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진의 문화 뒷마당> 영화 ‘우는 남자’



2010년 여름이었다. 정확하게 얘기하면, 아니 정확하게는 솔직히 기억나지 않는다. 어렴풋한 기억으로는 그 시기에 불가분의 관계로 회사를 한 달여 정도 쉬었던 기억이 있다. 그때 극장을 다니면서 여러 영화들을 봤다. 아마도 그때가, 아니 지금도 그렇지만 영화에 대한 꿈을 아주 잠시 잠깐 다시 꿨던 기간이었을 것이다. 뭐 지금도 언젠가는 감독이란 타이틀에 대한 꿈을 꾸고 있지만. 그때 극장에서 한 편의 예고편을 보고 큰 충격을 받은 기억이 난다. 단어에 대한 개념 자체가 바뀌게 된 계기가 된 영화다. 이정범 감독의 영화 ‘아저씨’다.

사실 난 ‘아저씨’란 단어와는 좀 거리가 멀다. 혼자만의 착각일 수도 있고, 자만감일 수도 있다. 좀 빼어난 외모 덕에 내 실제 나이보다 평균 5세 이상은 항상 낮게 보고 있으니 말이다. 뭐 지금 나이에서 5세를 빼도 아저씨는 아저씨이니 말이지만 말이다. 한 번은(3년 전인가) 편의점에서 담배를 사다가 주민등록증을 요구하는 호사(?)를 누려보기도 했다. 자랑이냐고? 자랑 맞다. 그냥 생각하면 기분이 우쭐한다. 웃음도 나고, 어찌됐든 난 아직은 아저씨가 아니란 얘기 아닌가. 스스로 아직은 아저씨와는 거리가 멀다고 최면을 거는 중이니깐.

다시 영화로 돌아오자. 제목이 ‘아저씨’다. 그런데 주인공이 원빈이란다. 원빈이 누구인가. 조각이란 단어의 다른 말로 표현될 수 있는 엄청난 외모의 배우 아닌가. 뭐 난 남자를 좋아하는 성적 취향을 가진건 아니지만, 솔직히 기자 생활을 하는 동안 남자 배우 최고의 미모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외모의 소유자다.(물론 얼마 전 그 남자 배우 미모의 순위가 바뀌었다) 그런데 예고편을 보니 원빈이란 배우가 무지막지한 액션을 취하는 것 같더라. 배경 음악도 상당히 그로테스크한 느낌의 아리아적인 음악이다. 묘하다. 근데 난 알고 있다. 이런 예고편의 파괴력이 사실은 자신감을 상실한 영화들의 전략적인 선택이란 점을. 보통 이런 말 들어봤지 않나. ‘예고편 그게 다였다’라고. 기대 반 의심 반으로 예고편의 감동을 간직했다.







영화를 봤다. 우선 사전 정보부터 풀어보자. 이 영화, 이미 대한민국 누구라도 알고 있듯이 주인공은 원빈이다. ‘아저씨’란 영화 제목이자 단어와 원빈의 연관성은 굳이 억지로 끼워 맞추려고 해도 참 어렵게 느껴진다. 그런데 주인공이 원빈이다. 하지만 사실 처음부터 주인공이 원빈으로 정해졌던 건 아니었다. ‘아저씨’란 단어와 너무도 잘 어울리는 수더분한 느낌의 배우 송강호가 ‘아저씨’의 첫 번째 주인공 캐스팅 후보였단다. 송강호의 시나리오 검토 기간 동안 원빈이 우연히 이 시나리오를 보게 된 후 매력을 느껴 출연 의사를 타진했단다. 대한민국 어떤 감독이 원빈을 마다하겠나. 이정범 감독은 그렇게 ‘아저씨’의 주인공을 ‘아저씨’에서 ‘꽃미남 삼촌’으로 변경시켰다. 결과는?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누적 관객 수 600만이 넘는 초대박을 터트렸다.

‘아저씨’의 흥행은 우선 국내 영화, 아니 해외 영화에서조차 보기 힘들던 맨몸 액션의 카타르시스에서 비롯됐다. 사실 영화의 내용은 고리타분할 정도로 아주 고전적인 스토리다. 이웃집에 살고 있는 한 아저씨와 소녀가 어떤 계기로 우정을 나눈다. 하지만 그 소녀가 나쁜 놈들에게 어떤 이유로 인해 잡혀 가고, 세상과 담을 쌓고 살던 이 아저씨가 폭발해 나쁜 놈들을 하나 둘씩 처단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아저씨’의 주인공이 사용하는 동남아 무술 ‘아르니스’의 파괴력, 극중 ‘람로완’으로 출연한 태국의 국민 배우 타나용 웡트라쿨의 인상적인 존재감은 한국 영화 액션 장르의 트렌드 자체를 바꿨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결국 이 영화의 주목은 원빈이란 배우의 캐릭터 해석력도 스토리의 파괴력 혹은 완성도도 역시 아니었다. 할리우드의 액션 스타가 영화 액션의 전부로만 착각하고 있는 국내 영화팬들에게 이름도 생소한 태국 배우를 캐스팅하고, 동남아의 실전 무술이란 생경한 장르를 끌어들인 이정범 감독의 결단력이 ‘아저씨’란 걸쭉한 수작을 만들어 냈다. 관객들에겐 분명 생소하고 충격이었으며, 장르의 발견을 일깨워 준 일대 사건이었다.

