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난, 자식 넷을 키우며 산다!
요즘 난, 자식 넷을 키우며 산다!
  • 승인 2014.02.04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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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류승연의 ‘아주머니’ 15화(아,직은 주,인공이 아니지만 머,지않아 니,가 세상의 주인공이 될 얘기)


요즘 나는 자식 넷을 키우며 산다. 내 배 아파 낳은 자식이 둘이고, 나머지 둘은 길고양이 새끼들이다. 사람 자식 둘은 예쁜 짓도 하지만 이따금씩 미운 짓을 하며 내 오장육부를 뒤집어 놓는데, 길냥이 새끼 둘은 결코 미운 짓을 하는 법이 없다.

작고 오동통한 몸으로 폴짝 폴짝 뛰어다니며 내가 주는 사료를 오도독 오도독 씹어 먹고 한바탕 뛰어 노는 게 일이다. 길고양이 백만 마리 시대. 당신 집 주변의 길냥이들은 안녕하신지… 모두에게 묻고 싶다.





동물을 싫어하던 내가 길냥이에게 밥을 주는 `캣맘`에 입문한 지도 어언 4개월이 넘었다. 지난해 추석 무렵 나를 길냥이의 세계로 이끌었던 못난이 고양이가 사라진 후 나는 한동안 고양이 울음소리 금단증상에 시달렸다.

가늘고 애처로운 톤으로 `애옹~ 애옹~` 거리는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듣고 싶어 틈만 나면 길냥이를 찾아 골목을 헤맸다. 어느 날은 멸치 한 움큼을 쥐고 나갔고, 어느 날은 생선 캔을 들고 나갔다.

그러기를 여러 날. 같은 곳을 헤매다 보니 매번 같은 지점에 같은 길냥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영역 동물의 특성이었다. 세 네 번 먹이를 주고 나자 정도 들고 욕심이 생겼다. 거창하게는 못해도 집 주변 길냥이만이라도 챙기자고 생각했다.

본격적으로 사료를 구입하고 초보 `캣맘`에 입문. 집 앞 슈퍼마켓에 갈 때도, 아들 치료실을 갈 때도, 딸 어린이집을 갈 때도 주머니에 사료를 넣고 다녔다. 그러다 길냥이가 보이면 장소가 어디든 간에 무조건 사료부터 부어줬다. 오도독 오도독 챱챱. 깨물깨물 앙앙앙. 먹는 모습만 보면 예뻐서 웃음이 났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나 같지는 않았다. 

지난해 못난이 고양이에게 쥐약을 먹인 것으로 의심되는 맞은 편 빌라 사람들이 곱지 않은 눈으로 쳐다봤다. 내가 한 덩치를 하는 데다 성깔도 있게 생긴 지라 대놓고 뭐라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길냥이가 나타나는 포인트에 내가 부어놓은 사료를 눈에 보이는 대로 치워버렸다.

자기네 빌라 주차장에 공지문도 붙였다. 음식물 쓰레기를 일찍 버리면 길냥이가 모이니 시간 맞춰 내다 버리라는 내용이었다. “길냥이가 우리 빌라 주변에 있는 게 싫다”는 말을 내게 간접적으로 전달한 것이었다. 존중해야 했다. 내가 객기를 부리면 길냥이들에게 피해가 갈 게 뻔했으니까.

밥 주는 장소를 바꿨다. 예전에는 길냥이가 자주 나타나는 포인트에 보란 듯이 사료를 부어줬는데 그 다음부턴 후미진 곳에 숨겨서 줬다. 길냥이도 안전하고 사람들의 불쾌감도 덜 수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요령이 붙기 시작한 것이다.
겨울 한파가 이제 막 시작되려 하던 지난해 11월의 어느 날, 모처럼 풀린 날씨에 아이들을 데리고 산책을 나가기로 했다. 오랜만에 아이들 햇볕 좀 쬐게 하자는 게 이유였지만, 며칠 간 밖에 나가지를 못해 급식이 뚝 끊긴 길냥이들을 찾아 밥을 주고 싶어서였다.





