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진의 문화 뒷마당> 영화 '명량'


막연하게 어린 시절이라고 하자. 지금으로부터 한 30년 전 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 시절 부모님이나 친척 어른들 혹은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형이나 누나에게 어떤 칭찬을 듣거나 무언가 보상을 받아야 할 때 입버릇처럼 내뱉던 말이 있다. “그러면 100원 만.”

무언가 사고 싶거나 혹은 갖고 싶은 게 있어도 항상 입에서는 정해져 있는 말처럼 튀어나왔다. “100원만.” 웃기게도 당시에 그 100원이면 모든 게 해결이 됐다. 동네 구멍가게에서 빵 하나를 사먹어도 100원. 하물며 동네 오락실에서 오락 한 번이 50원 이었으니 말이다. 100원은 내게 세상의 기준이었고 그 기준은 항상 그 조그만 동그라미 안에서 이뤄졌다. 그리고 30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당시에는 그냥 그 100원짜리 동그란 원 안에 그려진 어떤 할아버지가 누군지도 몰랐다. 어린 시절의 내 욕망(그 욕망이라고 해봤자. 동네 구멍가게에서의 쭈쭈바 혹은 불량식품 그것도 아니면 오락실에서의 오락 한 번 정도)을 채워주는 주인공 할아버지로만 생각했으니. 그 분이 한반도의 역사를 지금으로까지 이어지게 만들어 놓은 위대한 영웅 이순신 장군이란 점은 정말 몰랐다.







광화문 한 가운데 세워진 이순신 동상을 보면서 어린 시절 느낀 점이다. 대체 저 할아버지는 뭘 잘못했기에 이 추운 날 저 꼭대기 위에 올라서 긴 칼을 옆에 차고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는지. 무슨 잘못을 했기에 저런 벌을 받고 있는지. 어머니가 사주신 위인전을 읽으면서 그 분이 거북선이란 배를 만들고 왜적을 무찌른 멋진 영웅이란 것을 알게 됐다.

영화 ‘명량’ 이야기다. 국내 영화사에서 이순신 장군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품은 지금까지 몇 번 없었다.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마블 스튜디오의 아이언맨, 헐크, 토르, 캡틴 아메리카가 국내 엔터테인먼트 시장을 장악한 마당에 진짜 우리의 영웅 이순신 장군이 이렇게 철저하게 무시를 당해왔다는 점은 시대의 아이러니다. 아니 그런 영웅을 필요로 하지 않는 지금의 시대 자체가 모순인지도 모른다.

12척의 배로 왜군 대함대 330척을 무찌른 전남 나주 울돌목에서 벌어진 ‘명량해전’은 전 세계 해전 역사에서 불가사의한 전쟁으로 불리는 대첩 중에 대첩이다. 우선 숫자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 격한 조류로 유명한 울돌목을 이용해 왜군의 대함대를 무찌른 이순신 장군의 기상천외한 진법과 전술은 영화 속 스크린에서 확인해 보는 것만으로도 믿겨지기 힘들 정도다.

영화는 이렇게 시작된다. 임진왜란 패전 후 일본은 다시 조선을 재침한다. 정유재란이 일어난 것이다. 당시 원균이 이끄는 조선 수군은 ‘칠전량’ 해전에서 대패한다. 조선 수군은 괴멸 직전에 이르렀다. 정말 앞뒤가 맞지 않게 이 시기 조선 조정 대신들의 모함으로 이순신 장군은 모함을 당해 옥사에 갇히고 고문을 당한다. 정유재란 발발로 백의종군을 명받은 이순신은 결국 삼도수군통제사(현 해군참모총장)에 재임명된 뒤 몰려드는 왜군에 맞설 전략을 짜낸다. 그에게 남은 것은 칠전량 해전에서 살아남은 판옥선(당시 조선 수군의 군선) 12척이 전부다. 그리고 남은 구선(거북선) 한 대가 희망이다.

이순신 장군의 얘기를 함에 있어서 가장 많이 거론되는 얘기가 바로 거북선이다. 거북선은 역사적으로 ‘명량’ 해전에선 참여하지 않는다. 영화 속에서도 실제 전투에는 참여하지 않는 것으로 그려진다. 몰려드는 왜군에 대한 조선 수군이 느끼는 공포감을 막아주는 방패막이가 겨우 한 대만 살아남은 구선(거북선)이다. 하지만 그 한 대 남은 구선마저 그 공포감이 잡아먹는 사태가 발생한다.

