를 들고 농성장을 찾은 윤모(23. 남) 씨는 “평소 노동문제 등 사회문제에 관심이 없다. 그런데 돌아가는 사태가 하도 기가 막히고, 어머니 같은 분들이 추위에 떨고 계셔서 이렇게 농성장을 찾았다”고 했다. 그는 “길게 말하기 싫다. 그냥 순수한 마음으로 과자를 전해 드리는 것일 뿐”이라며 천막을 바쁘게 빠져나갔다.         

지난 7일엔 중앙대 동문들도 천막농성장을 찾아 지지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이들은 중앙대가 탄압과 외면을 멈추고 사태 해결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중앙대 민주동문회, 청년동문모임 등에 소속된 동문과 재학생 40여 명은 농성장을 찾아 응원하고 시민단체와 함께 중앙대의 대승적 결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급경사에 팔다리 부러져

중앙대는 학교 정문과 후문 사이의 경사가 가파르다. 산을 깎아 만든 학교이다 보니 외곽 청소는 여느 대학보다 특히 힘에 겹다. 겨울엔 빙판길 사고도 자주 벌어진다. 청소노동자들은 대부분 고령의 여성이고 건물 내부뿐 아니라 외곽 청소까지 담당하고 있다. 타 대학 노동 현실과 가장 큰 차이점이 바로 여성 노동자들을 경사가 급한 외곽으로 내몬다는 것이다.
농성장 안에서 만난 청소노동자 이모(63. 여) 씨는 “계절과 관계없이 사고가 많이 발생한다. 물론 겨울은 특히 심하다. 경사가 급해서 미끄러지면 팔다리가 부러지는 경우가 부지기수”라고 했다. 문제는 이렇게 팔다리가 부러져도 산재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 이 씨는 “운이 좋으면 좀 쉬며 치료 받은 후 일을 계속 하는 것이고, 아니면 잘리는 것 아니겠느냐. 그런데 치료비는 치료비대로 깨지고 잘리는 경우는 도대체 누구한테 하소연 하느냐”고 한숨을 내쉬었다.    

청소노동자 중에선 자신의 아들이 중앙대에 재학 중인 ‘어머니’도 있다. 어머니는 대자보에 “누가 아들이 어느 대학에 다니느냐고 물어보면 중앙대 다니는 사실이 부끄러워서 얘기도 못한다”고 썼다. 청소노동자 김모(59. 여) 씨는 대자보를 붙인 어머니에 대해 “평소 일도 열심히 하고 자기 아들이 중앙대에 다닌다고 자랑도 했다. 학교에서 아들을 만나면 정겹게 대화는 나누는 순박한 분이었다. 그런데 학교가 노동자를 대하는 현실을 보고 얼마나 실망했겠느냐”고 토로했다.

이런 가운데 교수들의 대자보도 눈길을 끈다. 김연명 중앙대 교수는 “학생들이 갖고 있는 아픔, 우리 사회에 대한 애정에 대해 공감을 표시하는 게 의무고, 지식인으로서 해야 할 일이 아닌가”라는 내용의 대자보를 붙였다.





방학 시즌 대학원 스터디 때문에 학교에 나왔다는 김모 교수는 “요즘 교수들도 철밥통이 아니다. 그래서 학교에 문제가 있어도 말을 삼간다”고 했다. 김 교수는 “진보적 인사들로 구성된 교수평의회 차원에서 대자보를 붙였지만, 그 분들은 오래전부터 나름대로 파워가 있는 사람들이다. 학교에서도 회유하기를 포기한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사실 대부분 교수들도 이 문제가 상식적이지 않다는 점에 공감한다. 대자보 붙인다고 100만원 내라는 게 말이 되느냐. 이게 과연 대학에서 할 짓인가”라고 비판했다.          

학교 측은 청소노동자들의 직접고용주가 아니라며 용역업체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용역업체 역시 청소노동자들의 처우 개선 요구에 묵묵부답이다. 농성장에서 청소노동자들을 돌보고 있는 학비노조 윤진랑 사무처장은 “흔히 이런 경우 학교 측이 용역업체와 청소노동자 간의 중재에 나서는 게 관례인데, 두산그룹 휘하의 돈 많은 중앙대만 유독 중재에 나서지 않고 뒷짐만 지고 있다. 갑을 관계에서 학교 측이 갑이기 때문에 용역업체가 마음에 안 들면 교체할 수도 있는데 용역업체도 학교 측에 주눅 들어있는 상황이 아니다”고 했다. 윤 처장은 “용역업체 사장이 과거 두산그룹 임원이었다는 얘기가 있다. 아마 그런 이유로 서로 입을 맞추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고 했다.   



이런 가운데 ‘노조 파괴’ 논란도 불거지고 있다. 학교 측이 100여 명의 청소노동자들을 둘로 갈라놓았다는 게 학비노조의 주장이다. 윤 처장은 “절반 이상이 한국노총 산하 노조로 들어갔다. 학교 측에서 청소노동자들에게 농성을 하면 불이익을 받게 된다고 회유와 협박을 해서 이런 현상이 벌어졌다”고 토로했다.   

한편 중앙대 청소노동자들은 지난달 16일부터 ‘비인간적인 근무환경 개선’과 ‘노조파괴 공작 중단’을 요구하며 전면파업에 돌입했다. ‘대자보 회당 100만원 청구’ 논란이 불거진 지난 3일부터는 학교 정문 인근에 천막을 치고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은 ▲학교가 청소노동자들과 용역회사간 단체협약 체결 중재에 나서야 하고 용역업체 교체 ▲외곽인원 등 인력 확충 ▲중앙대가 청소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할 것 ▲청소노동자들에 대한 탄압과 압박을 중단하고 민형사적 조치를 모두 취하할 것 등을 요구했다.

대자보도 끊이지 않고 있다. 일부 학생들은 자신의 대자보가 ‘100만원 짜리 대자보’라고 밝히며 학교 측을 조롱하고 있다. 향후 중앙대가 청소노동자와 대자보 문제에 어떤 대응책을 내놓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최규재 기자 visconti00@hanm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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