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가장 에로틱한 삶의 현장 갯벌에서(22)



# 긍게 그것이 그렇당게



덥다. 엄청나게 덥다. 옷을 훌훌 벗고 방안에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온 몸에서 땀이 찌걱찌걱 솟아난다. 몸이 마치 무슨 진흙탕 아니 늪이라도 되어버린 것 같다. 더위가 이렇게 무지막지하게 폭탄처럼 쏟아지는 날에도 갯벌의 사람들은 옷을 두 겹 세 겹 껴입어야만 한다.

갯일에서 비옷이나 가슴장화는 기본이다. 속옷이나 수영복 같은 것만 걸치고 일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그렇게 하자면 십 분도 안 돼서 굴 껍질이나 조개껍질에 상처투성이가 되고 말 것이다. 무엇보다 겨드랑이나 사타구니 같은 데로 진흙물이 껴들기 시작하면, 그 뒤에 일어나는 사태는 그야말로 대책이 없다. 그래서 가슴장화나 비옷을 입어아만 하는데, 비닐 제품을 맨살에 그냥 입는 것은 자살행위라서, 긴팔에 긴바지를 반드시 입어야만 한다. 그 뒤에 솟아나오는 땀은 그대로 고스란히 보관했다가 집으로 가져간다.

남자들은 그나마 윗옷을 훌훌 벗었다가 다시 입기도 하고, 소변 같은 것을 이유로 아랫도리도 가끔 내렸다가 올리기도 하지만, 아주머니들에 이르면 이게 참 상상으로조차도 그저 난감하기만 하다. 물 한 모금 마시는 것조차도 내심 기피하고 또 기피하는, 작업이 다 끝나서 집으로 돌아갈 즈음에야 비로소 물도 실컷 마시고 우유도 마시고 막걸리도 마시는 아주머니들을 보고 있노라면 불현듯 생각나는 단어 하나가 있다. 천형.

건방지게 내 마음대로 천형이라고 했지만, 아주머니 자신들이 자신들의 삶을 그렇게 생각하는 건 당연히 아니다. 천형은커녕 오히려 다른 그 어떤 방식의 삶보다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바다만큼이나 넓고 깊은 자유가 있기 때문이다. 일이야 까짓 하고 싶은 날은 하고 안 하고 싶은 날은 안 하다. 일을 한다 해도 날마다 같은 시간에 나가는 것도 아니고, 공장처럼 하루 종일 사람을 붙잡아놓고 일을 시키는 것도 아니다. 짧은 날은 한 시간, 길다 해도 서너 시간이면 하루 일과 끝, 해버리는 일이 세상에 또 무엇이 있을 것인가 말이다.

무엇보다 갯일에는 화끈함이 있다. 쌈빡이라고도 하는 그것. 하는 듯이 안 하는 듯이 뜨뜻미지근하지 않고 불처럼 활활 타오르는 그것. 일단 작업이 시작됐다 하면 온 몸이 가루가 되어도 좋다는 식으로 두세 시간 동안 자신을 완전히 던져 버리지만, 일이 끝났다 하면 제주도든 동남아든 내키면 그냥 여행을 다녀오는 정신의 여유가 있다.




# 아따 참말로 좋으네잉~



그렇다 해도, 어쨌든 더운 것은 더운 것이어서, 사람들은 가능한 한 바다로 들어가고자 한다. 물이 아직 안 빠져서 작업은 한참이나 더 기다려야 가능하지만, 답답하게 집안이나 골목에서 시간을 기다리느니 차라리 트랙터를 타고 시원한 바다로 들어가서 기다리기로 한다. 빠져 나가는 물을 따라 천천히 달리는 트랙터 안에서 바라보는 바다의 풍경도 사실은 볼 만하다.