영화는 128분의 러닝타임 가운데 무려 61분을 해상 전투 장면에 투입할 정도로 엄청난 물량 공세를 펼친다. 12척의 배로 330척이 넘는 적선을 격파한 이순신 장군의 해상 전법은 지금도 전 세계 강대국의 해군이 교과서에서 실을 정도로 엄청난 전법이라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영화에선 이순신 장군이 펼친 신기에 가까운 전법이 이뤄낸 대승이라고 ‘명량’ 해전을 말하지는 않는다. 이순신 장군 그분도 두려웠다. 죽음이 두렵지는 않았다. 이미 독버섯처럼 퍼져 있는 괴멸 직전의 수군에게 퍼진 ‘두려움’이 두려웠고, 백성들에게 퍼진 왜군의 잔인함, 반대로 자신들을 버리고 제 살길 찾기에 바쁜 조정에 대한 배신감에 대한 두려움이 두려웠다. 영화에서 등장하는 두 번째 유명한 대사가 나온다. “그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 있다면 말이다.”

‘명량’ 전투를 앞두고 뜻하지 않은 사건으로 남은 희망이던 ‘구선’마저 잃게 된 이순신 장군은 자신을 둘러싼 그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 있는 기회를 엿보던 중 울돌목의 회오리치는 조류를 보면서 무언가를 얻게 된다. 손자병법에도 나오는 내용이란다. “한 사람이 길목을 지키고 있으면 능히 1000명의 사람도 막아 낼 수 있다”고. 그는 좁은 길목의 울돌목에서 남은 잔존하는 조선 수군들을 이끌고 왜군 대함대와 맞선다. 사실 이 장면부터 영화는 인간 이순신이 아닌 영웅 혹은 ‘신’ 이순신의 모습을 그려 약간의 현실감과 괴리를 선택한다. 영화란 매체가 창작을 기반으로 한 결과물임을 증명할 때 이런 선택을 지적할 수는 없지만 주인공 이순신 자체가 역사적 존재 인물이고, 한반도 역사 최고의 영웅적인 위인이란 점을 들춰볼 때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는 선택이란 점도 우려를 낳고 있다. 글로벌 문화권이 된 21세기에서 역사적 인물에 대한 이런 창작적 평가는 자칫 국수주의적인 분위기로 흐를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일본과의 극심한 정치적 대립이 이뤄지고 있는 지금의 분위기에서 왜 하필이면 이순신 장군을 모델로 한 영화를 만들었냐고 질문한 한 영자신문 기자의 질문이 결코 허무맹랑하거나 가볍게 들리지 않는 점도 이를 반증하고 있다.

실제 역사에서도 아니 역사란 각자의 기준에서 해석되고 기록되고 구술되고 구전된다. 혹자는 이순신이 이뤄낸 ‘명량대첩’ ‘한산도대첩’ ‘노량대첩’을 가리켜 ‘과대평가된 전투’라고 부르기도 한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에게 대패한 왜군 장수 와키자카 야스하루를 가리켜 ‘왜군의 명장’으로 부르기도 한다. 조선에겐 대원수인 임진왜란의 원흉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일본 전국시대를 마감 짓는 역사적인 영웅으로 추앙하기도 한다. 이런 기준점에서 보자면 자칫 ‘명량’은 이순신 장군의 위대함보단 그의 명성과 영웅성에 먹칠을 할 아이러니의 상황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영화이기도 하단 점을 그 기자는 질문 속에 담아 던졌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온다. 이순신 장군은 적군과 아군 모두를 걱정하고 또 걱정했다. 명량 해전이 끝난 뒤 피로 물들은 울돌목 앞바다에서 긴 칼을 옆에 차고 그 차가운 물을 쳐다보며 읊조린다. “이 수많은 넋들을 어이할꼬.” 이순신의 단순한 영웅담이 아닌 인간 이순신의 고민과 번뇌로 영화 ‘명량’을 마무리 짓는 마침표다운 엔딩이다.

400년 전 이순신은 조선 수군, 일본의 왜군 그리고 조선의 백성과 전쟁에 끌려 나온 일본의 백성 모두의 넋을 걱정했다. 그가 죽음을 자초하면서까지 지켜낸 그 바다. 400년이 지난 지금 아무런 이유도 모른 채 그저 어른들의 말만 믿고 있다가 끔찍한 참변을 당한 어린 넋들이 수백에 달한다. 대체 어떻게 왜 죽었는지도 모른 채 말이다.

‘명량’의 앞바다를 죽음으로 지켜낸 이순신 장군이 통곡할 일이다. 400년이란 시간을 두고 벌어진 시대의 아이러니가 바로 오늘 이 순간에 일어나고 있다.

<김범진 님은 언론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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