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공동체 탐방-59회> 부암동 마을공동체



서울시가 뉴타운과 재개발사업의 대안으로 ‘마을공동체’ 사업을 본격화하면서 도심 곳곳의 마을들이 새 단장에 분주하다. <위클리서울>은 도심 속 새로운 주거형태로 떠오르고 있는 마을공동체를 집중 취재하고 있다. 이번호에는 종로구 부암동 마을공동체를 찾았다.
부암동은 전통이 살아있는 동네로 널리 알려져 있다. 최근엔 아기자기한 카페와 음식점들도 부쩍 늘면서 전통과 현대의 공존을 만끽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주말마다 부암동 골목을 찾는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이른바 ‘명품 마을’ ‘전통과 현대가 살아 숨 쉬는 마을공동체’로 관심이 집중된다. 때론 이러한 과도한 관심이 주민들에게 부담을 주기도 한다. 부암동에 거주하는 문화예술인들과 많은 주민들은 이러다 부암동의 오랜 전통이 사라지지는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또한 세입자들은 내쫓고 관광객만 반기는 마을공동체는 자격이 없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부암동은 예로부터 한양도성 밖 경승지로 이름이 높았다. 조선시대엔 왕자들의 별장이 세워졌을 정도로 자연경관이 뛰어났다고 한다. 최근 등산객들과 관광객들의 발길도 늘었다. 동네가 명승지로 인정받으면서 주민들도 크게 환영하고 있는 분위기다. 주말이면 부암동의 좁은 골목마다 카메라를 든 방문객들이 줄지어 가는 풍경이 연출된다. 주민들은 “주말마다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들과 가족 단위 나들이객으로 하루 종일 붐빈다”고 입을 모았다.

도심 속 시골

서울의 대표적 저개발 지역이었던 이곳에 방문객이 늘어난 것은 2007년부터다. 부암동을 지나는 서울성곽길이 개방되고 TV 예능프로그램 등에서 ‘도심 속 시골’이라는 수식어로 부암동을 소개한 것이 계기가 됐다. 미술관 등 문화시설과 깔끔한 음식점이 자리하고 있다는 입소문도 한 요인이 됐다. 카페 거리로 유명한 삼청동을 찾았던 사람들의 발걸음을 이곳으로 돌리게 했다. 부동산 가격도 두 배 가까이 뛰었다는 게 주민들 얘기다.

도심 텃밭도 한몫 단단히 하고 있다. 봄기운을 만끽하며 텃밭을 가꾸려는 주민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 주민 김모(50. 여) 씨는 봄을 맞아 텃밭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김 씨는 “산과 인접해 있는 동네라 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은 감이 있지만, 텃밭을 일구는 데엔 큰 문제가 없다”며 “구가 운영하는 텃밭을 분양 받아 상추나 쑥갓, 고추 등을 직접 길러 먹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김 씨는 “지난해에 친구의 권유로 텃밭을 가꿔봤는데 좋았다”며 “가족 모두가 힘을 합해 직접 유기농 먹거리를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가족간 대화도 많아지고, 식탁도 건강해져서 모두가 만족했다”고 말했다.





2년 전부터 텃밭을 가꾼 이모(56. 남) 씨는 “자기가 기른 채소를 먹으니 건강도 좋아지는 것 같고, 텃밭에 오는 동네 주민들과도 친해진다”며 “올해에도 텃밭을 일궈 주민들과 나눠 먹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종로구는 도시농업 활성화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도심의 자투리 땅 등을 활용해 텃밭을 조성·분양하고, 텃밭용 상자와 소규모 옥상텃밭 조성도 지원하며, 공원형 시범농원을 만들기도 한다. 건강한 먹거리 욕구가 높아지면서 주민들이 도시 농업에 큰 관심을 갖는데다, 자치구들로서는 생태환경 개선이나 마을공동체 회복 등의 효과도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텃밭용 상자도 2000세트를 지원 중이며, 시의 지원을 받아 창동 시유지에는 공원형 농원을 조성할 계획이다. 종로구는 “도시농업 이용자들을 위해 ‘도시농업 학교’ 운영, 텃밭에서의 야외음악회를 열고 텃밭 사랑방도 운영할 것”이라고 밝혔다.

주민들은 빌라 베란다, 주택 옥상 등에서 손쉽게 텃밭을 가꾸도록 상자텃밭을 보급 받는다. 종로구는 상자텃밭 보급과 함께 채소 모종을 나눠주거나, 작물 재배법 교육 등도 하고 있다. 2012년 부암동 능금마을 내에 친환경 도시농장 시범단지를 조성하기도 했다.





전통과 본연의 모습 지켜야

이처럼 ‘뜨고 있지만’ 정색을 하는 주민들도 많다. 자연이 훼손되는 것은 물론이고 각종 개발 압력도 커질 것이라는 두려움에서다. 주민들은 “제2의 삼청동을 꿈꾸지 않는다. 동네의 전통과 본연의 모습을 지키고 싶다”고 입을 모은다.

