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마술처럼, 그녀가 내 곁으로 왔다 (20)






우리 집 개 마루 녀석은 암컷인데 여자 사람을 매우 싫어한다. 싫어한다기보다는 미워한다는 게 옳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증오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도 아니라면 두려워한다고 말할까? 사람인 내가 개의 심사를 다 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여자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멀리 어디서 여성성의 목소리만 들려도 녀석은 두 귀를 쫑긋 세우고 짖어댈 준비를 한다. 목소리가 점차 가까워지면 마침내 컹, 했다가 잠시 뒤에 또 컹, 하는 식으로 짖기 시작하고, 여자 사람이 눈에 보이면 드디어 총이라도 쏘듯이 잇따라 짖어댄다. 그때 만일 그 여자가 우리 집으로 들어올 낌새라도 보이면 녀석은 비겁하게도 재빨리 돌아서서 자기 집으로 들어가 버린다.

그렇다고 아주 들어가서 숨어버리는 것은 또 아니다. 자기 집으로 들어가자마자 다시 돌아서서 짖어댄다. 어떤 때는 자기 집 밖으로 발 하나를 내놓고 짖기도 하지만, 대개는 얼굴만 내놓고 짖어댄다. 마루 녀석이 그렇게 이상한 적개심을 드러낼 때마다 사람들이 나를 보며 하는 말이 있다.

“아니 개가 왜 저래요?”

그런 질문을 받을 때면 나는 으레 우리 개가 수줍음이 많아서 그런다고 너스레를 떤다. 그러면 사람들은 나와 개를 번갈아 쳐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어떤 사람은 아예 노골적으로 둘이 연인관계 아니냐고 살짝 웃음을 띤 표정으로 묻기도 한다. 요컨대 암컷인 마루 녀석이 수컷인 나를 사랑해서 다른 여자를 보면 질투심으로 짜증이 나고, 그래서 짖어대다가 그만 꼴도 보기 싫다고 그렇게 자기 집으로 들어가 버리는 게 아니냐 하는 뭐 그런 어이없는 얘기인 셈이다.




# 우리집 개 마루에게 먹을 것을 주고 돌아서는 그녀



내가 내여자라고 부르는 그녀가 내 곁으로 오던 그날도 마루 녀석은 꽤나 당혹스러워했다. 자기 주인인 내가 옆에 있는데도 짖고 있었고, 짖다가 재빨리 돌아서서 자기 집으로 들어갔다가 도로 금방 나왔다가 또 들어갔다가, 그야말로 온갖 부산을 떨어대며 짖다가 말다가. 짖다가 말다가를 되풀이하는 것이었다. 그런 이상한 형태의 적개심을 드러내는 개 앞에서 당혹스럽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마는, 내여자 그녀는 한편 당혹스러워 하면서도 한편 자신감을 갖고 성큼 다가서고 있었다.

“얘가 지금은 이래도 나를 알고 나면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을껄?”

그러면서 손을 내밀고 다가서는, 금방이라도 목덜미를 쓰다듬어줄 듯이 다정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그녀는 아닌 게 아니라 이 세상 모든 개들과 통하는 무엇이 있는 것처럼 보이기는 했다. 그러나 그 한순간뿐이었다. 슬프게도 마루 녀석은 그녀를 완전 개무시해 버리고 있었다. 다가서는 그녀를 향해 으르렁거리며 짖어대다가 홱 돌아서서 자기 집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나와서 짖어대는 마루에게 그녀는 서서히 겁을 먹기 시작했던가. 개의 목덜미를 쓰다듬어주기는커녕 터럭 한 개도 만져보지 못한 채 물러서고 말았다.

내가 내남자의 곁으로 왔는데 내남자의 개가 나를 싫어한다? 이게 뭐냐?

