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진의 문화 뒷마당> 영화 '브릭맨션'



필자 기억상 시작은 2000년대 초반 무렵이었다. 인터넷에 올라온 믿을 수 없는 동영상 하나가 필자의 눈을 사로잡았다. 아니 필자 뿐 아니라 대한민국 남성들을 ‘올킬’ 했다. 사실 그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전 세계 남성들의 눈을 사로잡으며 온라인을 초토화시켰다. 지금은 ‘신종’이란 단어조차 어색한 익스트림 스포츠 ‘파쿠르’에 대한 시작이었다. 국내에는 처음 ‘야마카시’란 명칭으로 알려졌다. 일본어스러운 이 단어는 당시까지만 해도 그 느낌 때문에 일본에서 건너온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지금에서야 말하지만 ‘야마카시’는 전 세계 최초의 파쿠르 액션팀의 이름이었고, ‘파쿠르’는 도심 건축물을 활용한 이른바 ‘뛰고 넘기’ 액션을 말하는 것이다.

글쎄, ‘파쿠르’가 궁금하다면 인터넷에서 동영상 검색을 해보면 된다. 남자라면 이 동영상에 가슴이 뛰고 심박수가 증가하는 묘한 경험을 하게 된다. 하지만 ‘동경’의 단계까지 가더라도 이것을 따라하게 될 배포를 갖고 있는 당사자가 몇 명이 될지는 의문이다. 쉽게 말하면 이렇다. 20층 높이 아파트 외벽을 맨 손으로 기어오르는 상급자 수준부터, 지하철 계단을 내려갈 때 계단을 밟고 내려가는 게 아닌 다른 방법으로 내려가는 수준의 하급자 코스 정도로 정의하면 된다. 사실 이렇게 설명한다고 ‘파쿠르’의 진수를 알 수는 없다. 눈으로 보고 머리로 받아들이고 결코 이해 안 되는 화면 속 액션에 탄성을 터트리면 그만이다. 경고 하나, 자신이 운동에 천부적인 소질을 갖고 있다고 자부해도 결코 따라 해선 안된다. 이유는 동영상을 보면 된다.







동영상도 있지만 2003년 국내 개봉한 ‘야마카시’가 ‘파쿠르’의 진수를 담고 있는 영화 가운데 한 편이다. 아니 ‘파쿠르’를 영화로 옮긴 첫 번째 작품이라고 해도 좋다. 내용은 아주 간단하다. 프랑스 파리에 있는 한 슬럼가에는 7명의 청년들이 있다. 이들은 지역 내 어린 친구들의 우상이다. 아무런 장비도 없이 건물을 타고 넘는 서커스를 벌이는 이들에게 어린 소년들은 열광한다. 이들을 동경한 한 소년이 따라하다 큰 부상을 당하고, 부패한 의사는 수술비로 거액을 요구한다. 이에 7명의 청년들은 책임을 통감, 부패한 지역 관료의 집을 털어 수술비를 마련하려는 계획을 세운다.

현대판 혹은 프랑스판 ‘의적 홍길동’이나 ‘로빈후드’에 해당할 이 영화는 당시 ‘파쿠르’란 신종 액션을 전면에 내세운 스타일로 해외에선 큰 반향을 일으켰던 작품이다. ‘파쿠르’를 이용한 스토리의 구성 탓에 얘기의 얼개는 다소 헐겁다. 하지만 그것을 상쇄시키는 액션의 스타일리시는 당시로선 획기적인 도전이라고 할 만하다. 배우들 자체가 실제 ‘파쿠르’ 전문 배우들로 이뤄진 탓에 CG나 와이어의 도움 없이 제대로 구현해 낸 실전 액션이란 점에서 지금도 익스트림 스포츠 마니아들에겐 교본과도 같은 영화다. 또한 스토리보단 스타일에 집중한 영화라, 영화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파쿠르 액션 기술이 화려함을 더한다. ‘야마카시’는 보는 맛보단 경탄을 쏟아내는 맛이 거 큰 액션 영화다. 상당히 독특하고 이색적인 영화 가운데 한 편이다.

‘야마카시’가 스타일에 집중한 영화라면 보다 조금 스토리에 맞춰 진화한 영화도 있다. 앞서 밝힌 ‘파쿠르’ 액션이 기본 베이스가 된 ‘13구역’이다. 이 영화는 국내 ‘파쿠르’ 액션 동호회에겐 상당히 의미가 깊은 작품이다. 바로 극중 출연 배우인 데이빗 벨이 전 세계 최초로 ‘파쿠르’를 창시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프랑스 최고의 액션 무술 감독으로 정평이 나 있는 시릴 라파엘리 투톱 콤비가 스크린을 장식한다.

