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진단> 2014년의 남북과 동북아 어디로 가나-4회





문정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전현준 동북아평화협력연구원 원장,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원광대 총장), 정영태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가나다 순)



- 정부가 한편으로는 박왕자 씨 사망사건의 진상규명이라든지 우리 국민의 신변안전 문제 등이 해결돼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북한이 이를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나.
▲ 전 : 박왕자 씨 사건은 명백하게 북한 인민군 병사가 총으로 사살한 것이기 때문에 거기에 대한 유감표명은 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박왕자 씨 사건 유감표명 하나만으로 금강산관광 재개회담이 이루어질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천안함 사건도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북한 소행이라고 하지만 북한도 인정하지 않고, 국내에서도 말이 많다. 북한이 부정하고 우리도 강력한 증거가 없다. 이걸 뒤로 미룬다하더라도 연평도 포격사건은 또 어떻게 하겠는가. 만약 박왕자 씨 사건이 일어나지 않고 천안함이나 연평도 포격사건만 일어났다고 해도 금강산관광이 가능했을지 의문이다.
따라서 박왕자 씨 사건을 중심에 놓기보다는 보다 포괄적인 당국자 간 회담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북한도 물론 금강산관광 재개 회담에 집착하는 등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박왕자 씨 사건이나 천안함 사건 등을 수면 위로 부각시키면 국내 여론상 금강산 재개 논의가 어려워질 수도 있다.
▲ 정영태 : 받아들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까지 금강산관광 재개가 안 되는 것 아니겠는가. 박왕자 씨 같은 경우에는 우발적인 사고가 아니다. 저격이었다. 그런 문제가 해결이 안 되고 또 우리 국민들이 금강산 관광할 때 신변 안전이 보장이 안 된다. 언제든지 이런 사건이 다시 재발할 수 있다.
유감표명이라는 걸 했지만 그건 북한 당국이나 또는 가장 책임 있는 일꾼들이 한 게 아니고 명승지지도개발총국이 간접적으로 한 것이다. 우리 정부는 그것으로는 부족하다는 입장이다. 북한 당국이 확실하게 문서상으로 이번 사건에 대해 책임을 지고 사과를 하고, 그 다음에 이런 사건이 다시 벌어지지 않게 하겠다는 그런 담보를 한다면 언제든지 재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 김정은의 고모 김경희의 건강 이상설도 관심사다. 북한의 권력구도와 연계돼있기 때문이다. 김경희 유고 시 그 역할을 누가 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관심이 높다. 
▲ 문 : 김경희를 자주 등장시키면 결국 장성택을 자꾸 상기시키는 결과로 이어진다. 때문에 지금 북한에서는 그의 건강과 함께 정치적 고려에 의해서 뒤로 물러나 있다는 식으로 제스처를 취할 것이다. 자기 남편이 그렇게 만고의 역적으로 몰아서 처참하게 처형하다 보니까 아마 거기서 김경희는 충분히 충격을 받았으리라고 본다. 우울증이나 심근경색이나 이런 여러 가지 중병에 걸려 있는 게 사실이다.
지금까지 김정일-김경희 투톱 체제가 북한 권력을 안정적으로 이끌어왔다. 그런데 장성택이 종파분자로 숙청된 마당에 굳이 김경희를 자꾸 내세워 권력의 칼로 써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와병설도 중요하지만 은퇴시키는 수순인 것 같다. 김여정을 다시 불러 세워 김정은-김여정 투톱 체제를 준비하면서 김경희를 자연스럽게 물러나게 하려는 것 같다.
▲ 정세현 : 공식적인 권력서열에 있어서는 김경희가 6위다. 또 당정치국 소속이고 당비서국 비서다. 그러나 죽게 되면 그 하위에 있는 사람이 하나씩 올라가기 때문에 문제가 별로 없다. 공식적으로는 북한의 권력승계에 전혀 문제가 없다. 그런데 만약에 김경희가 죽는다면 김정은에게는 충격이다. 보통 충격이 아니다. 북한주민들이 장성택을 죽인 것만 가지고도 김정은을 악랄한 사람으로 표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김경희마저도 죽는다면 원인제공을 김정은이 했다고 여길 것이다. 그러면 고모와 고모부를 죽인 패륜아로 찍히기 때문에 북한 체제에 타격을 입을 수 있다.
▲ 정영태 : 김경희가 식물인간 상태에 놓여있다는 소식도 있는데 건강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만은 사실인 것 같다. 정상일 수 없다. 자기 남편이 평생 김일성, 김정일을 섬기며 충성을 바쳐왔는데 결국 조카 손에 잔인하게 처형당했다. 그러니 편할 리가 있겠는가.
그리고 김경희는 지병이 있었다. 이것저것 병이 많았다. 발 치료도 했고 눈병 치료도 했고 여러 가지 치료를 했다는 얘기가 있다. 당뇨합병증일 가능성도 높다. 당뇨합병증이면 굉장히 위험하다. 당뇨병은 북한에서 간부병이라고 한다. 높은 간부들이 잘 먹고 잘 사니까 걸리는 병인데 거기엔 약도 없다.
김경희 유고시 서너 명이 거론되고 있지만 북한은 이번에 장성택을 숙청하면서 백두혈통의 순결성을 위해서였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에선 리설주가 큰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퍼스트레이디이고 처음부터 제대로 데뷔를 했다. 김정은이 가장 의지할 수 있는 게 자기 와이프다. 그러니까 리설주와 리설주 패밀리다. 리설주 패밀리가 아마 앞으로 권력의 핵심 역할을 맡을 가능성이 높다.






