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2회 두발, 손톱, 구두, 귀걸이 검사…졸업하지 못하는 고등학생 신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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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04.08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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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보다 못한 KTX 여승무원들 근무 실태



지난 2006년 KTX 여승무원 투쟁은 사회적 이슈였다. 여승무원들이 철도산업 외주화에 따른 대량 정리해고를 저지하기 위해 투쟁에 돌입했을 당시다. 철탑 농성 등 3년간의 극한의 저항으로 여승무원들은 투쟁에서 승리했다. 이후 현재까지 KTX 여승무원들은 코레일관광개발(주)라는 철도공사 자회사의 직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철도공사의 기간제 비정규직이었던 승무원들은 ‘코레일관광개발’로 이적하며 그토록 바랐던 정규직이 된 것이다. 하지만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사정은 다르다. KTX 여승무원들은 8년 전의 비정규직 신분 때보다 더욱 끔찍한 노동조건에 눈물을 흘리고 있다. 장시간 노동과 열악한 임금은 물론이고, 차별과 탄압, 과도한 모니터링 등 정신적인 고통에도 시달리는 것으로 드러났다. 비정규직만도 못한 노동조건에 놓여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투쟁에 승리해 정규직이 되었지만, 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건 ‘철도공사의 복수였다’는 말까지 나오는 이유다. 







근무 중간 고작 3~5시간 수면

KTX 승무원 파업 승리 이후 벌써 8년이 지났다. 그런데 노동 조건은 오히려 2006년 전보다 더 열악해졌다는 지적이다. 승무원들을 가장 극단으로 내모는 것은 단연 ‘장시간 노동’이다. 철도공사는 직접 고용 승무원의 노동시간 기준과는 다른, 장시간 변형 근로 방식을 KTX승무원들에게 적용하고 있다. 김영준 철도노조 정책국장은 “주 40시간 근무하는 일반 회사원의 출근 후 퇴근까지의 구속시간이 월 평균 186시간인데 반해 KTX여승무원의 경우 출근부터 퇴근까지 시간 합계가 월 232시간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232시간은 기본근무만 적용한 시간이다. 회사는 ‘휴일 선충당’이라는 이름으로 본인 동의 없이 매월 1~2일의 휴일근무를 강제한다. 이렇게 되면 승무원들은 월 250시간 이상, 주당 최대 60시간 이상을 회사에서 보내게 되는 셈이다. 자소속에서 숙박을 하면서 2차례 왕복 근무를 해야 하는 일명 ‘투투’나 ‘쓰리원’ 등의 변형 근로 형태도 월 3~5회 정도 이어진다.

쓰리원은 서울에서 부산까지 편도로 3회 승무를 한 후 밤에 부산에 도착, 잠시 눈을 붙인 뒤 새벽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와 근무가 끝나는 형태다. 투투는 서울-부산 왕복 승무가 2일 연속해 이뤄지는 형태다. 첫날 출근 후 다음날 퇴근까지 약 26시간가량 걸린다. 근무 사이에 3~5시간 정도 잠을 잘 뿐이다. 비상대기조도 없어 수시로 근무시간 변경을 문자로 고지한다.

승무원 이정민 씨의 경우 임시열차 충당을 거부했다는 등의 이유로 해고를 당하기도 했다. 이 씨는 지난해 4월 남편이 출장을 가는 바람에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 주기 위해 이틀간 휴가를 냈다. 하지만 하루만 받아들여졌고, 나머지 하루는 오전 10시 30분 출근하라는 것이었다.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기에 충분한 시간이라 상관없다고 생각했지만 갑자기 파트장으로부터 ‘임시열차 발생으로 스케줄이 오전 5시 30분으로 변경됐다’는 문자가 날아왔다. 회사 측에 사정을 해봤으나 돌아오는 것은 ‘개인 사정은 들어줄 수 없다’는 말 뿐이었다.





