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영의 이런 얘기 저런 삶> 술자리



여기저기에 꽃망울이 터지고 있다. 간밤 내린 비로 주춤할까 싶었더니, 등굣길엔 개나리가 노랗게 흐드러졌다. 벚나무에도 꽃망울이 동글동글 맺혔다. 조만간 그 수줍은 자태를 볼 수 있을 것 같다. 촉촉한 공기가 적당히 상쾌해 요즘의 등굣길은 아무리 꺼려지는 1교시라 해도 기분이 좋다.

이 좋은 날씨에 공부하러 학교에 틀어박혀 있기는 아쉽다, 아쉽다, 하더니 그래서인지 다른 때보다 유독 술자리가 많은 것 같다. 일과가 끝나고 나면 어차피 늦은 저녁인데도 어떻게든 이 봄날을 잡고 싶어서 그런 것일까. 사실 봄이 아니더라도 이맘때쯤은 술자리가 많다. 신학기가 시작된 지 약 한 달, 그리고 중간고사까지 또 약 한달. 너무 서먹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시험기간 만큼 바쁘지도 않은 이맘때에는, 열람실을 빠져나와서도 그대로 집으로 흩어지기 아쉬운 무언가가 있다. 여유가 있는 사람은 여유가 있는 대로, 없는 사람은 없는 사람대로 모여 적당히 술 한 잔 즐기고 귀가를 한다.

동기들이 모여 있는 모바일 단체 채팅방에는 저녁만 되면 지금 어디서 술 한 잔 하고 있으니 생각 있는 사람은 나오라는 메시지가 속속 올라온다. 새벽녘에는 여태껏 남아 있는 사람들끼리의 인증샷. 이렇게 사적으로 갖는 술자리도 많지만, 공식적인 술자리도 많은 것이 요즘이다. 동기 모임, 동문 모임, 여학생 모임, 학회 뒷풀이, 동아리 뒷풀이, 이번 주말은 또 동기 MT가 있다고 하고, 일주일에 한번 이상은 꼭 공식적인 술자리가 있는 것 같다. 그런 이유로 과제를 제때 해놓지 않으면 허둥지둥 낭패를 보기 쉽다. 할 일은 많고, 술자리도 많고. 이래저래 잠이 부족한 봄날이다.







학교 특성상 연령대가 꽤 높고, 여성의 숫자가 아주 적어 술자리에 가면 늘 조심하는 편이다. 또래가 별로 없으니 혹 취하여 연장자들 앞에서 예의 없는 행동을 하게 될까 긴장이 된다. 여자가 별로 없다는 점도 긴장되는 요인 중 하나다. 아무리 동네에서 갖는 술자리라 할지라도 여학생은 남학생에 비해 귀가도 신경 쓰이고, 여러 가지 조심해야 할 부분이 많다.

만약 취해서 인사불성이 된다면, 본인에게도 좀 위험한 일이겠지만, 주위사람들에게도 상당히 민폐다. 술에 많이 취한 여학생을 집까지 데려다 줘야하는 동기, 혹은 선배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얼마나 곤란할지 짐작이 간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노라면, 절대로 취하지 말자 다짐, 또 다짐하게 되는 것이다.

다행한 일은, 모두 그런 사실을 알고 있다 보니 여학우들에겐 술을 많이 권하지 않는다. 본인이 알아서 잘 조절하기만 한다면, 그렇게 취할 일도 없는 것이 사실이다. 나는 사적인 자리에 자주 참석을 못하다보니(다른 분들에 비해서 아는 게 없어 여유가 없는 편) 공식적인 자리에서 만큼은 조금 오래 자리를 지키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주 종목은 맥주. 도수가 낮아 오래 자리를 지켜도 그렇게 취하진 않는다. 많이 취하지 않은 상태에선 술자리에서도 배울 것이 많다. 그간 어떤 얘기들을 나누고 있었는지 그 기회를 통해 나누기도 하고, 서먹했던 사람들과 친목을 다지기도 하고,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을 듣기도 하고, 술자리도 공부하는 시간만큼이나 유익한 자리가 될 때가 있다. 특히 오래 공부하신 분들에게 공부에 대한 조언을 듣는 것은 정말 많은 도움이 된다. 당신들이 미리 겪어본 시행착오를 통해 가장 빠른 길이라 생각되는 길을 알려주시는 것. 어느 정도의 애정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라 생각한다. 술자리는 그런 애정이 있는 곳이다.

술자리가 그렇게 늘 화기애애하냐면, 또 그런 것만은 아니다. 다들 나름대로 새로운 스트레스와 싸우고 있고, 나름대로 지켜온 신념도 다 다르기에 술자리가 오래되면 때로 다툼이나 곤란한 상황이 왕왕 발생한다.

술이 들어가면 자연히 말이 많아진다. 말이 많아지다 보면 언성이 높아지는 경우도 생기곤 한다. 아까 말했듯 학교 특성상 나이대가 꽤 높기 때문에 동기라고 해도 대부분이 다 한참 선배님처럼 느껴진다. 일하다 오신분도 계시고, 십년을 공부만 하다 오신 분도 계시고, 다들 나름대로 자신의 삶에 대해 어떤 신념을 하나씩 확립하시고 있는 분들이시기에 어떤 민감한 사항에서 언성이 높아지는 일도 자주 발생한다.

