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류승연의 ‘아주머니’ 14화(아,직은 주,인공이 아니지만 머,지않아 니,가 세상의 주인공이 될 얘기)




욕하면서 보는 게 막장 드라마라면, 욕하면서도 따라가는 게 엄마들의 치맛바람이다. “나는 안 그래야지~”라며 각종 육아 서적을 읽고 나름의 교육 주관을 세워보지만, 내 새끼만 초라해지는 현실 앞에서 홀로 고고한 척 하는 게 쉽지만은 않다.

그리고 나면 타협을 한다. 맞춰 살 필요도 있는 거니까 남들 하는 만큼만 하자고. 그래서 남들 하는 만큼만 한다. 그런데 하고 나서 생각해 보니 그게 바로 치맛바람이다. 튀지 않으려고 남들하고 똑같이 했더니 어느새 치맛바람 날리는 극성 아줌마 행렬에 합류하게 된 것이다.

어린이집에 다니는 딸이 학습발표회를 했다. 춤도 추고, 장구도 치고, 태권도도 한다며 근 한 달 간 집에 와서까지 연습을 했다. 다섯 살 아이들이 추는 꼭두각시는 얼마나 귀여울까. 나는 아이의 공연을 볼 생각에 흐뭇해졌다. 그저 몇 월 며칠 몇 시, 우리 딸의 첫 무대를 놓치지 말아야지라는 생각밖에 없었다.

공연 당일. 공연시간은 저녁 6시인데 아이들을 일찍 재우고 밥 먹여 보내라고 오후 1시에 하교명령이 떨어졌다. 아이를 데리러 가니 담임교사가 말한다. “어머니~ 머리 예쁘게 해서 보내주세요~.”

평소 두 갈래로 머리를 묶고 다니는 딸. 그냥 평소대로 하면 안 되냐고 했더니 “그래도 예쁘게 해주세요~” 한다. 머리띠나 하나 더 해주자고 생각했다.

집에 오니 요 근래 친해진 학부형한테 문자 메시지가 와 있다. “어디 미용실 갈 꺼예요?”라는 질문에 “저는 그냥 가요. 누구 엄마는 머리도 하고 오세요?”라고 되물었다. 그랬더니 “아니 저 말고 우리 딸들 미용실 가야죠” 한다.

선생님이 머리 예쁘게 하고 오랬다고 미용실 가서 머리를 만져 보낸단다. 텔레비전에 출연하는 것도 아니고 다섯 살짜리 어린이집 공연에 무슨 미용실이야? 극성맞다고 생각하고 코웃음 쳤다. 

얼마 후 또 다른 메시지가 온다. 이번엔 사내아이 엄마다. “언니는 어디 미용실 갈 꺼예요? 여기 A미용실이 잘하긴 하는데 2만원 달라고 하고, 저기 B미용실은 만원이라는 데 가본 적이 없어서 결정을 못 하겠네요”

남자아이도 미용실을 갔다 가느냐고 물었더니 웨이브 넣고 드라이도 해서 보내겠다고 한다. 헐. 대단하다.





난 그동안 치맛바람에 대해 잘못된 인식을 갖고 있었다. 생활수준이 높을수록 교육열도 높아 치맛바람이 세다고 생각해 왔던 것이다. 그래서 서울 내에서도 비교적 가난한 서민들이 사는 우리 동네에 치맛바람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게 웬 일? 엄마들의 극성이 장난 아니다. 자식 생각하는 마음은 경제 수준하고는 상관이 없었던 것이다.

이쯤 되자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원래 다 이런 건가? 요즘은 시대가 변해서 어린이집 발표회에 미용실 안 갔다 가면 창피 당하나? 친구들한테 물어보니 대답은 반반이다. 무슨 미용실이냐는 얘기도 있고, 원래 어린이집 발표회 때 엄마들이 신경 써서 오니 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얘기도 있다.

결정은 나의 몫. 그래. 나도 가자. 미용실. 다른 여자애들이 머리에 금가루 뿌리고 뽐내고 있을 때 우리 딸 혼자 초라하게 있으면 안 되지. 신랑이 다섯 시까지 집에 오면 아들을 맡겨 놓고 미용실을 들렸다 가기로 했다.

다섯 시 오 분, 십 분, 삼십 분이 되어도 오지 않는 신랑. 일이 늦어져서 공연 시간에 맞춰 온단다. 마음이 다급해진 나는 미용실을 못 가는 대신 형형색색의 고무줄로 아이 머리에 매듭을 지었다. 미용실 다녀온 다른 아이들에 뒤처지지 않으려면 뭐라도 해야 했으니까.

결과는 대 성공. 미용실에 가서 2만원 씩 내고 머리 하고 온 아이들은 우리 딸의 형형색색 고무줄 머리 앞에서 빛을 잃었다. 가장 눈에 띄고, 가장 귀여웠다. 역시 아이는 아이답게 했을 때 가장 빛을 발했던 것이다.

