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길순 지음/ 모시는사람들







이 책은 동학농민혁명사의 거대한 산맥을 짚어가는 빠른 서사의 정통소설이다.

세월에 묻혀 우리 역사의 기억에서 아득하게 물러나 있는 동학농민혁명! 역사의 뒤뜰 가득히 우거진 풀과 꽃들을 헤치고 여기 우리의 아픈 역사를 내놓는다.

역사가 승자의 기록이라면, 이 소설은 역사의 그물에서 놓친 패배자의 사연과 곡절을 낱낱이 파헤쳐 이름 없이 죽어간 이들의 분노와 피울음으로 얼룩진 한을 핍진하게 기록하고 있다. 그날 동학농민들의 피맺힌 절규와 함성이 어느 한 시기의 옛일이기만 하랴. 동학농민혁명이 거대한 패배의 사건이나 좌절의 기록을 넘어 오늘날 우리 삶의 뿌리와 맞닿아 있다.

19세기 말, 조선은 어느 모로 보나 고요한 아침의 나라가 아니었다. 당시 지배 계층은 무능하고 부패하여 더는 살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전통적인 양반 세력이 몰락하고, 천민 계급인 종이 풀려나는 변혁의 기운이 싹트고 있었다. 이와 맞물려 영국 미국 프랑스 독일 등 세계열강들이 다투어 조선의 문호 개방을 강요하고, 특히 일본의 조선 침략 야욕이 점차 마각을 드러나고 있었다. 이런 사회적 위기에서 경주 지방 최제우에 의해 민족 민중 종교 동학이 창도되자 전국으로 들불처럼 번져갔다. 위기를 느낀 지배 계층은 동학교도를 탄압했고, 동학 교세는 전국으로 확장되어 가고 있었다.

이 소설은 종과 백정이라는 낮은 신분의 인물들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을 다루고 있다. 이들은 보국안민과 계급해방을 위해 교조 신원운동인 공주·삼례집회(1892년), 광화문복합상소와 보은 집회(1893년)에 뛰어든다. 급기야 1894년 정월 고부민란과 3월 기포, 전주성 함락과 전주화약, 9월 재기포와 동학연합군의 공주성 전투 패배, 관·일본군의 동학농민군 토벌 대학살 등 동학농민혁명사 전 과정을 거치면서 이들의 ‘사람답게 살고 싶었던 한울꿈’이 무참하게 짓밟히게 된다. 소설의 중심 배경은 서울 도성과 충청도 경상 전라도 지역이며, 천민들이 겪는 사건을 통해 동학농민혁명사의 한복판을 조망하고 있다.

120여 년 전, 저주받은 신분으로 사회의 바닥을 온몸으로 떠받치며 살았던 천민들, 당시 한울꿈을 꾼 사람들의 갑오년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들은 사람같이 사는 세상을 위해 불꽃 같은 삶과 바람 같은 죽음을 택해야 했다. 이 소설은 이름 없는 민중들의 열망과 좌절의 삶을 빠른 서사로 복원하고 있다. 독자들은 책갈피를 펼치는 순간 숨 가쁜 역사의 소용돌이에 휩쓸리게 될 것이다.


정리 이주리 기자 juyu2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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