공부 방법에 대한 조언들도 다 다른 입장이시다. 날 앞에 놓고 공부 방법은 내가 맞다 네가 맞다 하시다 꽤 언성이 높아진 적도 있다. 보통 누군가 중재를 해서 유하게 넘어가곤 하지만, 가끔 어떤 술자리에선 꽤 큰 다툼으로 번진 적도 있다한다.
술자리 다음날 더욱 더 돈독한 유대관계를 자랑하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이렇게 서먹해져버리는 분들도 계시다. 평상시에는 참 점잖은 분들이어서 두 분이 언성을 높이며 크게 싸웠다니, 잘 상상이 되지 않지만, 술이 함께 했다면 뭐 그럴 수도 있지 싶기도 하다. 언제나 문제는 술이다.

가장 곤란한 것은 공식적인 자리에서 혼자 술을 너무 많이 드시고 취한 한 둘이다. 난 여태껏 학교 바깥에서 사회생활을 해본 적이 없어, 이만큼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사람들과 공식적으로 술을 마셔본 적이 따로 없다. 내가 함께 술자리를 한 어른이라고 해봐야, 교수님이나 집안 어른들 정도. 아주 나이가 많다고 생각했던 선배들도 지금 생각해보면 많아봐야 3~5년 터울로 크게 보면 또래나 다름없다. 그래서 소위 ‘진상’을 부리는 연장자들에 대한 대처가 많이 부족한 편이다.

전에는 신입생 OT 후 술자리에서 한 분이 많이 취하신 적이 있다. 여학생들에게 노래방에 가자고 소동을 일으키시는 바람에 술자리에 남아 있던 몇몇 여학생이 겁에 질리고, 그를 제지하는 동기들이 대치하면서 일순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평상시엔 궂은일을 도맡아 하시며, 점잖기 그지없는 분이라 그날의 충격이 보다 컸었다. 그날은 참 많이 취하셨다. 결국 그 분은 몇몇 동기들에게 끌려 나가시고, 남은 동기들은 얼어있는 여학우들을 달래주면서, 실제로 저런 분이 아니신데 술에 많이 취해 그렇다, 양해를 구했다. 다음날 그 분은 어제의 일을 사과하셨지만, 사실 아직까지도 그 분과는 조금 서먹하다.
아무리 술에 취했다지만, 그날의 언사나 행동들이 자꾸만 겹쳐 보여 섬뜩해지는 부분이 있다. 이후에도 한두 차례 정도 술자리에서 크고 작은 문제가 발생했는데, 항상 그 분이 얽혀있고는 했다. 술에 취하면 약간 언사나 행동이 거칠어지시는 편인 것 같다. 이젠 술자리가 있다고 하면, 조심스럽게 혹시 그 분도 참석하시나 물어보게 된다. 참석한 술자리에 그 분이 보이면 일부로 멀찌감치 떨어져 앉는다. 문제는 술이라지만, 그 문제를 마신 것은 본인이다. 술을 조절하지 못하는 사람은 무섭고 불안하다.

酒中不語眞君子(주중불어진군자)라 하여, 술 먹고 말을 많이 하지 않는 것이 진정한 군자의 모습이라는 말이 있다. 군자는 취기에 횡설수설하거나, 도리에 맞지 않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예로부터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술을 이기지 못해 추태를 보이는 사람은 타인의 인정을 받지 못했다. 술이 나보다 강한 것이 나쁜 게 아니다. 이기지 못할 술을 마시는 것이 나쁜 일이다. 술이 약한 사람은 그를 알고 술을 적게 마시면 될 것이고, 술이 센 사람들도 자신의 주량을 알고 넘치게 마시지 않아야 할 것이다. 술을 마시더라도 항상 언행을 조심하고 긴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술자리는 다른 방법보다 효과적으로 사람들 사이를 가깝게 만들어 주는 매력이 있다. 술잔을 나누는 것은 평소보다 솔직하게, 또 진심으로 나와 상대방의 마음을 전달해준다. 술자리에서 발생하는 유대감은 단지 오며가며 얼굴을 익히고, 몇 마디 나눠보았다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무엇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술자리는 인생에 보탬이 된다. 좋은 시간을 얻고, 좋은 생각을 얻고, 좋은 사람을 얻는다. 하지만 잘못 마시면 때로 인생을 망하게도 하는 것이 술이다.

자신의 주량을 알고 적당히 선을 지켜서 술자리에서는 훈훈한 정을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 술에 취했다는 것이 실수에 대한 변명이 되는 것은 아니다. 취했기 때문에 용서받을 수 있다는 생각은 틀렸다. 오히려 실수 할 만큼 술에 취했다는 사실도 반성해야 하는 일이다. 나 역시 술에 취해 잘못된 언행을 하지 않았던가 반성해본다. 앞으로의 술자리는 서로 조심하여 가까운 사람들이 더욱 가까워지는 계기가 될 수 있길.  




psy5432@nate.com <박신영님은 법학전문대학원생입니다.>
저작권자 © 위클리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