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마술처럼, 그녀가 내 곁으로 왔다: 사랑이 뭐냐고 묻는다면 (2)





“비도 오는데 지금 어디 가 계시는 거예요?”

한밤중 빗속에 그녀의 집을 뛰쳐나온 지 일곱 시간여 만에 발견한 그녀의 문자 한 줄, 그렇게 달랑 한 줄 들어와 있는 문자를 보고 내심 감동을 하기는 했지만, 나는 그때쯤 다른 것을 보고 있었다. 그 감동이 지속되기에는 내가 이미 봐버린 무엇인가 그 다른 것이 내 안에서 활동을 개시하고 있었다.

이건 아니다.

논리적인 어떤 성찰 뒤에 나온 결론은 아니었다. 목구멍에서 울컥거리는 무엇인가 이를테면 내 몸의 일부가 그런 말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이건 아니라고, 우리의 관계는 어쩌면 사랑조차도 아닐지 모른다고, 차라리 잘 되었다고, 고운정에 미운정까지 들기 전에 일이 터졌으니 잘 되고 또 잘 된 것이라는, 그런 소리를 듣고 있는 내 가슴에 그녀의 문자 한 줄이 주는 영향은 잠깐의 감동,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이른바 정신이란 놈이, 언제 어디로 갔었는지 알 수도 없는 그놈이 확 돌아와서 나를 흔들어대고 있었다고 하면 말이 좀 되려는지 모르겠다. 말이 되거나 말거나 어쨌든 나로서는 그동안 감겨 있었던 눈이 떠졌다는 느낌이었고, 그리하여 나는, 나는, 부끄러웠다. 등골이 서늘하도록 부끄러웠고, 얼굴 가죽이 벗겨지는 것처럼 뜨겁게 부끄러워서 하늘을 볼 수도 없고 땅을 볼 수도 없었다.

내 나이를 가령 서른한 살쯤으로 가정해놓고 보자면 그녀는 이제 겨우 십대 초반, 열한 살밖에 안 된 소녀를 상대로 연애감정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니 이게 도대체 미치지 않고서야 가능한 일이겠느냔 말이다. 그런 정신 상태에서 발견한 그녀의 문자 한 줄은, 그것은 내 안에서 이미 활동을 개시한 부끄러움의 깊이를 저 아래 땅 속 마그마가 있는 지점까지 끌어내리고 있었다.





네가 네 죄를 알렸다.
너 자신을 알라.

두 개의 문장이 길 잃은 강아지처럼 내 주변을 맴돈다, 아니 떠돈다는 느낌이었다. 맴도는 것도 아니고 떠도는 것, 그랬다. 나는 그 두 개의 문장을 내 것으로 취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완강하게 밀어내 버리지도 못한 채 엉거주춤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사흘인가, 나흘 동안을 그렇게 웅크리고 앉아 나 자신을 들여다보았다. 처음에는 술도 마시지 않았다. 부끄러움의 무게와 깊이가 워낙 크다 보니 술을 마시지 않았어도 내 몸은 화끈화끈 취해 있었고, 다른 아무것도 볼 수도 없었다. 생각해볼 수도 없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아직 최종 결심에는 다다르지 못하고 있었다. 이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마음 저편에서는 뭔가 다른 구실을 찾고 있었고, 이쯤에서 그만 헤어지자, 하고 결기 어린 목소리로 혼잣말을 해놓고도 잠시 뒤에는 너무 그렇게 서두르지는 말자, 하고 있었으며, 그만 깨끗이 끝내는 게 서로를 위해서도 좋지 않겠어? 하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놓고는 십 초도 안 돼서 끝내긴 뭘 끝내 아직 시작도 제대로는 안 했는데, 하고도 있는 것이었다.

