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진의 문화 뒷마당> 영화 ‘미녀와 야수'



내가 어린 시절에는 글쎄, 동화라는 걸 별로 구경하지 못했다. 지금처럼 CD도 케이블 방송 ‘VOD 보기’ 서비스도 당연히 없었고, 극장에서 상영되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더더욱 볼 수 없었으니 말이다. 그나마 조악스런 성우들의 과장된 녹음이 귀를 잡아당기는 ‘옛날 옛적에’란 제목의 카세트테이프가 어렴풋이 생각난다. 조그만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에 더 조그만 귀를 가져다 대고 집중하며 듣고 있자니 온갖 상상력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며 환상의 나래를 펼쳐주던 추억 새록새록 하다. 얼마 전, 30년도 훨씬 넘은 이 카세트테이프를 우연히 방청소 도중 찾게 돼 카 오디오를 통해 틀어줬다가 쌍둥이들이 울음을 터트려 난감했던 적이 있었지만 말이다. ‘에코’가 잔뜩 섞인 성우들의 발음이 이제 6살인 요놈들에게는 귀곡산장의 울음소리로 들렸나 보다. 뭐 내가 들어봐도 참 으스스하게 들리긴 하더구만. “옛날 옛날 옛날 옛날~~~옛적에 옛적에 옛적에~~~.” 푸하하하.

요즘 아이들에게 최고의 인기 프로그램은 단연코 ‘겨울왕국’ 아니겠나. 한국말도 떠듬떠듬 하는 딸내미는 영어 주제곡 ‘Let it go’를 나름의 발음으로 거의 완벽히 따라 부르고 하루가 다르게 쏟아져 나오는 각종 캐릭터 상품에 매일 아빠의 지갑만 축나게 하고 있다. 아들놈은 하루 종일 TV를 붙잡고 그 놈에 ‘냉장고 나라 코코몽’과 ‘우주왕자 아이쿠’에 빠져있다. ‘코코몽’이 ‘세균킹’을 무찌를 때 “꺅!!!”하며 주먹을 내지르고, ‘아이쿠 왕자’가 슬픈 일을 당했을 때 “우왕”하며 울음을 터트리는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하는 걸 보면 요놈들도 나름의 상상  속 세계를 즐기는 법을 터득하긴 했나 보다.







사실 내가 어릴 적에는 지금처럼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없었기에 보고 즐길 거리가 분명히 부족하긴 했다. 겨우 본다는 게 재개봉관에서 상영하는 ‘영구와 땡칠이’ 시리즈 또는 ‘우뢰매’ 시리즈가 전부다. 뭐 초등학교를 지나 중?고등학교 정도에 들어가선 오히려 성인용(절대 19금이 아닌) 디즈니애니메이션이 인기를 끌면서 어릴 적의 상대적 박탈감을 해소해주기도 했다. 뭐 이게 타당한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인어공주’ ‘라이언 킹’ 등은 아직도 기억 속에 생생한 명작 중에 명작이니 말이다.

그때 본 기억 속 애니메이션 중 하나가 바로 ‘미녀와 야수’다. 내용이야 전 세계가 공유하는 걸작 중에 걸작이니 따로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내 또래의 관객들은 ‘셀린 디온’이란 노래 정말 잘하는 캐나다 퀘벡(프랑스어를 쓰는 지역) 출신의 여가수가 부른 ‘뷰티 앤 더 비스트’란 주제곡을 먼저 떠올릴 법도 할 것이다. 아니 이 노래가 먼저 떠올라야 정상이겠지. 물론 이보다 훨씬 전 TV에서 보여 주던 미국 드라마 ‘미녀와 야수’도 기억난다.

‘터미네이터’ 시리즈로 유명해 진 린다 해밀턴, ‘헬보이’의 주인공 론 펄먼이 야수 분장을 하고 나온 현대판 ‘미녀와 야수’는 묘한 판타지의 콘셉트로 어렸을 적 기억을 떠올려주는 촉매로 작용한다. 미녀와 야수의 ‘플라토닉’한 러브 라인도 상당히 매혹적이었다. 초등학교 5~6학년이었던 내겐 첫 성교육 지침서였던 셈이다.

‘미녀와 야수’는 내겐 정말 색다른 감성을 다시 일깨워주는 오랜만에 만나는 판타지 영화다. 우선 ‘미녀와 야수’가 미국 동화로만 생각하고 있던 내게 새로운 사실을 깨닫게 해줬다. 이 동화가 미국이 원산지가 아닌 1800년대 프랑스 여류 소설가의 작품이란 점이다. 깜짝 놀랐다. 그동안 영어로만 말하는 사람과 그림을 통해 학습해온 내 기억이 무참히 깨지는 순간이다. 개봉을 앞둔 이 영화는 원작의 충실성을 증명하기 위해 할리우드가 아닌 프랑스 제작진을 투입했다. 당연히 대사도 프랑스어다. ‘봉쥬르 마드모아젤, 위! 위! 위!’(‘위’는 영어로 ‘예스’라는 뜻, 영화 속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대사다.)

