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쥐도 가죽은 있거늘








밤이면 그토록 귀를 간질이며 보채던 소쩍새 소리가 요즘은 안 들린다. 아침이면 그토록 빨리 일어나라고 재재거리던 참새며 박새며 작은 새들의 소리가 언제인지도 모르게 멈췄다. 새들이 실제로 모두 어디론가 떠나버릴 것일까. 설마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내 마음이, 내 정신이, 내 영혼이 마비돼버린 까닭에 소리가 들려도 듣지를 못하고 날아다니는 새가 눈앞에 있어도 볼 수가 없다는 것을 나는 어렴풋이나마 알고는 있다. 왜 이렇게 돼버렸는가. 지금 여기는 어디인가. 여기가 어디인지 말해줄 사람은 어디에 있는가. 

요즘 내 눈에는 작은 꽃들이 자주 보인다. 예전에도 물론 눈에 보이기는 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앞에 쪼그리고 앉아 열심히 들여다본 적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없었던 것 같다. 혼자서 미친 듯이 중얼거리며 눈물을 글썽이는 버릇도 예전에는 당연히 없었다.

이름도 참 예쁘기도 하지. 깜찍하기도 하지. 누가 이런 이름을 지었을까. 누가 무슨 생각으로 무엇을 하다가 이런 이름을 지었을까. 애기똥풀, 애기똥풀, 아 참, 애기똥풀이라니. 보면 그냥 애기의 그것이 떠오르잖어. 구린내는 하나도 안 나는, 젖내만 폴폴 나는 애기똥, 애기똥. 아, 이놈의 애기똥, 너는 어디에서 무엇을 타고 날아와서 지금 여기 이렇게 피어 있는 거냐, 응?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왜 이렇게 미친 듯이 중얼거리며 해야 할 일은 하나도 못하고 시간만 까먹고 있는가. 지금은 농사철이다. 농사를 직업적으로 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농촌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해야 할 일이 사방에 널려 있기 마련인 계절이다. 고추 모종도 해야 하고 가지 모종도 해야 한다. 마당에서 정신없이 자라나는 풀들도 조금은 뽑아줘야 한다. 그런데 아무 것도 하고 싶지가 않다. 그저 혼자서 중얼중얼, 중얼거리고나 있을 뿐이다.







“나쁜 놈들, 나쁜 놈들, 정말로 나쁜 놈들이야 너희들은.”

뭔가 하긴 해야겠는데 뭘 해야 하는지도 사실은 모른다. 목숨이 붙어 있다 보니 그저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을 막연히 하고 있을 뿐이다. 내가 살고 있는 지금 이곳은 도대체 어디인가. 일단 이놈의 것이 문제다. 내가 살아 있기는 분명 살아 있는 것 같은데 어디에 있는지를 모르겠다.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른다면 그것을 과연 살아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텔레비전을 없애버린 지도 2년째. 그동안 그럭저럭 편안했었다. 쓸데없는 스트레스로 마음 상할 일은 적어도 없었다. 그랬던 내가 요즘은 굳이 인터넷으로 텔레비전을 호출해서 들여다본다. 보고 있노라면 한숨이 터지고, 눈물이 나오고, 욕지거리마저 불쑥불쑥 쏟아진다.

“이름조차도 지랄 같다. 세월호가 뭐냐 세월호가.”

이래서는 안 된다고, 내 마음 내가 관리해야지 누가 관리해주겠느냐고, 애써 그렇게 스스로를 달래며 마당으로 뛰쳐나온다. 여기서 잠깐, 저기서 잠깐, 돌아서서 몇 걸음 걸어보고, 다시 돌아서서 또 몇 걸음 걸어보다가 끝내 쪼그려 앉아버린다. 가끔은 개미를 들여다보기도 하고, 도마뱀을 잡아서 손바닥에 올려놓고 넌 뱀이 아니지? 그렇지? 하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여보기도 한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해 본다. 나는 지금 살아 있는 게 확실한가? 지금은 살아 있다 해도 내일은? 이 시간 이후 밖으로 나갔다가 돌진해오는 트럭 같은 것에 내 몸이 깔리지 않는다고 어떻게 자신할 수 있지? 아니 뭐 밖으로 나갈 필요까지도 없겠다. 방구석에 앉아 있을 때, 그때 비행기 같은 것이라도 갑자기 떨어져서 송두리째 깔아뭉개지 않는다고 누가 보장해줄 수 있지?

내가 내여자라고 부르는 그녀의 아버지는 트럭에 치여 돌아가셨다. 성당에서 기도를 하고 나오던 길이었다. 운전자는 만취 상태였다. 그는 경찰에서 진술하기를 눈에 아무것도 안 보였다고 했다. 그렇게 인사불성의 상태로 살인무기나 다름없는 운전대를 잡았다는 것이다.







