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와르, 트랜스젠더, 액션... 혼돈의 부조화
느와르, 트랜스젠더, 액션... 혼돈의 부조화
  • 김범진 기자
  • 승인 2014.06.18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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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진의 문화 뒷마당> 영화 '하이힐'



요즘 같은 깨인 세상에서 이런 소리를 하면 맞아 죽기 십상이다. 하지만 싫은 건 싫은 거고 좋은 건 좋은 것이다. 개인 취향마저 ‘깨임의 기준’으로 풀어내야 한다면 감정 독재의 끝을 보여주는 것 아니겠나. 그래서 최근 언론 시사회를 통해 공개된 장진 감독의 ‘하이힐’이란 영화가 아주 많이 불편하게 다가온 것일 수도 있겠다. ‘감성 느와르’란 사상 최초의 오글거리는 단어로 정체성을 표현한 이 영화가 어떻게 대중들과 마주할 수 있을지에 심히 걱정부터 앞선다.

‘느와르’란 장르에서부터 얘기를 출발해보겠다. 30대 이상의 남자들이라면 ‘느와르’는 곧 ‘영웅본색’이었다. 바바리코트와 성냥 그리고 무지막지한 총싸움, 여기에 남자들의 의리가 뒤섞인 이 느와르의 명작은 지금 김보성이 그토록 외치고 다녀 유행시킨 ‘의리’를 말해주고 있었다. 그냥 단순하게 ‘느와르’는 ‘영웅본색’이고 ‘영웅본색’은 남자들의 의리를 얘기하는 영화였다. 유행하는 트렌드와 문화 코드의 원조에 해당하는 이 영화의 출현으로 당시 TV에는 수많은 패러디와 홍콩 영화계의 아류작이 봇물 터지듯 쏟아지는 기현상이 발생했다. 주인공 저우룬파(주윤발)은 국내 한 음료 CF에 출연해 “쌀랑해요~○○○”란 대 유행어를 히트시킨 바 있다.

같은 기준에서 보자면 장진 감독의 신작 ‘하이힐’은 일종의 ‘개념 파괴 느와르’란 말이 더 어울릴 법하다. 우선 ‘느와르’란 단어의 혹은 장르의 해석이 어떻게 변주가 될 수 있는지를 제시한다. 글쎄, 그 결과물이 상당히 이질적이라, 느와르의 향수에 젖어 있던 남성 팬들에게 기본적으로 거부감이 들 것이란 점에 한 표를 던진다. 느와르의 멋과 풍미 그리고 이른바 화면 미학인 미장센 자체가 ‘하이힐’에선 다른 방식으로 해석이 됐다. 더욱이 그 모든 것을 만든 감독이 장진이란 점에서 남성 팬들의 배신감이 클 것이란 시각이 지배적이다.







‘하이힐’이란 제목에서부터 ‘느와르’와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느낌이 강하다. 이미 언론을 통해 공개된 부분이기에 까발리겠다. 남성에서 여성으로 변화를 꿈꾸는 ‘트랜스젠더’가 주인공이다. 성적소수자에 대한 얘기 자체에 큰 거부감을 느끼지는 않는다. 하지만 느와르란 장르와 결합된 이 소재가 주는 이질감이 문제다.

주인공 지욱(차승원)은 이른바 ‘600만불의 사나이’라고 불린다. 조직폭력배들을 전담하는 형사다. 깡패들에게 지욱은 그렇게 불린다. 이유가 있다. 총 한 번 연장(흉기) 한 번 쓰지 않고 조직 자체를 괴멸시킬 정도의 완력을 자랑한다. 남성다움, 아니 마초의 극단을 달리는 남자가 바로 윤지욱이다. 하지만 누구에게도 말 못할 사연이 있다. 바로 지욱의 내면속에 자리 잡은 여성성이다. 지욱은 온 몸이 상처로 뒤덮인 말근육 몸의 엄청난 남자 그자체지만 여성이 되기를 꿈꾼다. 그래서 ‘하이힐’이란 제목의 이중성이 등장한다. 마초적 성향의 형사란 직업과 여성성의 정점인 하이힐의 결합이 이 영화의 얘기다.

굳이 느와르란 장르와 트랜스젠더 그리고 액션의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결합이 ‘하이힐’의 오판이라면 너무 극단적인 해석이 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장진 감독 자체가 갖는 기대치와 느와르란 장르적 해석이 대중들에게 새로운 뭔가를 기대하게 만들고 있기에 문제다. 여기에 트랜스젠더란 다소 민감한 부분을 들이댄 점이 ‘하이힐’의 정체성 혼동을 가져온다. 결국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는 혼돈의 부조화가 ‘하이힐’을 가득 채우게 된다.

