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앙이 무어냐고, 물으신다아며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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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02.24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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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마술처럼 그녀가 내게로 왔다(16)



# 그녀의 방 한쪽


벌써 일 년이 지났다. 그녀와 내가 벌였던 최초의 전쟁, 최초의 치사무비, 그 엄청나게도 한심한 활동극이 있었던 지도 벌써 일 년이 지났다.

그녀의 서울생활을, 살림살이를 보고 싶었다. 어떻게 사는지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그렇게 서울을 갔던 날, 고개를 들어 하늘이라도 좀 보려고 하면 전깃줄이 거미줄처럼 빽빽하게 늘어서 있는, 그래서 내가 흡사 거미줄에 걸려 발버둥이라도 치고 있는 느낌이 들기도 하는, 출입문에는 잠금장치가 다섯 개나 장착되어 있는 그 엄중하면서도 초라한 환경이 나를 슬프게 했던 것인가.

술 생각이 간절했다. 마침 그녀의 언니가 보내주었다는 보드카 한 병이 있어서, 그것을 밤새 둘이서 홀짝거리기로 했다. 안주는 프라이드치킨 반 마리. 기름에 튀겨낸 닭이 한 마리도 아니고 한 마리의 절반을 튀겨낸 것. 당연히 모든 부위가 한 개씩이었다. 날개도 한쪽이요 다리도 한쪽.

작고한 리영희 선생께서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고 했건만, 우울하게도 우리의 그날 프라이드치킨은 좌우가 없었다. 하나뿐이었다. 하나뿐인 날개, 하나뿐인 다리, 그것이 좌측인지 우측인지는 몰라도 좋았다. 알고자 하지도 않았다. 둘이서 그저 먹고 떠드는 데만 관심을 쏟고 있었을 뿐이었다.

나오는 뼈가 아까워서, 버리기도 아깝고, 버리게 되면 음식물 쓰레기로 따로 분류해서 배출해야 하는데 그 비용 또한 아깝다고, 그렇게 아깝다는 얘기를 몇 번 하다가 비닐봉지에 담아 냉장고에 넣어두었다가 시골 갈 때 가져가서 우리 집 개 마루 녀석에게 주기로 했다.



# 그녀의 집 앞


아무튼 하나였다. 한쪽, 다리도 하나, 날개도 하나, 모든 것이 하나인 그 중에서 그녀는 날개 하나를 덥석 집어 들었다. 남자는 날개를 먹어서는 안 된다나. 그 말에 나는 웃었다. 그리고 역시 하나뿐인 닭다리를 들어서 그녀에게 건넸다. 이것도 마저 먹어. 그러자 그녀는 싫다고 했다.

“그대 드세요.”

그대, 오 그대, 그녀의 그 표현에 나는 감격을 했지만, 그렇다고 대뜸 내 입으로 처넣을 수는 없었다. 다시 그녀에게 건넸다. 그녀는 또 사양했고, 닭다리는 하는 수 없이 한쪽으로 밀어놓은 채 다른 부위로 술안주를 했다. 그랬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다른 부위는 아무 이견이 없이 사이좋게 조금씩 나눠먹었지만, 오동통한 닭다리는 이상하게도 그게 잘 안 되었다.

“이거 먹어, 왜 안 먹어.”
“아니에요, 드세요.”
잠시 뒤에 다시.
“이거 아직도 있네. 왜 안 먹어?”
“진짜 왜 그러세요. 드시라니까.”
또 잠시 뒤에 다시.
“와아, 이 사람 진짜 말 안 듣네. 아니 왜 닭다리를 안 먹어, 먹으라니까”



# 주방에서


“누가 할 소린지 모르겠네.”
그리고도 또 한참 뒤에 다시.
“정말 이럴래?”
“뭔 소리에요?”
“닭다리 뜯으라고, 자, 받아 얼른.”
“아이 참 싫다니까, 드시라니까 왜 이래요 정말?”“좋아, 싫다 이거지. 그럼 내가 씹어서 줄게.”
“에에?”

“어느 입에서 씹었는가는 뭐, 소화기관이 그런 것까지 따져서 받을까 말까를 결정하지는 않겠지. 그래, 그게 좋겠다. 사람이 음식을 씹는다는 거, 이거 굉장한 에너지가 필요한 거잖아. 이제부터 내가 꼭꼭 씹어서 먹여 줄게. 응?”
“아이 싫어.”
“싫기는 뭐, 자, 받어, 아, 해.”
“아이 진짜 왜 이래요, 더럽게.”

“더럽게?”자, 이 지경까지 왔다. 그 순간 나는 싸늘해지고 있었다. 사실을 말하자면 나는 내 입으로 닭다리 하나쯤은 꼭꼭 씹어서 그녀에게 먹여줄 수도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옛날 할머니가 밥알을 꼭꼭 씹어서 젖먹이 손주에게 먹여주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그녀는 정색을 하고 펄쩍 뛰면서 더럽단다.

