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야…연애는 형식적인 수학공식이 아니란다!
친구야…연애는 형식적인 수학공식이 아니란다!
  • 박신영 기자
  • 승인 2014.08.26 16: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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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신영의 이런 얘기 저런 삶>

오늘은 오랜만에 조금 즐거운 이야기다. 방학이 끝나버려 아쉽지만, 그래도 개강 후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흥미로운 이야기를 물어와 꽤 즐거운 수다타임을 가졌다. 어제까지만 해도 방학 마지막 날이라며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괴로워했었는데, 막상 개강하고 나니 이런 소소한 즐거움이 있다. 방학만큼 좋기야 할까마는, 개강하는 것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다. 하긴 잘 생각해보니 대학원에서 처음 맞이하는 방학은 학부 때만큼 즐거운 시간도 아니었다. 특강으로 점철된 생활. 오히려 더위와 싸우며 등하교 하느라 더 고생했던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개강이고 방학이고 간에, 오늘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 그렇게 오랜만에 재회한 내 친구가 주인공인, 듣기만 해도 흥미진진한 연애얘기다. 내 전공특성상 내 주변엔 거의 대부분이 문과생이다. 학부 때는 사귄 친구들의 약 90%가 문과생이었고, 문과 이과의 차이란 것도 거의 실감하지 못하고 살았었다. 내게 이과생들은 뭐랄까, 그냥 수학에 소질이 있는 친구들? 그 정도의 개념이다. 반면 문과는 언어적인 소질이 있거나, 수학을 못하는(ㅋㅋ) 친구들. 바로 나 같은.

어쨌든 그래서 이과 친구들과 딱히 수다떨만한 기회도 잘 없었는데, 올해 새로 사귄 친구는 굉장히 제대로 정석적인 이과생이다. 남중 남고를 나와 제대로 남자만 우글우글한 전공까지. 이과스러움으로 단련된 그 친구의 사고방식은 반대로 문과스러움에 익숙해진 나와 내 주변사람들과는 상당히 다른 종류의 것이라, 이야기 나눌 때마다 신기하고 새로운 느낌이다. 이런 친구가 자신의 연애담을 풀어놓기 시작했으니 아주 흥미롭지 않겠는가. 귀를 쫑긋쫑긋 열고 아주 즐거운 수다를 나누었다.




# 일러스트 정다은 기자 panda157@naver.com



이 친구는 거의 스무 살 중반이 다 되어갈 때까지 일명 ‘모태솔로’로, 여자 친구는 상상의 동물이 아닌가 의심해야 하는 삶을 살아왔다. 남녀성비가 거의 남탕과 견주어지는 자신의 전공 특성상, 주변에 모태솔로 동지들이 아주 많았기 때문에, 그와 그의 외로운 친구들은 ‘드라마는 장르가 로맨스인가 판타지인가’를 고찰하며 사내들끼리 사이좋게 잘 지내왔다고 한다. 실제로 그의 주변에는 커플보다 솔로가 훨~씬, 아주 훨~씬 많았다니까, 연애를 한 번도 해보지 못했다는 게 이상한 일이 되진 않았던 모양이다. 그가 말하길, 학교를 다니면서는 자연스럽게 여자를 만날 일이 거의 없다던가. 여자를 만날 수 있는 건, 교양수업, 아르바이트, 종교 활동 정도가 전부였다고. 물론 몇몇 친구들은 타고난 끼와 센스, 혹은 부모님이 물려주신 유전자 덕분에 그 드문 인연을 발전시켜 깨알같이 이성교제를 하며 캠퍼스의 낭만을 만끽했다.

하지만 줄곧 남자들만 마주하다 보니 여자를 잘 모르고, 심지어는 낯설음에 약간의 공포감마저 느끼게 되어버린 순둥순둥한 남학우들은, 그렇게 조금씩 장기 모태솔로의 길을 걷게 되는 것이다. 그 많던 솔로 동지들도 스무 살, 스물한 살, 스물두 살, 스물세 살… 나이를 먹어가면서 자연스럽게 한번쯤 인연을 만나게 되는데, 유독 몇몇 친구들은 영원히 모태솔로 모임을 탈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조바심이 날만큼, 좀처럼 이성교제의 기회가 허락되지 않았다.

내 친구도, 그런 몇몇 남학우중 하나였다. 그 중에서도 내 친구는, 실제로 이성과 제대로 대화도 나눈 적이 거의 없는 상태였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니 이젠 정말 약간 울렁증이 날 정도로 또래 이성친구와는 대화자체가 이어지지 않는 느낌이었다고. 대체 여자랑은 무슨 말을 해야 하는 지 알 수가 없어져버린다고 했다. 나는 이 대목에서 웃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사람도 있다는 것을 들어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내 눈앞에 있다니. 그게 내가 아는 사람이라니. 내 친구라니!

