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박혜령 영덕탈핵발전유치백지화투쟁위원장






단 한 번의 사고가 국운 좌우

일본 후쿠시마 사고 후 전 세계가 우려하던 내부피폭이 최근 일본의 한 의사에 의해 재확인되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코피를 쏟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의 원인으로 내부 피폭을 지목하고 나섰다. 이 발표로 일본 사회가 흔들리는 것은 그동안 일본 정부와 인터넷 우익 세력들은 코피와 원전사고의 무관함을 일관되게 주장해왔기 때문이다.

논란은 효고현 고베시 추오구의 한 진료소에서 근무하는 고치 히데오 소장이 지난 12일 나고야에서 열린 일본사회의학회에서 후쿠시마 지역에서 내부 피폭으로 코피를 흘리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주장했다는 내용의 기사가 신문에 실리면서 시작됐다. 고치 소장은 고베대학 의학부를 졸업했으며 효고현에서 35년 이상 피폭자 치료를 해온 의사다. 특히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피난민들의 건강관리를 담당해 왔다고 한다.고치 소장에 따르면 후쿠시마 피난민 2명 중 한 명이 가족 등의 코피를 경험했다. 갑자기 코에서 피가 나고 평소 코피를 거의 흘리지 않는 아이들이 갑작스러운 출혈을 보인다는 점이 특징이다.고치 소장은 사고 원전에서 확산된 방사성 세슘 등이 공기 중에 떠도는 금속입자를 오염시켰고, 이런 금속 입자가 콧속 점막에 붙으면서 코피가 나오는 것으로 판단했다.지금까지는 원전사고와 코피는 별다른 연관성이 없다는 주장이 많았다. 500mSv 이상의 방사선이 전신에 노출될 경우 코피가 날 수 있지만 아직 후쿠시마에서는 이처럼 피폭이 된 사례가 없었다는 것이다. 얼마 전 요리만화의 원전인 ‘맛의 달인’의 작가 카리야 테츠(73) 씨도 방사능에 피폭돼 코피를 쏟는 등 상상할 수 없는 신체적 고통을 겪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진 재해지역에 들어갔다가 갑자기 밤마다 코피를 쏟게 됐다며, 밤마다 며칠 동안 코피가 흘렀고 병원에 가도 코피와 방사선은 인과관계가 없다는 말만 들었을 뿐이라고 했다. 또 알 수 없는 피로감도 느꼈는데, 나와 함께 취재에 동행했던 인력도 코피와 권태감에 시달려야 했다며 잔인한 말이지만 원전 사고 인근 지역은 사람이 살아서는 안 되는 곳이 돼버렸다고 증언했다.

단 한 번의 사고로 전 일본 사회가 겪게 될 이 같은 혼란과 고통은 시작에 불과하다. 급증하는 암발병을 비롯한 각종 질환에 일본 정부는 원전사고와 무관하다고 우길 것이고, 일본 국민들은 고스란히 고통을 감내해야 할 것이다.







폐로 계획조차 없는 한국 원전정책

전 세계 원전의 가동연수는 평균 25년 정도이다. 물론 수명연장으로 가동연수를 늘리는 곳도 있다. 그러나 평균 가동연수는 한국의 원전가동연수를 훨씬 밑돈다. 이유는 간단하다. 위험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원전은 고리1호기와 월성1호기의 설계수명 30년, 그 외에는 모두 40년이 설계수명으로 되어있다. 국내 최고령 원전인 고리 1호기는 2007년 6월 설계수명이 끝났으나 이듬해 1월 계속운전 승인으로 수명이 10년 연장돼 2017년까지 가동 중이고, 2017년 재연장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2012년 11월로 설계수명을 다한 월성1호기의 수명연장 결정은 1년 6개월여 동안 표류하고 있다. 원전 운영사인 한국수력원자력은 작년 7월 월성 1호기에 대한 자체 `스트레스 테스트`(지진 등 재난 상황을 가정한 원전 안전성 평가)를 마쳤고, 현재는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와 민간이 각각 검증단을 구성해 스트레스 테스트 내용을 검증하고 있다.

부산 시민들과 경주 시민들은 불안해서 못살겠다며, 수명연장을 반대하고 있다. 이번 6.4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부산시장과 경주시장은 모두 수명연장에 반대한다는 정책을 내걸고 당선되었다. 시민들의 여론을 정확하게 읽은 결과이다.







누구를 위한 핵발전 확대정책

핵발전소 건설에는 막대한 이해관계가 얽혀있다. 발전소 하나 때문에 최소 100년간 토목, 건설, 금속, 전자, 기계, 화학 등의 온갖 분야가 먹고 살 수 있다. 우리는 이들을 ‘핵마피아’ 라고 부른다. 여기에는 민간기업·공기업·관료·연구기관·전문가·언론·정치인 등 다양한 분야가 포함되고 지방행정이 들러리를 선다.

이익을 보는 방법은 다양하다. 핵발전소를 운영하고 송전탑을 건설하는 것은 한국수력원자력과 한국전력 같은 공기업들이다. 이들은 많이 지을수록 몸집이 커진다. 공사계약, 입찰 같은 것도 많아져 쓰는 돈의 규모도 커지고 떡고물도 많다. 최근 불거진 한국수력원자력 직원의 원전에 부품을 납품하는 업체로부터 뇌물을 받거나 품질보증서를 위조해 구속된 사건들이 이를 증거한다. 이런 사건은 후쿠시마 사고이후 안전성 강화를 외쳤지만, 발생할 수 밖에 없는 핵발전을 둘러싼 검은 이해관계의 단면이다.