“방금 뭐라고? 더럽다고? 내가 더러워?”
“그게 무슨, 그게 아니잖아요.”“더럽다고 했잖아. 내 입이 더럽다는 것은 결국 내가 더럽다는 거잖아. 에이 씨, 나 갈래. 참을 수 없어. 갈 거야. 더럽다고? 내가 더럽다고?”
“아니라고 했잖아요. 웬 억지를? 나이 많은 남자는 이래서 불편한가봐.”



# 치킨 반마리 때문에 생긴 갈등


뭐라고? 뭐? 나는 그렇게 들었다. 나이 많은 남자는 이래서 불편하다고, 나중에 그녀는 절대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없다고 했지만, 어쨌든 그날 그 시간의 무엇이 잘못 작동되고 있었던 것인지 나는 그렇게 들었다. 나이 많은 남자는 이래서 불편한가봐? 그래, 내 나이가 많다. 너보다 스무 개나 많다. 그래서 뭐 어쨌단 말이냐. 그것을 모르고 시작했던 것이냐? 내가 너를 속였다는 거야 뭐야?

그 직후의 상황은 지금 내 기억에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 뭔가 굉장히 서글펐다는, 분하기도 했었다는, 그냥 마구 울고 싶었었다는 기억만 어렴풋이 마치 커튼 뒤쪽의 그림자처럼 남아 있을 뿐이다. 뭔가 생각을 했었다면 아마 ‘너 자신을 똑똑히 보라’ 정도였을 것이다. 그래, 그것이 있었다. 보라, 네 나이가 몇이냐 이놈아, 꺼져라.

그렇게 나는, 한밤중에 그녀의 집을 나와서 거리를 걸었다. 그런 상황에서 그녀의 집에 있는 것은 뭐랄까, 하여튼 안 될 것 같았다. 그녀의 집을 나와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바로 나온 것은 아니었다. 희미한 기억이지만 몇 차례나 일어섰다 앉았다를 반복했다. 갈 거야, 갈 거야, 그런 소리도 꽤나 중얼거렸다. 왜 그랬을까. 그녀가 나를 붙잡아 주기를 바랐던 것이었겠지.

하지만 그녀는 나를 붙잡아주지 않았다. 붙잡기는커녕 간다고 나서는 내 가방 속에 닭뼈다귀를 넣어주기까지 했다. 가져가서 개 주라고, 세상에, 어쩌면 그럴 수가 있니? 냉장고에 넣어둔 그놈의 닭뼈가 그 와중에도 생각이 나서 그것을 챙겨주는 넌 대체 뭐니, 응? 그러고 보니 넌 나를 상대로 잠깐 놀이를 벌였었던 것이로구나? 나이가 스무 개나 많은 남자는 어떨까, 뭐 그런 마음이었던 거야, 그렇지? 나쁜, 나쁜 지지배. 오냐, 그래, 가주마, 떠나주마.



# 치킨이 무어길래


그렇게 우리의 싸움은, 아니 박물관에 영구전시라는 푯말을 붙여서 전시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어처구니없는 전쟁은 시작되었다. 시간은 새벽 세 시 즈음이었을 것이다. 무슨 청승이라고 비까지 내렸다. 명색이 겨울인데 눈이라도 내리면 누가 잡아먹는다니. 비가 뭐야 비가. 그렇게 미친 듯이 궁시렁거리며 빗속을 걸었다. 버스도 안 다니고, 전철은 아직 멀었고, 택시는 도처에서 시동을 걸어놓은 채로 나를 보고 있지만 전라도 고창까지 택시를 타고 갈 것이 아닌 바에야 해당사항이 없고, 하는 수 없이 노숙자들 옆에 쭈그리고 앉아 전철이 운행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고속버스 터미널로 갔다.

한숨도 못 잤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술도 제법 마셨건만, 취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두 눈을 부릅뜬 채로, 서울에서 고창까지, 세 시간 반 동안을 비장한 기분인 채로 앉아 있었다. 이상하게도 화장실조차 갈 일이 없었다. 목도 마르지 않았다. 휴게소에서 버스가 멈췄는데도 그대로 앉아 있었다. 뭔가를 보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지만, 뭘 보고 있었는가는 지금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니까 나는 무엇인지 알 수도 없는 그 무엇인가를 보면서 열심히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아 그래, 그녀는 내가 더럽다고 했다. 내 나이가 자기보다 이십 년이 많아서, 그래서 아마 더러워보였던 것일 게다. 평소에는 애써 아무렇지 않다고 자기 최면 같은 것을 걸 수 있지만, 술이 한잔 들어가고 보니 자기최면이고 뭐고 다 없어지고, 감정이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노출되는 그런 상태가 되어 있었을 거다. 그래, 그렇다. 오 이런, 내가 미쳤지. 내가 왜 이런 이상한 연애를 시작했더란 말이냐.