그러는 나 자신이 어쩌면 그렇게도 우유부단하고 뻔뻔스럽게 여겨지던지, 아 이거 미치겠네, 미치겠네, 소리를 질러대며 대굴대굴 굴러보기도 하지만, 그 순간만 지나면 나는 또 정 반대의 생각에 몰두하고 있었다. 넌 인마 사랑이 뭔 줄이나 알고 지껄이는 게냐. 사랑이란 본디 뻔뻔한 것이다. 뻔뻔한 정신이 아니고는 사랑에 이를 수가 없단 말이다 이놈아. 등등 그렇게 자가당착의 해답을 내놓고는 마치 희망봉이라도 발견한 듯이 좋아라 한 게 몇 번이었는가는 지금 기억도 나지 않는다.

어쨌든 나흘쯤 지나서부터 아마 술을 마시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때부터는 내 자신만의 입장이 아닌 그녀의 입장을 추론해 보고도 있었다. 속이 상해서 날마다 술을 마실까? 술이 취한 채로 잠도 못 자고 밤새 뒤척이다가 출근을 하는 그런 엉망진창의 시간들을 보내고 있을까? 아 이런 내가 미안하다. 너무너무 미안하다. 내가 너를 내여자라 부를 테니 너는 나를 내남자라 불러다오, 그렇게 마치 무슨 물건 강매하듯이 호칭을 만들어서 떠안겨놓기까지 한 주제에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야, 이거, 응?





나 자신은 술을 퍼마시면서 그녀에게는 술에 의지하지 말고 냉정하게 살피고 생각하라는 내용의 이메일을 쓰고 있기도 했다. 이메일보다 훨씬 신속하고 정확한 전화도 있었지만 차마 그쪽으로는 손이 안 가서 해볼 수가 없었다. 충동적으로 전화기를 손에 들고 입력돼 있는 호칭 ‘내여자’를 불러내서 신호를 보내는 직전 단계까지 갔다가도 그만 포기해 버리고 한숨이나 푹푹 내쉬기를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르긴 몰라도 아마 백 번 이상을 그런 짓에 몰두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마침내 무슨 용기를 어디서 얻었는지 신호를 보내는 단계까지 가긴 했지만, 그런데 받아주는 사람이 없다. 음성 사서함으로 연결한다는, 연결 뒤에는 통화료가 부가된다는 참으로 기막힌 음성만 들리고 있었다. 다시 신호를 보내보고, 그래도 안 받아서 문자를 넣어 보았지만, 역시 무소식이었다. 와아 미치겠네, 이거? 이렇게 해서 나는 새로운 방식으로 미쳐가기 시작했다.

우선 비감한 문장 몇 개가 머릿속에서 마치 현수막처럼 펄럭거렸다. 아, 내여자는 이미 나를 내남자로 하기를 포기했나 보구나. 그녀는 벌써 정리가 돼 버린 거야. 하긴 뭐가 아쉬워서 그 나이에 나 같은 놈을, 응? 뭐가 아쉬워서 말이다.

자, 이제는 술이나 퍼마실 일만 남은 것 같았다. 술이 취한 김에 여기저기 몇 군데 전화질을 해댔다. 전화를 해서 횡설수설 요령부득이한 말을 지껄이다가 일방적으로 끊어버리기를 되풀이했다. 그러다가 딱 걸렸다.

“왜, 연애가 잘 안 되냐?”





선운산 골짜기에 농막을 지어놓고 살아온 지도 벌써 한참인 선배 한 분이 그렇게 내 뒤통수를 꽉 쥐고 있었다. 내여자가 고창에 처음 왔을 때 데려가서 소개도 시키고 막걸리도 함께 마시기도 해서 아마 금방 감을 잡았을 터이었다. 그때도 나는 내가 이래도 되는가 모르겠어요? 하고 질문 같지도 않은 질문으로 그녀와 나의 관계에 관한 조언을 구한 적이 있었다. 그때 그 선배의 조언은 이런 것이었다.

“물이 흐르듯이, 마음 가는 대로 따르는 게 가장 좋지 않겠어?”

아 그래, 그것이다. 시계의 작은 바늘이 3자를 가리키면 세 시 즈음이듯이, 내 마음의 시계바늘이 가리키는 바로 그것으로 달려가자, 달려가 보는 거다. 그러면 내 마음은 지금 어디로 향해 있는 거지? 헤어지자는 것인가. 아니다. 지금 당장 서울로 가는 것인가. 그래, 그것이다. 얼른 가자. 늦기 빨리 전에 가자.

