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짐승의 시간
<신간> 짐승의 시간
  • 이주리 기자
  • 승인 2014.08.26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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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건웅 만화/ 보리출판사





김근태는 1985년 9월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10차례에 걸쳐 고문을 당했다. 고문으로 조작된 자백을 근거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는 유죄가 되었고 징역 5년형을 받았다. 그리고 28년 뒤, 김근태가 세상을 떠난 지 2년 반이 지난 2014년이 되어서야 김근태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 고문으로 허위 진술을 강요하고, 이렇게 얻어 낸 진술은 유죄의 증거로 볼 수 없다는 정의가 이제서야 인정을 받은 셈이다. ‘고문 빼고 다 한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는 지금, 이 땅의 민주화를 앞당기기 위해 애써 온 김근태의 시간을 만화로 돌아본다. 뚝심 있는 작가 박건웅이 550쪽이 넘는 만화로 생생하게 담아 냈다.

‘남영동에 끌려 간다’는 말은 남영동에 가서 고문을 당한다는 뜻이다. 민주화운동청년연합을 결성하고 우리 나라 민주화를 위해 힘쓰고 있던 김근태는 1985년 9월 4일 남영동에 끌려 갔다. 22일이 지나 남영동에서 빠져나올 때까지, 김근태는 남영동 건물 5층 맨 끝 방에서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고문을 10차례 당했다. 물고문부터 시작해서 전기 고문, 전기봉 고문 들을 견디고 고문자들이 가하는 심리적 고문까지도 당하며 짐승 같은 시간을 보냈다. 김근태는 굴복을 바라는 고문자들의 요구에 당장은 저항하지 못하더라도 마음속에 마지막 자존심의 불씨는 지키며 이 끔찍한 시간을 이겨 냈다. 1985년 12월 19일, 법원에서 김근태는 고문자들이 몸과 머리에 각인 시켜 놓은 고문 트라우마를 벗어던지고, 남영동에서 있었던 고문의 실상을 모두에게 고발했다. 《짐승의 시간》은 김근태가 남영동에서 강요받았던 ‘짐승 같은 시간’을 만화로 기록한 책이다.

끔찍한 고문을 가하는 이들은 길거리에서 마주칠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자식의 대학 입시나 취업을 걱정하는 사람들, 그이들은 누군가에는 자상하고 따뜻한 아버지였다. 라디오를 듣고 잡지를 읽으며 돌아오는 기념일에 식구들에게 어떤 선물을 할까 고민하는 이들은, 자신과 다를 바 없는 한 인간에게 아무런 양심의 가책 없이 끔찍한 고문을 가했다. 1호선 남영역에서 고개만 들면 볼 수 있는 회백색의 건물 안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는 고문을 자행했다. 그들은 그저 위에서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어떠한 목적을 이루려고 할 때 끔찍한 고문이 시작된다. 《짐승의 시간》은 평범한 사람들이 제도나 틀 안에 갇혀 행동할 때 어디까지 악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 준다. 또한 작가 박건웅은 누군가가 시키는 대로, ‘직업’으로 고문을 행하는 자들의 폭력적인 몸과, 고문을 가하며 때로는 희열을 느끼는 얼굴 표정까지 놓치지 않고 표현해 냈다.


정리 이주리 기자 juyu2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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