아마도 그녀는 그런 불만 내지는 속상함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날부터 그녀는 마루와 친해지기 작전을 세워놓고 그 일에 몰입해 들어갔다. 방에서 밥을 먹던 중에 멸치 꼬랑지 하나라도 나오면 그것을 따로 골라 두었다가 접시에 담아 들고 “마루야 먹자.”소리도 상냥하게 서너 차례 연거푸 노래라도 하듯이 반복하면서 마루에게 다가갔고, 밖에 나갔다가도 어디서 무슨 갈비뼈라도 발견하면 반드시 비닐봉지에 담아 들고 와서 마루 녀석 앞에 그것을 흔들어 보이며 “마루야 먹자, 마루야 먹자”를 되풀이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그녀는 마침내 마루와 친해졌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일 년이 훌쩍 넘은 오늘날까지도 그녀는 마루의 목덜미를 쓰다듬어주기는커녕 터럭 한 올도 제대로는 만져보지 못했다. 마루 녀석의 덩치가 워낙 큰데다가 두 귀가 쫑긋 서 있는 까닭에 미친 척하고 물어버리면 어쩌나 하는 선험적인 두려움이 그녀의 손을 움츠러들게 한 탓도 있었겠지만, 그녀가 저만치서 다가오면 벌써 자기 집 안으로 쏙 들어가 버리는 마루 녀석의 그 일관된 배타적 정신 때문이기도 했다. 




# 마루야 마루야 애타게 불러보지만...



처음 그녀가 “마루야 먹자” 소리를 하며 다가설 때 마루 녀석은 저게 뭔 시츄에이션이냐, 하는 꼭 그런 표정으로 한참을 보고 있다가는 자기 집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그리고 짖어대기 시작했다. 그녀가 먹을 것을 집 앞에 두고 떠나면 비로소 짖는 소리를 멈추고 밖으로 나와서 먹을 것을 향해 코를 킁킁거리기는 했다. 하지만 그것을 바로 먹지는 않고 다시 짖어대고, 다시 집으로 들어갔다는 또 다시 나와서 몇 번 더 짖어보고, 꼬리를 슬쩍 흔들어보다가 다시 짖어대는 등 먹을 것을 준 사람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그렇게 온갖 복잡한 절차를 거친 뒤에서야 먹을 것에 입을 대고 있었다.

아직은 낯설어서 그러는 것이려니, 며칠 지나면 서로 얼굴도 익히고 해서 친해지려니 했지만 그것은 그야말로 인간적인 바람일 뿐이었다. 인간인 너희들이야 무슨 소망을 품건 말건 나는 관심도 흥미도 없다는 듯 마루 녀석은 변함없이 그녀만 나타나면 짖고 있었고, 다가서면 돌아서서 숨어버리고 있었고, 먹을 것을 주면 준 사람이 등을 돌려 멀리까지 간 뒤에야 가만히 나와서 살피고 또 살핀 뒤에서야 겨우 입을 대고 있었다.

진전이 아주 없지는 않았다. 어느 날부터인지 마루 녀석은 그녀가 먹을 것을 접시에 담아 들고 마당을 가로질러 가면서 “마루야 먹자, 마루야 먹자.”소리를 내면 제자리를 빙빙빙 도는 식의 무슨 환영행사 같은 행동을 하고 있었다. 꼬리도 전보다 많이 흔들어대고 있었고, 짖는 것은 여전했지만 그 소리는 전보다 많이 누그러져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몸에 손을 대는 것은 허용하지 않았다. 결단코 그것만은 안 된다는 듯 그녀가 가까이 오면 집 안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들어간 채로 얼굴만 살짝 내밀고 꼬리를 흔들어댈 뿐 그녀가 돌아서서 저만치 멀어지기 전에는 절대 나오지를 않았다.

“왜 그럴까, 응? 아이 참, 날 싫어하지는 않는 것 같은데 왜 그러지?”

글쎄, 왜 그럴까? 나는 물론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확실히 그 사건 때문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해도, 그때의 그 일과 전혀 무관하지 않다는,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는 심증이 내게 있었다. 마루 녀석이 아직 청소년 시기였을 때, 그러니까 생후 오륙 개월쯤 됐을 무렵에 목줄이 끊어져서 온 동네를 휩쓸고 다니다시피 한 적이 있었다.




