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진의 영화 리뷰> 해무


사실 이 정도의 시장 과열 현상은 없었다. 100억대 대작 4편이 동시 다발로 시장에 풀린 올해 7월부터 8월 극장가는 과열이 아닌 ‘필사즉생 필생즉사’의 이순신 장군 말씀이 딱 들어맞을 정도로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우선 ‘군도: 민란의 시대’가 포문을 열고 출발한 올 여름 시장 과열 양상은 ‘명량’이 기록적인 행보를 보이며 대세가 기울었다. 1500만을 넘어 2000만까지 바라보는 기형적 행태가 연출되고 있으니, 올 여름 한국영화 시장은 한국영화 100년 역사에 한 획을 그을 시기임이 분명하다. 한국형 어드벤처 ‘해적: 바다로 간 산적’도 좋은 결과를 이어가는 중이다.

장르적인 부분으로만 보자면 사극 세 편이 동시에 시장에 나온 것도 이색적인 행보라고 할 수 있다. 사극 자체가 장르적인 부분에서 대규모 자본이 집약돼야 하고, 스토리적인 부분에서의 밀도가 높아야 하는 필요충분조건이 완성됐을 때 흥행이란 답이 따라오는 상당히 복잡한 구조의 장르이기 때문이다. 국내 시장의 투자사 제작사 그리고 배급사가 사극을 꺼려했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돈이 되지 않는다’란 천대 속에 한 동안 서자 취급을 받아왔던 천덕꾸러기였다. 하지만 2005년 ‘왕의 남자’가 1000만을 돌파한 이후 이 같은 선입견이 깨져버렸고, 사극의 ‘웰메이드’화가 진행돼왔다.







반대로 현대극의 창조력은 뒷걸음질 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사극 자체가 역사적 팩트의 기반이란 원천 소스가 있는 반면, 현대극은 그런 시각 자체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원작을 기반으로 한 2차 창작물이 최근 몇 년 동안 극장가를 장식하는 것도 하나의 트렌드가 됐다. 지난 13일 개봉한 영화 ‘해무’는 이런 사극 대작 3파전에 도전장을 던진 현대극 대항마다.

국내 연극 무대의 명가로 불리는 극단 연우무대의 창립 30주년 기념작인 동명의 연극 ‘해무’를 원작으로 한 영화 ‘해무’는 몇 가지 독특한 장점을 내세우고 있다. 우선 ‘명량’ ‘해적’과 마찬가지로 ‘해무’도 바다를 무대로 얘기가 펼쳐진다. 하지만 진짜 강점은 리얼리티다. ‘명량’이 일부 장면을 실제 건조한 조선시대 군선 ‘판옥선’을 바다에 띄우고 촬영했고, ‘해적’은 대형 해적선을 건조한 뒤 특수촬영 장치인 ‘짐벌’로 바다 위를 재현했다면, ‘해무’는 영화 전체 분량의 70% 이상을 실제 바다에서 직접 촬영했다. 영화 속에서 격랑이 불어닥치고 비바람이 치는 장면 모두가 실제 바다에서 이뤄진 놀라운 장면들이다.

내용은 더욱 사실적이고 격하다. 앞선 3편의 사극이 팩트를 기반으로 한 ‘팩션극’이라면 ‘해무’는 실제 일어났던 사건을 더욱 정교하게 바라보는 얘기다. 영화는 2001년 전남 여수에서 있었던 중국인 밀입국 시도 중 전원이 사망한 ‘제7호 태창호 사건’을 모티브로 한다. 연극과 영화 모두 마찬가지로 망망대해 한가운데 떠 있는 안강망 어선 ‘전진호’에서 벌어지는 얘기가 주를 이룬다. 때문에 한정된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인간들의 감정 굴곡이 영화 전체를 뒤덮은 톤으로 일관된다. 그 톤 자체가 상당히 어둡고 음습하다. 바다 안개인 ‘해무’의 그것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영화는 알 수 없는 심연을 들여다보듯 캐릭터들의 감정 밑바닥에 무엇이 있는지를 탐험하는 시각을 유지한다. 그 밑바닥에는 욕망과 탐욕 그리고 집착 때로는 동정 등이 있다. 그것이 밀폐되고 갇힌 공간인 망망대해 한 가운데 ‘전진호’ 안에서 벌어지는 얘기라, 음습한 느낌이 가득하지만 실상은 감정 자체가 메마른 건조한 톤으로 뒤바뀐다. 아이러니의 발상으로 볼 수도 있다. 습도가 가득한 바다 한 가운데서 벌어지는 다양한 감정의 충돌이 결국에는 인간성을 지워버리는 끝판의 결과물이란 점에서 ‘해무’는 결국 바다 한 가운데 떠 있는 사막 같은 영화라고 말하고 싶다.