이번 ‘미녀와 야수’는 지금까지 나온 여러 버전의 ‘미녀와 야수’와는 좀 다른 길을 걷는다. ‘미녀와 야수’ 탄생 후 수많은 버전이 공개됐고, 스크린을 통해 상영된 것은 1946년 ‘천재 시인’으로 불린 프랑스의 장 콕도가 만든 버전 이후 첫 실사다. 사실 장 콕도 버전도 원작과는 좀 거리가 있었다. 이번에 개봉하는 작품은 미녀보단 야수의 스토리에 좀 더 집중한다.

주인공 미녀 벨(레아 세이두)은 프랑스 부유한 상인 집안의 막내딸이다. 어떤 사건으로 인해 집안이 몰락하고, 성실한 벨은 허영심 많은 오빠와 언니들을 대신해 집안일을 도맡아 한다. 어느 날 집으로 돌아오던 아버지가 벨이 부탁한 장미꽃 한 송이를 꺾어다 주지만 그 장미로 인해 벨의 집안사람들은 모두 죽을 위기에 처한다. 바로 야수(뱅상 카셀)가 소중히 생각하던 장미였던 것이다.

야수의 성으로 향한 벨은 그곳에서 야수와 함께 생활하며 지낸다. 시간이 지날수록 어떤 환상에 사로잡히기 시작한 벨은 야수의 인간시절 모습과 그 안에 담겨 있는 슬픈 진실을 보게 되면서 야수에게 연민의 정을 품게 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 야수는 멋진 왕자였지만 어떤 저주로 인해 흉측한 야수로 변해버렸고, 진실한 사랑을 얻어야만 인간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이번 ‘미녀와 야수’는 그동안 애니메이션 드라마 그리고 영화들이 공개했던 스토리 안에서 생략된 야수의 얘기를 촘촘히 채우는 것으로 다른 버전의 슬픈 러브스토리로 탄생됐다. 여기에 더욱 색다른 점은 그리스 로마 신화 가운데 신들이 인간의 모습으로 변신해 인간들을 유혹하는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를 끌어들였다. 황금 사슴과 숲의 요정 그리고 용맹하던 성주, 여기에 ‘약속’이란 영화적 장치가 더해져 ‘비극적인 야수’의 탄생 과정을 만들어 냈다.

‘미녀와 야수’의 흥미 요소는 ‘야수’의 비주얼이다. 이미 수많은 버전의 작품을 통해 드러난 바 있다. 고전적 방식의 분장부터 애니메이션의 그것까지. ‘야수’란 콘셉트에 걸맞게 ‘야수’의 종류도 여러 가지였다. 사자, 호랑이(줄무늬가 있다), 멧돼지, 진짜 괴물 등등. 이번 개봉 버전의 ‘미녀와 야수’ 속 야수는 완벽에 가까운 ‘사자 분장’으로 화제를 모을 전망이다.

‘야수’ 역을 맡은 프랑스의 국민배우 뱅상 카셀은 영화 전체 가운데 무려 3분2에 해당하는 시간 동안 두터운 야수 의상과 특수 라텍스 슈트를 입고 연기를 했다. 이 의상을 만드는데 무려 특수분장 스태프 250명이 매달려 실제로 털 한 올까지 수작업으로 만들었단다. 무게도 상당해 영화 촬영 기간 동안 뱅상 카셀은 무려 10kg이나 체중이 감소했다고. 하지만 두꺼운 야수의 마스크 속에서도 우수에 찬 눈빛은 뱅상 카셀의 그것을 너무도 쏙 빼닮아 경이로울 정도다.

영화 전체를 장식한 기묘한 느낌의 세트도 볼거리 측면에서 결코 놓칠 수 없는 요소들이다. CG를 의심케 하는 이 모든 장면들이 사실은 실제 제작된 세트라고 하니 경이로울 뿐이다.

국내에선 ‘미션 임파서블: 고스트 프로토콜’에서 미스터리한 킬러로 등장해 강한 인상을 남긴 레아 세이두의 새로운 면모를 볼 수 있는 작품이기에 더욱 즐거운 관람이 될 수도 있겠다. ‘미녀와 야수’를 통해 순수와 관능, 그리고 고전의 매혹 여기에 무심한 듯 내뱉는 프랑스어 대사가 더해지면서 이제껏 스크린에서 본 적 없는 새로운 여성을 그는 창조해냈다.

전체스토리가 액자식 구성으로 이뤄진 탓에 ‘미녀와 야수’는 전반적인 관람 집중도가 상당히 높은 편이다.

야수는 벨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이런 나라도 사랑할 수 있겠나”라고. 마지막 순간 벨은 당연히 그에게 “이미 사랑하고 있다”며 마음을 연다. 혹시 벨은 자신이 본 환상 속 야수의 인간시절 모습의 화려함에 매혹된 것은 아닐까. 저런 멋진 왕자라면 내가 그 저주를 풀어서 함께 결혼하면 그만이라고. 영화 마지막, 그에 대한 해답을 제작진은 완벽하게 제시해준다. 궁금하면 꼭 극장에서 확인하길.

오랜만에 동심으로 돌아가는 계기를 ‘미녀와 야수’를 통해 만나보길 바란다. 적극 강추한다.


<김범진 님은 언론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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