내 나이 사십이 꽉 찬 시절에 그녀는 이십밖에 안 됐었다. 내 나이 서른이 꽉 찬 시절의 그녀는 고작 십대 소녀였다. 그러면 내 나이 스물 시절의 그녀는? 오 이런, 겨우 간난이었던 것 아니냐. 그리고 내 나이 열아홉 시절의 그녀는, 태어나지도 않았다. 태어날 수 있을지 여부도 매우 불투명했다. 이런 사람과 내가 연애를 했었다니. 내 나이가 지금 가령 서른 살만 됐다 해도, 그러면 그녀는 고작 열 살밖에 안 되는 것이니, 나는 아동청소년 보호법 위반으로 즉각 체포되어 감옥행 특급열차 한 구석에 처박혀야 했을 것이다. 오 이런, 이런, 내가 미쳤구나, 미쳤어.





그렇게 끝도 없이 궁시렁대며, 버스를 타고 내리고 다시 타고 내려서 마침내 집에 왔는데 개집에서 개가 뛰쳐나오더니 앞발을 들었다 놓았다 꼬리를 흔들어대며 어쩔 줄을 몰라 한다. 그 미치도록 반가워하는 개를 보고 있자니 불현듯 눈물이 나왔다. 가방을 어깨에 맨 채로 개 앞에 쭈그리고 앉아 녀석의 목덜미를 쓰다듬어주고 있는데 녀석이 자꾸 가방에 코를 대고 킁킁거린다. 그제야 생각이 났다. 가방 속에 그녀가 넣어준 닭뼈가 있다는 것이.

“아나 이놈아, 누가 개 코 아니랄까봐.”

가방에서 비닐봉지로 꼬깃꼬깃 싸놓은 그놈의 닭뼈를 꺼내자마자 그대로 땅에 쏟아 부었다. 그런데 맙소사, 뼈만 있는 게 아니다. 살도 있다. 그것도 오동통한 근육질의 살이다. 이른바 닭다리라고 부르는 그것, 그녀와 나를 쫙 갈라놓은 그놈의 닭다리, 너 이놈의 닭다리, 너 이놈의 닭다리, 너 뭐냐, 응? 너 뭐야. 그놈의 원수 같은 닭다리를 집어서 어디 멀리로 홱 던져버리자고 손을 내미는데 어렵소, 이건 또 뭔가. 개가 내 손을 꽉 문다. 꼴에 주인이라고 아프게 물지는 않고, 닭다리는 이제 자기 것이니까 손대지 말라는 경고를 보내는 투로 제법 으릉, 소리를 내며 내 손을 물었다가 놓는다.

환장하겠네. 정말로 미치고 환장하고 복창이 터지겠네. 그래 먹어라. 실컷 먹어라, 배 터지게 먹어라. 아나 이 써글놈의 개야. 혼자 미친 듯이 중얼거리며 발길질로 개를 한 번 차마 걷어차지는 못하고 시늉만 해 보다가 방으로 들어왔다. 그제야 목이 말랐다. 커피 한 잔을 끓여놓고 옷을 벗는데 전화기가 손에 만져진다. 꺼내보니 문자가 들어와 있다. 보낸 사람 이름은 내여자.



# 우리집 개 마루


“비도 오는데 어디 가 계시는 거예요?”

시간을 보니 일곱 시간 전이다. 내가 빗속을 걸어서 전철역의 노숙자들 옆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던 그 무렵쯤 되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나는 그녀의 집을 뛰쳐나온 이후 전화기를 한 번도 꺼내본 적이 없었다. 꺼내보기는커녕 전화가 있다는 생각도 못해봤다. 그러니 당연 그녀에게 마지막 인사로 전화를 해야겠다는 생각도 못해봤고, 문자를 넣어야겠다는 생각 또한 못해봤다. 그런데 그녀는 내게 문자를 보냈다. 그런데 나는 그것도 모른 채로 있다가 일곱 시간이 지난 뒤에야 그것도 우연히 확인을 한 것이었다.

이게 뭐지? 왜 이렇게 된 거야?
흔히 말하는 멘붕이라는 것이, 그렇게 나를 덮쳤다. 이불을 푹 뒤집어쓴 채로 잠을 청했지만, 잠은 오지 않고 별들만 오락가락하는 날들이 며칠이나 이어졌다. 그 뒤로 꼬박 일 년이 지나 있는 지금, 그러니까 우리의 황당무계한 전쟁 일주기를 즈음해서 가령 누군가 나에게 사랑이 뭐냐고 묻는다면, 나는 아마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바보가 되어가는 과정이라고 말할 것 같다.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 한 편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전북 고창으로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앞으로 ‘김수복의 시골 살림 이야기’란 제목으로 자연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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