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마술처럼, 그녀가 내 곁으로 왔다(14)




# 모름지기 간판이란 이렇게...


그녀와 나의 한집살이 구 개월째. 그동안 우리 사이에 하나의 묵계가 형성되었다. 가슴에서 바람소리가 들리는 날에는 시장으로 달려간다는 것이 그것이다. 시장에 뭐가 있나? 사야 할 것이 그리도 많은가? 아니다. 나는 다만 마음이 싱숭생숭해지면 오늘 장에 갈까? 하는 방식으로 그녀의 동행을 원할 뿐이고, 그녀 또한 마음에서 뭔가가 새로운 것이 일어나면 오늘 장에 가요, 하는 방식으로 나의 동행을 원할 뿐이다.

누가 먼저 장 구경을 가자고 했건 사양하는 법이 없다. 여러 말도 필요치 않다. 나도 그렇고, 그녀도 그렇고, 그럴까? 이 한 마디면 토론 끝. 즉시 양말을 챙겨 신고 신발을 신고 마당을 나서기만 하면 된다. 가끔은 그녀의 준비 시간이 길어지기는 한다. 화장품도 안 쓰는 그녀가 뭘 준비하는가는 내가 아직 모른다. 뒤따라가서  본다는 게 어쩐지 사생활침해 같아서 그냥 준비할 게 있나보다, 할 뿐이다.

진실은 사람을 불편하게 하고, 거짓말은 사람을 흥분시킨다는 말이 절대불변의 진리처럼 광범위하게 퍼져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거짓말은 사람을 기분 나쁘게 한다는, 진실은 사람을 춤추고 싶게 한다는 생각으로 가능한 한 거짓을 멀리하고 진실을 가까이 하고자 애쓰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다면, 그래서 죽기보다는 살아있고자 하는 자신의 욕망에 한 가닥 위안을 받고 안도의 숨이라도 내쉴 만한 곳을 찾기로 하자면 아무래도 왁자지껄 요란한 시장바닥을 첫손에 꼽아볼 만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도무지 미래를 찾아볼 수 없는, 꽉 막힌 이놈의 세상을 계속 사람 껍질을 뒤집어쓴 채 살아야 하는가, 그만 깔끔하게 정리해버려야 하는가, 앞산도 첩첩 뒷산도 첩첩이란 말도 있듯이, 그렇게도 앞뒤가 꽉꽉 막혔다는 느낌으로 마음이 암울해질 때면 저잣거리를 찾으라, 이런 생각을 무슨 잠언이거나 진리처럼 가슴에 새겨두고 실행해온 지도 돌아보니 벌써 이십여 년 세월이다.

단순하게 보자면 내 개인적으로 이십여 년 동안 희망을 못 찾고 있었다는 얘기일 수도 있지만, 조금 더 깊이 복잡하게 생각하자면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와 그 삶의 방식을 통해서 희망의 꼬투리나마 찾으려고 애를 써온 세월이 이십여 년일 수도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 팥죽장상 삼십육년 경력의 아짐씨


그런데 그 현장이 왜 하필 땀 냄새 물씬 풍기는 노동판이 아니고 시장이어야 했는가, 하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나는 아마 노동판은 내가 직업처럼 무시로 드나들어온 곳이라고, 그래서 노동현장의 땀내 이상으로 오감을 강렬하게 자극하는 눈물 냄새가 물씬물씬 풍기는 시장을 내 삶의 고향처럼 여기고 아무 때나 쓸쓸하면 찾아간다고 말해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시장이라 해서 다 같은 시장인 것은 아니다. 백화점 같은 화려한 마트에서는 내가 손님이면서도 손님이 아닌 것 같은, 나는 도대체 연봉을 얼마로 끌어 올려야 저런 옷을 사 입을 수 있나 하는 위화감에 사로잡혀서 가끔은 주눅이 들기도 하고, 창문 하나 없이 꽉 막힌 공간이 마치 가진 것 모두 털어 내놓기 전에는 나갈 수 없다는 위협의 목소리를 내보내는 것 같기도 하고, 현금이 없다면 빚을 내서라도 무엇이든 하나 사줘야만 할 것 같은 도덕적 책무 같은 감정에도 문득문득 사로잡히고, 등등 그런 감정상의 혼란을 치르고 난 뒤에는 한 번 들어가는 데도 상당한 각오와 결심을 필요로 한다. 

