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잔인한 4월’ 그 끝은?



재계에 잔인한 4월 바람이 불고 있다. 6천명을 줄일 것이라는 KT를 시작으로 금융권 등 곳곳에서 인력 감축 계획이 나오고 있다. 한화생명 노조원 1천여명은 최근 구조조정반대 집회를 열었다. 20년 이상 근무한 직원을 대상으로 퇴직 이후 창업 등을 돕는 ‘전직 지원제도’ 도임이 사실상 구조조정이라는 것이다. 노조 관계자는 “가정이 어렵다고 가족을 쫓아내진 않는다”며 “하지만 우리 회사는 직원을 나가라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재계를 엄습하고 있는 ‘구조조정’ 회오리를 살펴봤다.







여기저기서 매서운 봄바람이 불고 있다.

KT가 6천 명에 이르는 인력 감축 카드를 빼든 이후 특히 금융권에 구조조정 칼 바람이 거세다. 삼성생명은 직원들을 자회사로 보내는 방법으로 인력을 줄이고, 삼성증권은 3년차 이상 직원들에게 희망퇴직을 받기로 했다. 한국씨티은행은 지점을 통폐합해 인력 600여명을 감축할 예정이다.

여기에 현대차와 포스코, SK 그룹 등도 계열사간 합병이나 비핵심사업을 정리하는 방법으로 조직 군살빼기에 나섰다. 생존을 위한 기업들의 구조조정은 어려운 경제 상황과 함께 시간이 갈수록 확산될 전망이다.

최근 들어선 실적이 좋은 기업들까지도 경영혁신을 강조하고 있어 구조조정 대열에 동참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금융권 ‘위축’

재계 관계자는 “경기 회복이 지연되고 기업 실적이 둔화되면서 대업들 중에서도 지난해 이후 부실이 표면화되는 경우가 늘고 있다”며 자발적인 구조조정이 한동안 화두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이후 최대 구조조정이 될 것이라는 전망속에 노동계의 반발 또한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최근의 구조조정 움직임은 전방위적이어서 거대한 쓰나미로 재계를 휩쓸 것이라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그동안 한국 경제를 지탱해온 제조업 대기업에서도 ‘이상징후’가 포착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 건설 해운 등 영업이 부진하거나 내수에 갇혀 있던 업종에서 주로 나타났던 임원 감축과 조직 통폐합 등의 움직임은 철강 석유화학 전기전자 등 제조업종, 알짜 기업으로 확산되는 분위기다.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침체된 경기가 쉽사리 살아나지 않은데다 기존 사업은 중국 등에 밀려 경쟁우위를 잃어가고 있다는 게 이유로 지목된다. 하지만 신사업 돌파구를 찾지 못하면서 구조조정을 하는 것은 근본적인 대책이 되지 못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임원들’ 대대적 감축

업계에 따르면 에쓰오일, GS칼텍스 등 주요 정유사들이 경영 효율을 높이기 위한 구조조정에 착수했다. 에쓰오일은 임원 보직변경에 초점을 둔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대외협력 부문이 홍보 부문을 흡수하는 등 비슷한 조직을 합쳐 간소화했다.
이 과정에서 임원 보직 아홉 자리를 줄였다. 에쓰오일 관계자는 “울산공장에서 중장기 과제로 추진 중인 8조원 규모의 정제시설 및 석유화학설비 증설 작업에 역량을 집중하기 위해 조직을 일부 개편했다”고 설명했다.

GS칼텍스는 지난 10일 본부장급 이상 임원들이 경영위기 돌파를 위한 회의를 했다. 임원 수 10% 이상 감축, 조직 통폐합, 임원 연봉 일부 반납 등이 논의됐으며, 경영난이 가중될 경우를 대비해 연내 희망퇴직을 실시하는 방안도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GS칼텍스는 지난 2012년에도 영업직을 대상으로 명예퇴직을 실시한 적이 있다.

SK는 지난해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무역)과 SK인천석유화학(유화)을 분사시키고 정유사업은 SK에너지로 단일화하는 등 사업구조를 바꿨다.

