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부 ‘통상임금 지침’ 논란 확산

고용노동부가 지난 23일 발표한 ‘통상임금 노사지도지침’을 둘러싸고 노-정 갈등이 확산되고 있다. 노동부가 지침을 통해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판결보다 통상임금 인정범위를 과도하게 축소하고, 통상임금 체불임금 청구권 역시 제한하는 등 판결 자체를 왜곡하고 있다는 것이 노동계의 주장이다.

그동안 통상임금 관련 법원 판결이나 근로기준법 시행령 등을 배제한 채 일방적인 ‘예규’를 만들어 통상임금 범위를 축소해 온 노동부가, 또 다시 통상임금 범위를 축소하는 ‘지침’을 만들어냄으로써 이후 노정 갈등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특히 ‘사용자 편향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판결이 고용노동부의 지침으로 더욱 왜곡된 것이라 노동계는 통상임금의 정상화를 위한 투쟁에 나서겠다는 방침이다.

민주노총은 24일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노동부의 통상임금 지침이 지극히 사용자 편향적인 일방적 해석이라고 비판했다. 앞서 고용노동부는 지침을 통해 ‘특정시점에 재직 중인 근로자에게 지급되는 임금’은 고정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며 통상임금성을 부인했다.

하지만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근로자가 소정근로를 했는지 여부와는 관계없이’ 특정시점에 재직 중인 근로자에게 지급되는 임금이 고정성이 결여됐다고 판시한 것이라, 소정근로의 대가성을 부인할 수 없는 임금은 통상임금성을 갖게 된다. 결국 고용노동부는 소정근로의 여부와는 관계없이 통상임금의 범위를 과도하게 축소한 셈이다.

신인수 민주노총 법률원장은 “정기상여금이나 직무수당, 근무수당, 장려수당, 조정수당 당 소정근로의 대가성을 부인할 수 없는 임금에 대해, 단순히 지급일 현재 재직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사용자가 지급하지 않으면 사용자의 임금체불이 문제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대법원은 지난 1981년 ‘상여금 지급기간 만료 전에 퇴직한 근로자라도 특단의 사정이 없는 한 이미 근무한 기간에 해당하는 상여금은 근로의 대가로서 청구할 수 있다’고 판시한 바 있다.

신인수 원장은 “이 대법원 판결은 이번 전원합의체 판결과 상관없이 여전히 규범력을 가지는 판결”이라며 “하지만 고용노동부의 지침은 소정근로를 했는지 여부와의 관계 등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고정성을 일괄 부정하도록 명시함으로써 통상임금 인정범위를 과도하게 축소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뿐만 아니라 고용노동부가 지침을 통해 정기상여금과 관련한 신의칙을 과도하게 확대 적용해, 노동자들의 통상임금 청구권을 제한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신의칙 적용 요건을 ‘수긍할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는 예외적인 경우에 한한다’고 판시해, 대단히 예외적으로만 신의칙이 적용됨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고용노동부는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노사간 임금, 단체협약이 있는 경우 ▲취업규칙에 이와 같이 적용돼 온 경우 ▲관행적으로 적용돼 온 경우처럼 묵시적 합의가 있을 경우 모두 추가임금 청구를 불허해야 한다는 지침을 제시했다.

특히 추가임금 청구가 신의칙에 의해 제한되는지 여부는 사용자가 재판과정에서 입증해야 한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판결을 통해 ‘사용자에게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의 존립을 위태롭게 했다’는 사실을 사용자가 구체적으로 입증해야 신의칙이 적용된다고 판시했다.