이 영화의 백미 역시 ‘파쿠르’의 향연이지만, 조금 더 대중적인 모양새가 갖춰져 있다. 두 배우가 벌이는 아크로바틱 액션의 만찬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중력을 무시하는 듯한 움직임은 눈과 뇌 사이의 거리를 오가는 세포의 전달 속도를 단축시킬 정도다. 다시 말해 눈으로 즐기는 화면을 이해하는 순간 화면 속 배우들은 다른 장면으로 넘어가 있고 또 다시 기상천외한 서커스식의 묘기를 보여 준다. 워낙 CG스럽고 와이어 액션을 의심케 하는 장면들이 영화 전반에 등장하기에 텍스트 자체로 표현하는 것이 우스울 정도다. 뭐 한 장면 소개하면 이렇다. 뒤에서 수십 명의 적들이 쫓아온다. 주인공은 이들을 피해 복도를 미친듯이 뛰어간다. 그리고 눈앞에는 조그만 창이 하니 있다. 크기는 성인 남자 한 사람이 겨우 들어갈 정도의 크기. 번쩍 하는 순간 중력을 무시한 듯 주인공은 자신의 몸을 날려 그 조그만 창문으로 몸을 던진다. 아뿔싸, 창밖은 15층. 관객들이 외마디 비명을 지르는 찰나, 창 밖에는 기다란 외줄 하나가 매달려 있다. 주인공은 날린 몸을 공중에 쭉 뻗은 채 두 손으로 줄을 잡고 공중제비를 돈다. 그 탄력을 이용해 바로 아래층에 안착. 사실 이런 글 몇 글자로 장면의 매력을 느끼기에는 부족함이란 단어로도 모자란다.

워낙 국내 팬들에게 인기가 높았고, 전 세계적으로도 흥행에 성공한 덕분에 데이빗 벨과 시릴 라파엘리는 전문 배우가 아님에도 제작된 속편에서 다시 한 번 의기투합에 성공한다. 하지만 영화계의 불문율이 있다. ‘형만한 아우 없다’는 불문율은 한국영화를 넘어 유럽의 프랑스 영화에서도 적용됐다. 이런 속편 필패의 법칙은 사실 전편의 흥행에 대한 이유가 크다. 전편의 흥행이 가져온 속편 제작은 아이러니하게 전편에 대한 강박증에 사로잡히게 된다. 무슨 말이냐 하면 이렇다. 아주 간단하다. 제작자 입장에선 이번 영화로 큰 돈을 벌었다. 이어지는 스토리로 속편을 제작한다면 더 많은 돈을 벌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선 전편을 능가하는 ‘셀링 포인트’를 갖춰야 한다. 여기서부터 원작의 매력은 무너지게 된다. 쉽게 말해 과함을 택하는 것이다. ‘13구역: 얼티메이텀’은 프랑스 액션 영화, 결국 ‘파쿠르’란 액션 장르의 맛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채 그저 그런 할리우드식 액션 영화로 전락한다. 규모와 스케일 그리고 스토리 면에서 좀 더 틀을 갖춘 모습으로 극장에 나타났지만, 전작의 매력인 ‘익스트림’의 참 멋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져 버린 꼴이다.

하지만 그게 전 세계 영화계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할리우드의 시각에선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 것 같다. 27일 개봉한 ‘13구역’의 리부트 버전이 있기 때문이다. ‘브릭맨션:통제불능 범죄구역’이란 다소 황당한 제목이지만 원작의 참 맛을 어디까지 살려냈을 지에 대한 의구심은 관객들, 특히 ‘파쿠르’ 마니아들의 몫으로 남겨둬야 할 듯하다. 우선 기쁜 소식은 ‘파쿠르의 원조’이자 원작 ‘13구역’에 출연한 데이빗 벨이 이번 ‘브릭맨션’에도 같은 배역으로 출연했다. 특이한 점은 프랑스인으로서 영어를 전혀 못하던 그가 영어를 배워 대사까지 영어로 구사하는 것이다. 언론시사회를 통해 공개된 장면에서의 데이빗 벨의 영어 실력은 꽤 그럴 듯하다. 아니 솔직히 좀 어색하기는 하다.

물론 이 영화의 최대 셀링 포인트는 ‘파쿠르’ 액션이다. 할리우드 자본이 투입된 작품이라 규모면에서 원작을 뛰어넘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프랑스 영화 자체가 정제되지 않은 거친 남성미를 자랑하고 있고, 그 중에서도 ‘13구역’은 단연 압권이었다. 하지만 할리우드 영화의 경우 계산된 장면 혹은 깔끔하게 재단 된 듯한 느낌이 크다. 흡사 흙탕물을 정수기로 걸러 마시는 느낌이랄까. 그런 면에선 ‘브릭맨션’이 어느 정도로 원작 팬들을 끌어안을지가 의문이다. 그래서 할리우드는 최근 자동차 사고로 사망한 고 폴 워커를 이 영화에 끌어 들였는지도 모르겠다. 폴 워커는 전 세계 영화 시장 가운데 국내에서 가장 큰 성공을 거둔 ‘분노의 질주’ 시리즈 가운데 금발의 남자 주인공이다. 실제 폴 워커는 할리우드에서 카 체이싱 장면을 가장 잘 소화하기로 정평이 나 있었다. ‘브릭맨션’ 속 폴 워커의 모습과 마지막 그를 추모하는 장면에선 왠지 모르게 찡한 감정이 밀려온다. 물론 재미는 알아서 판단하길 바란다. 필자인 난 물음표 하나만 던지겠다.

<김범진 님은 언론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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