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진단> 2014년의 남북과 동북아 어디로 가나-5회



“북남사이 관계개선을 위한 분위기를 마련하여야 합니다. 백해무익한 비방 중상을 끝낼 때가 되었으며 화해와 단합에 저해를 주는 일을 더 이상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는 민족을 중시하고 통일을 바라는 사람이라면 그가 누구든 과거를 불문하고 함께 나아갈 것이며 북남관계 개선을 위해 앞으로도 적극 노력할 것입니다.” 
북한 김정은 제1위원장의 신년사 일부다. 북한이 남북관계에 유화적인 제스처를 취한 것이다.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박근혜 대통령도 신년기자회견에서 집권 2년차 국정운영의 핵심으로 ‘한반도 통일시대의 기반 구축’을 강조했다. 북한 비핵화를 기반으로 한 남북 협력 원칙은 변함없지만 지난해 2월 25일 취임사에서 ‘안보’를 앞세운 뒤에 ‘통일시대’를 제시한 것과 달리 이번엔 “통일은 대박”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통일의 필요성을 적극적으로 설명한 점이 주목을 끈다.






박 대통령은 또 “대한민국이 세계적으로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서는 남북한의 대립과 전쟁위협, 핵위협에서 벗어나 한반도 통일시대를 열어가야만 하고 그것을 위한 준비에 들어가야 한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북핵 해결 등 한반도 평화 정착 ▲대북 인도적 지원 강화와 남북 동질성 회복 ▲통일 공감대 확산을 위한 국제협력 강화 등을 진행해나가겠다고 언급했다.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과의 정상회담 가능성에 대해선 “한반도 평화와 통일시대 준비를 위해 필요하다면 북한의 지도자와 언제든지 만날 수 있다는 입장에는 변함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통일시대를 열어가기 위해 ‘비무장지대(DMZ) 세계평화공원’을 건설해 불신과 대결의 장벽을 허물고 ‘유라시아 철도’를 연결해 한반도를 신뢰와 평화의 통로로 만든다면 통일은 그만큼 가까워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남북관계 전문가들은 일단은 반기면서도 DMZ 평화공원, 유라시아 철도, 남북정상회담 등의 실현 가능성에 대해선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반응이다.

현재 남북은 이산가족 상봉 문제와 금강산 관광 재개 문제를 두고 기 싸움을 하고 있는 양상이다. 한미군사합동훈련까지 예정돼있어 상황은 더욱 복잡하게 흐를 것으로 보인다. 우리 정부가 “이산가족상봉과 금강산관광재개 문제는 함께 논의돼야한다”는 북한의 요구에 “논의할 수 있다”고 한 점은 그나마 다행이다. 한미군사훈련과는 별도로 남북실무회담의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란 해석이다. 이제 관심은 올 상반기 중 남북실무회담이 열릴 수 있을지, 그리고 실무회담을 통해 남북관계가 개선될 수 있을지에 쏠리고 있다. 

<위클리서울>은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대박론’, 유라시아철도 문제, 향후 남북관계, 동북아정세 등을 중심으로 세 번째 전문가 지상토론 자리를 마련했다. 이번 토론회엔 김근식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문정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정성장 세종문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가나다 순)가 참여했다.




# 왼쪽부터 김근식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문정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정성장 세종문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 박근혜 정부 1년 어떻게 평가하나.
▲ 정성장 : 어떤 정부든 남북관계 1년을 평가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몇 가지 점에선 박근혜 정부가 큰 실수를 하진 않은 것 같다. 지난해 초 북한이 이명박 정권에서 박근혜 정권으로 교체되는 정권 이양기를 틈타 3차 핵실험을 단행했다. 남북관계는 급격하게 얼어붙었다. 이후 북한은 연일 ‘전쟁 위협’을 고조시키면서 남북교류의 최후 보루인 개성공단까지 폐쇄했다.
이런 가운데서도 정부는 한미 공조를 바탕으로 차분하면서도 원칙 있게 대응했다. 그리고 북한은 다시 개성공단 가동 재개에 합의했다. 이후 남북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날짜와 장소까지 합의되면서 남북관계가 다시 급물살을 타는 듯했다. 물론 상봉이 이뤄지진 않았지만 이상과 같은 점으로 미뤄 본다면, 이명박 정부 5년의 ‘파탄’에 비하면 고무적이다.
▲ 정욱식 : 박근혜 정부는 입만 열면 ‘종북’이었다. 비판 세력들을 찍어 눌렀다. 사회 전반에 퍼진 ‘종북 낙인찍기’는 종북으로 몰린 피해자들을 비난하지 않아도 종북으로 의심하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마치 반공반북이 사회 전반을 휩쓸고 심지어 통일을 주장했다는 이유로 국회의원이 처벌받던 군부독재시절을 보는 듯했다.
정부가 앞장서서 종북 마녀사냥을 하고 있는데 남북관계가 제대로 개선될 리 없었다. 박근혜 정부는 남북관계를 그저 정략적으로 활용하는 하나의 소재로 보고 있을 뿐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박정희 정권이 통일을 명분으로 유신독재를 시작한 것과 일맥상통하다고 볼 수 있다. 지금까지 봤을 때, 박근혜 정부가 표방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사실상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3000’ 노선을 부분 수정한 것에 불과하며 현실 가능성이 없는 정책이다. 그나마도 집권 초반 심각한 전쟁위기를 거치며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명함도 못 내밀게 됐다.