신인수 원장은 “이를 반대해석하면,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초래하지 않거나 기업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지 않는 범위의 추가적인 법정수당 청구는 당연히 인정돼야 한다”며 “그럼에도 고용노동부는 이러한 일부청구 인용가능성을 전혀 배제하여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왜곡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이번 지침은 말 그대로 ‘지침’에 불과해 법적 구속력도, 규범력도 전혀 가지지 않는다. 따라서 사업장 노사가 이를 따라야 할 의무가 없다”며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제시한 추상적 기준은 향후 개별 소송과 노사정의 사회적 공론화를 거쳐 국회의 입법화를 통해 구체화 될 문제다. 지금까지 사용자에게 편향된 잣대로 문제만 일으킨 고용노동부가 할 수도, 해서도 안되는 문제”라고 못박았다.





민주노총은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과 고용노동부의 지침이 통상임금 체계를 비정상적으로 왜곡하고 있다며, 통상임금 정상화 투쟁에 나서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전규석 금속노조 위원장은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정치판결에 이어 고용노동부는 대법원의 판결보다도 후퇴된 편향적 지침을 만들어 현장에 큰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며 “이는 박근혜 정부가 직무성과급제와 임금피크제를 확대하기 위한 꼼수다. 금속노조는 27~28일 양일간 동시다발 전국 항의 기자회견으로 이를 강력 규탄하고, 노동부의 입장이 바뀌지 않을 경우 통상임금의 정상화를 위한 근로기준법 개정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노총은 또 2.25 국민파업 이후 ‘2014 임금투쟁 승리를 위한 전진대회’를 개최하고 체불임금 지급, 최저임금 대폭인상, 통상임금 정상화 쟁취를 위한 투쟁을 선포한다는 계획이다. 5월에는 임단협 승리를 위한 경고파업에 돌입하며, 6~7월에는 임단협 시기집중 총파업 투쟁에 나서게 된다. 아울러 통상임금 관련 법, 제도 개선 투쟁도 병행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오는 4월 임시국회에서 근로기준법 개정 법률안을 상정해 내년까지 통상임금체계를 정상화한다는 계획이다.
이번 기자회견에는 현대차, 기아차, 한국지엠 등 완성차 3사 노조 지도부도 참석했다. 이경훈 현대자동차지부장은 “진실을 밝혀야 하는 사법부가 노동자 권익은 안중에도 없이, 경영권만 걱정하며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판결을 내렸다”며 “사법부가 중심을 잃으니 세상이 혼란스럽다. 행정부 수장인 대통령 말 한마디에 사법적 정의가 무너졌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이어 “사법부의 이상한 판결을 받아 안고, 고용노동부가 더욱 후퇴된 지침을 내렸다. 당사자간의 신의칙이 중요하면, 모든 사업장에서 공장문을 걸어 닫고 분쟁을 통해 정리해야 한다는 거냐. 이는 책임 방기이자, 노동현장에 분쟁의 불씨를 던져주는 것”이라며 “올해 투쟁은 여기서부터 출발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문종식 기아차지부 수석부지부장은 “고용노동부가 앞장서 상여금이 되고, 안 되고를 나누는 태도에 분노한다”며 “상여금은 노동자들 소정근로의 대가로 지불되는 통상임금이다. 만약 현장에 다툼이 있다면 이는 고용노동부의 책임이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정종환 한국지엠지부장은 “노동자가 당연히 지급받아야 할 통상임금을 외국 기업이 착취하고 있음에도 정부는 사용자를 대변하는 신의칙을 내세워 노동자의 권리를 차단하고 있다”며 “우리의 목표는 분명히 정해졌다. 6월 지자체 선거에서 박근혜 정부를 심판하고 노동자의 권리를 찾겠다”고 경고했다.

한편 신승철 민주노총 위원장은 “통상임금 권리 찾기 투쟁의 본질은 저임금, 장시간 임금체계를 개선해서 노동시간을 줄이고, 줄어든 노동시간만큼 새로운 정규직 일자리를 만드는 투쟁”이라며 “이 정의롭고 역사적인 투쟁을 민주노총이 책임지고 당당히 나서겠다”고 밝혔다. 공민재 기자 selfconsol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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