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천사는 여기 머문다
<신간> 천사는 여기 머문다
  • 이주리 기자
  • 승인 2014.06.18 17: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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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린 지음/ 문학동네








예한 여성적 감각으로 생명을 사유하는 소설가 전경린이 문학동네에서 네번째 소설집을 펴냈다. 『물의 정거장』 이후 11년,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단단히 써낸 9편의 단편이 담겨 있는 이 소설집은 가히 전경린 문학의 정점이라고 할 만하다. 2007년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악마와 천사라는 본성의 양면성을 감동적으로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으며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천사는 여기 머문다 2」와 2011년 현대문학상을 수상한 「강변마을」, 2004년 대한민국소설상을 수상한 「여름 휴가」 등, 평단과 독자 모두를 만족시켜온 그의 소설이 걸어가고 있는 길은 아직 우리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미지의 장소이다. 지리멸렬하고 고통스럽지만 그만큼 경이롭고 환희에 찬 인생, 끝없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와중에도 그는 하얀 ‘천사’의 날개를 펼쳐내며 살아감을 멈추지 않는다.

‘모든 자유를 가진 것 같지만,원하는 것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 우리 사회 여자들의 갇힌 삶이 전경린의 문학적 관심사였다. 일찍이 ‘정념情念’과 ‘귀기鬼氣’라는 강렬한 단어들로 설명되어온 그의 소설들은, 이제 우리의 내면에 잠재한 고통스러우면서도 찬란한 생명의 빛에 대해 이야기한다. 특유의 시정詩情적인 문체와 세밀한 묘사를 통해 표현되는 것은 뜨겁게 타오르는 사랑의 불꽃이기도 하고, 전락을 향해 달려가는 무거운 현실이기도 하다.

전경린의 사랑은 통속과 관습의 굴레로는 잠재울 수 없는 ‘존재의 비명’이다. 온몸을 휘감는 열정의 시간이 또한 추락의 시간이었음을 깨닫는 순간, 그들의 등에서 천사의 날개가 돋아난다. 광기와 열정의 벼랑 끝에서 마침내 찾아오는 평온과 고요. 이를 통해 전경린의 인물들은 점차 사랑의 외연外延을 넓혀나간다. 홀로이던 그녀들의 곁에 이제 딸과 엄마와 동생과 이웃 여자들이 있다. 그들은 짐승처럼 천진스러웠던 시절을 지나, 평화로운 식물성의 생활을 향해 나아가려고 노력한다.

어둡지만 달콤한 삶의, 사랑의 양면성. 희망이라는 보석을 슬픔이라는 서랍 속에 깊숙이 숨겨둔 우리는, 이제 그 힘으로써 내일로 모레로 글피로 나룻배를 민다. 도망칠 수 없는 삶의 어둡고 찬란한 기록이 한없이 아프고, 눈물겹게 아름답다.

정리 이주리 기자 juyu2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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