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영의 이런 얘기 저런 삶>



유독 다른 사람보다 말을 잘하는 사람들이 있다. 내 생각을 말로 전달한다는 것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늘 자연스럽게 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생각처럼 쉬운 일인 것만은 아니다.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말이 전달력 있게 인식되기 위해서는 말의 억양이나 속도, 목소리의 강약, 단어 선택, 말의 구성이나 전체적인 길이 등이 모두 조화를 이루어야 가능하다. 정말 말하는 감각을 타고나지 않는 이상은 이런 말하기 능력을 뽐내긴 실로 어려운 일이다.

글쎄 굳이 말하는 능력이 그렇게 까지나 필요할까 하는 의문을 가질 분들도 계시겠다. 그도 그럴 것이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항상 말을 하고 있지만, 딱히 말하는 것을 가지고 고민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오늘 점심밥은 무엇인지, 어제 무얼 했는지, 지금 기분이 어떤지…. 우리는 말하는 것 자체를 크게 의식하지 않으면서도 불편함 없이 일상생활을 도모한다. 외국인이거나 특별한 문제가 없는 이상은 그런 일상적 대화에서 말하기가 고민의 대상이 되는 경우는 그리 흔치 않을 것이다. 심지어 어린 아이들도 일상 대화에서 부족함 없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다. 그런 부분만 생각해 본다면, 모국어로 말하는 것은 굉장히 일반적인 능력처럼 보인다. 고민하고 발전시킬 필요가 없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때로 자신의 말하기 능력에 대하여 답답함이나 좌절감을 느낀 경험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누군가를 설득해야할 때, 어떤 느낌을 표현해야 하는데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을 때, 머릿속에 있는 굉장한 이야기가 별 감흥 없이 전달될 때, 능숙하게 이야기하고 싶은데 내가 생각하는 이미지와는 달리 버벅거리는 나를 발견할 때….  나의 말하기 능력의 한계를 발견하는 경험은 그렇게 드문 일이 아니다.




# 일러스트 정다은 기자 panda157@naver.com



학부 때, 조사는 우리 조가 더 열심히, 그리고 알차게 해온 것 같은데 별달리 노력하지도 않은 다른 조에서 말 잘하는 발표자가 A+를 가로채 갔던 적이 있다. 발표자의 뒤로 빛나고 있는 PT화면은 초라하기 그지없는데도 불구하고 어찌나 말을 잘하던지 교실의 모든 학우들이 그 발표에 집중하는 게 느껴졌다. 여유 있게 농담을 섞어가며 성의 없는 PT화면을 풍성하게 만들어 버리는 발표자, 같은 학부생이라기보다는 마치 학생을 대하는 강사 같았다. 같은 한국말임에도 어쩜 그렇게 다를 수 있을까. 그가 단지 여유로웠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의 말에 들어있는 그 힘, 그것이 바로 말하는 능력이다. 말하는 능력은 아무나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기에 이렇듯 시기와 부러움의 대상이다.

말을 잘 하는 사람은 여러 분야에서 강점을 가진다. 말하는 능력을 갖춘 개그맨은 딱히 부각될 것 없는 평범한 외모에도 불구하고 국민 MC의 칭호로 불리며 오랜 기간 꾸준한 사랑을 받으며 하는 일마다 승승장구, 끝을 모르고 높은 주가를 달리고 있다. 그 개그맨이 상황을 잘 정리하는 멘트를 적재적소에 잘 선정할 줄 아는 능력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크게 성공할 수 있었을까. 불가능했으리라고 본다. 학교나 직장에서 인정받는 사람들도 대부분 말을 잘한다. 아무래도 논리정연하게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훨씬 더 많이 아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같은 것을 말해도 보다 그럴듯해 보이니 인정은 자연히 따라올 수밖에 없다. 영업직과 같이 말하기 능력이 직접적으로 영업능력으로 바로 연결되는 직업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앙꼬 없는 찐빵은 있을지 몰라도 말빨 없는 판매왕은 결코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말을 잘 하면 얻을 수 있는 이점이 많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은 말을 잘 하고 싶어 한다. 야속하게도 말하기 능력이란 게 아무에게나 선천적으로 주어지지는 않는다. 말만하면 빵빵 터지는 친구들이 있는가 하면, 아무리 재미있는 말을 해도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린지 김빠진 콜라마냥 흥이 팍팍 새는 친구들도 있다. 그래서 세상엔 스피치 학원이 그렇게나 많다. 서점에 가도 말하기 능력을 향상시켜준다는 책이 그득그득하다. 종류도 천차만별이다. 여자의 말하기, 사장의 말하기, 취준생의 말하기, 연인의 말하기, 부모의 말하기, 선생님의 말하기…. 모두가 탐내는 능력이라는 것이 피부로 와 닿는다. 어마어마한 시장이다. 말하기 능력을 갖추기 위해 고가의 학원비나 두 권만 사도 몇 만원은 우스운 책을 구매하는데 지출을 아끼지 않는다는 건 그만한 지출을 하고서라도 말하는 능력을 갖고 싶다는 사람들의 소망을 반증하는 것이 아닌가.