영화 속에서 지욱의 ‘트랜스젠더’ 성향 자체를 동성애로부터 출발한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었다. 우선 남성에서 여성으로의 전환증(전문 용어는 생략하겠다)으로 불리는 ‘트랜스젠더’는 내면의 여성성이 남성성을 앞지른 경우 미용적 수술로 신체를 바꾼 사람들을 일컫는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대사 중에 이런 말이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여자가 들어왔다”는 말은 좀 맞지 않는 설명이다. 시작부터 이들은 여자였다는 점에서 트랜스젠더는 이제 제3의 성에서 여성으로 인정받고 있는 시기다. 실제 필자 주변의 트랜스젠더 지인들과의 대화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그들은 태어날 때부터 남성의 신체를 가진 여성이다. 정신이 육체를 지배한 여성이다. 결국 ‘하이힐’은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느와르였단 말인가. 그래서 ‘하이힐’ 자체가 출발이 틀린 영화가 됐다.

장 감독은 “실제 트랜스젠더 분들의 얘기를 참고했다”면서 “98% 이상은 동성애에서 출발한다고 하더라”며 ‘하이힐’의 기본 설정을 설명했다. 그래서 영화 속 지욱도 어린 시절 옛사랑인 같은 반 친구를 잊지 못해 자신의 내면 속 여성성을 키웠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여성에 지배되는 자신이 싫어서 남성의 모습을 더욱 드러내며 ‘600만불의 사나이’가 됐단 얘기다.
‘하이힐’은 이런 기본 설정으로 출발한다. 결국 ‘느와르’란 장르라고 홀로 외치고 있지만 사실은 아주 찐한 러브스토리에 가깝다. 러브스토리라기 보단 완벽한 멜로드라마라고 보는 편이 차라리 속 시원하게 다가온다. 이는 코미디와 드라마 장르에서 발군의 실력을 뽐내는 감독으로 독보적인 존재감을 과시하는 장진의 작법에서도 두드러진다.

장 감독은 충무로에선 사실 전무후무한 세계관을 구축한 장본인이다. 배우 출신으로서 희곡으로 등단했고, 연극 무대에서 연출 감각을 갈고 닦았다. 영화로서 돌아선 뒤에도 그의 장기는 드러났다. 연극적인 스토리 전개와 배우 디렉션 여기에 요소요소에 배치된 코미디적 설정까지 연극의 장점을 고스란히 영화로 끌어 당겨온 인물이다. 때문에 호불호가 너무도 극명하게 갈리는 감독이다. 그의 독특함에 열광하거나 그의 색다름에 강한 거부감을 보이거나.

‘하이힐’은 완벽히 개인적인 기준에서 보자면 초반의 부진 그리고 중반 이후의 정체기를 거쳐 후반부에 들어서야 제값을 해낼 영화로 보인다. ‘느와르’란 장르와 영화를 보지 못한 상태에서 기본 정보 입수 자료로 활용될 포스터의 멋스러움이 영화 자체의 정체성을 호도할 약점이 될 것이다. 결국 느와르의 주요 소비층인 남성팬들이 배신에 가까운 감정을 느낄만한 작품이다. 하지만 ‘입소문’이란 장치가 남아있다. 중반 이후 영화 전체에 흐르는 정서에 공감한 여성팬들의 지지가 이어질 것이며, 후반부에는 느와르가 아닌 ‘멜로’라인에 공감한 여성팬들의 완벽한 지지로 이른바 ‘손익분기점’을 넘길 색다른 장르적 재미에 도달할 것이라 분석해 본다.

장진은 역시 똑똑했다. 영화 초반 지욱이 여성으로서의 극심한 혼돈을 겪는 과정과 그 과정 속에서 이뤄질 수 있는 코미디적인 요소를 영리하게 불어냈으며, 후반부 어떤 선택을 통해 지욱이 진짜 걸어간 길을 확인하는 순간 남녀 관객 모두 아련한 감정의 파도를 느낄 수있을 것이란 사실에 분명히 또 다른 한 표를 던져 보겠다. 결국 ‘하이힐’은 ‘느와르’란 외피를 쓴 멜로드라마로 착각할 수 있지만, 감성적인 부분에서 분명히 ‘느와르’를 요소도 충분히 녹여낸 작품이다. 그래서 ‘하이힐’ 역시 장진의 또 다른 변주가 적용된 그의 필모그래피 중 한 편으로 당당히 이름을 올릴 수 있을 것 같다. 결국 장진이란 이름이 올라가기에 극단적인 호불호가 갈릴 것이란 점은 감안해야 하지만 말이다. 보태서 감성적인 부분으로만 접근하면 남녀 관객 모두의 평균치 이상의 지지를 또 얻을 수도 있겠다. 참 복잡한 영화다.

<김범진 님은 언론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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