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간의 그 짐승 같은 시간들이 되살아난다!
22일간의 그 짐승 같은 시간들이 되살아난다!
  • 정다은 기자
  • 승인 2014.08.28 17: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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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 끔찍한 짐승의 소굴에서 살아나온 그의 이야기 ‘짐승의 시간’


처음 책을 받았을 때 느낌은 엉뚱했다. ‘짐승의 시간’? 엄청난 두께에 놀라고 책 표지도 매우 깨끗한 하얀색에 임팩트 있는 빨간 그림이 눈에 띄었다. 도대체 무슨 내용일까. 아, 책을 펼치고 나니 빨간 그림이 무엇을 의미하는 건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책의 전체 내용을 이 빨간 그림 한 개가 압축해서 설명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책장을 넘겼다. 그림은 다소 투박해보였다. 흑백 만화로 만들어진 이 책은 눈이 아플 정도로 흑색을 많이 사용해 무거운 느낌이 들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굉장한 설명력과 섬세함을 지니고 있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또 왜 이렇게 그림이 투박하고, 흑색을 많이 사용했는 지 알 수 있게 했다. 무거운 주제. 만화는 진지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약 560쪽에 넘는 분량,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하게 했다. ‘짐승의 시간’의 내용을 대략 설명하면 이렇다.







민주화운동청년연합을 결성하고 우리나라 민주화를 위해 힘쓰고 있던 고 김근태 전 의원은 1985년 9월 4일 남영동에 끌려갔다. 그로부터 22일 동안 김 전 의원은 남영동 건물 5층 맨 끝 방에서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고문을 10여 차례 당했다. 물고문부터 시작해서 전기고문, 전기봉고문에 심리적 고문까지 당하며 짐승 같은 시간을 보냈다. 김 전 의원은 굴복을 바라는 고문자들의 요구에 당장 저항하지 못하더라도 마음속 마지막 자존심의 불씨는 지키며 끔찍한 시간을 이겨냈다. 1985년 12월 19일, 법원에서 김 전 의원은 고문자들이 몸과 머리에 각인 시켜 놓은 고문 트라우마를 벗어던지고, 남영동에서 있었던 고문의 실상을 고발했다. ‘짐승의 시간’은 김 전 의원이 남영동에서 강요받았던 ‘짐승 같은 시간’을 기록한 책이다.

역사는 많이 알아둬야 된다고 하지만, 무겁고 딱딱할 수밖에 없는 내용 때문에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만도 했다. 하지만 ‘짐승의 시간’은 이런 무거운 내용을 진솔하고도 담담하게 또 쉽게 풀어내 어렵지 않게 몰입할 수 있게 했다. 작가와 김 전 의원의 시선을 번갈아가는 식으로 분위기를 전환, 마냥 무겁기만 한 이야기를 쉽게 풀어 나간다.

투박하기만 했던 그림체는 고문을 받던 김 전 의원의 심정과 분위기, 당시의 상황을 표현하기에 적절했다. 단순하면서도 무게가 느껴졌다. 캐릭터도 개성이 넘쳤다. 당시 상황을 고스란히 발현해내는 듯했다.

그리고 그렇게 엄청난 사건이 우리에게서 이렇듯 쉽게 잊혀졌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짐승의 시간’을 통해 그 당시 김 전 의원의 고통과 억울함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고,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이 책 한 권으로 그가 겪었던 그 엄청난 고통을 다 표현하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그나마 그가 차마 하지 못했던 말들을 조금이라도 대신해주고 있다.

책은 또 인간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가 하는 것과, 자신의 이득 앞에선 때론 짐승이 되기도 한다는 것도 알게 해준다. 현재 사회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각박한 현실 속에서 마치 먹잇감을 앞둔 굶주린 짐승 마냥 수시로 이성을 잃어버리곤 한다. 이런 삭막한 사회에 경종을 울려주는 책이다.

어쩌면 세상에서 제일 악한 건 인간이 아닐까. 두꺼운 책을 다 읽고 나니 마음속엔 잔잔한 슬픔이 가득 차올랐다. 알지 못할 분노 그리고 안타까움도. 이런 끔찍한 세상속에 살고 있는 인간들이 불쌍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한편 ‘짐승의 시간’은 ‘제11회 부천만화대상’에서 국내 최고 권위의 만화상인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무겁고 아픈 주제를 묵직한 흑백의 선으로 표현한 예술적 구성으로 일반 독자들에게도 쉽게 읽히는 연출이 가장 돋보인다는 평가를 받았다. ‘부천만화대상’은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 만화작가들의 창작의욕을 고취하고 만화산업 발전을 꾀하기 위해 제정한 것이다.


정다은 기자 panda15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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