# 그녀가 멀어지면 나와서 먹는 마루



농촌에서는 농사철에 개를 묶어놓지 않으면 논밭으로 들어가서 작물을 망쳐놓기 때문에 반드시 묶어놓아야 한다는 묵계가 형성되어 있기 마련이었다. 그것이 공동체를 이루며 함께 살아가는 사람으로서의 기본 덕목이요 예의라 해도 뭐 틀리지 않았다.

그런데 가끔 줄이 풀리거나 아예 끊어지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 개는 좋아서 미친 듯이 그야말로 산천이 다 제 것이라는 듯이 갈팡질팡 제멋대로 뛰어다니게 된다. 이 집에도 들어가 보고 저 집에도 들어가 보고, 이 밭에도 들어가 보고 저 밭에도 들어가 보고, 무엇이든 기둥 같은 것을 만나면 거기에 대고 오줌 몇 방울을 찔끔 흘려서 이제부터 여기는 내 땅, 하고 표시도 해 가면서 아주 그냥 자유를 만끽하는 것이다.

개의 자유가 그 지경에 이르면 원성을 사기 마련이다. 때로는 원성을 사고 말 것도 없이 현장에서 즉시 대가를 치르기도 한다. 커다란 돌멩이나 작대기 같은 것으로 얻어맞는 것은 기본이고, 극단적인 경우 올가미 같은 것에 걸려 개장사에게 넘겨져 버리기도 한다. 그런 형벌을 받기 전에 잡아서 다시 묶어놓자고 주인이 허둥지둥 나서 보지만, 방종한 자유의 쾌락을 알아버린 녀석은 좀처럼 잡혀주지 않는다.

이리 와, 이리 와, 하고 제아무리 부드러운 목소리로 불러도 녀석은 가까이 다가오지 않는다. 다가오기는 하지만 경계거리 육칠십 센티를 녀석은 정확하게 지킨다. 사람이 손을 내밀어 개의 목덜미를 잡으려면 적어도 육칠십 센티 정도는 거리를 좁혀야 하는데 녀석은 그것을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개가 좋아하는 뼈다귀 같은 것을 손에 들고 유혹해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꼬리를 살래살래 흔들어대며, 낑, 낑, 하고 애교까지 떨어대며 머리를 들이밀기는 하지만 주인과의 일정한 거리유지를 망각하지는 않는다. 심지어는 뼈다귀를 입에 물었다가도 주인의 다른 쪽 손이 움직인다 싶으면 재빨리 포기하고 물러서 버린다. 그러다 보면 주인은 마침내 짜증이 나고, 짜증이 나면 “저놈의 개새끼” 어쩌고 투덜대며 그만 포기해버리기 십상이다.



# 그녀가 돌아서면 겨우 얼굴을 내놓고...



그날 내 경우가 꼭 그런 꼴이었다. 아침에 마루 녀석의 목줄이 풀렸다는 것을 알고 난 뒤로 한나절이 넘도록 녀석의 뒤를 따라다녔지만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녀석은 아주 그냥 신이 나 있었다. 아니 미쳐 있었다. 상치 밭에 들어가서 딴에는 쥐를 잡는다고 죄다 파헤쳐놓고 있었고, 옆집 할머니네의 고추밭에 들어가서 꿩을 잡는다고 이리 뛰고 저리 뛰며 고춧대를 죄다 쓰러뜨려 놓고 있었다.

저 농작물을 다 변상해 드려야 할 텐데 이것 참 큰일이다, 나는 아마 그런 생각이나 한가하게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만이 아니었다. 해가 질 무렵쯤 서울에서 귀농한 집 아주머니가 들이닥쳤다. 얼굴은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고, 손에는 보기에도 살벌한 쇠스랑이 들려 있었다. 그렇게 살벌한, 적개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들어선 아주머니는 내 얼굴을 보자마자 소리를 꽥 질렀다.

“하얀 개, 그놈의 개새끼, 이 집 것 맞죠? 내가 그놈의 개새끼 때려죽이려다가 내 다리 부러질 뻔했는데 이걸 어떻게 할 거요, 응? 어떻게 할 거냐고.”

그러면서 아주머니는 치마를 훌쩍 걷어 올리고 있었다. 아마도 앞으로 납작 엎어졌던 모양이다. 무릎이 깨져서 피가 흐르다가 굳어가고 있었다. 그 댁은 쇠창살로 된 개집을 스무 개 남짓이나 일렬로 늘어놓고 개를 기르는, 그러니까 개 사육으로 생활비를 조달해 쓰는 집이었다.