게다가 창문이 없는 것을 특징으로 하는 백화점이나 대형 쇼핑센터에는 자기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장치가 거의 없다. ‘창문 너머 어렴풋이 옛 생각이 나겠지’ 같은 유행가를 흥얼거리며 개인적인 회상에 잠길 겨를도 없다. 창문을 꽁꽁 틀어막아서 오직 지금 이 순간, 현재를 가둬놓고 있다고나 할까. 과거니 미래니 모두 잊어버리고 화려한 현재를 마음껏 즐기라고 속삭이는 것 같은, 백화점의 그런 환경을 숨 막히는 절망으로 인식하는 내가 너무너무 이상한 인간일 것일까? 뭐 그렇다 해도 어쩔 수 없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얼마 전부터는 재래시장도 들어서기가 좀 망설여지기 시작했다. 사람의 발걸음이 워낙 뜸하다 보니 상인들이 모두 나를 쳐다본다. 노골적으로 호객행위를 하는 것은 아니라 해도, 나를 쳐다보는 그 간절한 눈길을 호탕한 웃음으로 맞이하며 다가설 만한 배짱이 내게는 없었다.

한가하다 못해 호젓하기까지 한, 손님보다는 주인의 눈길이 압도적으로 많은 시장 길을 혼자서 걷는다는 것은 뭐랄까, 으스스한 날 깊은 산속을 홀로 걷는 것만큼이나 쓸쓸하고 고적하고 때로는 비애감마저 울컥울컥 생겨나서 우울해져 버리곤 했다. 그래서 이제는 가능한 한 재래시장도 발걸음을 줄이고 무엇인가 필요한 물건이 있을 때는 인터넷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그런 내 옆으로 그녀가 왔다. 기적 같은 일이었다. 그녀가 내 옆으로 온 것 자체가 기적인 것이 아니라 그녀 또한 나 못지않게 재래시장을 좋아하다는 것이 나로서는 기적 같았다. 이게 뭔가? 요즘 사람이 아닌가? 그녀가 재래시장을 좋아해서 자꾸 그쪽으로 발길을 잡는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그렇게도 좋아서 혼자 속으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심지어는 이 세상에 둘도 없는 천생연분이라고, 그런 덜떨어진 생각으로 히죽히죽 웃어대며 나의 그런 웃음을 누가 볼까 감추려고 하늘을 자꾸 쳐다보기도 했다.



# 누가 이걸 영업집 부엌이라 할까.


그녀와 내가 둘이서 팔짱을 끼고 시장을 거닐고 있을 때 사람들의 표정이 또 하나의 구경거리였다. 사람들은 그녀와 나를 구경거리로 삼고 바라보지만, 우리는 그 사람들의 그런 표정을 구경거리로 삼고 본다는 것, 아하, 이게 뭐냐. 살다 보니 이런 요상한 즐거움도 있었구나. 남자와 여자가 떨어지면 큰일이라는 투로 팔짱을 바싹 끼고 시장 거리를 활보한다는 것, 이것만으로도 시골 장터의 사람들에게는 일종의 문화적 충격일 텐데 여자가 자꾸 남자에게 그대, 그대, 한다는 것, 내가 그 사람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본다면 아마도 자다가도 신기하고 우스워서 키득거릴 것 같은 소재이기는 했다. 어쨌든 나는 그들의 표정이 재미있어 죽겠는 것이었다.

그렇게 툭하면 시장으로 달려가곤 하던 중에 그 집을 발견했다. 팥죽집, 칼국수집. 아니다. 팥칼국수집이라고 해야 하나? 어쨌든 붉은 팥을 푹 삶아서 앙금을 내고 그 앙금 속에 손으로 탁탁탁 썬 밀국수를 넣어서 다시 끓여 내놓는 그런 집이었다. 간판도 없었다. 아니 간판이 있기는 했다. 네 짝으로 구성된 출입문 한짝에는 팥죽집이요, 다른 한짝에는 칼국수라고 붉은 글씨로 쓰여진 그런 간판이었다. 그러면 상호는 무엇인가? 삼십육 년 동안 팥죽을 끓여서 팔았다는 사장님, 이라기보다는 ‘주인아짐’께 상호를 여쭤본 즉 “시장팥죽이여라우” 하신다.

