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희’ 보는 순간 가슴 한 구석 찔린 듯한 통증이 밀려왔다!
‘도희’ 보는 순간 가슴 한 구석 찔린 듯한 통증이 밀려왔다!
  • 김범진 기자
  • 승인 2014.06.04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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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진의 문화 뒷마당> 영화 '도희'



올해 상반기 유독 아빠와 엄마들이 보기에 힘든 영화들이 극장에서 많이 개봉을 했다. 자식이 누군가에게 죽는다던지, 혹은 자식은 누군가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그런 자식을 부모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내팽개치고.

전자에 해당하는 영화 ‘방황하는 칼날’을 연출한 이정호 감독은 필자와 만난 자리에서 “대중들이 보기에 거부감이 드는 이런 얘기들이 자꾸만 상업영화로 나오는 것은 그만큼 사회 시스템에 무언가 큰 잘못이 있다는 것 아니겠나”라며 “영화를 통해서 그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짚어주려는 의도”라고 나름의 생각을 전하기도 했다.

이런 종류의 스토리는 영화로도 보기 힘든, 영화로도 상상하기 거북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영화란 매체 자체가 ‘엔터(재미)’에 방점을 찍고 출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에 어느 누가 극장에서 고민을 선물 받고 고통을 당하면서 나오기를 바라겠나. 하지만 아주 단순한 명제에서 출발하면 이렇다. ‘다양성’이란 기준이 일반화가 된 요즘, 충무로에선 ‘상업영화의 틀에서 벗어난 스토리를 만들자’란 나름의 독립영화 기준을 세웠고, 이에 대한 결과로 대부분 이런 스토리가 쏟아지고 있다고 보면 좋을 것 같다.







지난 달 14일 개막한 제67회 프랑스 칸 국제영화제 공식 경쟁 부문인 ‘주목할 만한 시선’에  초청됐던 ‘도희야’란 영화도 큰 결심을 하고 봐야 할 ‘통증’ 영화다. 관람에 대한 통증이 상당하다. 공교롭게도 앞서 설명한 거북스런 설정의 영화가 올 상반기 많이 개봉했는데, ‘한공주’란 영화와 일맥상통하는 느낌이다.

우선 영화 제목이 주인공 이름이다. 주인공이 10대 소녀란 점도 공통점이다. 소녀가 어떤 폭력에 노출돼 있다는 점도 닮았다. 하지만 ‘한공주’가 주인공의 자기 치유에 포커스를 맞췄다면, ‘도희야’는 주인공 도희에게만 주목하지는 않는다. 약자인 도희를 포함해 여러 다른 ‘도희’가 우리 주변에서 숨을 쉬고 또 똑같이 살고 있으며 그들이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럽게 폭력에 노출돼 있는지를 고발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폭력을 직접 행사하는 누군가가 바로 우리 주변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 사회가 폭력의 주체가 되고, 그 폭력이 이 사회를 유지하는 가장 기본적인 약속이라고 ‘도희야’는 역설적으로 말한다. 

주인공 ‘도희’는 올해 14세인 배우 김새론이다. 이미 2009년 불과 9세의 나이로 영화 ‘여행자’를 통해 데뷔 후 칸 영화제까지 밟아 본 이 소녀의 능력은 충무로를 넘어 대한민국이 첫 손에 꼽을 정도로 정평이 나 있다. 참고로 원빈 주연의 ‘아저씨’에서 그 소녀가 김새론이었다고 하면 금방 고개를 끄덕여 질까. 이 나이에 이 정도의 연기력을 선보인다니. 그냥 괴물 같다. 이 괴물 같은 소녀가 진짜 괴물인 세상의 폭력 속에 길들여진 도희로 분한다는 말에 ‘도희야’의 전체 톤이 쉽게 납득이 갈 정도였다.