이렇게 해서 나는 서울행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다. 그녀와 전쟁 아닌 전쟁을 치르고 불쑥 내려와 버린 지 딱 일주일 만이었다. 버스 안에서 지금 서울행 고속버스를 탔다고 그녀에게 문자를 넣었지만, 그녀는 여전히 무소식이었다. 정말로 완전히 끝내 버린 건가? 나는 다시 의기소침해지기 시작했다.

서울에 도착해서 전화기를 꺼내 신호를 보냈지만 역시 안 받았다. 아 그렇구나, 정말로 완전히 끝내버린 것이로구나.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내가 무슨 염치로 젊은 그녀를 붙잡을 것인가. 싫다는 여자 쫓아다니는 남자처럼 꼴불견도 없더라. 최소한 그 지경으로까지 나가떨어지지는 말자 응?

그래도 그냥 돌아서서 내려가 버리기는 또 좀 그렇잖은가. 그녀의 얼굴을 볼 수는 없다 해도, 전화통화는 할 수 없다 해도, 그녀가 살고 있는 동네 정도는 한 바퀴 둘러봐도 누구 뭐라고 할 사람은 없지 않겠는가. 그래, 그러자, 그녀가 아침저녁으로 들고 나는 그 골목, 그 가게, 그 전봇대나 한 번 더 보고 내려가자.





처음 생각으로는 그랬다. 내여자의, 아니 이젠 내여자가 아니고 한때 내여자라고 생각했던 그녀의 발자국이 찍혀 있을지도 모르는 동네를 한 바퀴 둘러보고 내려가자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녀의 전셋집이 있는 다가구주택 대문 앞에 도착하는 순간 내 생각이 바뀌었다. 마침 대문이 열려 있어서, 나도 모르게 자동적으로 그녀의 샛집 문 앞에까지 바싹 다가간 나는 급히 메모지 한 장을 꺼내서 이렇게 쓰고 있었다.

어두워질 때까지 연락 없으면 그렇게 알고 내일 아침 첫차로 그냥 내려갈게.

정확한 기억은 아니다. 대충 그런 내용이었다고만 기억된다. 그렇게 쓴 메모지를 그녀의 셋집 문틈으로 밀어 넣고 거리로 나섰다. 그때 시간이 아마 오후 두세 시 무렵이었을 것이다. 문자 그대로 어두워질 때까지 연락이 없으면 찜질방 같은 데나 들어가서 잠시 쉬었다가 아침 첫차로 내려갈 생각이었다. 

어디를 얼마나 돌아다녔는지 세세한 기억은 없지만, 그녀와 함께 갔었던 곳은 대부분 다 찾아다녔던 것 같다. 그녀와 함께 가서 먹었던 이천 원짜리 짜장면 집에서 짜장면을 먹었고, 그녀와 함께 나란히 서서 빼 먹었던 버스 정류장 앞의 자판기에서 혼자 커피를 빼 먹었고, 그녀가 쓸쓸할 때 즐겨 찾는다는 재래시장으로 가서 골목골목을, 그야말로 골목골목을 이 잡듯이 뒤지고 다녔다기보다는 헤매고 다니면서 끊임없이 전화기를 확인했지만, 그놈의 전화기는 꿀이라도 들이켰는지 감감무소식인 채로 배터리가 바닥나 가고 있었다.

이건 또 무슨 엎친 데 덮치는 격이람. 배터리가 거의 끝나가는 전화기를 일단 껐다가 이십여 분 간격으로 다시 켜 보기를 몇 번이나 했는지, 그 동안에 내 가슴은 또 얼마나 쪼그라들었는지, 안 그래도 새가슴이 아예 뱁새 가슴이 되고 말겠구나 싶을 즈음, 놀랍게도 그녀에게서 연락이 왔다. 해는 이미 졌고, 사방이 어두워진 지도 한참인, 그야말로 밤도 야심해져 버려서 이제는 거의 완전히 포기하고 밤새 어디를 헤매다가 아침 차를 탈까, 아니면 어디 소줏집에라도 들어가서 홀짝이다가 아침 차를 탈까, 내심 궁리하고 있는 참에 걸려온 그녀의 전화는, 글쎄 그것을 뭐라고 해야 하나, 어쨌든 받았다.