“시장팥죽? 흠흠, 그것 참 기똥차네. 시장에 있으니까 시장팥죽, 히히.”

웃기는 했지만, 웃을 일이 아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마루에 밥상 하나 큰 것이 놓여있을 뿐 도무지 영업집 같지 않은 영업집이었다. 오른쪽으로 싱크대가 있는데 일반 서민 주택의 주방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왼쪽에 제법 큰 냉장고가 두 개 있어서 그나마 일반 여염집과는 다르다는 인상이 아주 조금 들 뿐이었다. 한 마디로 말해서 내가 팥죽을 사 먹으려고 식당을 들어온 게 아니라 고모나 혹은 이모네를 잠시 들여다보러 온 것 같은 느낌이던 것이었다.

마루 한가운데 떡하니 자리한 밥상은 제법 큰 것이어서 여덟 명 정도가 앉을 만했다. 달랑 하나뿐인 이 밥상에서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 주인 내외의 세 끼 식사도 이 밥상에서 해결되고, 팥죽을 찾아온 손님도 이 밥상 앞에 앉는다. 혼자 온 손님도 이 밥상에서 팥죽을 먹고, 둘이 온 손님도 이 밥상에서 팥죽을 먹는다. 먹는 중에 다른 손님이 들어오면 엉덩이를 살짝 들어 옮겨서 자리를 만들어주고, 그러면 새로 온 손님과 먼저 들어온 손님이 자연스럽게 마주 앉거나 혹은 나란히 앉아서 팥죽을 먹는다. 먹다가 눈이 마주치면 목례를 보내고, 마음이 맞으면 뭐라고 몇 마디 말을 섞다가 막걸리를 나눠 마시는 친구로 발전하기도 한다.



# 너는 이제부터 내 딸이여 잉~


손님은 팥죽을 목적으로 들어온 사람만 있는 게 아니다. ‘피곤한 사람은 오시오’라는 노래도 있듯이, 한가하거나 피곤하거나 우울하거나 슬픈 사람들, 혹은 억울하거나 화가 나서 미칠 것 같은 사람들, 혹은 어디서 신기한 이야기를 들었거나 쓸데없이 입이 근질근질한 사람들이 오다가다 문을 열고 들어와서 밥상 앞에 주저앉아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는다. 가끔은 주꾸미나 물오징어 같은 안주거리에 소주까지 들고 오는 사람도 있어서, 손님맞이용 밥상은 순식간에 술상으로 둔갑해 버리기도 한다.

밥상이 술상으로 둔갑했다고 팥죽을 먹으러 온 손님이 싫어할까? 천만에 만만에 그런 일은 거의 없다. 팥죽을 목적으로 들어온 손님은 뜻밖에도 주꾸미나 물오징어를 얻어먹기도 하고,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대낮부터 소주잔을 받아들고 어어 이러면 안 되는데, 어쩌고 짐짓 난감해 하다가는 결국 카, 소리를 내고 만다. 그 바람에 팥죽이라는 두 글자만 보고 처음 들어온 손님은 이게 무슨 ‘개판인가’하는 표정으로 눈을 잇달아 깜빡거리는 등 어찌할 바를 모르고 어정쩡하게 서 있다가 슬그머니 나가버리기도 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의 ‘주인아짐씨’는 내버려둔다. 내버려둔다기보다는 그냥 내버려 둬버린다는 표현이 딱 맞을 정도로 무심하다. 오면 오고 가면 가는 게 사람이라는 투로 가는 사람 불러 세우는 법이 없고, 왜 도로 가버리는 거냐고 투덜거릴 만도 하건만 그러는 법도 없다. 팥죽장사 삼십육 년에 그만 신물이 나버려서일까? 아니다.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는 저 유명한 경구를 떠올리게 하는 ‘아짐씨’ 나름의 철학이 거기에는 짙게 깔려 있었다.