장례식장에서 이상한 얘기가 들렸다. 운전자가 매우 가난하다는, 가진 것을 죄다 팔아도 사백 만원이 채 안 될 거라는 얘기가 돌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퍼져 나갔다. 왜 그런 이상한 소문이 떠도는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채로 운전자는 가난하고 불쌍하다는 요지의 그 이야기는 기정사실화 되었다.

이유는 곧 밝혀졌다. 운전자가 매우 가난해서 피해 가족들과 금전이 매개되는 합의를 보기 어렵다는 것. 그러니까 인간적인 용서로써 합의서에 도장을 찍어달라는 것. 그런 얘기라면 운전자가 직접 피해 가족들 앞에 무릎을 꿇고 자기 자신의 입으로 말해야 할 것이다. 인간이 인간에게 취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라는 것이 있다면 아마 그 정도일 것이다.

그런데 그가 매우 가난하다는 소문이 먼저 퍼졌다. 그 소문은 피해 가족이 합의서에 무조건 도장을 찍어줘야지 안 그러면 나쁜 사람이라는 압력으로 작용했다. 그런데 다른 한편에서 들리는 얘기에 따르면 운전자는 어선을 두 척이나 가진 거의 유지급의 자산가였다. 하긴 그가 아무것도 없이 오직 가난하기만 한 사람일 뿐이라면 전 재산이 사백 만원도 안 된다는 소문이 그렇게도 조직적으로 순식간에 퍼지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어머니는 이중의 충격에 빠지고 말았다. 두 부부가 정답게 살아가던 중에 날벼락처럼 남편을 잃은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날아온 인간의 비열한 모습은 눈물조차도 말라버리게 했다.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이것이 진정 사람의 본모습이란 말인가?

어머니는 이제 사람이 무서웠고, 밖으로 나갈 수조차도 없게 되고 말았다. 남편을 잃은 슬픔은 가족들과 일가친척을 비롯한 주변 여러분들의 위로와 격려를 통해 극복이 가능하지만, 인간에 대한 실망이라고 하는 근원적이고 원천적인 절망과 분노는 극복이나 치유와는 성격이 다른 문제였다. 사람이 사람을 믿을 수 없는, 사람 자체에 대한 배신감이 영혼을 잠식해버렸다면 이제 그 사람은 무엇으로 살아갈 것인가 말이다. 그 바람에 내여자 그녀는 지금 두 달이 넘도록 어머니의 곁에서 보호자 겸 감시자 역을 맡고 있다.

대통령을 지냈던 전두환씨가 전 재산이 이십 얼마라고 해서 지금도 가끔 코미디의 소재로 활용되고 있기는 하지만, 대통령은커녕 장군도 해보지 못한 평범한 사람의 입에서도 전 재산이 얼마라는 둥의 그런 말이 아무렇지도 않게 나오는 현실을 무슨 잣대로 해석해야 옳을까. 한나 아렌트가 말하는 ‘악의 평범성’ 정도면 될까? 이른바 사회 지도층 인사라는 사람들의 언행 하나하나는 그것이 부정적인 것이냐 긍정적인 것이냐를 떠나서 어떤 사람에게는 모범이 되기 마련이다. 







쥐도 가죽이 있거늘.

동양의 고전 중에 고전이라고 누구나 인정하는 시경에 그런 시 한 구절이 있다. 공동체의 형성에 거의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는, 도움은커녕 남의 것을 빼앗고 도둑질하는 것밖에 모르면서 새끼는 엄청나게 퍼뜨리는 쥐, 그런 쥐에게도 가죽은 있단다. 요컨대 쥐도 가죽으로 자신의 속살 정도는 감출 줄을 아는 부끄러움이란 것이 있는데 인간 특히 공직자나 사회지도층 인사들 중에는 가죽조차도 뒤집어쓸 양심은커녕 부끄러움 한 가닥도 없이 속살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놓고 다니는 경우가 너무도 많다고 한탄을 하는 내용이다.

세월호 참사 현장에서 보여준 대통령 이하 크고 작은 관료들의 행태는 쥐와 가죽의 이야기를 떠올리기에 충분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대통령의 걸음걸이 하나하나는 그냥 걸음걸이가 아니다. 보이지 않는 경호원을 비바람처럼 몰고 다니며 경찰과 공직 사회를 부동자세로 만들어놓는 대통령의 걸음걸이 하나하나는 수십, 수백 명의 생명을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다. 그렇게도 무거워야 할 대통령의 걸음이 그렇게도 가볍게 정치적으로 그날 거기를 가서 무엇을 했던가.

가시적으로 드러난 성과는 사진 몇 장 찍은 것밖에 없지만, 패션대통이라는 별칭까지 몰고 다니는 대통령의 우아하면서도 위엄 있게 안전한 걸음걸이 수행을 위해 구조 책임자들이 몰려가있는 동안에도 우리의 아이들은 엄마, 아빠를 심장이 터지도록 부르고 외치며 손톱이 으깨지고 손가락 관절이 끊어지도록 어둠을 쥐어뜯고 있었다는 것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제 알았다. 정치적으로 승리한 자들의 논공행상과 이익 나눠먹기는 국민이 극한 위험에 처한 상황이라 해서 결코 예외로 두지 않는다는 끔찍한 사실을 알았다. 보라. 세월호 침몰 현장에서 드러난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우왕좌왕이 무엇을 말해주며 무엇을 역설적으로 드러내 보여주고 있었던가를 보라.







