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래시장 사람들을 찾아서> 금천교시장 과일상 심상순 씨






종로구 체부동의 금천교시장은 비록 간판 없는 재래시장이지만 5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 63년에 개장한 시장은 인근 주민들로부터 꾸준히 사랑받아왔다. 100미터도 채 안 되는 골목 안에 자리한 좁고 작은 시장이지만 유동인구가 많아 오랜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시장이 그런 것처럼 간판 하나 없는 가게도 많다. 이곳에서 30년 가까이 과일을 팔아온 심상순(79. 여) 씨의 가게도 간판이 보이지 않는다. 

“간판이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상권이 죽어서 그저 혼수상태로 그럭저럭 장사하는 거지요.”

심 씨는 시장 안에서 수많은 가게가 생겼다 사라졌다를 반복했다며 그간의 사정을 얘기했다.

“근처 생선가게도 사라진지 오래고, 업종이 바뀐 가게들이 많아요. 매년 몇 군데씩 바뀌죠. 제가 여기서 오랫동안 버틴 것도 용해요.”

시장 자체는 많이 죽었다지만 심 씨네 가게처럼 오랫동안 버티고 있는 가게들이 많다. 심 씨는 그렇게 버텨온 주변 상인들과 자주 담소를 나눈다.

“‘떠나면 고생’이라며 그저 이곳을 지키고 있는 상인들은 시장을 마치 오래된 집처럼 여겨요. 다른 곳으로 옮겨 봤자 장사하기 힘들긴 마찬가지에요. 아예 그만 두거나 여기서 버티거나, 둘 중 하나에요. 젊다면 모를까, 이제 다들 묏자리 찾는 사람들인데 어디 가서 새롭게 터를 잡겠어요. 노점상 골목에 자리 비집고 들어가는 것도 상도에 어긋나고, 모아둔 돈도 없어 다른 건물 점포를 얻는 것도 어렵고….”





주택들이 밀집한 지역이어서 장사가 잘 될 법도 하지만, 심 씨는 그러나 이곳 주민들이 재래시장 다닐 계층은 아니라고 고개를 젓는다.

“돈 많은 사람들이 많이 살아요. 간혹 자취생들도 있는데, 입이 다들 고급이어서 마트나 백화점을 찾죠. 정말 급할 때 한번씩 잠깐 들러서 물건 사는 사람들이 고작입니다. 때문에 단골도 많지 않아요. 대형마트와의 경쟁이요? 여기와는 상관없어요. 다른 시장들은 그래도 아직까지 마트와 싸우기도 한다는데, 이곳 상인들은 포기한지 오랩니다.”

심 씨는 다만 세입자로서 걱정이 앞설 따름이다.

“월세를 올려달라는 얘기가 없어서 그나마 다행인데, 나중에 이 골목이 재개발이라도 되면 어쩌나 걱정이 되죠. 예전부터 재개발한다는 소문이 돌았어요. 자식들 다 결혼시키고 겨우겨우 여기까지 왔는데, 재개발 들어가면 장사를 그만두어야 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 모아 둔 돈도 별로 없거든요. 조금씩 저축해두었던 돈은 자식들 교육비, 결혼자금으로 다 나갔고요. 요즘은 과일 팔아서 생활비로 쓰고 은행에서 대출 받은 것 꾸준히 갚아나가고 있죠. 전셋집 하나 남은 게 유일한 재산입니다.”

5년 전 장사를 접어야 할 위기가 찾아오기도 했다. 실내포장마차를 차리려는 사람이 월세를 더 올려주겠다며 가게를 내달라고 했던 것이다.  

“쫓겨날 뻔했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데 마침 그 사람이 다른 터에 자리가 났다며 계약을 포기해서 살아남을 수 있었죠. 하긴 여기에 가게 차린다고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어요. 차라리 그 사람한테도 잘 된 일일 겁니다.”





시장 골목 안에 오래된 식당들이 많아 포장마차로는 경쟁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얘기. 이렇게 힘든 실정이지만, 옛 향수를 떠올리며 이곳을 찾는 이들이 최근 늘어나고 있는 건 고무적이다.