“돈도 많이 가진 사람은 욕심만 계속 키워서는 그냥 인생이 짠하고 불쌍하고 안 그래 보입디여?”

왔다가 그냥 가는 손님을 왜 보고서도 못 본 척해버리느냐는 나의 바보 같은 질문을 ‘아짐씨’는 그렇게 알 듯 모를 듯 아리송한 말로 받아치고 있었다. 그렇게 설렁설렁 장사를 하는 듯이 안 하는 듯이 했어도 지금은 의사 아들까지 두었다고, 자랑이기보다는 사실이 그렇다는 투로 덤덤하게 말하는 ‘아짐씨’의 이야기에는 인생을 직관하는 무엇이 있었다. 비워야 채울 수 있다는, 비움이 있어야 채움도 있다는 장자의 철학을 온 몸으로 체현하며 살고 있다는 느낌이기도 했다. 하긴 연륜이 오래된 사람은 그 자체가 하나의 도서관이란 말도 있지 않던가.

어쨌든 그날도 그렇게 스토리는 진행되었다. 특별한 아무 일도 없는데 괜히 팥죽이 먹고 싶다고, 내가 먼저 그런 말을 꺼냈는지 그녀가 먼저 그런 말을 꺼냈는지, 하여튼 의기투합해서 팔짱을 끼고 읍내의 시장으로 나갔다. 손님도 별로 없는 시장 구석구석을 좌로 돌고 우로 돌고, 그렇게 다정도 병인 양 꼭 붙은 채로 이것저것 들여다보며 어슬렁거리다가 예의 팥죽집으로 들어갔다.

“팥죽 먹고 싶어서 왔는데, 먹을 수 있어요?”



# 팥죽이 끓는 솥단지들



문을 밀고 한 발을 들이민 채로 그녀가 그런 말을 했고, 때마침 밥상 앞에 앉아 있던 아주머니 한 분이 “아따 말도 참 이쁘게 잘 허시네 잉”하고 대번에 해실해실 웃어주는 바람에 우리는 금방 친해져서 이런저런 쓸데없는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러는 중에 팥죽이 나왔고, 우리가 팥죽을 맛있게 먹고 있는 동안 ‘주인 아짐씨’는 주꾸미를 삶고 있었다.

“자, 자, 이것도 한 점 하시고.”

삶아낸 주꾸미를 권하는 아주머니, 이어서 소주잔을 권하는 아주머니, 이렇게 해서 판은 기어이 벌어지고야 말았다. 한 잔이 두 잔 되고, 두 잔은 넉 잔이 되었다. 나의 그녀는 어느 순간 슬그머니 일어서는가 싶더니 밖으로 나가서 새로운 소주를 사 들고 왔다. 그것을 본 아주머니들이 박수를 치며 그렇게도 좋아하신다.

낮술에 취하면 아비도 못 알아본다는 옛말도 있기는 하지만, 그날의 낮술은 있는 사람도 못 알아보는 게 아니라 없는 사람도 알아보는 진귀한 체험으로 확대 개편되었다.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그야말로 온갖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모르던 어느 순간 아주머니께서 “아이고 내 딸 했으먼 참말로 좋겠는디 잉?”하고 아주 창조적인 발언을 해버리는 바람에 나의 그녀는 순식간에 ‘고창의 딸’이 되는 영예를 안게 되었다.

“그러면 나는 장모님이라고 불러야 맞겠는디요 잉? 그런디 어쩐다요. 연세가 어째서 나랑 거이 비슷할 것 같은디.”
그런 흰소리를 지껄여대며 낄낄거리고 있었던가 어쨌던가. 시간도 어지간히 늦어서 그만 집으로 가자고 작별 인사를 나누고 밖으로 나오는데 문득 아, 이게 사람 사는 세상이로구나, 이게 바로 천국인 게여, 소리가 내 입에서 절로 나오고 있었다.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 한 편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전북 고창으로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앞으로 ‘김수복의 시골 살림 이야기’란 제목으로 자연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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