대부분의 문과생들이 진학하는 전공과는 달리, 그 친구의 전공을 포함한 이과의 전공들은 취업이 보장되는 경우가 많다. 취업에 허덕이는 문과생인 내겐 약간 낯선 개념이지만, 학과에서 취업까지(혹은 대학원을 진학하든지) 쭉 이어지는 것 정도로 생각하면 쉽단다. 바꿔 말하면, 직장을 얻는다고 해도, 남자만 우글우글한 이 생활환경은 바뀌기 어렵다는 뜻이 된다. 친구는, 이렇게 손 놓고 있다가는 영원히 결혼은커녕 여자 손 한번 못 잡아보고 할아버지가 되어버릴 거라는 위기감이 들었다고 했다. 왜 그 위기감이 스물 중반이 되어서야 시작되었는지 의문스러웠지만, 이내 주변 친구들 중 연애를 하고 있는 사람이 몇 없으면, 그게 위기감을 느낄 일이라고 생각 안 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내 주변에서는 오래 솔로생활을 하는 친구가 있으면 연신 ‘커플이 되는 법’, ‘이성이 많은 곳’, ‘이성에게 인기 있는 패션이나 말투’, ‘이거 그린라이트?’ 따위를 화제로 삼으면서 혈안인데. 내 주변에도 그와 비슷하게 스물 중반까지 모태솔로였던 친구가 있었지만, 그녀는 언제나 늘 조바심과 위기감 속에 ‘왜 나는 남자친구가 없는가’를 철학 삼아 살아야했다. 그녀와 그는 이렇게나 비슷한데, 이렇게 다르게 살아왔다니. 그가 나와는 대조적인 분위기 속에서 살아왔다는 것이 와 닿았다.

어쨌든, 그가 뒤늦은 위기감을 느껴, 무언가 변화를 꾀하게 되었을 때가 스물 중반. 그는 정말 닥치는 대로 소개팅을 부탁하기 시작했다. 재미있는 건 소개팅에 임하는 그의 태도였다. 그의 얘길 듣고 있는데, 나는 무슨 실험 일지를 읽어주는 줄 알았다. 그는 하나하나 실험해보고 성공하는 것들만을 모아 소개팅의 매뉴얼을 작성해나가는 듯이 소개팅에 임했다. 한식을 먹으니 실패했다. 이런 농담을 건네니 싫어했다. 두 번째 만날 때 영화를 보자고 했더니 승낙했다. 이런 데이터들을 수집하고, 추려서 어떤 알고리즘을 만들어가는 것 같았다. 이 얘기를 들은 나는 배를 잡고 웃었다. 상대 여자들은 얼마나 황당했을까. 그는 그 ‘알고리즘’을 만들기 위해 당시 연애지침서 같은 책들을 수십 권을 탐독했다고 한다. 그는 나름대로 미지의 세계에 대해 자신이 그간 배워온 방법대로 공부를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놀라운 것은, 그렇게 이뤄낸 것이 꽤 그럴듯해 보이는 경지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농담하나, 데이트 코스나 식사 메뉴 하나까지 다 정형화해 놓은 그의 소개팅 알고리즘은 그래도 가끔씩 제대로 작동하는 모양이다. 몇 번을 사귀기 직전까지 가는데 성공하더니만, 기어코 그 자신만큼 순진한 어떤 아가씨의 이성교제 승낙을 받아내기에 이른다. 그 아가씨가 스물한 살이던가 두 살이던가. 어쨌든 확실한건 그녀도 이성교제가 처음이라고 했다. 그 아가씨 참 험난한 길을 가게 생겼네 하고 농담했지만, 그는 꽤나 진지하게 내게 조언을 구했다. 내가 남의 연애에 조언할 만큼 내공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처럼 처절하게 소개팅 공식을 만들어야 하는 수준은 아니기에, 조언자의 입장에서 그의 고민을 마저 듣게 되었다. 어찌어찌해서 시작된 첫 연애에서 그는 큰 방황을 하게 된다.

그간 그의 목표는 ‘여자 친구를 만드는 것’이었는데, 그를 달성하고 나니 방향성을 잃어버리고 만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런 것은 잘 이해하지 못했다. 연애에 대한 잘못된 접근이 처음부터 잘못 꿴 단추처럼 줄줄이 문제를 만들어내는 것을 모르고, 다만 그때 그때의 문제의 해결을 위해 그는 다시 자신의 ‘연애’를 위한 새로운 알고리즘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모양인지, 나에게 뭐 이것저것을 물어왔다.