사실 엄마들의 극성을 이번에 처음 경험한 것은 아니었다. 아이들 생일파티 때부터 이미 알고 있던 터. 다만 이번에 그 분위기를 확실하게 알게 되었을 뿐.

작년 우리 쌍둥이의 생일 날. 어린이집에서 생일 파티를 해준다는 얘기를 듣고 나는 케이크를 하나 사서 보냈다. 선생님에게 더 필요한 게 있냐고 했더니 아니라고, 애들하고 잘 먹겠다고 했다.





그로부터 몇 달 후 나는 오랜만에 어린이집 인터넷 홈페이지에 접속을 했다. 선생님들이 올린 아이들 사진을 하나씩 구경하던 나는 이내 얼굴이 새빨개지고 말았다. 우리 쌍둥이 생일상 앞에 차려진 케이크 하나. 그런데 다른 아이들 생일상에는 떡, 과일, 음료수, 과자 등 먹거리가 가득했다. 엄마들이 준비해 보낸 것들이었다.

그 당시 아직 어린 쌍둥이를 혼자 돌보느라 인터넷 할 시간도 없고, 다른 엄마들하고 교류도 없던 시절이라 분위기를 파악 못한 탓이었다.

그래서 올해 생일파티엔 단단히 준비를 해서 보냈다. 대형 케이크에 무지개 백설기, 음료수와 각종 과자, 포도와 바나나까지 준비해 보냈다.

어린이집 원감 선생님이 나와서 인사를 한다. “준비하느라 힘드셨죠? 돈도 많이 들고”. 십 만원 넘게 들더라는 내 말에 “네 원래 그래요. 저도 저희 아이 생일상 차려 보내지만 십 만원은 기본으로 들더라구요” 한다.

십 만원 짜리 생일상을 기본으로 생각하는 어린이집 원감의 태도가 엄마들의 극성 경쟁을 부추겼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외에도 얼마든지 더 있다. 엄마들의 치맛바람 경쟁 사례는.

소풍 날이 되면 엄마들은 도시락 경쟁을 한다. 선생님의 도시락만 챙겨오는 게 아니라 다른 친구들 먹으라고 쿠키나 각종 사탕, 초콜렛 등을 낱개 포장해 선물한다. 딸 아이 도시락 외에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은 나는 소풍에서 돌아온 딸의 가방에 가득 찬 각종 과자 꾸러미를 보고 “당신들도 참 인생 살기 힘들겠어”라고 생각하곤 했다.

엄마들끼리 친해질수록 이런 현상은 더 심해진다. 서로 모르고 살 때는 안 해도 그만이었던 많은 것들이, 서로 연락하고 지내면서 안 할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누구 엄마가 어디 학습지를 한다고 했더니 누구 엄마도 따라하고, 누구 엄마가 49만원 짜리 교구 세트가 좋다했더니 누구 엄마도 따라 산다. 누구 엄마가 미술학원을 보낸다고 했더니 다른 엄마들도 우르르 몰려간다.

엄마들이 그러는 건 치맛바람이 좋아서가 아니다. 조급함 때문이다. 내 아이가 다른 아이와 다를까봐, 다른 아이들처럼 안 했다가 뒤쳐질지도 모른다는 조급함. 그 조급함이 순진했던 엄마들을, 무지했던 엄마들을 치맛바람 날리는 극성 아줌마로 변화시킨다.

기존의 제도권 교육에 회의를 품고 경기도의 작은 산골마을로 이사 간 친구 하나가 있다. 시골의 혁신 학교에서 마음껏 뛰놀게 하며 인성 교육에 투자하겠다는 뜻을 품은 친구다.

그런 친구가 얼마 전 고민을 토로한다. 이 곳 시골도 마찬가지라고. 아니 더하면 더했지 다를 게 없다고. 알고 보니 인성 중심의 혁신학교라는 건 허울 좋은 명분이고, 오히려 혁신학교의 장점을 이용한 엄마들의 교육열이 더 높아서 힘들다고 했다.

원어민 교사와 함께 하는 영어시간은 시작에 불과하단다. 학부모 회의 때 승마와 스키 수업을 추가하는 걸로 결론이 난 반면 기존에 해 오던 농사짓기 수업은 올해부터 그만두기로 했단다. 농사 지어 어떻게 대학 가냐는 엄마들의 말에 내 친구는 할 말이 없었단다.

어딜 가나 극성맞은 엄마들 천지다. 게다가 엄마들의 치맛바람은 이미 어린이집에서부터 뚜렷하게 현실화 된다. 무시하고 제 갈길 가자니 불안해지고, 따라가자니 다리가 찢어질 지경이다. “적당히 주관을 지켜라”가 정답이지만 ‘적당한’의 경계를 정하는 것도 쉽지 않다. 펄럭펄럭. 대한민국이 치맛바람에 휘날린다.


<류승연 님은 정치부 기자 출신입니다. 현재는 두 아이를 키우며 전업주부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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