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진의 문화 뒷마당> 영화 ‘군도: 민란의 시대’


‘군도: 민란의 시대’가 액션 활극이란 장르를 따르고 있다는 점에선 우선 관람 욕구가 무한 샘솟음을 친다. 활극이란 단어 자체가 가지는 역동성에서 ‘군도’는 힘이 느껴지고, 부제 ‘민란의 시대’가 주는 어감에서 대작의 풍모가 퍼져 나온다. 실제 ‘군도: 민란의 시대’는 순제작비만 135억원에 달할 정도로 엄청난 물량이 투입된 영화다. 여기에 하정우 강동원이란 걸출한 두 톱스타가 완벽한 선악 구도로 등장하고, 이성민 마동석 이경영 조진웅 윤지혜 등 걸출한 조연급 스타들이 제자리에서 힘을 발휘한다.

사실 무엇보다 ‘군도: 민란의 시대’가 주목을 받고 있는 이유중 한 가지는 단연코 연출을 맡은 윤종빈 감독에 대한 높은 기대치다. 36세의 이 젊은 감독은 2005년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 졸업작품 ‘용서받지 못한 자’로 제60회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인 ‘주목할 만한 시선’에 공식 초청될 정도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이후 2008년 ‘비스티 보이즈’, 2011년 ‘범죄와의 전쟁’ 그리고 올해 ‘군도’ 까지 9년 동안 무려 네 작품이나 내놓는 저력을 과시하며 충무로 신진 세력의 파워를 과시했다.







이미 전작 세 편에서 보여 준 시대를 관통하는 그의 탁월한 심미안은 윤종빈을 단 번에 흥행 감독 대열에 올려놨다. 상업성과 작품성 그리고 주제의식 등 모든 면에서 윤종빈은 ‘충무로의 발견’이란 호칭을 듣기에 충분했다. 그런 면에서 ‘군도’가 주목을 받고 화제성을 갖춘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개봉 당시 한국영화 역사상 최고 오프닝 스코어(‘명량’ 제외)란 신기록도 세웠다. 흔한 말로 ‘감독빨’ ‘배우빨’에서 결코 밀릴 수 없는 영화란 점이 어느 정도는 증명된 것이다.

우선 ‘군도’의 장점부터 알아보자. ‘액션 활극’이란 장르적 설정 자체가 가장 큰 셀링 포인트가 될 것 같다. 장르적 설정에 걸맞게 캐릭터의 선악구도 역시 아주 명확하다. ‘활극’ 자체가 ‘싸움, 도망, 모험 따위를 주로 하여 연출한 영화나 연극’이란 사전적 의미에서도 볼 수 있듯이 선악 구도가 명확한 대결이 필수조건이다. ‘군도’에서 선은 지리산 도적떼 ‘추설’ 멤버들이다. 그 면모들 자체가 너무도 화려하다. ‘대장’ 이성민을 필두로, ‘브레인’ 조진웅, ‘힘’ 마동석, ‘여성 캐릭터’ 윤지혜 등 비율적 배분도 선이 명확하다. 이 가운데 준비된 확실한 히든카드가 등장하는 데 바로 하정우가 맡은 쇠백정 ‘돌무치’다. 돌무치는 영화에서 후에 도치란 이름으로 바뀐다.

여기서 돌무치란 캐릭터의 설정 자체가 아주 독특한 웃음 코드를 유발한다. 윤 감독은 자신의 개그적 본능이라고 표현하지만,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그의 영화적 센스가 돋보이는 발상이다. ‘지능은 12세 실제 나이는 18세’로 설정된 하정우의 ‘돌무치’는 존재 자체가 극중 황당함을 넘어서지만 결코 어색하지 않은 존재감으로 자리한다. 그는 영화 속에서 여러 가지 캐릭터적 ‘트릭’이자 ‘스킬’을 통해 돌무치 캐릭터를 완성시켰다. 수레를 끌고 다닐 때의 어기적거리는 걸음걸이는 힙합스타들의 리듬감에서 차용했단다. 머리를 채는 ‘틱 장애’ 동착은 그의 영화적 동지이자 절친 윤종빈 감독의 평소 버릇을 눈여겨 본 뒤 애드리브로 사용한 것을 윤 감독이 무릎을 치고받아 들인 포인트다. 허공을 응시하는 듯한 불안한 시선처리와 어눌한 말투 역시 하정우와 윤종빈 감독이 수많은 대화를 통해 얻어낸 계산의 결과물이다. 이런 돌무치의 설정은 영화 속에서 그와 적대적 관계를 맺고 있는 ‘백성의 적’ 조윤(강동원)과의 대비 관계를 위한 계산이었다.