서점에 가면 그런 책들을 한 바퀴 쭉 둘러본다. 흥미로운 제목을 가진 책들은 뽑아내어 파르륵 내용을 훑어보기도 한다. 말을 잘하는 방법이라고 제시된 것들은 전반적으로 비슷한 듯하면서 책마다 참으로 다양하다. 하나하나 누군가에겐 굉장히 유익한 것들이라 생각한다.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를 잘 가려낼 수 있다면 충분히 말하는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런 책들을 둘러보다 발견한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생각보다 많은 책들이 ‘대화법’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는 점이다. 대화와 말하기. 말하기와 대화. 이는 완전히 치환될 수 있는 것인가.

당연하게도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말하기는 대화의 한 쪽 면일 뿐이다. 다른 쪽에서 그 말하기를 들어주지 않는 이상 그는 온전한 대화가 아니다. 대화법이라고 하면 응당 말하기와 듣기가 모두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책에서는 듣기를 거의 다루지 않거나 다룬다고 해봐야 피상적으로 ‘잘 들어주어야 한다.’는 식으로 언급하는 정도에 지나지 않는 수준이다.

말하기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저자에 따라 독특한 팁까지 제시해주는 데 비해 듣기는 이렇게 소홀한 이유가 무엇일까. 아마, 들어주는 능력에 대해서는 말하기 능력에 비해 계발할 이점이 상대적으로 적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다. 잘 들어준다고 해서 누군가에게 말을 잘 하는 것만큼 인정받는 것도 아니고, 그로 인해 얻을 수 있는 이익도 상대적으로 적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것은 일견 손해처럼 보이기도 한다. 누군가가 화려한 말솜씨로 어필하는 동안, 묵묵하게 들어주는 사람들은 그런 기회들을 모두 박탈당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 이런 생각은 틀리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정말 제대로 된 대화능력을 갖춘 사람이라면, 제대로 듣는 능력을 갖췄다고 해서 손해를 보지 않는다. 자신을 표현하고 어필할수록 좋은 자리에서 잠자코 듣고만 있는 다는 건 바람직한 ‘듣기’ 능력이라고 볼 수 없다. 오히려 손해를 보는 이유는 자신의 대화 능력이 현저히 균형을 잃고 한쪽으로 치우쳐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비단 듣는 쪽으로 치우쳐 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말하기로 치우쳐 있는 사람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대화가 필요한 자리에서 자기 얘기만 하는 사람을 떠올려 보면 이해가 쉽다. 그 사람에 대한 이미지는 어떠했던가. 나는 보통 그런 사람을 만나면, 듣는 척 하고 있긴 하지만 머릿속으론 이따 점심에 뭐먹지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점심메뉴를 고심하여 다 정할 때까지도 계속 말이 길어지면 그 사람은 다시 만나기 싫은 사람 목록에 이름을 올리고 만다.

현대사회는 자신을 어필하는 능력이 강조되는 사회다. 워낙 모든 일에 경쟁이 당연하고, 그 많은 경쟁자 중에서 눈에 띄지 않으면 도태되어 버리는 것이 냉혹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말하는 능력은 현대사회에서 주목받는 능력 중 하나다. 그래서 사람들은 ‘대화’가 상호간에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자주 망각하는 것 같다. 대화는 여기 좀 봐달라고 악을 쓰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의 마음을 울리고 싶다면, 제대로 대화하는 법에 대해 고민해야한다. 오로지 눈에 띄는 법, 잘 포장하는 법을 추구하며 말하기를 공부하는 것은 진정으로 좋은 대화를 할 줄 모르는 사람이 되는 지름길이다. 대화의 본질은 내 마음과 상대방의 마음을 ‘말’이라는 수단으로 교감하는 것이다. 단순히 기술적으로  접근한다고 해서 진정한 의미의 대화를 할 수 있을까. 그건 단지 말하는 스킬에 불과하다. 마치 포장을 부풀리는 것과 같다. 단기적으론 도움이 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나, 길게 보면 오히려 겉만 번지르르한 사람으로 평가 받는 나를 발견하게 될 수도 있다. 대화는 나만큼 남을 배려할 때 균형이 잡힌다. 나만 생각하는 대화법이라는 건, 그래서 그 자체로 역설이다.

때문에 나는 시중에 나와 있는 많은 대화법들이 절름발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말을 하고, 또 그만큼 진지하게 상대방의 말을 들을 때, 그제야 온전한 대화가 가능하게 된다. 번지르르하게 늘어놓는 말보다, 그런 온전한 대화 속에서 상대방의 마음을 울리는 감동이 나오는 법이다. 가장 나를 돋보여야 할 것 같은 면접장에서 마저, ‘말만 번지르르 해 보이는 지원자’는 기피된다고 한다. 오히려 차분하게 다른 지원자의 말을 경청해주고, 자신의 말도 똑똑하게 하는 지원자를 선호한다고 한다. 제대로 균형 잡힌 대화법을 아는 것이, 진정으로 승리할 수 있는 방법일 수 있을 것이다.



psy5432@nate.com <박신영님은 법학전문대학원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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