-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 대박’ 발언과 관련 흡수통일을 염두에 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 김근식(이하 김) : 신년기자회견에서 ‘통일대박론’을 언급하면서 부쩍 통일이 다가온 느낌이 들긴 했다. ‘대박’이라는 단어 선택의 아쉬움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퍽퍽하고 답답한 국민들에게 새로운 도약과 번영과 통합의 계기를 제시했다는 점은 좋게 평가할 만하다. 일각에서 통일비용의 허구적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통일을 주저하거나 회피하는 현상이 존재함을 감안하면 대통령의 ‘통일대박론’은 통일의 필요성과 유용성과 정당성을 환기시켰다는 점에서도 긍정적이다.
그러나 ‘통일대박론’에 대한 우려점도 있다. 통일의 편익과 효과를 강조한 것은 올바르지만, 통일을 위한 노력보다 북한의 급변사태만을 팔짱끼고 기다리는 것은 아닌지 하는 것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뜬금없이 ‘통일세’를 언급한 적이 있다. 당시 이명박 정부 후반기는 남북관계 개선이나 교류협력은 제쳐두고 장관이 나서 ‘통일항아리’만을 열심히 빚고 있었다. 대북 강경 일변도로 치달으면서 남북관계의 채널도 통로도 대북 영향력도 전혀 갖지 못한 상태에서 갑자기 통일이 도둑처럼 올 수 있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과 정세인식은 화해협력 없이 북한붕괴만을 기대하는 MB식 ‘기다림의 전략’이었다. 그런 맥락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에도 아쉬움이 남는다.
▲ 문정인(이하 문) : 남북통일은 한반도뿐만 아니라 동북아 주변국 모두에도 대박이 될 수 있다. 경제적 차원과 함께 독재에 시달리는 북한 주민들의 고통을 해결할 수 있다는 인도적 차원의 전망까지 제시했으니, 단계적인 통일론이라는 분석도 가능하다.
하지만 주변국들에게도 대박이고, 복지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는 뉘앙스는 마치 급변사태를 통해 북한 정권이 무너지는 상황을 가정한 것 아니냐는 의문도 든다. 그러기에 정부는 구체적으로 설명할 필요가 있다. 만약 급변사태를 계속 머릿속에 넣고 ‘통일대박’을 얘기한다면 이것은 위험천만한 발상이다. 왜냐하면 북한이 붕괴할 것이라는 것에 대한 과학적 근거를 제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무너지기를 바라는 마음은 이명박 대통령도 똑같았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우리는 뭘 이뤄냈는가. 그 기간은 사실 북한 핵무기 개발의 전성기였고 남북관계는 최악이었다. 그러기에 급변사태를 희망하는 것은 이명박 정부 5년을 10년으로 연장하자고 하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신년회견에서 교류협력을 통한 지속가능한 평화를 만들겠다고 했다. 이 말 자체만 보면 분명히 단계적이고 평화적인 접근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부분과 ‘통일대박론’이 일치하는 건지 아닌지가 분명치 않다. 그래서 대통령은 이 부분을 국민들에게 설명해야 한다.
▲ 정성장 : 박근혜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급변사태에 대한 기대를 표명한 것은 아니지만 최근 대북정책의 흐름과 분위기가 어떤가. 이번 ‘통일대박론’도 행여나 이명박 정부의 ‘통일세’ 발언과 맥락을 같이 하는 게 아닌지 우려되는 부분이 있다. 지난 연말 국정원장이 간부와 함께 한 송년회에서 2015년 통일실현을 목표로 죽을 각오를 다지고 독립군가를 불렀다는 사실은 한 노장군의 객기로만 들리진 않는다. 어느 보수신문이 새해 벽두부터 ‘통일이 미래다’는 연속기획을 게재하고 마치 당장 통일이 온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것도 심상치 않다. 한미외교장관 회담에서 북한 변화에 대한 양국 협의 체제를 구축하기로 했다는 발표도 최근 북한의 불안정성을 염두에 둔 것이 분명해 보인다. 이 같은 흐름을 보면 대통령의 ‘통일대박론’이 ‘급변사태 대망론’으로 읽힐 수도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 정욱식 : 평화통일이 대박이지만, 흡수통일은 대재앙이 될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말한 ‘통일대박’에서의 통일이 평화적 통일인지, 경쟁적 단계적 통일인지, 아니면 북한의 붕괴를 촉진하는 흡수통일인지 그 점을 잘 모르겠다. 박 대통령이 이 대목을 분명히 밝힐 필요가 있다. 국민들이 궁금해 하는 부분에 대해 설명할 필요가 있다. 말하자면 통일이 대박이라고 얘기하는 건 좋지만, 어떤 과정으로 통일에 이르게 할 것인지의 설명이 빠져있다. 결과보다 통일에 이르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건 이제 삼척동자도 아는 얘기다.
‘통일대박론’은 반드시 과정으로서의 통일론과 결합돼야 한다. 대통령이 지속적으로 강조하는 신뢰 프로세스 역시 오랜 기간 관계 개선과 신뢰 축적의 과정을 염두에 둔 것이다. 지속적인 화해와 협력, 교류와 접촉, 관계 개선의 실질적 과정을 지나면서 통일은 다가오고 완성되고 대박이 된다. 오히려 과정으로서의 남북관계 개선이 북한 급변사태를 촉진하고 정치적 변화를 추동해 낼 수 있다. 오랜 기간 교류와 협력과 이해의 과정을 거쳐야만 막상 급변사태가 온다 하더라도 우리가 주도하는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완성할 수 있다. 북한 주민의 마음을 사고 상호 이해와 용서의 과정 없이 급변사태가 온다면 그것은 그야말로 대박이 아니라 재앙의 통일이 될 것이다. 과정으로서의 통일이라는 필요충분조건을 생략하는 한 통일은 대박이 되지도, 실현되지도, 가능하지도 않다.

