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일 지음/ 옥당








한국사의 쟁점을 새로운 시각으로 풀어내는 서술 방식으로 역사서 서술의 새장을 연 역사학자 이덕일의 첫 번째 강연집 《정도전과 그의 시대》가 도서출판 옥당에서 출간되었다.

정도전 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은 혼란스러운 고려 말의 위기를 극복하고 조선을 설계했으나 큰 뜻을 제대로 펼쳐보기도 전에 이방원의 칼날에 죽음을 맞이한 비운의 혁명가라는 이미지다. 하지만 조선의 설계자라는 단순한 설명만으로는 그의 삶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그가 살았던 시대, 고려 말 조선 초의 시대적 상황과 그를 세상으로 이끌어낸 원동력을 이해하지 못하면, 왜 그가 이성계를 만나 조선이라는 새로운 나라를 세우려 했는지, 무엇이 그를 백성을 대변하는 정치가로 만들었는지, 그가 만들고자 했던 나라, 그의 이상은 과연 무엇이었는지 알 수 없다.

정도전은 고려 말의 혼란을 불러온 가장 큰 원인을 토지제도로 보았고, 그 폐해를 없애는 것을 새 왕조 개창의 명분으로 삼았다. 과전법은 조선 왕조 개창의 정당성을 설파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었다. 왕조 교체를 정당화할 수 있는 수단이 사전개혁이었고, 과전법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한 바탕에 성리학이 있었다.

역사는 반성의 도구다. 역사서에 송나라 사마광의 《자치통감》이나 조선 서거정의 《동국통감》처럼 ‘거울 감鑑’ 자를 쓰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현재의 우리를 돌아보게 하는 거울이란 뜻이다. 옛사람들은 역사를 전철, 즉 앞서 지나간 수레바퀴라고 했다. 잘못된 길로 가다가 수레가 엎어졌던 시대를 교훈 삼아 현재의 우리를 돌아보고 미래의 길을 잘 선택해야 한다는 뜻이다. 지금 ‘정도전과 그의 시대’를 되돌아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도전이 살았던 쉰여섯 해는 현재의 우리를 되돌아보게 하는 거울로 부족함이 없다.

한 지식인, 한 사상가의 전략으로 고려가 무너졌다는 것은 그만큼 체제 내에 문제가 많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런 문제가 비등점을 향해 달려갈 때 체제 교체의 기운이 싹트는 것이다. 정도전의 인생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근본적인 메시지는 ‘한 사회가 내부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할 경우 체제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권력과 부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고, 이를 사회 내부에서 순리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면 비등점을 향해 치닫게 될 가능성이 있다. 정도전의 인생은 그런 불행한 사태를 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자신에게 배우라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정리 이주리 기자 juyu22@naver.com

저작권자 © 위클리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