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종섭 지음/ 김영사






구순九旬의 한문학 원로 손종섭 선생은 젊은 시절 이태준의 《문장강화》에 심취했다. 지금도 우리말 문장에 대한 교본으로 꼽히는 《문장강화》는 산문으로 되어 있지만 우리말 가락과 장단의 묘미가 그대로 녹아 있다. 문장의 리듬에 대한 저자의 관심은 이 책 《노래로 읽는 당시》에서도 살아난다. 인류 문화의 위대한 유산이자 꿈인 당시唐詩를 초당初唐의 왕발과 낙빈왕에서 성당盛唐의 이백과 두보를 거쳐 만당晩唐의 두목과 허흔까지 180여 수의 시로 집대성한 이 책은 당시를 우리말의 리듬과 운율을 살려 번역함은 물론, 평설에서도 우리말의 가락을 살려 유려하게 해설해내고 있다. 또한 모든 번역 시를 리듬에 따라 줄 바꿈하여 그 흥감을 돋구고, 원문에서도 한자를 의미에 따라 나누었으며, 우리말 토를 달아 노랫가락으로 읽을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압운법과 평측율에 의해 정형적인 리듬이 짜여 있는 당시 악보(247쪽·317쪽)를 수록하여 독자들로 하여금 참 감동을 느낄 수 있도록 배려했다. 

시의 리듬뿐만 아니라 시의 해석을 바로잡는 면에서도 저자의 노력은 투철하다. 두보의 시 <등고登高>는 그의 가장 역작이요, 고금古今 칠언율시의 압권으로 정평이 나 있는 명시 중의 명시이다. 그런 만큼 이 시는 우리나라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교재로 채택되어 물 흐르듯 유창한 《두시언해杜詩諺解》의 역시와 함께 회자되어왔다. 그런데 이상스럽게도 마지막 연인 “艱難苦恨繁霜"하니 "倒新停濁酒杯라”만큼은 ‘새로이 술을 끊은 것’으로 잘못 해석되어왔다. 이것은 ‘탁주잔을 새로이 든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 마지막 연 중 ‘정배停杯’란 ‘거배擧杯 → 정배停杯 → 함배銜杯 → 경배傾杯 → 건배乾杯’ 등 음주 동작의 여러 단계 중 하나로서, 술잔을 입으로 가져가기 전에 손에 멈추어 들고 잠시 뜸을 들이는 과ㅐ� 일컫는 용어다. 이백, 백거이, 이숭인 등 여러 시인들의 작품들에서도 역시 술잔을 든다는 의미로 쓰였으며, 시작詩作 당시 두보의 건강 상태, 그리고 무엇보다 <등고>에서 의미의 흐름을 볼 때 ‘술잔을 든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금의 많은 해설가들이 똑같은 오류를 범해왔던 것이다. 이러한 오류가 되풀이돼온 이유는 과거 사람들의 해석에 반기를 들지 못하는 고루한 풍조가 큰 역할을 했고, 가장 중요하게는 시인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그 감정을 느끼려는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감동이란 ‘감정의 떨림’이다. 떨림을 가진 감정은 리듬에 의해서 나타낼 수 있고, 리듬에 의해 재생될 수 있다. 시를 감상함에 있어서 그 시에 내장되어 있는 리듬에 따라 노래로 나타냈을 때 가장 효과적으로 반응하여 독자의 가슴에 재생·재연될 수 있다. 시는 시대로 나는 나대로, 이편에서 저편을 바라보는 시는 구경하는 시일 뿐, 시신詩神에 접신하는 시가 되지 못한다. 아흔 살의 나이지만 홍안의 청년처럼 패기 넘치는 한문학 원로가 전하는 투명한 당시 가락에 함께 귀 기울여보자.

정리 이주리 기자 juyu2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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