- 한일, 한중, 한미, 러일, 미일 관계 등 동북아 정세가 복잡하다. 이런 가운데 한반도의 정세 변화의 키는 한국이 갖고 있다는 평가도 있다.
▲ 문 : 일본의 우경화와 군사대국화 움직임이 가시화되는 가운데 중국은 6자회담 재개를 위한 행보를 강화하고 있다. 중국은 동북아지역의 공동 해결과제인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을 이슈화함으로써 고조되고 있는 일본, 미국과의 갈등을 해소하고 지역문제 해결에서 이니셔티브를 행사하겠다는 계산을 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미국은 북한이 진정성 있는 비핵화 조치를 선행해야 한다는 입장에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다.
한편으로 중국은 중국판 NSC인 ‘국가안전위원회’를 설치하고 동중국해 상공에 방공식별구역을 일방적으로 발표한 바 있다. 일본도 일본판 NSC인 ‘국가안전보장회의’를 공식 출범시켰다. 이후 중국의 항공식별구역을 둘러싸고 동북아 패권경쟁의 삼각파도가 높게 일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문제의 근본을 직시하고 신중한 실리 외교를 추구해야 한다. 무엇보다 남북관계의 안정을 위해 항상 대화의 문을 열어 놓아야 한다. 나아가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구체적인 행동계획으로 옮겨 동북아 갈등구조의 해결에도 기여해야 한다.
▲ 정성장 : 북미 관계가 관건이다. 당장 북미 관계는 큰 진전을 이루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우리 정부가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는 한 미국이 북핵 문제에 본격적으로 개입할 가능성은 낮다. 미국은 여전히 외교정책에서 최우선 순위를 시리아 내전과 이란 핵 문제에 두고 있다. 이런 가운데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전통적 한미일 공조는 깨졌다. 일본은 독자 노선을 걷고 있다. 중국이 새로 참여한 한-미-중 삼각공조가 이뤄지는 형태로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결국 6자회담이 답이다. 2008년 이후 열리지 않고 있는 6자회담을 박근혜 대통령이 먼저 앞장서서 제안해야 한다.

<기사 이어집니다.>

최규재 기자
visconti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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