이 씨는 “동의 없이 출근시간을 바꾸는 것이 취업규칙과 우리 회사 사규에 어긋나는 것을 알고 있었던 나는 ‘동의할 수 없다’고 했고, 원래 출근시간인 10시 30분에 출근했다”고 했다. 이후 회사는 편법적인 대기근무지정을 요구하는 문자를 발송했고, 이 씨는 이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밴드(인터넷 공유 모임)를 만들었다.

이 씨는 “이후 임시열차 충당근무를 거부하고, 카카오톡과 밴드 등에 글을 올려 임시 충당 거부 등을 선동했다는 이유로 징계위원회 회부돼 작년 5월에 해고됐다”며 “이후 재심 청구를 통해 직급이 낮아지는 강등 징계를 받았다”고 했다.

과도한 모니터링과 감정노동 강요 역시 승무원들의 정신적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다. 이혜민 씨는 “감정노동자이기에 스마일 증후군이 생길 정도로 의무적으로 웃는 우리에게 ‘모니터링’이라는 무시무시한 제도가 있다”며 “이 모니터링은 1년 내내 매일매일 시행한다”고 얘기했다.

매일 시행을 한다지만 모니터링의 표적이 되는 직원은 따로 있다. 이 씨는 “한 달에 2번 씩 모니터링 대상이 되는 승무원이 있는가 하면 2달이 되고 3달이 되도록 한 번도 모니터링 대상이 되지 않는 승무원도 더러 있다”고 밝혔다.

징계를 받은 이 씨의 경우 표적 모니터링에 시달리고 있다고 했다. 이 씨는 “징계를 받고 근무하는 중에는 표적 모니터링으로 의심되는 모니터링을 당해 경고장도 발부됐다”며 “보통 모니터링은 오전 9시에서 오후 6시 대에 이뤄지지만, 저는 밤 11시에도 모니터링을 당했다. 명절 기간에도 저에게 모니터링이 이뤄졌는데 그 결과 저평가된 이유는 대부분 ‘웃지 않음’이었다”고 설명했다. 만약 모니터링 점수가 3번 연속 90점 미만일 경우, 서비스 삼진 아웃제로 회사를 그만둬야 한다.





속옷 보이는 ‘무릎 서비스’ 강요

여성 노동자가 대부분이어서 인권 침해, 성희롱 등의 문제까지도 안고 있는 상황이다. 송미영 씨는 “2006년 파업 이후 승무원으로서의 삶은 마치 고등학교에 재입학한 것 같다. 그러나 이곳은 그만두지 않는 이상 졸업할 수 없는 곳”이라고 했다. 송 씨는 “매주 2회 두발 검사, 손톱 검사, 구두 검사, 귀걸이 검사, 메이크업 검사 등이 있고,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도 있고, 평가에 들어가는 봉사활동도 있다”며 “담임선생님 역할을 하는 팀장에게도 잘 보여야 승진할 수 있다. 하지만 교장선생님 역할을 하는 지사장에게 찍히게 되면 이 또한 도루묵”이라고 주장했다.

마음대로 머리를 자를 수도 없다. ‘탈모’라는 의사 진단서를 제출해 팀장 허락을 받아야만 단발로 머리를 자를 수 있다. 철도와 항공사 등을 통틀어 바지 착용을 금지하는 것도 KTX여승무원들이 유일하다. 게다가 회사는 ‘고객 응대시 눈높이 맞춤서비스’를 시행한다는 명목으로 속옷이 보이는 자세로 ‘무릎서비스’를 강요한다. 모니터링 결과에 반영되는 일이라 거부할 수도 없다.