핵발전소는 1개를 짓고 원자로와 기계를 설치하는 데 3조원이 넘는 돈이 들어가는 대형 사업이다. 원전 공사는 재벌 건설사들이 수주한다. 현대건설, 삼성물산, 대우건설, SK건설, GS건설등이 핵발전소 건설 공사를 수주한다. 원자로는 두산중공업이 공급한다. 그 외에 원전에 필요한 각종 기계와 부품을 납품하는 회사들이 있다.

 지역 주민들에게 ‘엄청난’ 위험 부담의 댓가로 주어지는 보상과 지원에 비해 ‘엄청난’ 금전적 이해관계가 걸려있다. 그 외 추정되는 폐로 비용만 6000억이 넘으며, 폐로하는데는 짓는 시간보다 몇 배인 수십 년의 시간이 소요되는 고비용의 에너지 생산방법이다. 이런 사실들은 철저히 은폐되어 있다.

핵발전과 관련해서 쓰이는 공적 자금 또한 막대한 규모이다. 매년 5천억 원을 원자력 관련 연구·개발과 용역에 쓰는 것으로 추산되며, 정부는 시민들의 전기료로 조성한 기금에서 연간 100억원씩 원자력문화재단을 지원해 핵발전의 필요성을 홍보한다. 핵발전은 막대한 이권사업이고, 이권사업을 옹호해서 생겨난 자리나 돈은 또 다른 비리를 양산한다.  

원전 건설에 소요되는 수조원의 비용은 현대건설 등 소수 재벌 기업에 집중되고, 정치권은 이들의 이권을 보전하며 공생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원전 정책, 더 나아가 에너지 정책도 핵마피아들에 의해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예로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자 원전 수출을 부르짖으며, 180억 달러 중 90억에서 110억을 장기 대출해 준다는 조건으로 아랍에미리트에 원전을 덤핑 수출했다. 그 이익은 물론 핵마피아들이 볼 것이다. 아랍에미리트에 수출했다는 원전 건설 공사는 6조 4000억원에 달한다. 이 공사는 현대건설과 삼성물산이 나눠가지게 된다.

이것뿐인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34일이 지난 시점, 여전히 다수의 실종자가 존재하고 있고 국민의 안전에 대한 국가의 통찰을 요구하는 여론이 들끓고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에 대해 머리를 조아리며 책임을 통감하는 대국민 담화 직후 UAE로 출국해  가장 위험한 시설인 원자력발전소 세일즈에 나서 국민들을 경악하게 했다.







에너지정책 전환만이 답

현재 많은 나라들에서 원전 증설을 포기하고 가동 중인 원전도 점차 멈추고 있다. 수십만년동안 사용후 폐연료봉을 안전하게 저장할 곳이 전 세계에 단 한 곳도 없다는 것도 핵발전을 멈추게 하는 주요한 이유이다. 그러나 땅덩어리도 작은 나라 한국에는 무려 23개의 원전이 돌아가고 있다. 게다가 지난 2014년 9월 제2차 국가에너지기본계획에 2035년까지 40여기 이상 원전가동수를 늘릴 게획을 발표했다.

정말 우리는 ‘죽지 못해 안달 난 국가’인가. 게다가 우리는 당장에 돈만 벌 수 있다면, 위험은 은폐하고 매장하고 미래에 떠넘기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지도자를 둔 나라인가?

아직도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원전 없이 살 수 있냐, 기름 한 방울 안 나는 나라에서.’ 하지만 기름 한 방울 안 나는 나라 중에 우리처럼 핵발전소를 마구 지어대는 나라는 지구상에 단 한 곳도 없다.

뉴욕에 후쿠시마 원전 사태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일본의 지식인과 활동가들이 뉴욕을 찾았다. ‘원전 없이 살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그들은 단호하게 말했다.

“그건 문제가 안 됩니다. 우리는 이미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일본 대중들은 지금 거기에 대한 두려움이 없습니다. 대중들이 나서서 원전을 폐쇄시키고 있습니다. 밤에 조금 어둡다는 것, 몇몇 가전제품을 못 쓴다는 것, 그건 문제도 아닙니다. 이번에 확실히 깨달았습니다. 정말 걱정인 것은 우리가 알 수 없는 때 알 수 없는 이유로 죽어간다는 겁니다. 내부피폭이 문제입니다. 숨 쉬는 공기, 마시는 물, 먹는 음식을 통해 우리는 피폭될 것이고 수십 년 간, 우리 자신과 아이들은 ‘암’ 등에 시달리며 죽어갈 겁니다. 우리는 죽음을 낀 채로 일상을 살게 될 겁니다. 과거 우리가 원전을 용인함으로써 우리는 앞으로 엄청난 고통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물러서지 않겠습니다.”

후쿠시마에서 40km가 넘게 떨어진 곳에서도 아이들의 갑상샘 암이 50%에 달하는 일본은 생존의 위기를 경험하고 있다. 일본의 주부들은 ‘직접’ 측정기를 들고 다니며 식재료의 방사능 수치를 재고 아이들이 자주 다니는 곳의 방사능수치를 체크한다. 정부와 언론, 전문가들에게 삶을 맡겨 놓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일본을 통해 체르노빌을 통해 배운 사실을 이제는 실천해야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의 이 시간과 공간이 조상과 공유하는 미래이자 현재이듯, 우리가 살아갈 시간, 우리의 후대들이 살아갈 시간도 공유할 시간과 공간이 될 것이다.

우리는 문제를 은폐하고, 미루고, 심지어 문제를 모르고 있기도 하며 외면하며 아무런 대책 없이 그냥 모든 것을 ‘미래’에 미루어 둔다면, 수습할 수 없는 암울한 미래가 올 것은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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