아이러니한 한 점은 ‘군도’에서 설정된 ‘조윤’의 전사(前史)다. 백성들 공공의 적으로 설정된 그도 사실은 반상의 법도가 확실했던 조선시대 기득권층이 아닌 계급이었다. 나주 지방 대부호의 서자로 태어난 그는 태생적인 계급적 약점으로 자신의 내면 속 악함을 다뤄온 인물이다. 그런 인물을 ‘군도’는 영화 속 계급투쟁의 한편에 내세워 ‘민란의 시대’ 속 인물들의 ‘격정’을 그리는 코드로 사용했다.

격정의 코드는 ‘군도’ 안에서 ‘추설’ 무리들과 조윤의 갈등 구조를 더욱 자극하는 좋은 촉매제다. 이들은 각자에 대한 감정의 골속에서 숨을 쉬고 있다. 조윤은 서자로서 인정받지 못하는 아버지에 대한 ‘사랑’의 갈망이 반대급부의 시대적 필요악으로 드러난 인물이다. 반면 추설의 무리들은 시대적 사회 시스템이 만들어 낸 불합리의 침해에 대한 반발이 그 감정의 골을 만들어 낸 실체다. 주인공 돌무치의 갈등이 양반들의 권력 싸움 속에 소모품으로 전락된 당시 시대상의 쇠백정 계급이 어떤 취급을 받았는지 단적으로 보여 준다. 결국 이런 계층간의 심화된 분쟁의 골이 조선시대 가장 극심한 ‘민란의 시대’의 시대였던 철종 시대의 시대적 배경과 맞물리며 역사적 팩트에 대한 기본 지식도 관객들에게 전달해 색다른 팩션극에 대한 재미를 준다.

윤종빈 감독은 ‘군도’를 포함해 지금까지 총 네 편의 필모그래피에서 계층간의 갈등을 그리는 데 주력해 왔다. ‘군도’ 역시 외피로는 ‘활극’이란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에 방점을 찍고 있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그가 유지해온 작품적 주제 의식에서 결코 벗어나지 않는 뚝심을 발휘한 대작으로 주목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물론 이 같은 작가주의적 장점만이 가득한 ‘군도’는 아니다. 윤종빈 감독의 전작과 달리 약점도 너무나 분명해 흥행성이 어디까지 보장받을지가 의문스럽기도 하다. 우선 출연 배우들이 너무 많다. 최근 영화계에 주력 흥행 코드인 ‘멀티 캐스팅’의 연장선이라고 하지만 ‘군도’의 그것은 좀 다르다. 돌무치-조윤의 갈등 구조에 다른 인물들의 스토리가 곁가지처럼 붙어 있는 모양새지만 완성된 결과물은 그 비율 조정에서 조금은 실패한 모양새다. 워낙 개성이 강한 캐릭터들이 많다 보니 관객들의 몰입감을 분산시키는 효과를 낸다. 결국 137분에 달하는 긴 러닝타임이 상당히 지루한 느낌을 받게 될 수도 있다.

시선이 분산되다 보니 캐릭터 자체들의 존재감도 상대적으로 떨어지게 된다. 사극이란 명호가한 장르와 그 안에서 이유가 분명한 각각의 캐릭터들이 저마다의 사연을 늘어 놓다보니 관객들에게 확실한 눈도장을 찍는 것이 아닌 쉽게 잊혀지는 또 다른 단점도 드러난다. 2시간이 넘는 상영 시간 가운데 돌무치와 조윤의 대결 장면이 사실 몇 장면 등장하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도’가 의미 있는 작품으로서 주목을 받는 것은 시대적 바람에 대한 어떤 요구가 들어맞기에 시선을 사로잡는 것일 수도 있다. 영화 속 배경인 조선 철종 시절이나 180년이 지난 지금의 2014년에도 ‘민란의 시대’는 계속되고 있는 것 같다. 못가진 자들은 항상 짓밟히고 그것에 순응하고 살아야 하는 사회적 시스템의 불합리, 힘을 가진 자는 더욱 더 힘을 갖기 위해 그것이 없는 자들을 핍박하고 억압하고 짓밟는다. 그래서 ‘군도’는 180년 전으로 시계를 돌리거나 앞당겨도 항상 존재하는지 모른다. 그 도적떼의 의미는 조금 바뀌었지만 말이다.

<김범진 님은 언론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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