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단체,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등 폐지 촉구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장애인 단체들이 장애등급제 폐지를 촉구하며 광화문역 지하보도에서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농성을 한지 600일이 넘었지만 정부는 여전히 이들의 요구에 묵묵부답이다.

이들은 지난 21일에도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 폐지를 외치며 농성과 서명운동을 이어갔다. 이들이 농성을 벌이는 동안 5명의 장애인이 세상을 떠났다. 화재로 치료를 받던 중 지난 17일 세상을 떠난 송국현(53. 중복장애 3급) 씨는 화재 당시 침대 위에서 움직이지 못한 채 전신의 30%에 화상을 입었다. 송 씨는 중환자실에서 산소호흡기에 의존해 치료를 받고 있던 중 폐 등 장기 손상 등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 외에도 활동보조인이 없는 사이 화재로 숨진 김주영 씨, 부모님이 일하러 간 사이 화재를 피하지 못해 숨진 박지우 · 지훈 남매, 장애등급 재심사에서 탈락해 수급 자격을 박탈 당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박진영 씨 등이 목숨을 잃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상임공동대표는 “세월호 침몰 사태에 우선 깊은 애도를 표한다”면서도 “하지만 세월호는 세월호 대로의 문제다. 이 때문에 사회 전반의 모든 문제가 덮혀져선 안 된다. 송 씨 역시 세월호가 침몰하듯 사망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죽고 사경을 헤매는 이들이 나올 때마다 등급제 폐지와 긴급지원 대책 마련을 목 놓아 외쳤지만 법과 제도를 따지느라 수년이 흘렀다”며 “장애인들은 마치 세월호 속에 갇힌 실종자들처럼 생사를 넘나드는 싸움을 하고 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민들레장애인야학 박길연 교장은 “정부는 (복지 서비스) 문을 두드리지 못해 서비스를 받지 못한다는데, 정작 문을 두드려도 아무 지원도 하지 않고 있다”며 “인천에 사는 어떤 동지도 장애 등급이 떨어져 주민센터, 계양구청, 인천시청, 국민연금공단 문을 계속 두드렸지만, 장애 등급이 낮다는 이유로 아무 서비스도 받지 못했다”라고 꼬집었다.

박 교장은 “송국현 씨가 돌아가고 우리가 분노에 차서 찾아가니 그제야 바로 달려왔다. 언제나 사고가 생겨야만, 우리가 목소리를 내야만 움직이다가, 시간이 지나면 또 언제 그랬냐는 식이다”라며 “이제는 장애등급제가 사람을 죽음으로 내모는 일은 없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한편 장애인 단체 등 시민사회는 지난 20일 서울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서 420장애인차별철폐 투쟁결의대회를 열고 정부에 대책마련을 촉구했다. 17일 세상을 떠난 송 씨와 마찬가지로 수많은 이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부양의무제 등과 관련 정책 전환을 촉구하며 10대 요구안을 내걸었다.

10대 요구안은 ▲장애등급제 폐지,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 ▲부양의무제 폐지, 국민기초생활 보장법(아래 기초법) 개악 저지 ▲활동지원 24시간 보장 ▲발달장애인법 제정 ▲수화언어법 제정 ▲탈시설 권리 쟁취 ▲이동권 쟁취 ▲노동권 쟁취 ▲교육권 쟁취 ▲장애인 정보, 문화권 보장을 위한 법 제정 등이다.



박경석 상임공동대표는 “헌법에서는 법 앞에 평등을 이야기하고 또 모든 영역에서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이야기 한다”며 “그러나 장애인들은 모든 삶의 영역에서 차별받고 무시당하며, 시설에 박혀 삶을 낭비하고 있는 게 지금 이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작태”라고 지적했다.

박 대표는 “여기에 그 헌법 조항을 지키고자 여러분들이 모여 있다”며 “오히려 법과 질서를 무시하는 정부와 우리의 정당한 요구를 폭력으로 진압하려는 공권력에 맞서 함께 싸우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노총 유기수 사무총장은 “전에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동지들이 부당한 정리해고에 맞서 ‘함께 살자’라고 했다. 우리는 오늘 함께 살기 위해 여기 모였다”며 “죽지 않아도 될 사람들을 이 사회가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데, 장애인, 노동자, 농민들이 각각 투쟁해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 함께 차별 없는 세상 향해 투쟁했으면 한다”라고 호소했다.

빈곤사회연대 강동진 집행위원장은 “박근혜 대통령이 불필요한 규제 철폐를 이야기하며 ‘암 덩어리를 제거해야 한다’라고 하는데, 정작 건강에 필요한 살점만 도려내는 것 같다”라며 “부양의무제는 가난한 사람이 최저생계비 아래에서 살아가는데도 기초생활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 암 덩어리다. 100만 명 이상이 이로 인해 수급자가 되지 못해 죽어가는데, 정부는 고작 부양의무자 기준을 완화한다며 암 덩어리를 그대로 남기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강 집행위원장은 “정부에서 기초법 개정안을 논의하고 있지만, 최저생계비를 없애고 장관 마음대로 급여를 결정하는 개악안이자 급여를 쪼개 (수급자) 삶을 조각내는 개악안에 불과하다”라며 “국회에서는 기초법 개악안 논의를 중단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이날 420공투단 등은 투쟁결의서에서 ▲보건복지부 문형표 장관이 故 송국현 씨 죽음을 공식 사죄하고 대책 마련 촉구 ▲10대 요구안 쟁취 ▲장애인,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없는 평등세상 만들기 위한 강력한 민중연대 등을 결의한다고 밝혔다.
공민재 기자 selfconsol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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