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기획: 사라져가는 것을 찾아서 1편> 아스라한 그 이름 ‘대장간’-1회: 신당동 ‘경남철공소’




대장간은 쇠를 달구어 여러 가지 연장을 만드는 곳이다. 근대화 이전엔 시골 장터나 마을 단위로 반드시 대장간이 있어 무딘 농기구나 기타 각종 연장을 불에 달구어 벼리기도 하고 새로 만들기도 했다. 자급자족하는 농어촌에서는 대장간은 하나의 필수적인 존재였다.
대장장이는 오래 숙련된 담금질로 쇠의 강도나 성질을 조절한다. 전통기법의 숙련된 대장장이가 호미 하나를 만드는 데 보통 한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공장에서 기계로 제작하면 한꺼번에 수십 개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에 대장장이는 점차 사라질 수밖에 없는 상황. 지금은 도시는 물론 시골에서조차 대장간과 대장장이를 찾기 힘들어졌다.
그러나 첨단 정보화 사회에서도 쇠붙이를 다루는 대장간의 정신과 얼은 사라질 수 없다는 게 대장장이들의 얘기다. 이들은 제철 등 철강산업의 근간이 됨은 물론이고 다양한 연장을 만들고 또 뒷받침해주는 고유의 영역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특히 소비자의 욕구가 다양화되고 개성 있는 수공업 제품의 수요가 증대되면서 전통을 오롯이 간직한 대장간이 다시 부상할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위클리서울>은 ‘시리즈기획-사라져가는 것들을 찾아서’ 그 첫 번째로 대장간의 얼과 문화를 재조명해본다. 현재 서울에는 신당동, 문래동, 용두동, 불광동, 청량리 등에 대장간들이 소규모로 흩어져 있다. 서울 중구 신당동 ‘경남철공소’로 그 첫 걸음을 떼어본다.
 




한때는 ‘대장간 천국’

중구 신당동 한양공고 일대에는 100여 년 전부터 대장간이 즐비했다. 동국대 근처에서 시작해 동대문역사박물관, 한양공고 맞은편까지 대장간들이 진을 친 적도 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이젠 단 4개 업체만 남아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중 한 곳인 경남철공소. 쥔장 황용복(59) 씨는 한양공고 인근에서만 30년 넘게 철공소를 운영해왔다. 대장간 안은 온갖 연장들로 가득 차있다. 연장들이 차지하는 공간이 많아 한 사람이 겨우 움직일 정도로 좁다.

“옛날엔 이 일대가 전부 대장간이었는데 이제는 대부분 사라졌죠. 20년 전만 해도 20개 정도 있었는데 다 없어지고 지금은 이렇게 몇 개만 간신히 남았네요. 이 동네 말고도 문래동, 용두동, 불광동, 청량리 등에도 몇 개가 있어요.”

이젠 ‘대장장이’라고 불러주는 사람도 없다. 그저 대표나 사장이라는 호칭이 뒤따른다. 예전엔 대장장이끼리의 모임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조차도 사라졌다.

“국가에서는 늘 이 대장간 사업을 장려하겠다고 해요. 그런데 말 뿐이죠. 그러니 도시나 시골이나 대장간은 하나 둘씩 사라져가고만 있습니다.”

그가 가장 아쉬워하는 부분은, 배우려는 사람이 없다는 것.







“울퉁불퉁한 쇳덩이를 불에 달궈 종일 두드리면 날렵한 연장이 되죠. 작업 환경이 시꺼멓다는 것 말고는 만족스러워요. 아들놈이 배울 마음만 있었으면 대를 이어 시켰을 겁니다. 왜 배우려고 하지 않는지 모르겠어요. 배워두면 정년 없이 일할 수 있는데 말이죠. 하긴 이걸 배운다고 해서 경제적으로 풍족해지는 건 아니니…. 요즘 누가 대장간 와서 칼 주문하나요. 시장가서 사면 그만이지.”

대장간엔 문이 따로 없다. 작업하는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 보인다. 세평 남짓 좁은 작업 공간에 있는 화덕과 모루에서 나온 쇳덩어리가 각종 연장들로 탈바꿈되는 게 신기롭기만 하다. 30년 넘게 일해 온 황 씨를 주변에선 장인이라고 하지만, 정작 본인은 장인이란 말은 아무에게나 함부로 붙여선 안 된다며 손사래 친다.   