이곳에서 20년 넘게 살았다는 심모(49. 남) 씨는 “이곳 주민들은 다른 곳과 달리 삶의 질을 중시하고 장기 거주 목적으로 온 사람들이 많다”며 “임대료가 올라 좋다는 생각보다 본연의 동네 전통을 지키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하는 주민들이 많다”고 말했다.

세 들어 사는 주민들의 불만도 높다. 세입자 입장에선 동네가 유명세를 타는 사실이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니다. 주민 유모(43. 남) 씨는 “부동산 가격이 많이 뛰어서 좋은 건 강남 땅 부자들 아니겠느냐”며 “이곳에 사는 많은 주민들은 강남 부자들이 사놓은 집에 세 들어 사는 처지”라고 말했다. 

그는 또 “대부분 주민들은 사는 집 코앞에 카페가 생기고 밤낮 없이 불을 밝히고 있는 동네가 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며 “인근 삼청동만 하더라도 유동인구가 늘면서 임대료가 폭등하고 상권이 급변해 고유의 매력이 퇴색되었다. 그 전철을 밟지 말자는 공감대가 주민들 사이에서 형성되고 있다”고 했다.





김모 씨는 “거주민은 내쫓고, 관광객만 반기는 그런 행정보다는 진정한 마을공동체를 이룰 수 있는 주민의 힘이 중요하다”며 “특히 부암동은 전통이 살아있는 동네여서 전통을 살리는 쪽으로 공동체 사업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몇해전 종로구에선 현진건 터, 오진암 등이 있는 부암동 주민센터 인근에 주차장을 만들려고 했다. 건립 반대운동으로 오히려 주민들이 서로 만나게 되고, 마을의 전통을 공부하고 사랑하게 됐다”고 밝혔다.

2009년 종로구는 부암동의 주차시설이 턱없이 부족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845㎡ 규모 부지를 매입, 주차장을 마련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당시 주민자치회는 “편의시설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부암동의 모습은 없어지고 여느 동네와 다름없는 평범한 동네가 될 것”이라며 “부암동에 필요한 것은 편의시설이 아니라 자연적·문화적 환경을 보전할 수 있는 발전 방안”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2010년 주차장 설립안은 최종 무산됐고 현재 이 부지에는 1970년대 요정정치의 산실인 오진암이 복원됐다.

부암동을 비롯 주변의 평창동, 홍제동 등엔 많은 문화예술인들이 모여 살고 있다. 이런 점도 부암동의 문화적 수준을 높이고 있다. 문학평론가 이어령, 지휘자 금난새를 비롯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전문 예술인만 100여명에 달한다. 이 지역 문화예술인들도 부암동 일대를 문화마을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다.





지난해엔 비영리 사단법인 ‘문화마을공동체 평창문화포럼’을 발족하기도 했다. 문화예술인들은 부암동, 평창동 일대를 문화마을로 만들기로 하고 20여명이 사단법인 이사, 고문 등을 맡았다. 평창문화포럼 이사장 이종상 화백은 “일본 나오시마처럼 세계인들이 방문하고 싶은 문화마을을 지역주민과 함께 만들고자 한다”고 밝혔다.

임옥상 화백은 지난해 말 ‘차와 사람이 함께 행복할 수 있는 골목길 만들기’를 주제로 문화강연을 하고, 이 같은 취지의 평창문화로 설계안을 전시하기도 했다. 사람들이 이 일대의 아름다운 경치를 구경하면서 골목 구석구석을 걸어 다닐 수 있도록 해 마을공동체를 알린다는 계획이다. 박원순 서울시장, 김영종 종로구청장도 지원을 약속했다.

이제 주민들은 매년 작은 음악회 등 문화행사와 백사실계곡의 도롱뇽 보존 등 마을지키기 공동체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특히 종로구는 매년 10월이면 윤동주 시인을 기리며 윤동주 문학관에서 ‘부암동의 가을이야기’를 연다. 지난 2009년도에 처음 시작했고, 지난해까지 주민들과 지역 예술가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관심을 모았다.





이 행사는 마을의 고민과 발전방향을 이야기하는 주민모임인 ‘자하골친구들’과 ‘부암동 사랑모임’이 공동 주최, 종로구와 서울시 마을공동체 종합지원센터가 후원한다. 행사 동안 ▲시낭송 ▲아코디언, 가야금 등 연주 ▲부암동의 골목길 해설 ▲마술 ▲사진 전시회도 함께 진행된다.

전시회에서는 자연, 사람들, 집, 골목길에 대한 사진들이 전시되고 ‘자하골 친구들’과 ‘부암동 사랑모임’의 활동을 담은 발자취들이 전시된다.

주민들은 “윤동주 시인을 기리는 행사는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이웃과 화합과 친목을 다지며 마을에 대한 애정과 이야기를 함께 나누는 의미 있는 시간”이라며 “이를 계기로 마을에 대한 의견을 자유롭게 나누고 지역발전을 위해 함께 노력하는 모범적인 마을공동체로 거듭날 것으로 기대된다”고 입을 모았다.

정다은 기자 panda15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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