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 기획 : ‘귀농 열풍’ 그 현장을 찾아서-27> 전북 남원 김동욱 씨



귀농바람이 한창이다. 귀농 붐은 이른바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의 은퇴가 본격화되면서 비롯됐다. 1970~1980년대 산업화의 역군으로 ‘차출’돼 탈농을 이끌었던 이들 세대 중 많은 사람들이 농촌으로 회귀해 ‘인생 2모작’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도시생활에 회의를 느낀 30~40대까지 귀농에 가세, 농촌에서 제 2의 인생을 꿈꾸는 귀농 행렬이 줄을 잇고 있다.
귀농인들은 주로 소일거리를 통한 활력 회복, 전원생활에 따른 신체적·정신적 건강 추구 등을 이유로 농촌행을 결심하고 있다. 물론 생계수단으로 귀농을 택하는 이들도 있다. 그렇다고 모두가 성공하는 건 아니다. <위클리서울>은 도시에 살다 농촌으로 들어간 이들이 귀농을 결심하게 된 계기, 이후의 생활 등을 들어봄으로써 귀농과 귀촌의 현실을 짚어보고 있다. 이번호에는 부산에서 살다 전북 남원으로 귀농한지 12년이 된 김동욱(40) 씨의 생활 속으로 들어가 본다.





고사리 심기에 제격

김동욱 씨는 28살 한창 나이에 부산에서 전북 남원시 산내면으로 귀농했다. 귀농은 젊은 시절부터의 꿈이었다. 대학 졸업하기 전부터 취업준비가 아닌 귀농준비에 몰두했을 정도다. 그리고 졸업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실행에 나섰고 이곳 남원으로 귀농을 단행했다. 이후 지금까지 논농사는 물론 고추, 고구마, 감자 등 밭농사도 지었다. 꿀벌과 흑돼지도 길렀다. 12년 여간 꽤 많은 농사 경험을 한 셈이다. 2년 전부턴 고사리 농사에 뛰어들었다. ‘한잎새고사리’라는 브랜드를 만들고 지리산 청정지역의 고사리를 생산하고 있다.

“2년 전 고사리 재배를 위해 밭을 만들었어요. 지난해 처음 수확했는데 수입이 그렇게 나쁘지 않았어요. 오는 3~4월에도 기대가 됩니다. 지리산이 고사리 재배에 최적인 이유는 낮과 밤의 일교차가 크고 토질이 좋기 때문입니다. 고사리 재배에 최적지라고 할 수 있죠.”

3년 전 김 씨는 고사리농사를 위한 교육도 따로 받았다. 고사리 농사는 실패율이 5% 미만이어서 큰 부담 없이 농사를 시작할 수 있었다.

“실패하는 분들이 간혹 있는데, 아무래도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해서죠. 심는 방법, 관리 방법 등을 교육을 통해 배우면 누구나 쉽게 고사리를 재배할 수 있어요. 게다가 지리산은 고사리가 자라기에 좋은 환경이니까, 이곳에서 농사 실패하는 분들은 드물어요.”

고사리도 품종이 여러 가지다. 좋은 고사리를 심어야 튼실하게 자랄 수 있단다.

“좋은 품종의 고사리종근을 심어야 늦게 자라면서 통통하게 피어나죠. 세발고사리라는 품종이 있는데 고사리종근에 눈이 많고 잔뿌리가 많아요. 이건 좋은 게 아니거든요. 좋은 품종은 눈이 많지 않아요. 잔뿌리도 적고 실하죠.”



지난해는 잡초와의 싸움이었다. 되도록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그 많은 잡초를 뽑아내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2년 전에도 그랬고 지난해도 마찬가지였어요. 결국 제초제를 사용했죠. 많이 뿌리진 않아요. 잡초가 올라올 시기 한번, 수확 한 후 한번, 이렇게 두 차례 뿌려줍니다. 7월에 풀이 무성하니까, 그 시기엔 꼭 뿌려야 합니다. 그래야 장마 이후 잡초가 녹아 없어져요.”

잡초와의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선 고사리를 잡초보다 많이 심어야 한다.

“고사리를 잡초보다 적게 심으면 관리가 어려워져요. 되도록 빼곡하게 심어야 관리가 용이하고 수확시기도 앞당길 수 있죠. 당연히 수확량도 많아지고요. 관리만 잘하면 투자비용도 아낄 수 있어요. 가을과 이른 봄이 심기 좋은 시기인데, 사실 집과 밭이 가까우면 1년 내내 심어도 됩니다.”

산불이 난 토지에서도 가장 먼저 피어오른다는 고사리. 생명력이 강한 만큼 효능도 탁월하다고 한다.

“성질이 차서 열을 내리고, 미끄러우며 맛이 달아서 장을 윤택하게 해요. 이뇨 작용을 돕고 담을 가라앉히기도 하죠. 감기로 열이 나는데나 이질, 황달, 고혈압, 장풍 열독 등에 좋습니다. 일부에서는 정력을 감퇴시킨다는 이유로 고사리를 멀리하기도 하는데, 그건 정확한 정보가 아닙니다. 위로 뻗는 기운을 가라앉히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스님들이 사찰 음식으로 즐겨먹고, 마음 안정에 좋은 음식이라는 평가가 있어서 남성들 정력에 좋지 않다는 속설이 생겨난 거죠.”