목줄이 끊어져서 자유를 방만하게 만끽하던 마루 녀석이 급기야는 그 개 사육장에까지 쳐들어갔던 모양이었다. 쇠창살에 갇힌 개들이 자유를 만끽하고 있는 우리 개 마루를 보고 얼마나 흥분했을 것인가. 발톱으로 쇠창살을 마구 긁어대며 일제히 짖어댔을 것이었다.

그 짖음이 구출해 달라는 애원의 소리였는지, 부러워 죽겠다는 아우성이었는지, 꼴도 보기 싫으니까 어서 꺼지라는 소리였는지 알 수는 없지만, 개 사육을 직업으로 하는 주인으로서는 도저히 그냥 두고 볼 수가 없었을 터이었다. 그래서 얼결에 마침 눈앞에 보이는 쇠스랑을 들고 찍어 죽이겠다고 나섰다. 그 바람에 마루 녀석은 주둥이가 찢어져서 피를 흘렸고, 한 달 이상이나 다리를 절뚝거리는 부상을 입고 말았다.




# 집안에서만 마루를 볼 수 있는 그녀



그 뒤로 마루는 치마 입은 사람만 보면 신경질적으로 짖어대는 버릇이 생겨 있었다. 치마뿐만 아니라 머리가 긴 사람을 보면 또 짖어대었고, 목소리가 여성성을 띤 사람 또한 적으로 간주하고 좀처럼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마루의 그런 과거 이야기를 다 듣고 난 뒤에 나온 내여자 그녀의 한 마디가 나를 살짝 울렸다.

“아유 어쩌니. 너도 나랑 비슷하구나. 폭력의 성격은 다르지만, 비슷한 건 비슷한 거야.”

언니들만 넷인 집의 막내인 그녀는, 그리 오래 전도 아닌 최근의 어느 하루 무슨 글인가를 쓰려고 자료준비를 하다가 문득 엄마에게 전화를 해서 “엄마 나 낳을 때 어땠어?”하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때 나온 엄마의 한 마디가 “우짜긴 뭘 우짜노 칵 죽어버리고 싶었제.”였다. 아들을 바랐는데 딸이 태어나서 엄마 자신이 죽어버리고 싶었다는, 엄마의 무심히 나온 그 한 마디에 그녀는 또 한 번 충격을 먹었다.

그것은 사실 새삼스런 일은 아니었다.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아들을 목말라 하는 부모님 앞에서 외로워했고, 그때의 외로움이 커다란 상처가 되어 성인이 된 뒤에도 아들이라면, 아니 남자라면 애써 무시하고 평가절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상처를 스스로 치유하고자 애를 써 왔다는 것을 내가 알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온전히 치유가 됐다면 그나마 다행이랄 수도 있겠지만, 남들 다하는 연애며 결혼이며 등등의 것들을 제대로 근사하게 해보지도 못한 채로 나 같은 꼰대의 손아귀에 걸려들고 말았으니, 측은도 하여라, 무심코 나온 말 한 마디가 어떤 사람에게는 평생을 좌지우지할 정도의 지독한 상처로 잠복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그 시절의 어른들은 몰랐던 것일까, 아니면 알면서도 감정을 숨길 수 없어서 부득이 그래야만 했던 것일까.

어쨌든 마루의 과거 상처 이야기를 듣고 난 뒤부터 그녀의 마루를 대하는 태도는 이제 단순한 친교를 희망하는 데서 훌쩍 나아가 있었다. “마루야 먹자.”하는 정도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응 그래, 먹어, 먹어, 응 먹어”하는 식으로 이를테면 애지중지 사랑하고 귀여워하는 자식을 대하는 엄마의 목소리를 내기에까지 이르렀다. 이것을 굳이 한 단어로 풀이를 하자면 글쎄, 뭐라고나 할까. 동병상련?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 한 편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전북 고창으로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앞으로 ‘김수복의 시골 살림 이야기’란 제목으로 자연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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