“지금 어디에요?”
“어? 어, 여기가 글쎄, 어디지, 여기가?”





사실로 나는 그때 내가 서 있는 곳을 몰랐다. 어디를 어떻게 돌아서 거기까지 가 있었는지도 당연히 몰랐다. 도무지 아무것도 모르겠다고 우물거리는 소리를 내는 것밖에는 내가 할 수 있는 말이 하나도 없었다. 그러자 그녀는 내 주변의 건물을 묻고 있었고, 도로의 생김새를 묻고 있었고, 지나가는 버스 번호를 묻더니 이도저도 다 안 되겠다 싶었는지 대뜸 “무조건 택시를 타세요”하고 있었다. 그렇지 참, 택시가 있었지, 아이구 이런 빙충이.

무조건 택시를 타고 어디를 가자고 해라, 그 어디 못미처에 무슨 은행이 있는데 은행 앞에서 내려라, 내가 지금 다른 누군가와 약속이 있어서 그쪽으로 가고 있는 중이니까 그 앞에서 일단 만나자,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고, 나는 그녀가 시키는 대로 무조건 택시를 타고 그 앞으로 갔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녀와 나는 드디어 만났다.

일주일 만에 보는 그녀의 얼굴은, 가로등 불빛에 봐도 살이 쪽 빠져 있었다. 살이 쪽 빠진 그녀는 나를 보자마자 내 옆으로 바싹 다가와서는 내 팔에 자신의 팔을 걸었다. 그 순간 내 가슴을 울린 감격의 종소리를 지금 이 자리에서 발표한다는 것은 글쎄 뭐랄까, 아직은 때가 아니다 싶기도 하고, 무엇보다 그에 적합한 표현방식을 내가 아직 모르는 까닭에 일단은 묻어두는 게 좋을 것 같다.

어쨌든 그녀는 내 팔에 자신의 팔을 건 자세로 씩씩하게 걷고 있었다. 씩씩한 걸음걸이로 씩씩하게 말하고 있기도 했다. 그동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쫑알쫑알, 뭐라고뭐라고 계속 이야기를 쏟아내고 있었다. 그랬다. 그날 그녀의 그것은 이야기를 한다기보다 쏟아낸다고 해야 적확한 표현이 될 정도로 그렇게 쉴 새 없이 지난 일주일 동안 자신의 몸과 마음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얘기하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그녀 자신도 미처 몰랐던 이야기가 불쑥 튀어나오기도 했다.

그녀는 자신의 친구에게 몇 번이나 물어봤단다. “내가 만만해 보이니? 만만해서 그 남자가 나를 이렇게 대하는 걸까?” 그러자 그 친구 왈 이러더란다. “언니 그만 해에.” 그녀의 그 말을 듣고 나니 내 가슴에 확 와 닿는 무엇이 있었다. 그녀는 아마도 나를 초반에 확실하게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렇게 전화도 안 받고 문자도 씹고, 그랬던 모양이다. 클클, 잡아서 어디에 써 먹으려고? 그런 생각이 확 들기는 했지만, 발설하지는 않았다. 만약에 발설했다면 그녀는 아마 뭐야, 이 남자가 아직도 정신이 나가 있는 거야?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게 벌써 일 년여 전의 일이다. 그런 어이없는 전쟁 일주기를 즈음해서 누군가 나에게 사랑이 뭐냐고 또 한 번 묻는다면, 나는 아마 잠깐 생각해본 뒤에 이렇게 말할 것 같다. 그것은 도무지 사람의 정신으로는 어떻게 해볼 수 없는 것이라고.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 한 편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전북 고창으로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앞으로 ‘김수복의 시골 살림 이야기’란 제목으로 자연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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