4년이 흘렀다. 이정범 감독이 신작을 들고 나왔다. 그에게서 ‘아저씨’를 기억하는 관객들에겐 희소식이다. 가슴이 떨린다. 우선 ‘아저씨’의 충격파를 기대하게 된다. 영화 제목이 ‘우는 남자’다. ‘아저씨’와 ‘우는 남자’의 공통점, 우선 남자가 출연한다. 이정범 감독이야 이미 충무로에서 남자 영화의 정점에 선 인물이 되지 않았나. 여기에 전작에선 원빈이 출연했고, 이번 ‘우는 남자’에선 장동건이 출연한다. 공교롭게도 두 배우는 강제규 감독의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함께 출연해 큰 수혜를 받은 배우들이다. 이전까지 연기력 논란에 시달리던 두 배우는 ‘태극기 휘날리며’로 각각 틀을 깨고 나온 한 단계 성숙한 연기력을 선보인 당사자들 아닌가. 이후 이정범 감독을 통해 각각 어떤 경지에 오른 듯한 인상을 팬들에게 선사한다. 뭐 장동건은 이미 할리우드 영화 ‘워리어스 웨이’를 통해 세계적인 배우라고 해도 무리는 아니지만 말이다.

우선 ‘우는 남자’에 대한 평가다. ‘아저씨’에 대한 장르적 해석력에 대한 접근 방식은 명확하게 존중될 만한 도전이었다. 하지만 ‘우는 남자’는 다소 도식적인 접근법을 택한다. 우선 킬러액션이란 이미 수 없이 반복된 소재를 택한다. 여기에 국내 영화에선 도저히 흉내조차 힘든 총기 액션을 택했다. 그렇다면 총기 액션의 완성도는 어느 정도일까. 사실 총기 액션의 어설픔은 소지섭 주연의 영화 ‘회사원’이 보여 준 충격적인 엉성함으로 모든 게 설명된다. 총기 자체가 불법인 국내에서 관객들에게 총기 액션은 할리우드의 전유물에 해당한다는 인식이 강하다. 무엇보다 총기액션의 핵심 포인트는 사운드의 관리에 따른다. ‘회사원’이 실패한 이유가 그곳에 있었으며, 할리우드 총기 액션의 교본으로 불린 영화 ‘히트’를 봐도 알 수 있는 점이다.

‘우는 남자’는 이 부분에 아주 많은 공을 들인 듯하다. 권총의 종류와 소총 기관단총, 폭약 등 종류에 따라 수많은 사운드 디자인에 심혈을 기울였다. 결과적으로 ‘우는 남자’는 ‘아저씨’의 아우라를 기대한 여러 마니아들에게 충분히 기댈 수 있는 결과물이면서도 동시에 전혀 다른 쾌감을 전하는 색다른 작품이 됐다.

하지만 아쉽게도 ‘우는 남자’의 시작과 끝은 앞서 언급한 ‘총기 액션’이 전부다. 킬러란 소재 자체에서 시작했기에 다소 소재주의 영화로 끝을 맺지는 않을까란 우려가 있었다. 더욱이 ‘우는 남자’는 장동건이란 희대의 비주얼 배우가 출연하지 않았나. 원빈의 비주얼과는 관객들에게 다소 판이한 해석력을 전달하는 외모다. 지극히 개인적인 판단력이다. 원빈은 관객들에게 최소한의 캐릭터 히스토리 정도를 전달하는 외모다. 하지만 장동건은 장르 구분, 캐릭터 구분 없이 어떤 상황에서도 ‘장동건’ 그대로의 모습으로만 존재하게 된다.

한 후배 기자(여)가 ‘우는 남자’ 언론 시사회 후 그러더라. “장동건은 참 고민스러울 것 같아요. 뭘 해도 장동건은 장동건이니, 아마도 이 영화 제목으로 속풀이라도 하고 싶어서 달려들었나 봐요.”

‘우는 남자’ 그래서 이정범 감독이 또 다시 파격적인 결단력을 택했는지도 모른다. 혹시 장동건의 속내를 꿰뚫어 본 것은 아닐까.  


<김범진 님은 언론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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