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 기획 : ‘귀농 열풍’ 그 현장을 찾아서-28> 강원도 속초의 류정민 씨



귀농바람이 한창이다. 귀농 붐은 이른바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의 은퇴가 본격화되면서 비롯됐다. 1970~1980년대 산업화의 역군으로 ‘차출’돼 탈농을 이끌었던 이들 세대 중 많은 사람들이 농촌으로 회귀해 ‘인생 2모작’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도시생활에 회의를 느낀 30~40대까지 귀농에 가세, 농촌에서 제 2의 인생을 꿈꾸는 귀농 행렬이 줄을 잇고 있다.
귀농인들은 주로 소일거리를 통한 활력 회복, 전원생활에 따른 신체적·정신적 건강 추구 등을 이유로 농촌행을 결심하고 있다. 물론 생계수단으로 귀농을 택하는 이들도 있다. 그렇다고 모두가 성공하는 건 아니다. <위클리서울>은 도시에 살다 농촌으로 들어간 이들이 귀농을 결심하게 된 계기, 이후의 생활 등을 들어봄으로써 귀농의 현실을 짚어보기로 했다. 이번호에는 5년 전 강원도 속초에 자리잡은 류정민(36) 씨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농사 수입으로는 한계

류정민 씨. 30대 초반까지 서울에서 디자인 계통의 일을 했다. 그는 도시 생활에 익숙한 동년배들과 생각이 많이 달랐다. 늘 공동체에 대해 고민했다. 그 끝에 농촌이 있었다. 이루지 못할 대안을 지니고 있는 곳이라고 여겨졌다.
 
“서울 강남에서 살았거든요. 강남스타일이 어쩌고저쩌고 해도 저는 그곳에서 저를 발견하지 못했어요. 강남이라는 지역과 제 사이에 큰 갭이 있더군요. 도시에서는 제 자신을 발견할 수도 없었고요. 대안이라고 생각했어요. 실제로 와보니까, 좀 더 구체적인 삶의 대안들이 보여서 좋아요. 아직 젊다보니 정확한 판단을 내리긴 힘들겠지만, 현재로선 도시보다 이곳이 더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흔히 도시에서의 삶에 회의를 느껴 귀농하는 경우가 많지만 류 씨는 대학을 졸업한 직후부터 귀농을 계획했다. 일을 하면서도 꾸준히 생태귀농학교 수업 등을 통해 농촌의 실상을 파악한 뒤 홀연히 이곳 속초로 들어왔다. 부모님이 말릴 틈도 없었다.

“다행히 함께 귀농 수업을 들으며 만난 상대와 곧바로 결혼에 골인할 수 있었어요. 33살 되는 해였죠. 저는 먼저 속초로 와 생활했고, 아내는 도시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정리 단계였죠. 처음엔 1년 가까이 주말 부부로 지내다가 아이가 생기면서 아내도 이곳으로 내려왔죠.”

대학 졸업 이후 줄곧 직장 생활을 하던 아내 역시 도시 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있던 터였다. 무한경쟁을 요구하는 도시의 삶에 지칠 대로 지친 것. 자연스레 공동체를 꿈꾸었고, 농촌을 선택하기에 이르렀다. 초기엔 아내도 농사일에 올인 했지만, 농사 수입으로는 집안 경제를 이끌어 가는데 한계가 있었다. 현재 류 씨는 농사 외에 협동조합일을, 아내는 속초시에서 건축설계사로 일하고 있다.  





농사만으론 먹고 살기 힘들어 ‘투잡’

“도시나 농촌이나 취직하기 힘든 건 마찬가집니다. 농사일만으로는 먹고 살기 힘들어요. 여기 사는 분들 대부분 ‘투잡’을 뜁니다. 집에선 농사짓고 남은 시간엔 다양한 형태로 돈벌이에 나서죠. 어느 정도 소득은 있어야 하거든요. 여기 원래 사시는 분들도 농사만 짓는 건 아니에요. 그러니 귀농하는 사람들은 더 어렵죠. 농사만으로 소득을 내겠다고 생각하고 귀농하면 안 돼요. 시골이라도 찾아보면 할 일이 많아요. 그렇게 하다보면 지역 사람들과 접촉할 수 있는 기회도 생기죠. 저 역시 여기 처음 왔을 때부터 농사지어서 돈을 번 게 아니에요. 조합에서 사무 보는 일 거들며 용돈을 벌었어요. 1차 생산물 납품 등 여러 부문에서 사무적인 부문의 지원이 필요하거든요. 개인적으로 채소 농사를 소규모로 해왔고, 그 소득의 반은 조합에 내죠. 그렇게 서로 도와가며 살아요.”

마을 어르신들과의 관계도 좋은 편. 류 씨는 농촌에선 결국 함께 사는 방향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사람마다 다른데 저 같은 경우는 젊잖아요. 사무적인 부분에서 도와드릴 수 있으니까 농사엔 서툴러도 상생이 가능하죠. 나이 오십 넘어 직장 그만둔 뒤 아파트 처분해 내려와 사는 분들과는 차이가 있죠. 어쨌거나 이곳 주민들 입장에서도 자신들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고 같이 가야할 사람이라고 여기는 것 같아요. 그분들도 절 많이 도와주지만 저도 도울 수 있는 관계니까 별 탈 없이 잘 지냅니다.” 

