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위대한 슈라라봉
<신간> 위대한 슈라라봉
  • 이주리 기자
  • 승인 2014.05.23 18: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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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메 마나부 지음/ 비채







일본 최대의 호수 비와 호가 한복판에 자리 잡은 시가 현의 작은 도시 이와바시리. 이곳에는 아주 비밀스럽고 특별한 힘을 가진 두 가문 히노데 가와 나쓰메 가가 존재한다. 천 년이 넘도록 서로를 견제해온 것은 물론, 지금도 원수인 양 상대를 욕하고 쫓아내기 위해 혈안이 돼 있는 두 집안의 아이들이 같은 고등학교, 같은 반이 되는 일대 사건이 벌어진다!

특별한 힘을 전수받으라는 종가의 부름에 순응하여, 정작 본인은 원치 않는 힘의 수련을 시작한 ‘소심남’ 히노데 료스케, 히노데 가의 후계자로 교복조차 좋아하는 색으로 골라 입는 타고난 ‘도련님’ 히노데 단주로, 나쓰메 가의 장남이자 잘생긴 외모 때문에 여학생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는 ‘꽃미남’ 나쓰메 히로미. 생긴 것도 성격도 너무나 다른 세 녀석은 고등학교 입학식 날부터 싸움에 휘말리고, 크고 작은 다툼이 끊이지 않는 학교생활을 이어간다. 그러던 어느 날 단주로는 교장의 딸을 보고 한눈에 반하는데, 안타깝게도 그 아이가 이미 나쓰메를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마음에 상처를 받은 단주로는 괘씸한 연적이자 가문의 라이벌인 나쓰메는 물론, 그 집안까지 죄다 마을에서 쓸어버리겠다고 마음먹는데…. 단주로의 살벌한 계획은 과연 성공할 것인가? 

독창적인 세계관, 일상의 판타지, 대중적인 오락성으로 발표하는 작품마다 독자와 평단의 사랑은 물론, TV와 영화계의 러브콜을 받아온 마키메 마나부. 일본의 역사, 민담, 설화, 문화재 등의 사실적인 배경 안에 ‘요괴를 조종하는 경기’ ‘말하는 사슴’ 등의 판타지를 가미하여 오묘한 소설로 탄생시킨 전작처럼, `위대한 슈라라봉` 또한 만화적 상상력이 빛나는 작품이다. 현실과 판타지의 절묘한 조합, 청춘과 사랑의 발랄한 이야기, 불가사의한 힘의 존재, 간사이 지방의 유서 깊은 도시 등 마키메 전매특허와 같은 요소를 노련하게 엮어낸 이 작품은, 다른 작품보다 한층 강력해진 유머로 독자를 사로잡는다. 코믹한 캐릭터는 물론, 재치가 넘치는 대사, 익살맞은 액션, ‘슈라라봉’이 가진 해학적인 의미까지, 마키메의 그 어떤 작품보다 강한 유머 코드를 장착했다.

사백만 년 전에 만들어진 웅대한 호수 비와 호에서 고색창연한 시대물의 분위기를, ‘호수의 사람’만이 소유한 비범한 힘의 존재로 판타지를 더해, 고대와 현대를 오가는 듯한 신비한 정취를 자아내는  `위대한 슈라라봉` 은 사실, 이기적이고 배려할 줄 모르던 어린 소년들이 갈등 속에서 우정과 사랑,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는 성장소설로 읽어도 손색이 없다.

마키메 작가가 본격적으로 글을 쓰겠다고 결심한 것은 대학에 재학 중이던 스물한 살 때.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가는 도중 기분 좋은 바람이 불어와, 그 감각을 글로 남기겠다고 생각한 것이 발단이 되었다. 처음 쓴 장편은 ‘정직한’ 자신을 드러낸 글이었지만, 자기도 모르게 무라카미 하루키를 흉내 냈을 정도로 엉성한 습작이었다고 수줍게 고백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시즈오카에 있는 섬유회사에 취직해 일과 글쓰기를 병행하길 이 년. 본사 발령을 앞두고, 야근이 많을 것이란 얘기를 듣고는 글을 쓰지 못할 것을 우려하여 과감히 사표를 던졌다. 도쿄로 이사해 전업 작가의 길을 걸으며 온갖 문학상에 공모하고 낙선하기를 수차례 반복하며 이 년을 흘려보냈다. 수중에 있는 돈이 거의 다 떨어져 재취업을 슬슬 생각할 때쯤, ‘이번이 마지막’이란 결심으로 그때까지의 방식을 전부 버리고 새롭게 전략을 짜서 쓴 `가모가와 호루모`로 제4회 보일드에그스 신인상을 받았다. 

`위대한 슈라라봉` 은 작가가 ‘쓰고 싶은 글’과 ‘잘 쓸 수 있는 글’ 사이에서 오랜 시간 시행착오를 겪고 난 후 찾아낸 자신만의 작풍을 가장 잘 드러내는 작품이다. 그런 시간이 있었기에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탈장르적 글쓰기에 도전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의 손에서 더 다양하고 상큼한 소설들이 탄생하기를 기대해본다.

정리 이주리 기자 juyu2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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