- 장성택 숙청 문제 등으로 북한은 내부적으로 혼란스러워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남북관계가 개선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 전 : 북한으로서는 당장 급한 것이 현금이다. 북한이 금강산관광에 집착하는 것은 철저하게 현금을 필요로 하고 있고, 또 우리로서는 이산가족상봉과 절대적으로 연계를 시키는 데는 5. 24조치라는 제약조건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에 북한이 이번에 이산가족상봉에 응했더라면 우리도 뭔가 아량과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겠지만 1단계로 거절된 상태이기 때문에 많은 기간 동안 공백이 있을 것이다. 이 동안에 아마 70~80대 이산가족 수십 명이 또 세상을 떠나는 비극이 일어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여론도 좋지 않은 쪽으로 흘러갈 수 있다. 따라서 북한 내부 문제에 집착하기 보단 대외적인 차원의 관계 개선에 목적을 둬야 할 것이다.  
▲ 정세현 : 어찌 보면 우리 정부는 오픈하면서 북한에 기회를 주고 있다. 반면 북한은 내부적으로 혼란스러워 보인다. 장성택 정변 이후 권력재편이니 숙청이니 하는 소용돌이가 계속되고 있다. 이산가족 상봉을 당장 받아들일 수 없는 그런 자연적, 지리적 이런 여건이 조성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우리 정부가 아무리 북한에 기회를 줘도 4~5월 이전에 이산가족상봉이 실행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울 수 있다.

- 북한이 현재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사업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 문 : 아무래도 경제 문제다. 금강산관광 재개에 매달리는 이유도 경제 때문이다. 금강산은 달러박스다. 왜냐하면 현금이 들어오는 곳은 개성공단과 금강산 밖에 없다. 개성공단은 한정되어 있지만 금강산관광은 관광객이 늘어나면 그만큼 달러가 많아진다. 항상 금강산관광을 마식령스키장과 연계하려고 했다. 마식령스키장을 김정은이 아주 야심차게 준비했는데 금강산관광이 재개되지 않으면 마식령스키장도 고철덩어리에 불과하다. 물론 금강산관광이 재개 된다고 해서 당장 마식령스키장이라든가 또 아니면 원산국제관광특구까지 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앞으로 이걸 연결하려고 하는 것이 김정은의 야심찬 계획인 것 같다. 그래서 금강산관광 재개에 지금 매달리고 있는 것이다.