성희롱에 직접적으로 노출된 사례도 있다. 이유선 씨는 열차 카페 칸에서 일을 한다. 카페에는 스넥바, PC, 노래방, 안마의자, 게임기 등이 비치돼 있는데 온갖 취객들의 행패와 성추행에 그대로 노출될 수밖에 없다는 이 씨의 얘기다. 노래방을 이용하는 고객들에게 ‘도우미는 없는 거냐’는 말을 들을 때 이 씨는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 씨는 특히 “막차는 공포”라고 했다. 취한 승객들은 간혹 카페 칸 안에서 노상방뇨까지 한다. 일부는 시비를 걸고 주먹질을 하기도 한다. 이 씨는 “정말 눈물이 날 정도다. 어떨 때는 달리는 기차에서 뛰어내리고 싶을 만큼 멍해진다”고 했다.

코레일관광은 ‘경영 안정화를 위한 제비용 절감’을 이유로 1년에 유니폼을 1~2벌 지급한다. 매일 입는 유니폼이다. 너무 자주 세탁해 해지더라도 어찌 할 도리가 없다. 선반 정리를 할 때마다 유니폼 터진 사이를 누가 볼까봐 온갖 민망함과 수치심을 감당해야 한다. 수선 비용은 개인 부담이다. 그런데 회사는 유니폼 지급을 줄여놓고 재고 유니폼을 판매하고 있다. 4만5000원, 현금 거래다. 직원들에게 유니폼을 파는 것도 문제지만, 해진 유니폼을 입으면 모니터링에 걸려 인사평가 감점요인이 된다.

철도노조 코레일관광개발지부 김영준 국장은 “철도공사는 2006년 기간제 비정규직이던 KTX 승무원들을 자회사 정규직으로 채용하면 고용이나 노동조건 등 문제가 해결된다고 주장했다”며 “하지만 8년이 지난 지금 KTX 승무원의 노동조건은 오히려 2006년 이전 기간제 비정규직이었던 때보다도 열악해졌다”고 설명했다.





KTX 개통 10주년…실태 고발

코레일관광개발지부 소속 KTX 승무원들은 지난 1일 기자회견을 열고 회사의 이같은 노무관리 실태를 고발했다. KTX 개통 1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이들은 “KTX는 지난 10년 동안 대한민국의 대표적 교통수단으로 자리매김했지만, 승무원들은 그동안 주 55시간을 초과하는 장시간 근무와 강압적 노무관리에 시달려왔다”며 “회사는 ‘항공사 승무원에 버금가는 급여와 복지를 제공한다’고 했지만 전부 거짓말이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코레일관광개발 측은 “근로기준법에 따라 하루 12시간, 주 52시간 한도 내에서 탄력적으로 (근로시간을) 운영하고 있다”며 “1일 25시간, 주 55시간은 발생할 수 없고 휴게시간도 고려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코레일관광개발지부는 지난해 12월 철도노조에 가입했다. 철도노조는 이들이 회사와 체결한 단체협상 등을 꼼꼼히 따져 대책을 강구하겠다는 입장이다. 김영준 국장은 “코레일관광 노동자들의 임금도 8년째 사실상 동결, 즉 감축 상태”라며 “근무 강도는 세지는데 임금은 오르지 않는다. 모회사인 코레일은 사실상 책임을 방기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한편 이들 승무원 중 상당수는 향후 수서발고속철도주식회사(수서발KTX)에서 근무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수서발 KTX 운영준비를 위한 조직설계’ 보고서 등에 따르면 수서발KTX는 승무 분야를 외주화할 계획이다. 철도 승무 전문 회사는 현재 코레일관광개발이 유일하다. 앞으로 승무원들이 감당해야 할 노동 강도는 더욱 강해질 것이고, 노동 환경은 더욱 열악해질 것이라는 지적이다.

365일 모니터링을 해서 말투, 이동 속도, 미소, 눈빛까지도 다 체크해 감시하고 순위를 매겨 해고와 다름없는 전출까지 하는 현실. 과연 승객들을 향한 진정한 미소가 가능한 것인지 KTX 승무원들은 철도공사와 코레일관광개발에 묻고 있다.  

최규재 기자 visconti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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