“요즘 사회분위기가 안 좋잖아요. 정치인들은 재래시장 살려준다고들 떠들어대는데, 다들 거짓말만 하고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시장이 아예 없어질까 봐 노파심 같은 게 드나봐요. 대형마트 대신 다시 시장을 찾는 어르신들이 늘어나고 있어요. 요즘 대형마트가 너무 많이 생기는 것도 말이 많던데, 자기들끼리 싸우다보면 오히려 재래시장만 살아남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인근 배화여대 학생들 덕도 많이 본다고 한다.

“매일 등하교 하며 학생들이 과일을 많이 사가요. 여학생들이 피부 관리한다며 오가며 많이 사먹죠. 학생들 덕에 월세 내요(웃음).”

30년 가까이 장사를 해오다 보니 이제는 장사가 잘 되든 안 되든 기대나 미련 같은 건 없다. 단골들 발길이 이어지는 건 마트보다 가격이 싸고 신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일 값을 깎는 일은 없다고 했다.

“싸게 팔고 깎아주면 뭐해요. 싸게 싸게 많이 주는데도 더 달라고 하면 거절하죠. 나름의 장사 방식이에요. 대신 품질은 철저하게 관리해요. 그래서 흥정을 해와도 등하지 않아요. 어차피 살 사람은 사가거든요. 궁시렁 거리며 사간 손님들도 내 물건이 좋다는 걸 알고 결국 다시 와요.”





특히 과일 시세를 잘아는 이들은 심 씨네 단골이 될 수밖에 없단다. 

“우리가게를 찾는 손님들은 대부분 30년 이상 단골들이라서 무턱대고 가격을 올려 받을 수 없어요. 물론 물가 상승률에 맞춰서 값을 올리긴 하죠. 그래도 다른 가게나 마트 등과 비교하면 저렴하고 품질이 좋거든요. 그래서 단골들은 의심 없이 언제든지 편하게 이곳을 찾아요. 주부들이 먼 거리에 있는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에 가기 위해 자가용을 이용하지 않아도 되잖아요. 싱싱한 물건 쉽게 싸게 살 수 있으니까요.”

선물세트도 있지만 대목이 아니고선 잘 팔리지 않는 현실. 아쉬운 부분 중 하나다. 

“이왕 팔릴 거면 ‘통 큰’ 세트들이 팍팍 팔려나가야 하는데, 그런 것들은 마트에서 다 구할 수 있으니 찾는 사람들이 없을 수밖에요. 출퇴근 시간 제외하면 평소 사람 구경하기도 힘든 게 이 시장의 현실이에요. 이건 뭐, 장사하려고 주문한 물건들이 제 입으로 다 들어가는 상황이니….”

심 씨는 매달 거의 비슷한 수익을 올린다. 흥정하지 않는다는 나름의 철학도 작용한 덕분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밀고 당기는’ 서비스 정신으로 손님들을 잡아둔다. 심 씨는 때마침 과일을 고르는 손님 손에 노란 금귤 몇 알을 쥐어줬다.

“농약 안 친 거라 그냥 먹어도 돼요. 마트가면 죄다 농약 치는 거잖아. 비싼 돈 주고 왜 약 친 거 사먹나요. 그리고 마트엔 오래된 것들도 많아. 재고품들 유통기한 지난 것도 마구 내놓잖아요. 마트 쪽에서 이런 얘기 들으면 큰 일 날 소리 한다고 하겠지만, 아무튼 지금은 몰라도 과거에 그랬다는 거죠. 그게 다 욕심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에요.”    

몇몇 품목은 시동생이 시골에서 직접 유기농법으로 키워 보내는 것이라고 한다.

“가끔 시골 내려가서 직접 따오는 것들도 있어요. 얼마 전엔 토마토랑 양파를 싣고 왔죠. 농약을 안친 거니까 집에 가서 물에 살짝 씻어주기만 하면 돼요. 젊은 주부들은 마냥 큰 곳이이 좋다며 대형마트로 향하지만, 좀 더 살아가다보면 좋은 물건 알아볼 수 있는 날도 오겠죠.”

공민재 기자 selfconsol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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