첫 장면부터 강렬하다. 웅덩이에 빠진 개구리를 누군가 움켜쥐고 있다. 어딘가로 빠져 나가고 싶어 ‘뿌악뿌악’ 소리를 내고 있지만 자신을 쥐고 있는 손아귀에서 빠져 나가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 손의 주인공은 도희다. 도희는 그 개구리를 통해서 자신을 보고 있었는지 모른다. 동화 속에나 나오는 숲속 괴물이 살고 있는 거대한 성 같은 그 마을에서 자신은 갇힌 공주다. 누군가 이 개구리가 발악하는 것처럼 자신을 구해줄 것이라 막연히 상상하면서 말이다. 그런 상상이 아주 금방 이뤄졌다. 웅덩이 물을 밟고 시원스럽게 달리는 차 한 대, 도희는 온 몸에 물을 뒤집어쓰고 일어난다. 도희와 영남(배두나)의 첫 대면이다. 미안한 영남이 자신을 부르지만 도희는 도망친다. 왜일까(스포일러를 배제하기에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도희는 아버지 영하(송새벽) 그리고 할머니와 함께 어촌 마을에서 살고 있다. 학교에서도 왕따다. 집에서도 왕따다. 매일 같이 이어지는 술 취한 아버지의 폭력, 그것을 방치하고 입으로 폭력을 휘두르는 할머니의 보이지 않는 2차 폭력은 무지막지할 정도다. 그런데 이 마을 정말 이상하다. 아니 이런 마을, 우리는 TV 뉴스를 통해서 정말 많이 보고 들었던 적이 있다. ‘노예 장애인’ ‘노예 청년’ ‘노예 할아버지’ 등등. 마을 사람들은 한 마음으로 단결해 용하의 폭력을 눈감아 준다. 용하는 자신의 딸 뿐만 아니라, 마을에서 일하는 동남아 외국인 불법 노동자들에게도 자신의 주먹과 발길질을 아낌없이 선사한다. 이런 모습에 마을 사람들은 “마을 발전을 위해서 고생한다”는 정말 말도 안 되는 공동체의식을 선보인다. 무서울 정도다. 끔찍할 정도다.

마을을 다스리는 공권력은 어떤가. 경찰들도 비슷하기는 마찬가지다. 용하의 폭력에, 도희의 상황에, 외국인 노동자의 울부짖음에, 대수롭지 않은 처사로만 대한다. “그만 혀라”란 구수한 사투리 한 마디가 이토록 공포스럽게 들리기는 처음이었다.

이 모든 상황을 해결해줄 하늘에서 떨어진 영웅이 바로 영남이다. 서울에서 어떤 사건에 휘말리며 징계성 좌천을 당한 영남은 이 마을 파출소 소장으로 부임한다. 영남은 도희에게 그리고 또 다른 도희들에게 구세주로서의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하지만 관객들의 기대와는 정 반대다. 영남 역시 도희와 마찬가지로 사회에서 철저히 배제된 약자라면 어떻게 될까. 힘을 가진 공권력의 상징성으로 분류된 영남이 사실은 그 공권력 안에서 웃자란 쭉정이 취급을 받는 미운 털이라면. 결국 ‘도희야’는 이 세상의 모든 약자들을 만들어 내는 사회의 괴물 같은 시스템이 왜 문제가 되는지를 말하고 있는 듯하다. 그 괴물 같은 시스템은 결국 진짜 괴물을 만들어 내고 어린 도희를 아무것도 모르는 도희를 사회 안에서 철저히 길들여진 괴물로 대할 수밖에 없는 존재로 만들어 버렸다. 어린 도희의 눈을 통해 영남이 바라본 것이 자신을 괴물로 바라보는 사회의 눈이었을지, 아니면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이 보였기에 도희에게 손을 내밀었는지는 모를 일이다. 하지만 영화가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고, 영남과 도희의 결과를 보고 있자면 이 사회가 만들어 가고 있는 약자 그리고 피해자에 대한 시각과 해결책 그리고 그들을 대해야 하는 태도에 대해선 좀 무관심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모든 약자의 대표성을 띈 도희를 통해 감독이 어느 정도는 사회를 향해 책임감 있는 일갈을 원했지만, 조용한 그렇지만 나름의 힘을 느끼게 해줄 마지막으로 두 사람의 새로운 인생을 제시한 것이 못내 아쉬울 따름이다. 좀 더 직접적인 방식의 결과론을 내놓을 수는 없는 것이었을까.

영화 ‘도희야’를 본 뒤 무언가에 가슴 한 구석을 찔린 듯한 통증이 밀려왔다. 둔탁한 망치로 얻어맞은 듯한 충격이 오는 영화들이 있다. 날카로운 칼로 베이는 듯한 깨달음을 주는 영화들도 있다. 하지만 영화 ‘도희야’는 좀 달랐다. 마지막 아쉬움의 여운이 그래서였을까. 뾰족한 송곳으로 다른 문제가 아닌 딱 그것만을 정확하게 찌르는 듯한 정교하고 그래서 더욱 잔인하게 느껴지는 감성이 우리들의 무언가를 꾸짖고 있는 것 같다. 분명히 잘못됐다고, 우리 사회를 움직이고 또 굴러가게 만드는 그 무언가에 잘못이 있다고. ‘도희야’와 같은 영화들이 그래서 고통스럽고 아프고 힘들게만 느껴지는 지도 모르겠다. 이미 우리 사회가 잘못 굴러가고 있다는 것은 ‘도희야’가 말하지 않아도 다 알고 있는 사실 아닌가.


<김범진 님은 언론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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