영화는 한때 여수 바다를 주름 잡던 전진호가 폐선 위기에 몰리고 정부의 감척 대상으로 선정되자 이를 구하기 위한 선장 철주(김윤석)의 고군분투로 시작된다. 배를 바꾸는 게 뱃사람들에게는 족보 바꾸는 것과 같다며 고물 폐선 ‘전진호’에 대한 집착을 하는 철주는 이를 살리기 위해 고기가 아닌 다른 것을 잡기 위해 바다로 향한다. 하지만 그 출항이 전진호에겐 마지막이 될지는 철주도 선원들도 전혀 몰랐을 것이다. 그 다른 것은 중국인 밀항자들이다.

망망대해 한 가운데 밀항자들을 실은 전진호는 각자의 부푼 꿈에 가득 찬다. 배를 수리해 예전의 영화를 다시 찾으려는 철주, 돈을 벌어 여자를 만나 결혼하려는 창욱(이희준), 욕정으로만 똘똘 뭉친 경구(유승목), 선장의 말이라면 그 어떤 것이라도 명령 복종인 갑판장 호영(김상호), 돈을 벌어 딸과 함께 오순도순 살고 싶은 도망자 기관장 완호(문성근) 그리고 아무것도 모른 채 배에 타고 나왔다가 분위기에 휩쓸리고 순간의 집착으로 모든 것을 잃게 되는 동식(박유천), 밀항을 통해 새로운 삶을 꿈꾸는 조선족 밀항자들. 각자의 욕구와 욕망이 부딪치면서 배안은 일순간 파멸의 구렁텅이로 빠져 든다. 의심과 반목 그리고 욕망이 뒤섞인 아귀지옥으로 변해버린다.

전진호는 의심과 반복 그리고 욕망을 각자의 입장으로 해석하면서 그 지옥을 스스로 만들어 내기 시작한다. 선원들은 ‘밀항자’들을 계급적 해석으로 시각화해 그들을 짓밟고 누르려고만 한다. 철주가 쏟아낸 말 한마디가 섬뜩할 정도다. “이 배에선 내가 니들 대통령이고 애비다.” 반면 창욱과 경구는 여성 밀항자를 상대로 욕정만을 채우기 위해 경쟁을 한다. 그 경쟁이 흡사 초원 속 사자가 어린 영양을 사냥하듯 무자비한 폭력성으로만 점철돼 있다. 가장 극단적인 감정의 변화를 겪는 것은 완호와 동식이다. 가장 인간적인 감성을 드러내는 완호도 중국인 밀항자들의 변화 속에 뒤섞이는 선원들의 모습과 속내는 별반 다를 게 없다. 그들에 대한 동질감에 감정의 분열을 겪지만 결국 자신의 틀 안에서 모든 것을 해석하려는 완호조차도 ‘전진호’ 안 괴물들과 별반 다를 게 없는 인물인 셈이다. 동식은 홍매(한예리)란 여성을 통해 연분의 정을 느끼고 그를 아귀지옥으로 변한 전진호 안에서 구하려고만 한다. 그런 동식에게 철주조차도 “가족 같은 선원들을 버리고 어떻게 저런 년에게 집착할 수 있느냐”고 한탄한다.

‘해무’란 제목이 어쩌면 이 영화의 모든 것을 말하는 단서이자 가장 큰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다. 순식간에 밀려오고 소리도 없이 사라지는 하지만 한 번 오면 결코 그 어느 것도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게 만드는 ‘해무’는 그래서 인간의 보이지 않는 욕망과 묘하게 맞닿아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보이지 않는 다는 것은 그 끝을 알 수 없기에 근원조차도 어떤 모습인지 분간하기 힘들다. 영화 속 선원들의 끝없는 이유를 알 수 없는 그래서 공포스럽기까지 한 집착과 욕망의 모습이 ‘해무’과 꼭 닮아 보이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지도 모른다. 인간성을 유지하지만 결국에는 하나의 굴레 속에 묶여 있던 완호, 그리고 배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인간성마저 버린 선장 철주, ‘신입’ 혹은 ‘막내’란 단어를 통해 가장 순수해야 할 동식조차도 감정의 밑바닥을 드러내고 그 감정에 휘둘린 노예였단 점은 ‘해무’가 말하는 간단하지만 결코 쉽지 않은 감정의 괴물이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를 말하는지도 모르겠다.

마지막 그렇게 꿈꿔왔던 그 꿈의 결정체를 동식이 무심한 듯 바라보는 장면이 어쩌면 ‘해무’가 말하는 ‘순식간에 밀려오고 소리도 없이 사라지는 하지만 한 번 오면 결코 그 어느 것도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는’ 그 덧없는 실체, 결국 ‘꿈’은 아니었나를 생각하게 만든다. 그래서 ‘해무’는 참 강렬하면서도 덧없고 또 그렇게 메마른 느낌의 건조한 영화로 끝을 맺는다. 올 여름 한국영화 4파전의 마지막을 장식할 강렬함으로 `해무`의 얘기만큼 힘을 느끼게 하는 선택은 없을 것이다. 결코 쉽게 다가서기 힘든 작품이다. 그래서 마음을 다잡고 극장에 들어서기 바란다.

<김범진 님은 언론인입니다.>

저작권자 © 위클리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