배가 순식간에 뒤집어진 것이라면 하늘도 무심하다는 정도의 한탄과 슬픔에서 머물다가 서서히 잊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배는 적어도 두 시간 가까이를 기울어진 채로 바다에 떠 있었다. 그런데도 스스로 뛰어내린 사람 외에는 단 한 명도 구해내지 못한 채 가라앉히고 말았다. 왜 그랬을까. 도대체 왜 이런 지상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일이 벌어졌을까.

사건 초기 중앙대책본부라는 것이 무려 열 개나 가동되고 있었다. 이것은 이른바 실세라는 것이 그만큼 많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런데 실세라는 것은 항상 정치적 술수 부리기에나 능할 뿐 위기대처에는 무능하기 마련이다. 그 자리에 있어서는 안 될 사람들이, 그 자리에 대한 사전지식도 전문지식도 없는 사람들이 선거 승리의 공신이라는 이유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내가 제일이라고, 내가 실세라고 뽐내며 설치한 것이 열 개나 되는 중앙대책본부였다고 하면 지나친 억측일까?

과정을 통해 드러난 사실만을 놓고 보자면 책임자가 누구인지 모호하기도 하려니와, 그나마 책임자라고 나선 사람은 또 하나같이 전문지식도 없어 보였고, 능력도 없어 보였으며, 의지 또한 없어 보였다. 왜 그랬을까. 도대체 왜 그랬을까. 우리는 한참이 지난 뒤에야 이 괴상망측한 미스터리의 해답을 얻었다.

명칭이야 그럴 듯하게 구조현장이지만 그 현장의 주요 콘셉트는 인명 구조가 아니었다. 돈이었다. 인명구조라는 이름의 가면을 쓰고 예상되는 수입을 열심히 계산하는 얼굴 없는 또 하나의 실세가 유령처럼 거기 어디에 있다는 것쯤 사람이라면 이제 누구나 알고 있다. 돈이 걸려 있었기에 다른 사람들은 얼씬도 말라고 밀림의 하이에나처럼 으르딱딱거리며 이 핑계 저 핑계 온갖 핑계로 시간을 끌었던 그 얼굴 없는 실세에게 있어 이 사건은 ‘지상최대의 작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렇게 해서 그들이 가져가는 수입의 출처는 어디인가. 말할 것도 없이 국민의 세금이다. 국민을 죽이면서, 국민의 세금까지 가져가는, 이중삼중의 그물망에 우리는 지금 포박되어 있는 형국이다. 이것을 웅변적으로 잘 드러내주는 문건이 하나 발견되었는데 그것이 저 유명한 위기대응 매뉴얼이다.







국가적 재난이 발생했을 때 대처하는 요령을 기록해놓은 이른바 매뉴얼에는 충격 상쇄용 기사 아이템을 개발해서 뿌리라는 항목이 있단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연예인들의 느닷없는 스캔들이라든가 뜬금없이 등장하는 간첩사건 같은 것들이 그렇게 해서 언론사에 뿌려져 왔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사람을 단 한 명이라도 더 구해낼 것인가를 놓고 고민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심적 물적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최우선 순위에 두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국민의 귀와 눈을 효과적으로 막아서 바보천치 등신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가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는 저 무능하고 파렴치한 관료집단을 우리는 언제까지나 어쩔 수 없다고 체념한 채로 두고 보며 세금만 처내고 있어야 하는가.

요즘 중학생 아이들 사이에서는 미증유의 새로운 공포가 퍼지고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작년의 해병대캠프 참사에 이은 금년 봄의 경주리조트 참사, 그리고 지금의 세월호 사건이 대학생과 고등학생의 생명을 빼앗아 갔으니 이제 중학생 차례가 아니냐고, 중학생인 우리가 죽어야 할 차례가 된 것 아니냐는 얘기가 중학생 아이들 사이를 떠돌고 있다는 것이다.

꿈만 먹고 살아도 모자랄 판의 아이들에게 이런 어이없는 공포를 심어놓고도 거의 아무런 반성도 책임의식도 보여주지 않고 있는 대통령 이하 관료집단들은 이제 그 존재함 자체가 내게는 거대한 스트레스가 되어가고 있다.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라는데 이를 어째야 하나. 내가 제대로 살고자 한다면 나를 엄청난 심리적 공황 상태로 몰아넣은 대통령 이하 공직자 전원에게 배상책임을 물어야만 할 것 같은데 글쎄, 법원도 그리 썩 믿음이 안 가는 집단이고 보니 이 또한 고민이다.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 한 편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전북 고창으로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김수복의 시골 살림 이야기’란 제목으로 자연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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