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냐 하트넷 지음/ 고수미 옮김/ 돌베개






깊은 밤, 안드레이와 토마스 형제가 갓난쟁이 여동생이 잠들어 있는 배낭을 짊어지고 잰걸음을 옮긴다. 아이들은 폭격으로 폐허가 된 거리를 지나, 사막처럼 고요한 마을에서 작은 동물원을 발견한다. 철창 속에는 전쟁으로 버림받은 늑대, 사자, 독수리, 원숭이, 곰 등이 굶주림과 공포에 지쳐 떨고 있는데……. 제2차 세계대전으로 폐허가 된 동유럽의 어느 작은 동물원을 배경으로, 부모를 잃은 집시 삼 남매와 주인에게 버림받은 동물들의 하룻밤 이야기가 꿈결처럼 펼쳐진다.
소냐 하트넷은 명실공히 오스트레일리아를 대표하는 작가로, 2008년에는 아동문학상 중 첫손에 꼽히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상을 수상했다. 이 책 『한밤의 동물원』에서 그녀는 전쟁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특유의 우화적 상상력과 신비로운 서정성으로 따뜻하게 풀어낸다. 작가의 이전 작품들이 주로 잔혹하고 비극적인 세상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서늘하게 그려내 묵직한 아픔과 충격을 안겨 주었다면, 『한밤의 동물원』은 고된 현실을 견디게 하는 아름다운 꿈과, 자신은 물론 자신보다 약한 존재를 끝내 지켜 내는 용기와 선의를 보여 준다. 그리고 마침내 희망이 고개를 내밀 때 독자들은 행복하게 마지막 책장을 덮을 수 있을 것이다. 2011년 오스트레일리아 어린이책위원회(CBCA)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었고, 카네기 메달 최종 후보에 올랐다.

소냐 하트넷은 이 책에서 구체적인 지명이나 연도 등을 언급하지 않는다. 독일어를 쓰는 군인들이 집시들을 학살하고 끌고 가는 장면이나 동물원 이름패에 쓰인 체코어 등의 장치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체코가 배경이라고 넌지시 힌트를 줄 따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놀랍도록 생생하고 사실적이다. 침략군 군인이 집시 부모가 보는 앞에서 그 자식을 총으로 쏘아 죽이는 장면이나 길에서 마주친 사나운 노파가 집시 아이들을 향해 거머리니 기생충이니 하며 저주를 퍼붓는 장면은 섬뜩할 정도로 생생하다. 시대와 명분을 막론하고 전쟁은 인간을 황폐하게 만든다는 사실이 절실히 와 닿는다.

그동안 소냐 하트넷의 많은 작품들이 한없는 슬픔으로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면, 『한밤의 동물원』은 잃어버리고 실패하고 지친 지난날을 감싸 줄 희망을 내비치며 따뜻한 감동으로 독자를 가슴 벅차게 만들 것이다.    

정리 이주리 기자 juyu2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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