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기획> 고시원족 여러분 안녕들 하십니까?



한때 ‘고시’ 공부방 역할을 했던 고시원. 이런 고시원이 공부방이 아닌 숙박시설로 변한지 오래다. 대학생들은 비싼 등록금과 교재비 등의 경제적 부담에 원룸 등 자취방 거주비용이 급등하면서 거처 마련에 어려움을 겪는다. 이제 신학기가 되면 월세나 전세를 구하는 학생 대신 고시원을 찾는 학생들이 늘고 있다. 직장인들과 취업준비생들 역시 당장 ‘먹고 잘’ 집을 구하느라 동분서주하고 있다. 이들 역시 심각한 전월세난 속에서 거처를 마련하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계속되는 취업난과 경기불황, 사람들이 몰리는 고시원의 표정도 각양각색이다. <위클리서울>은 경제 한파로 인해 우리 사회의 또 다른 사각지대로 몰리고 있는 고시원의 분위기를 담아봤다.
   







3월, 어김없이 학생들이 몰려든다. 지방에서 올라온 신입생들이 미처 방을 구하지 못해 하는 수없이 찾는 곳, 바로 고시원이다. 일반 직장인이나 백수들은 신입생들과의 경쟁을 피하기 위해 3월 이전이나 가을 시즌 미리 고시원에 들어간다.

“입학금도 모자라 부모님이 여기저기서 돈을 마련해 학교 다니는 학생들이 많잖아요. 요즘 같은 시기에 집에 돈이 좀 있지 않고서는 지방에서 올라온 애들은 월세나 전세는 꿈도 못 꾸죠. 제 사촌 동생도 서울에 있는 학교에 붙었는데 집안 사정으로 자취 생활 포기하고 그냥 지방에 있는 학교를 다닙니다.”

공짜로 제공되는 라면과 김치도 물려

대전이 고향인 김정원(가명. 36. 남) 씨에게 고시원은 그저 잠만 자는 공간이 아니다. 김 씨는 고시원에서 자신의 꿈을 펼치고 있다. 

“제게 고시원이란 고시 준비하는 곳이 아니라 최후의 숙박시설이라고 보면 돼요. 그리고 언제 이뤄질지 모를 제 꿈을 펼치는 공간이기도 하죠.”

김 씨는 영화감독이 꿈이다. 서울의 모 대학 영화학과를 졸업한 그는 졸업 이후 줄곧 서울에 머물며 영화판에서 활동했다. 몇해전부터 그가 다니던 영화사에선 장편 영화 감독 입봉을 약속했지만 번번이 좌절됐다. 영화사에서 받는 월급은 100만원도 채 되지 않는다.

30대 초반까지는 집에서 생활비를 지원했지만 30대 중반에 들어선 이후 스스로 생활비를 벌어 서울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1월엔 신촌의 한 고시원에 거취를 마련했다. 그 전까지 숙식이 제공되는 50만원 짜리 하숙집과 노량진 고시원 등을 거쳤다. 더 이상 경제적 여건이 허락되지 않아 회사와 가까운 25만원 짜리 고시원을 찾게 되었다. 김 씨는 “이만 한 방이라도 찾은 게 다행”이라고 했다.





“회사 주변의 원룸을 원했는데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가 최소 40만원 이상씩 해서 엄두를 못냈어요. 지방과 너무 차이가 나요. 그래도 회사에서 걸어 다닐 수 있는 거리라 만족합니다. 차비도 아껴야 하는 상황이거든요. 사실 모아둔 돈도 없어요. 부모님도 직장에서 퇴직하셔서 자식 뒷바라지할 여유가 없죠.”

부모님이 용돈을 주지 않느냐는 질문에 김 씨는 거꾸로 “부모님이 용돈 달라고 할까봐 겁난다”고 했다. 김 씨 부친의 경우는 얼마 되지도 않는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 동분서주 애를 쓰고 있다. 김 씨는 어려운 생활을 이어가면서도 시나리오를 계속 쓰고 있다. 용돈이 부족할 때면 누나에게 손을 벌린다.  

“고시원비 내고 이것저것 잡비까지 합치면 한달에 70~80만원은 필요하거든요. 월급 받아서 저축할 여유도 없죠. 부모님한테 종종 손을 벌렸었는데 지난해부턴 결혼한 누나한테 손 벌리고 있어요. 나이 먹고 뭐 하는 짓인지 원….”

끼니를 거르는 경우도 많다. 고시원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라면과 김치는 질린 지 오래다. 김 씨는 “어디서든 라면은 이제 그냥 줘도 안먹는다”고 했다.

“고시원에 들어오고 처음 일주일 정도는 공짜라고 해서 신나게 먹었어요. 그 이후론 물려서 못 먹어요. 어쩔 수 없이 허기나 때우려고 억지로 먹거나 그도 아니면 밥에다 김치만 먹습니다.”

고시원에 머물고 있는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라면과 김치는 입실 초기 원생들의 전유물일 따름이다.