신랑과 함께 아이 둘을 데리고 동네 산책길에 올랐다. 그날따라 평소 안 다니던 뒷골목이 가고 싶었다. 골목에 들어선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주차된 자동차 앞바퀴 밑에 작은 고양이 발이 보였다.

두근두근 떨리는 마음. 신랑에게 아이들을 부탁하고 차로 다가가니 아주 작은 노란색 새끼 고양이가 누워 있다. “설마…”. 배고픔에 기력이 없어 누운 것이기를 바라며 새끼 고양이를 흔들어 보는데 이미 차갑게 식은 고양이는 고양이별로 여행을 떠났다. 

마음이 안 좋았다. 며칠 동안 내가 밥을 안줘서 죽은 것만 같은 죄책감이 들었다. 이런 일이 더 이상 일어나선 안 돼. 태어난 지 한 달 정도 되어 보이는 새끼 고양이. 분명 주변 어딘가에 형제들이 더 있을 터였다. 그 때부터 눈에 불을 켜고 골목 후미진 곳을 뒤졌다.

“야옹아~ 어디에 있니? 어딘가에 숨어있다면 모습을 보여줘~”. 바람이 통했나? 한 빌라 주차장 끝 공터에서 햇볕을 쬐고 있는 새끼 고양이가 번쩍하며 눈에 들어왔다. 크기로 봐서 아까 죽은 고양이와 형제임이 분명했다.

두근두근 다시 요동치기 시작하는 가슴. 가까이 다가가니 공터 낙엽 위에 앉아 있던 고양이 다섯 마리가 한꺼번에 일어나 도망치기 시작한다. 어른 고양이 셋, 새끼 고양이 둘. 어른 고양이 둘은 평소 내가 주는 밥을 먹으러 오는 놈들이었다. 와~ 이런 곳에 터를 잡고 생활하고 있었구나. 기쁨이 밀려왔다. 특히 새끼 고양이들을 발견한 기쁨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추운 겨울을 무사히 넘길 확률이 매우 낮은 새끼 고양이. 그러나 ‘캣맘’을 만나 밥이라도 잘 얻어먹은 새끼들은 겨울철 생존 확률이 부쩍 높았다. 이제부턴 이 아이들을 내가 책임지자고 굳게 마음먹었다.

그렇게 해서 내게 고양이 새끼 두 마리가 생기게 되었다. 나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공터를 찾아 밥을 주었다. 처음에는 사료만 주다가 며칠 뒤부턴 물도 같이 주기 시작했다. 인기척이 나면 벌떡 일어나 여기저기 숨는 고양이 무리. 내가 사료와 물을 부어주고 멀찌감치 떨어지면 하나 둘 기어 나와 눈치를 보며 밥을 먹기 시작했다.

매일 그들을 관찰하며 웃음 짓는 게 내 삶의 유일한 낙이 되었다. 며칠이 지나고 나니 가족관계도 알 수 있었다. 젖소 무늬 모양의 고양이가 엄마고, 노란색의 치즈 고양이가 아빠다. 새끼는 두 마리. 하나는 삼색 무늬였으며, 하나는 일명 고등어라 불리는 갈색 무늬다.

평소엔 이렇게 네 마리가 공터에서 지내는데, 가끔 새끼들의 언니로 추정되는 삼색의 청소년 고양이가 나타나 함께 밥을 먹을 때도 있다. 치즈 아빠와 삼색 언니는 그동안 길에서 만날 때마다 내가 주는 밥을 먹어왔던 터. 이제 일일이 그들을 찾아다니는 수고를 하지 않고도 밥을 줄 수 있게 돼 기뻤다.

정기적으로 밥을 주고 돌봐주는 길냥이가 생기면서 고양이의 여러 습성도 새롭게 알게 됐다. 특히 고양이도 모정이 있다는 것에 크게 놀랐다.