 



주민들과 소통 중요

귀농 직후 자신의 농사일은 뒷전이었다. 마을 주민들과 가깝게 지내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다. 

“처음엔 동네 사람들과 무조건 가깝게 지내려고만 노력했어요. 1년간 농사 욕심은 없었죠.  남이 농사짓는 걸 돕는데 시간을 더 들였죠. 건강도 좋아지더라고요. 그러면서 주민들의 도움으로 여러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된 겁니다.”

김 씨는 현재 어느정도 일정한 수익을 내고 있다. 하지만 귀농에 대한 막연한 환상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했다. 돈에 대한 욕심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귀농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농사를 전혀 안지어본 사람들이잖아요. 어떻게 해야 할까 걱정을 많이 하죠. 그래서인지 대부분은 빈손으로 내려오지 않고 돈을 갖고 오더라고요. 일종의 여유자금이죠. 그런데 저는 여유자금 없이 귀농했어요. 벌어놓은 돈도 없었으니까요. 동네 사람들에게 인심이나 잃지 않고 서로 돕고 잘 살아보자는 생각으로 온 겁니다. 처음엔 날마다 동네 어른들과 막걸리 마시며 그렇게 지냈어요. 수입이 없더라도 그렇게 여유롭게 살았죠. 똑똑하다고 계산하면서 살면 안 돼요. 그저 어울리며 희생하려고 해야죠. 희생한 만큼 돌아오는 게 있어요. 시골 인심이 그렇게 팍팍하진 않거든요. 다들 나누며 살아요.”



여유자금 없이 귀농했지만 귀농초기부터 여유 있는 생활을 해왔다는 김 씨. 이제는 한 발 더 나아가 베푸는 입장이라고 했다.

“고사리 농사를 지으면서 동네 아줌마들 일당도 줘요. 손이 많이 가는 시기엔 동네 아줌마 5명씩 불러서 같이 일하죠. 귀농 초기엔 제가 일당 받았는데, 요즘은 제가 주고 있는 거죠. 물론 그 분들도 일 있을 때 저를 불러요.”

김 씨는 마을 주민들과의 소통이 가장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처음 농촌에 내려가면 마을사람과 가깝게 지내야 해요. 한 달만이라도 바짝 친해지려고 노력하면 길이 보일 겁니다. 봉사하는 마음으로 가깝게 지내다보면 정보를 많이 얻을 거예요. 좋은 집과 땅도 구할 수 있어요. 다 준비해서 내려갈 수는 없거든요. 일단 그렇게 의지할 곳이 확보가 되면 다른 마을사람들도 적극적으로 도와줘요. 그렇게 농사를 지으며 3~4년은 고생한다고 각오해야 합니다. 농사도 쌀농사와 같은 1년 짜리가 있고, 장기간 걸려야 수확 할 수 있는 농사도 있죠. 저는 이것저것 다 해봤어요. 그렇게 하다보면 자신이 뭘 해야 할지 알게 돼요. 저는 고사리로 자리 잡으려고 합니다. 10년 계획을 세웠어요. 물론 돈도 중요하지만 돈 생각보단 고사리만 잘 가꾸면 될 거라는 생각이에요.”




고사리로 주민들 멘토 역까지

귀농 초기 힘들었던 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극복할 수 있었던 건 주민들의 배려 덕택이다.

“처음엔 뭘 물어도 대꾸도 없으신 분들이 많았죠. 알면서도 모른다고 해버리고…. 막막하더군요. 그래도 지금은 밀어붙였습니다. 귀찮아하는 분들 집에도 자주 찾아갔죠. 음식 싸들고 찾아가서 나눠먹곤 했어요. 이게 또 지역감정 같은 게 있어서 부산에서 왔다니까 다들 등을 돌리더라고요. 경상도에서 전라도까지 왜 왔냐 이거죠. 그때 만약 마을 어르신들과 사이가 틀어졌다면 지금 이렇게 살 수 없을 겁니다. 다행히 술 마시고 친해지면서 지역감정도 허물게 됐죠.”

일이 없는 시기, 그저 한가롭다는 김 씨. 겨울은 고사리에 신경 쓸 일이 거의 없다고 한다. 봄을 기다리며 책을 읽거나 주민들과 어울려 술을 마신다. 돈보다는 건강과 마을주민들과의 소통이 우선이라는 김 씨. 그는 오늘도 마을 주민들의 부름을 받고 어디론가 달려간다. 고사리 농사에 뜻을 두고 있는 주민들도 몇몇 있기에 이들의 멘토 역할도 하고 있다. 

“요즘 여기저기서 많이 물어 와요. 외지 사람들도 찾아와 고사리 심는 방법을 묻죠. 우선은 땅을 잘 가꿔놓아야 해요. 땅에 힘이 있어야 하니까 완숙퇴비를 뿌려줘야 합니다. 풀이 많이 나는 걸 예방하기 위해선 볏짚 등을 준비해 놓으셨다가 고사리를 심고 나서 덮어야 해요. 그래야 재배가 수월합니다. 몸에도 좋고 농사짓기에도 좋은 고사리. 보다 많은 분들이 농사에 동참하면 좋겠네요.”

최규재 기자 visconti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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