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담 걸쭉한 ‘익산떡’의 육자배기로 풀어내는 情
입담 걸쭉한 ‘익산떡’의 육자배기로 풀어내는 情
  • 정서룡 기자
  • 승인 2014.08.10 14: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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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숭인동 길 레스토랑 그곳엔 ‘사람’이 있다






술 잘마시는 남자와 여자, 그리고 부부

시끄러운 남자가 있다. 안경 낀 그 남자, 들으면 기분 나빠할 수도 있겠다. 조용한 여자가 있다. 화장을 거의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그 여자는 기분 좋아할까. 둘은 부부다. 처음엔 아닌 줄 알았다. 숭인동 길레스토랑 일대는 수많은 여관들 밀집지역이기도 하다. 길레스토랑에서 한 잔 거나하게 마신 후 그곳으로 사랑하러 가는 커플인 줄 알았다. 종종 그런 커플들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아니 정확한 건 모른다. 화자의 추측일 뿐이다. 그냥 그렇게 보인다. 길레스토랑에서 전날 마주친 커플을 다음날 아침 출근길 여관 골목 어귀에서 마주친 일도 있으니 마냥 근거 없는 추측이라고 몰아세울 수도 없는 노릇이다.

어느 날 마주친 둘. 남자는 약간은 나이가 들어보였다. 여자는 그에 비해 좀 어려보였다. 투박한 생김새의 남자에 비해 여자의 얼굴은 복사꽃 밭 아래 수줍은 처녀의 그것 마냥 복사향이 배어나왔다. 남자 또 기분 나쁘겠다.

화자 보다 늦게 들어선 남자와 여자는 바로 옆 탁자에 자리를 잡았다. 남자, 거침없이 익산떡에게 누나, 라고 부른다. 여자 거침없이 언니, 라고 부른다. 익산떡 하던 대로 사정없이 말 놓는다. 도대체 어떤 사이길래…. 지금이야 당연히 그럴거라고 생각하지만 채 길레스토랑 분위기에 적응 못하던 초반엔 그랬다.

소주에 안주가 놓여진다. 술 잔이 비워지면 비워질수록 남자의 목소리 커진다. 시끄러워진다. 여자 말 조용조용하다. 화자, 일행과 얘기를 나누던 중간중간 남자와 여자 오가는 얘기에 귀기울인다. 굳이 귀기울이지 않아도 다 들린다. 회사 얘긴가 보다. 직장 상사와 부하 직원쯤 되나?? 피치 못할(?) 불륜에라도 빠진…. 그런데 시간이 진행될수록 오가는 내용이 이상하다. 집 얘기가 나오고, 단순히 불륜 사이에 나올 수 없는 그런 심도 있는(?) 얘기들도 쏟아진다.

"둘이 부부세요?"
끝내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한마디 던져보았다. 바로 뒤따르는 남자의 웃음소리 화통하다.
"아닌 거 같죠?? 다들 그렇게 얘기하데…. 혹 불륜 아니냐고."
익산떡도 화통하게 따라 웃는다.
"얘네들, 안지 벌써 10년이 지났구만…."

부부는 한 일터에 근무한다. 처음 만난 것도 같은 일터에서다. "내가 엄청 쫓아다녔지요" 남자의 큰 소리다. 현재 부부의 일터는 숭인동에 있다. 공무원 고시 교재 관련 업무를 한다. 남자는 사장이다. 여자는 많은 일을 한다고 했다. 일터의 주업무인 텔레마케팅에서부터 경리, 그리고 그 외의 소소한 모든 것을 대부분 한다. 여자가 없으면 회사 문을 닫아야 할 정도라고 남자 큰 소리 친다. 마누라하고 새끼 자랑하는 남자, 팔불출이라고?? 보기만 좋다. 오늘도 밥상 차려놓고 남편 기다릴 화자의 마누라가 떠오른다.

그런데 가만히 둘이 술 마시는 폼을 보니, 이거 보통이 아니다. 벌써 탁자 위엔 소주 두 병이 비워져 있다. 그런데 남자 한 병을 더 시킨다. 거기다 틀림없이 전작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여자도 만만찮다. 남자에 절대 뒤지지 않는다. 얼굴에서 복사꽃밭이 떠오른 이유를 알겠다. 익산떡 남자와 여자 사이에 끼어든다. 얼마전 있었던 일이 화두가 된다. 요지는 남자의 외도다. 남자의 친구가 미국에서 나왔는데 함께 룸살롱을 갔다가 외박까지 하게 된 사연이다.

익산떡 줄기차게 물고 늘어진다. 여자도 가세한다. 남자 항변한다. 어떻게 여관에 들어가게 됐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아무 일도 없었다…일어나니까 여자가 옆에 있고 속옷바람으로 자고 있더라…절대 다른 짓은 하지 않았다…술 취해서 그냥 곯아 떨어져 잔 것이다….

"내가요…그때 마누라한테 무릎까지 꿇고 빌었어요."
여자 웃는다. 복사꽃 뺨이 더 붉어진다.

다음호 계속
정서룡 기자
sljung99@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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