내가 사료를 주고 뒤로 물러나면 젖소 어미가 먼저 나타나 사료통 옆에 버티고 선다. 그럼 새끼 둘이 천천히 기어 나와 오도독 오도독 사료를 먹는다. 어미는 그 모습을 보며 기다리다가 새끼들이 배불리 먹고 자리를 떠나면 그제야 밥을 먹는다. 젖소 어미가 밥을 먹기 시작하면 치즈 아빠도 살며시 다가와 함께 먹는다. 가끔씩 삼색 언니도 나타나 어른 고양이 셋이 함께 먹을 때도 있다.

하지만 부모 자식 사이와는 달리 형제, 자매간에는 인정이 없었다. 젖소 어미가 외출을 한 어느 날, 새끼 고양이 둘과 삼색 언니만이 공터를 지키고 있었다. 사료를 부어주자 삼색 언니가 다가와 밥을 먹는다. 새끼들 먼저 먹이던 부모와는 전혀 다른 모습.

그 뿐 아니라 새끼들이 밥을 먹으려 다가오자 ‘하악~’ 거리며 위협을 한다. 언니로부터 위협을 당한 새끼 고양이는 “냥~ 냥~”거리며 애처롭게 울기 시작. 사료통으로 다가오지는 못하고 그저 한 발 뒤에서 울고만 있다.

본격적인 겨울이 되고 날이 추워지기 시작하면서 나는 사료 외에 특식도 함께 챙기기 시작했다. 성인 고양이야 사료와 깨끗한 물만 잘 먹어도 겨울을 날 수 있지만, 새끼들은 빨리 커지고 튼튼해져야 감기에 걸리지 않고 겨울을 무사히 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멸치, 닭가슴살, 고등어, 연어, 소세지, 돼지 목살 등 할 수 있는 능력 안에서 정성을 다했다.

그 덕일까. 최근 들어 새끼들이 급속히 성장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크기도 처음 발견했을 때의 두 배 정도 커진 것 같고, “냥~ 냥~”거리는 울음소리도 제법 야물어졌다.

그렇다고 이들이 내게 와서 애교를 떨거나 만지는 것을 허락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그들은 매일 나의 밥을 기다리고, 밥을 주면 잘 먹고 잘 논다. 그게 끝이다. 하지만 그것뿐이라도 좋다. 거리의 생명에게 호의를 베푸는 작은 행동 자체로도 매우 큰 기쁨이 있다는 것을 이제 알게 됐기 때문이다.

전국적으로 길고양이의 수는 100만 마리일 것이라 추산되고 있다. 서울에서만도 30만 마리. 하지만 길고양이들의 운명은 주변에 어떤 사람들이 사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강동구에서는 구에서 직접 관리하는 길고양이 급식소를 운영하고 있다. 길마다 놓여 있는 급식소에는 사료와 깨끗한 물이 언제나 가득 차 있다. 반면 압구정동의 한 아파트는 지하실에 서식하는 수십 마리의 길고양이를 그대로 생매장시키려 하고 있다.

길냥이가 좋고 싫다를 따질 시기는 지났다고 생각한다. 그러기엔 길냥이의 수가 너무나 늘어버렸다. 거리마다 넘쳐나는 길냥이를 모조리 잡아들여 ‘고양이 없는 깨끗한 거리’를 만들 게 아니라면, 이제 그만 그들의 존재를 인정하고 함께 공존하는 방법을 모색해 봤으면 한다.

길냥이의 울음소리가 아무리 시끄럽다 한들 술 먹고 내지르는 아저씨의 고성보단 작고, 부부 싸움하는 아줌마의 악다구니보단 듣기 좋다. 길냥이가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마음 놓고 살 수 있는 사회. 그런 대한민국이 되어보길 새해 연초에 소망해 본다.


<류승연 님은 정치부 기자 출신입니다. 현재는 두 아이를 키우며 전업주부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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