그는 여자 친구가 화를 내게 되는 상황이 무언지, 그런 경우 자신에게 무얼 바라는지, 같은 걸 구체적으로 수치화하여 물었다. 질문이 너무나 이과다운 낯선 모습이라, 적잖게 당황하며 대답했다. ‘그건 어떻게 이럴 때는 이렇다 하고 명확하게 데이터화하거나 확률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상황마다 다르고, 같은 이유로 화가 났다고 해도 그때 그때 네게 바라는 태도 같은 건 다를 수 있지 않을까.’ 그는 너무 어려운 개념이라며, 그래서 ‘결론’은 뭐냐고 자꾸만 되물었다. 내가 왜 연애를 하냐고 물었더니, 그 질문이 왜 여기서 나오는지 잘 이해하지 못했다. 연애는 너무나 모호한 것 투성이라,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고, 자기는 무얼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는데 자신의 여자 친구는 자꾸만 화를 낸다는 것이었다. 그는 내게 해법을 요구했고, 나는 그 색다른 사고방식을 가진 이 친구를 납득시킬 수 있을 만큼의 내공이 없었다. 그냥 너 같은 건 연애 때려치우라며 실컷 놀려주고 헤어졌다. 그 친구에겐 씁쓸했겠지만 나는 아주 유쾌한 시간이었다(ㅋㅋ).

이 친구가 이렇게 연애란 것을 도통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이과생이라서’라고 매도해 버리기엔 그 이유로 충분하지 못하다. 이과생 중에서도, 그리고 그 중에서도 연애에 서툰 사람들, 또 그 중에서도 좀 특이한 케이스가 아닐까 생각한다. 연애를 감정적으로 느끼기 전에 너무 학구적으로 접근한 탓이 아닐까. 어쨌든 이 친구는 연애의 목적이 무엇인지 잘 이해하지 못한다. 물어봤더니 ‘결혼?’ 따위의 이야기를 주섬주섬 꺼내더라. 그러니 온통 의도가 이해가 안가고, 결론이 모호하고, 영 이상하기만 한 것이다.

생각해보면, 가끔 평범한 연인들도 사고회로에 오류가 난 듯 커뮤니케이션이 딱 먹통이 되어 버릴 때가 있다. 왜 그런 때 있지 않은가. ‘그래서 어쩌란 거지’ 싶을 때. 연애의 목적이라는 건, 결혼이나 당장의 스킨십 같은 것 이전에 그 관계에서 나오는 ‘교감’자체에 있는 것 같다. 서로에 대한 좋은 감정을 나누고, 그 교감 행위는 내면에 있던 ‘좋은 감정’을 몇 배로 증폭시킨다. 연인 사이에 갑자기 브레이크가 걸리는 일은, 보통 이런 교감을 놓치고 내 친구처럼 이상한 ‘결론’에 집착할 때 자주 일어난다.

연애의 목적을 이해하지 못하는 내 친구에게. 네가 이해할 거라고 기대하진 않지만, 너를 위해 설명해볼게. 그 연애의 목적이라는 건 마치 애완동물을 키우는 것 같은 거야. 애완동물을 키우는 목적은 건강하게 잘 키워서 평화로운 죽음을 보는 것 같은 게 아니야. 무슨 게임 엔딩 보듯 미션 클리어하는 그런 게 아니란다. 그렇다고 산책하기 위해서나, 외롭고 무료한 시간을 잘 때워보려고 하는 것도 궁극적인 목표는 아니겠지. 애완동물을 키우는 사람은 그냥 애완동물과 함께 즐겁게 잘 지내려는 거야. 인생의 한때를 애완동물과 행복하게 보내보려는 거다. 이건 산책을 몇 번 해야 하는지, 언제 매섭게 배변훈련을 해야 하는지 같이, 키우는 과정에서 나오는 부수적인 것들이랑은 달라. 네가 연애하는 것도 그런 거야. 그냥 너는 네 여자 친구와 인생의 한때를 행복하게 잘 보내면 된단다. 여기엔 원칙도 없고 알고리즘도 없고 데이터도 없고 확률도 없고 수치도 없어. 그냥 그러면 되는 거야. 이왕 시작된 첫 연애를 잘 해보고 싶다면, 그놈의 확률과 결론을 버리고 행복이란 어떤 것인지 좀 느껴 보는 게 어떨까. 어쨌든 행복하렴! 모태솔로 탈출을 축하한다(ㅋㅋ).




psy5432@nate.com <박신영님은 법학전문대학원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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