귀농을 꿈꾸는 사람들에 대한 조언이 이어졌다.

“원주민들이 많이 싫어하는 부류가 계산적이면서 자기 이득에 관해서만 달려드는 모습을 보이는 이들입니다. 주변도 살피고 해야 하는데 아무래도 도시 생활에 찌든 분들은 그런 데 익숙하지 못하죠. 사실 도시에서도 자기 이득만 챙기다보면 욕먹기 마련인데 여기선 오죽하겠어요. 특히 주민들 입에 한 번 오르내리기 시작하면 감당 안돼요(웃음). 이분들에겐 한 명 한 명이 모두 얘깃거리 대상이거든요. 그런 면에선 조심스럽게 행동해야 합니다. 여기 계신 분들과 어떻게 더불어 잘살 수 있을까 고민한 다음 귀농해야죠. 여기 있는 분들이 잘 살아야 저도 잘 살 수 있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빚은 있지만 만족스러운 생활

류 씨는 2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농사짓기에 나섰다. 흑미와 오이 등 곡식과 채소를 주 작물로 재배하고 있다. 귀농 이후 3년간은 농사지을 땅을 구하고 마을 주민들과 친분을 다지는 기간으로 삼았다. 주민들에게 농사일을 배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조합에 생산자가 40명 정도 있어요. 공급도 조합과 계약해서 하고 있어요. 그래서 조합에 가입돼있지 않은 보통의 농가보다 어려움이 덜 해요. 물론 우리 역시 비료값 등으로 힘들지만, 약정된 가격으로 사들이기 때문에 덜 힘든 편이죠.”
현재 농촌의 많은 농가들은 빚에 허덕이고 있다. 류 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는 귀농 생활의 만족도와 별개로 빚 문제로 고민이 많다고 했다. 

“결혼하기 전부터 지금까지 빚에 허덕이고 있죠(웃음). 지금 살고 있는 집도 그렇고 논과 밭도 그렇고 80%가 빚을 내 장만한 것들입니다. 그래서 장기적인 계획을 가지고 살려고 해요. 다행히 국가에서 농사짓는 사람들에겐 빚 상환 부담을 덜 줘요. 예를 들어 5년 거치에 10년 상환 식으로 돈을 갚아나갈 수 있으니 부담이 덜 되는 편입니다.”

농촌의 사계는 도시보다는 뚜렷하다. 하지만 강원도라는 지역의 특성 때문인지 여름과 겨울 2계절만 반복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특히 겨울은 다른 지역에 비해 훨씬 춥다. 이 때문에 난방비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다. 

“겨울이 정말 힘들죠. 사실 매년 겨울이면 가족과 여행을 갈 생각도 했었어요. 해외여행까지 생각했었죠. 그런데 막상 닥치면 그게 잘 안 돼요. 난방비 나가는 거 생각하면 여행은 꿈도 못 꾸죠. 조합일도 조합일이고, 또 이제 막 자라나는 아이에게 얽매이다보니까 어디 한번 나서는게 힘들어요. 내년엔 어찌 좀 갈 수 있으려나….”

그나마 다행인 건 여름이다. 여느 계절보다 지내기가 수월하다. 물론 더운 건 마찬가지지만 주변에 즐길 거리가 많기 때문이다.

“농사 짓다보면 덥잖아요. 그런데 주변에 계곡이 많아요. 한 여름에 농사일 하다 말고 계곡으로 뛰어들죠. 사는데 그만한 재미가 또 어디 있겠어요.”

여름이나 겨울이나 문제는 돈이다. 온 정성을 다해 억척같이 농사를 지어도 수입은 아직 만족스럽지 못하다. 

“앞으로 어떤 농사를 지어야 할지 난감할 때가 많아요. 주변 어른들에게 여러 가지 작물 키우는 법을 배우고 있죠. 아직은 배우는 단계입니다. 다행히 배우는데 돈 들 일은 없어요. 문제는 아무리 따라 해봐도 막상 제가 키운 작물들은 제대로 자라지 않을 때가 많다는 겁니다.”




술 자주 마시지만 기분 좋게∼

이런 저런 고민으로 술을 마시는 날도 많다. 겨울엔 더 그렇다. 일이 없기 때문이다. 다행히 아내도 술을 잘 마셔 술친구가 없어 고민하는 일은 없단다.

“각종 과일로 술을 담가놨어요. 때론 고민도 하지만 어쨌든 술은 기분 좋게 마십니다(웃음). 폭음을 하는 건 아니고, 일에 영향을 주지 않을 만큼 적당량을 마시죠. 공기가 좋아 빨리 술도 빨리 깨요.”   

경제적인 문제로 고민이지만 전반적으로 이곳 생활에 만족하고 있다는 류 씨. 빚은 사실 그리 큰 문제가 아니라며 멋쩍게 웃었다.

“아내는 잘 모르겠는데, 저는 만족도가 높아요. 빚이야 제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농촌 사회 전반의 문제이고…. 일이 고되기도 하지만 빚 때문에 마음고생하진 않아요. 주민들이나 선배들과 잘 지내고 농사일도 만족스럽습니다. 많이는 못 벌어도 행복해요.”

최규재 기자 viscontio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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