“처음 들어온 사람들 먹으라고 진열해 둔거나 다름없어요. 돈 없는 학생들부터 백수들까지, 처음 들어오면 며칠간 부엌때기가 되죠(웃음). 그러다 질리면 다들 밖에서 사먹어요. 하다못해 삼각김밥이라도 사들고 와서 김치랑 먹죠.”  





내 집 마련? 포기한 지 오래

제대로 된 직장이 아닌 영화사 직원과 같은 임시직에 머무는 이상 고시원 생활을 이어갈 수밖에 없다는 김 씨. 그도 몇 해 전엔 영화감독의 길을 포기하고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할 생각도 했다. 노량진에서 고시원 생활을 할 시기다. 

“당시 공무원 준비한다고 학원 다니면서 고급정보도 많이 접했어요. 정보도 한계가 있죠. 결국 자기가 열심히 하느냐 안하느냐에 따라 시험 결과는 판가름 나니까. 그런데 노량진은 술집도 많고 동네 분위기도 마음에 안들더라고요. 공무원 시험 포기한 뒤에도 노량진이 물가도 싸고 해서 몇 달간 있어봤죠. 근데 회사와 멀고 시나리오 쓸 분위기도 아니어서 이사를 결심했습니다.”

공무원 시험을 포기하게 된 까닭은 감독 입봉에 대한 실낱같은 희망 때문이었다.





“다들 알다시피 취업하기가 힘들죠. 공무원 시험은 해가 갈수록 경쟁률이 치열해지고 있고…. 그런 가운데 감독 입봉이 성사되는가 싶다가 좌절되곤 해서…. 어디 한 군데 마음을 두기가 힘들었죠. 조금만 더 버티면 감독이 될 수 있을 것 같기도 해서 결국 이렇게 버티고 있습니다. 썩은 동아줄 잡고 버티고 있는 건 아닌가 하고 하루에도 수 십번씩 생각해요. 그냥 포기하고 고향에 내려가서 새로운 대안을 세워야겠다 싶기도 하고…. 그래도 영화사에선 조금만 참으면 정식으로 데뷔할 수 있다고 하니까….”

시험과는 무관한, 일반 주택에서 월세를 못내 결과적으로 고시원으로 생활을 하게 된 김 씨. 일찌감치 ‘내 집 장만’은 포기한 지 오래다. 감독이 된다한들 자신이 만든 영화가 히트 친다는 보장도 없다.

“1000만 관객이라도 동원한다면 모를까…. 사실 배우나 제작사가 돈을 많이 가져가지, 감독에게 떨어지는 돈은 많지 않아요. 거기에다 영화감독들도 어찌 보면 평생 비정규직 신세죠. 큰 거 몇 개 터트리면 모를까, 나머지 감독들은 다들 어렵게 살아가요. 이름 없이 사라지거나…. 그러니 집 장만하기가 쉽지 않죠.”





그저 좀 더 좋은 고시원으로…

‘집 장만’은 언강생심. 그저 지금보다 좋은 고시원으로 옮기는 게 작은 바람이다. 전세나 월세 방을 얻는 이들보다 고시원을 찾는 이들이 많은 상황. 이 때문에 고시원도 점점 진화하고 있다. 

“몇해전까진 그렇게 주목 받지 못했는데, 요즘은 이른바 명품 고시원들도 많아요. 프랜차이즈화 된 것들이죠. 주변에 월 50만원 짜리 고시원도 있어요. 고시원 치고는 비싼 편이어서 신림동이나 노량진에 비하면 방이 많이 남죠. 당장 보증금 낼 돈이 없는 직장인들이나 학생들이 어쩔 수 없이 그런 고시원으로 들어갑니다. 저렴한 고시원은 이미 만원이거든요. 저도 돈 좀 모으면 50만원 짜리 고시원에 살아보고 싶네요(웃음).”





그러면서도 김 씨는 언젠가 전월세로 이사할 날이 오지 않겠느냐고 했다. 

“저 역시 당장은 보증금 낼 돈이 없어서 가격이 싼 대학교 근처 고시원으로 왔죠. 솔직히 누가 이런 곳에 살고 싶겠어요? 어려운 경제 현실과 학생들의 달라진 자취 문화를 반영하는 거죠. 집 형태를 갖춘 곳에서 자취하기는 현실적으로 힘들거든요. 일단 계산해봅시다. 1년 동안 아무리 저축해도 200만원 모으기 힘들어요. 그러니 집 같은 집에서 사는 건 불가능하다고 봐야죠. 담배 사고 밥 먹고 가끔가다 술 한 잔 먹으면 남는 게 없어요. 감독으로 입봉하는 길 밖에 없죠.”

취업준비를 하는 고시생들도 있는 게 사실이지만, ‘고시’란 용어 자체가 무색할 정도로 숙박 시설화 돼가고 있는 고시원들의 풍경에서 경기침체의 한 단면을 읽을 수 있었다.

공민재 기자 selfconsol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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