“요즘 대장간에선 기계화된 화덕과 단조 작업용 프레스를 많이 사용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주문 날짜를 맞출 수 없기 때문이죠. 옛날 방식을 고수하는 것도 중요한데, 아무래도 시대가 변하다 보니 대장간도 어느 정도 기계화가 되었죠. 순수하게 힘과 기술만으로 쇠를 녹이고, 형태를 잡아 연장을 만드는 곳은 전국에 몇 곳 없을 겁니다. 그렇게 작업하는 분들이 진짜 장인이겠죠.”

일하면서 가장 어려운 시기는 아무래도 여름일 수밖에 없다. 뜨거운 화덕 앞에서 경쾌한 망치소리도 힘을 잃는다.

“더운 여름날이면 오전에만 일하고 오후엔 쉴 때가 많아요. 화덕이 뜨거워서 일하기가 곤란하거든요. 오히려 겨울이 일하기 편한데, 겨울엔 또 주문량이 많지 않아요. 오히려 일하기 힘든 여름에 주문량이 많죠.”

뜨거운 여름, 대장장이들의 노동은 신성해보이기까지 하다. 황 씨는 ‘신성한 노동’을 보고 싶다면 여름철 대장간을 찾아보라고 했다.

“현대인의 눈엔 귀하고 신성하게 느껴질 겁니다. 불과 쇠 그리고 사람의 힘만으로 무에서 유를 만드니까요.”




환경오염도 줄일 수 있어

황 씨가 만드는 물건은 철로 만들 수 있는 모든 것이다. 칼, 망치, 도끼, 작두 등 연장 그리고 각종 농기구와 장식품 등을 주로 만들었다. 최근엔 건설현장에서 쓰이는 연장들을 주로 만들고 있다.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대한민국의 깐깐한 노동자들이 질 떨어지는 중국산 제품을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장간에서 만든 물건을 한 번이라도 써본 일꾼들이라면 대장간을 계속 찾아줍니다. 기계로 찍어내는 물건이나 중국산보다 튼튼하고 품질이 좋다는 점을 알거든요. 지방 고객들은 제품을 보지도 않고 택배로 주문할 정도니까요. 이제는 건설현장이 우리를 먹여 살리고 있는 셈입니다.”

하지만 한 때는 농기구 주문이 성황일 때도 있었다. 황 씨가 젊은 시절엔 농기구가 대장간을 먹여 살렸을 정도다.

“한때 낫, 호미 등 농기구 일감이 많아 직원까지 고용해 월 1000만원 이상의 수입을 올린 적도 있었죠. 근데 이젠 농기구 찾는 사람도 줄었고, 값싼 중국산이 대량 들어와 대장간 분위기가 예전 같지 않아요.”

요즘 시대에 누가 대장간에서 물건을 주문하나 싶겠지만, 의외로 찾는 손님이 많다고 한다. 각종 연장을 만들어달라고 개인적으로 주문하는 사람들도 종종 있다.







“동네 아줌마들이 화단 손질한다며 호미를 사가고 중년 남성들이 장작을 패기 위해 튼실한 도끼를 찾죠.”

마침 연장을 만들어달라며 한 손님이 찾아왔다. 탕!탕!탕! 쇠 두드리는 망치소리가 경쾌하게 울려 퍼진다. 황 씨는 화덕에 시뻘겋게 달궈진 쇳덩어리를 모루 위에 올려놓고 매질을 하기 시작했다. 손님 김모(58. 남) 씨는 연장은 손으로 만들어야 제 맛이라고 했다.

“요즘 같은 시대 대장간에서 살 물건이 있을까 하지만 의외로 많습니다. 그리고 손으로 해야 사람 손에 꼭 맞게 만들 수 있어요. 수천번 매질로 단련된 연장은 기계로 찍어낸 공구보다 수명도 훨씬 길죠. 하지만 물건을 자주 사고 쉽게 버리는 시대이니 대장간도 이제 한 물 간 거 아니겠어요.”

황 씨는 대장간에서 개인적으로 주문 가능한 품목들을 몇 가지 열거했다. 그러면서 대장간이 ‘친환경’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마당 안 맨홀 뚜껑, 정원가꾸기용 호미와 꽃삽 등이 있죠. 그리고 요즘 유행하는 캠핑용 손도끼와 나이프, 인테리어용 작두까지 주문 내용이 다양합니다. 생각보다 많은 물건을 주문할 수 있어요. 사실 마트에서 파는 중국산 공산품은 가격은 싸지만, 몇 번 사용하고 나면 금방 고장이 나거든요. 그래서 이렇게 수제품을 사러 오는 손님들이 있어요. 싼 물건을 사서 쉽게 버리면 결국 환경오염으로 이어지는 것 아니겠어요. 환경을 위해서라도 대장간은 좋은 대안이 되지 않을까요(웃음).”

김범석 기자 kimb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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