몇 년 전까지 조단위 흑자를 내던 정유사들은 중동지역 정유시설 증가, 중국 등 신흥국 수요 감소 여파로 지난해 대규모 적자를 냈다. 에쓰오일은 지난해 정유부문에서 3505억원 영업손실을 입었고, SK에너지와 GS칼텍스도 정유사업에서 각각 870억원, 433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눈치보기’ 끝!
 
석유화학 업종뿐 아니다. 포스코는 지난달 권오준 신임 회장이 들어서자마자 탄소강 부문?스테인리스 부문 등 6개 본부를 철강생산?철강사업 등 4개로 통폐합하고, 경영 담당 임원 수를 68명에서 52명으로 23.5% 감축했다.

기획·인사 등 경영지원 업무 부문만 보면 임원 수가 31명에서 14명으로 절반 이상이 줄었다. 그동안 신성장동력을 찾는다며 사업과 조직을 확대해 왔지만, 성과를 내지 못하자 구조조정을 단행한 것이다.

지난 1월 말 황창규 회장이 부임한 KT는 130여명에 이르던 임원 수를 약 30% 감축한 데 이어 최근 전 직원의 20%에 달하는 6000여명을 명예퇴직시키기로 하고 작업을 진행 중이다.

삼성도 사업 구조조정을 계속하고 있다. 제일모직을 비롯한 계열사를 쪼개고 붙여 삼성전자를 정점으로 한 전자부문 수직계열화를 한층 강화했다. 삼성종합화학과 삼성석유화학의 합병으로 중화학 부문을 정비했다.

삼성생명·삼성증권 등 금융 계열사는 인력 구조조정에 착수했다. 조만간 건설사업에도 바람이 불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도 지난해 철강 계열사인 현대제철과 현대하이스코의 냉연사업 부문을 합친 데 이어 최근 중견 건설사인 현대엠코를 현대엔지니어링과 합쳤다.

“근본적 대책 필요”

구조조정의 가장 큰 배경은 성장 정체 때문이다. 국내 제조기업의 실적은 급격한 하향 추세를 보이고 있다.

LG경제연구원이 470개 제조기업 실적을 분석한 바에 따르면 1970년대 연평균 30%대였던 매출증가율은 1990년대 10%대로 낮아졌고 2012년에는 4.8%, 2013년 3.4%로 추락했다.

영업이익률은 1970년대 8.4%, 1980년대 7.3%, 1990년대 7.0%, 2000년대 6.3% 등으로 하락하다 2012년엔 4.2%까지 떨어졌다. 지난해 4.3%로 올라갔지만 이는 삼성전자 등 특정 기업의 약진에 기인한 것이다.

성장이 정체되면 인사 적체 등 조직에 여러 문제점이 나타날 수 밖에 없다. 특히 주주자본주의가 활성화되면서 이익 정체나 하락은 경영진에 치명적이 됐다. 실적 하락을 상쇄하기 위한 인력 감축이 확산되는 이유다.

재계에 구조조정 바람이 거세지고 있다. 지난 8일 KT가 2만여명 대상 대규모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한 데 이어 최근 계열사 사업개편을 단행한 삼성그룹 역시 삼성중공업 등 핵심계열사 구조조정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기업으로의 확산이 예상된다.

재계 관계자는 “청와대나 정치권의 영향을 많이 받는 KT에 이어 재계 1위 삼성까지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다는 것은 기업들이 체감하는 위기가 그만큼 크다는 의미”라며 “눈치만 보던 기업들까지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재계 20~30위권 기업들은 존폐를 건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STX와 동양그룹이 지난해 이미 해체됐고, 동부,현대 그룹 등은 은행권 채권단의 관리를 받아 고강도 자구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인력 구조조정이나 재무구조 개선도 필요하지만 미래 경쟁력을 갖추고 흑자를 낼 수 있도록 체질을 개선하려는 근본적 노력이 더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잔인한 4월을 보내고 있는 재계가 위기를 어떻게 헤쳐나갈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김범석 기자 kimb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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