- 끝으로,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남북 당국에 요구되는 점이 있다면.
▲ 문 : 박근혜 대통령이 어쨌든 통일을 ‘대박’으로 평가했다. 관계를 조정하면서 끌고 나가야 하는 사명이 있다. 그런 차원에서 우리 정부도 어느 정도 금강산관광 재개에 있어 유연성을 가질 수 있다. 대통령이 또한 정상회담을 제안해놓은 상태 아닌가. 김정은 역시 내부적인 문제에 있어 탈출구를 찾는다는 의미에서 남북정상회담은 의미가 있다. 현재 북중관계가 원만하지 못하기 때문에 정상회담이나 금강산관광 재개와 같은 어떤 대남의존도도 필요한 상황이다. 따라서 이런 여건 속에서 남북이 성의를 가지고 대화에 임한다면 남북관계가 의외로 쉽게 풀릴 수도 있다.
▲ 전 : 한미군사훈련 과정에서 북한이 도발하지 않는다면, 그것을 전제조건으로 할 때 5~6월 정도에는 남북관계에 해빙기가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산가족상봉, 금강산관광 재개도 금년 중에는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일단 전반기 중엔 조금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
5.24 조치도 문제고 또 유엔의 제재 국면도 문제다. 그런데 우리가 앞장서서 유엔의 대북제재를 해제해주는 듯한, 무력화시키는 듯한 행동을 하게 되면 여론이 들끓을 수 있다. 따라서 5.24 조치를 해제하려면 박왕자 씨 사건이나 연평도 포격사건에 대한 북한의 일정한 사과가 있어야 한다. 정치나 외교라는 게 결국 명분 아니겠는가.
하지만 이상의 사건에 대한 사과는 최고지도자의 결정사항이기에 굉장히 힘들 수 있다. 그래서 금강산관광 등에 있어 정부가 상당한 유연성을 발휘하지 않으면 남북관계 개선이 어렵다.  박 대통령은 대북 인도적 지원과 교류협력을 대폭 증가시키겠다고 했다. 따라서 북한의 어린이용 분유라든가 아니면 결핵약 등 의약품 등을 대폭 지원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이산가족상봉도 가능하다. 과자나 부식류 정도를 북한에 줄 수 있다고 하면 북한이 금강산관광 재개에서 얻을 수 있는 만큼의 효과를 거둘 수 있으니 말이다.
▲ 전 : 지난해 9월 이산가족상봉을 하기로 했다. 그런데 금강산관광을 위한 실무회담은 10월이었다. 북한의 경우 만약 이산가족상봉을 허용해 준 이후 금강산관광 회담이 제대로 안 돼 돌파구를 찾지 못하게 되면 대남일꾼들이 문책 받을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지난해엔 거절했던 것 같다. 만약에 북한이 이번에 다시 역제의를 해 온다면 금강산관광 회담과 이산가족상봉 회담을 동시에 하자고 할 것이다. 동시에 벌려놓고 금강산관광 회담이 성과가 없으면 이산가족상봉도 실행하지 않는 그런 연계전략을 쓸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우리 정부 입장에선 이산가족상봉과 금강산관광을 함께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을 끊임없이 북한에 어필해야 한다.
▲ 정영태 : 이번 한미군사훈련은 89년 이후 가장 큰 규모의 훈련이다. 최신식 장비들과 최정예 부대들이 들어온다고 한다. 뭐가 들어올지는 모르지만 항공모함이나 핵잠수함이 들어올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걸 방어훈련이라고 하고, 북한은 항상 공격훈련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니까 북쪽에선 강력하게 반발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북한의 수뇌부는 이 군사훈련이 공격용이 아니라 방어용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우리가 연례적으로 진행하는 군사훈련이 이산가족상봉에 장애가 된다는 얘기는 핑계일 뿐이다. 군사훈련과 별도로 대화에 임할 수 있다. 다만 현재 북한 내부 사정 때문에 우리 측의 제안을 ‘좋은 계절’이라는 수사로 정중히 거절하고 있는 것 같다. 다행인 건 상호 비방이 없다는 것이. 이런 상태를 유지하면서 이산가족상봉과 금강산광광 재개 등과 관련 대화의 폭을 넓혀 간다면 관계 개선의 길이 열릴 것으로 보인다.

정리 오진석 기자 ojst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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