바다를 잘 모르는 사람이 보자면 어제가 그제 같고 오늘이 어제 같지만, 오랜 세월 갯바람을 맞아온 사람의 눈에는 단 하루도 같은 날이 없다. 같은 풍경도 없다. 갈매기는 어제의 갈매기가 아니고, 바람도 어제의 그 바람이 아니다. 그렇게 시시각각 달라지는 풍경을 보여주며 달리는 트랙터 안에는 또 언제나 새로운 이야기가 있다. 눈에 보이는 대로, 생각이 나는 대로 한 마디씩 불쑥불쑥 터져 나오는 이야기, 하나의 이야기가 둘, 셋, 열, 스물로 끝도 없이 가지를 쳐 나가는 이야기의 대향연이 펼쳐지는 것이다.

 “그나저나 딸내미는 시집 안 간대여?”
 “아 써글년이 혼자 사는 게 좋다고 꿈쩍을 안 하는디 낸들 으쩔 것이여.”
 “우리 조카딸이랑 똑같네. 뭔놈의 세상이 시집 안 가는 유행도 다 생기고. 가시내들이 시집갈 생각을 안 하니께 남자들이 그렇게 화장을 하는가-아?”
 “아따 그러고 봉게 요새는 남자들이 더하더만 잉?”
 “누가 아니래여. 문밖으로만 나서도 얼굴 탄다고 썬크림을 찾아쌌고, 모자에 안경에 요란도 그런 요란이 없으니, 아이고 참말로, 재미난 세상이여.”
 “저참에 나 서울 감서 고속버스 탔다가 죽는 줄 알았당게. 옆에 학생인가 뭣인가 하여튼 젊은 남자가 앉아서 좋다고 했더만 개뿔이나, 그놈의 향수 냄새가 어찌케나 속을 매식매식하게 해대는지 원.”
 “남자가 옆에 앉아서 좋았었다고? 아따 그놈의 속도 참 으멍하네 잉?”
 “어매 뭔 소리여, 누구 쫓겨나는 꼴 보고 싶어 그런 소리를 꾸며낸당가?”
 “하이고, 참말로 배꼽이 웃겠네. 누가 누구한테 쫓겨나?”

이야기는 작업 현장에 도착한 뒤에도 계속된다. 아직 물이 남아 있어서, 작업이 가능한 시간까지는 이십여 분, 아니 십 분, 아니 어쩌면 오 분밖에 안 남아 있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잠깐 동안이라도 이야기꽃을 더 피우고자 아주머니들은 바다를 마치 안락의자처럼 편안하게, 아예 벌렁 드러눕다시피 편안하게 앉아서 손으로는 찰박찰박 물장구를 치며, 눈으로는 하늘도 보고 땅도 보고 사람도 보며, 귀로는 상대의 이야기를 듣고, 입으로는 한 마디라도 자기 이야기를 더하고자 틈만 나면 재빨리 “아니 그러니께 그것이 그것인디 말이여 잉?”하는 식의 이야기 한 마디를 보태곤 한다.

어떤 날은 그런 시간이 금방 끝나기도 하지만, 다른 어떤 날은 그 시간이 무려 한 시간 가까이나 길어지기도 한다. 물이 빠질 때는 그야말로 쏜살같이 빠지기도 하지만, 안 빠질 때는 정강이까지 차오른 채로 한없이 그냥 있어 버리기 때문이다. 이것은 물론 바다 속으로 깊이 들어와 있는 사람만이 온 몸으로 체험할 수 있는 현상이다. 육지에 가까운 갯벌 초입이나 방파제 근처에서는 볼 수도 없고 느낄 수도 없는 신비한 마술이 바다 깊은 곳에 숨어 있다고나 할까.

달이 기울어 바닷물이 한참 빠져나갈 즈음, 그러니까 물이 정강이까지 차오르는 시간대에 바다를 걷고 있노라면 눈이 매우 화려하다. 물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온갖 생명들이 온갖 형태의 춤을 춘다. 물이 자꾸 줄어드니까, 조금이라도 깊은 데로 가고자 하는 몸짓들이다. 그 중에서도 꽃게들의 우왕좌왕하는 품새는 가히 일품이라 할 만하다.




# 오매 일 안하고 사진만 찍는감?



나는 아직 커다란 꽃게를 한 마리도 잡아보지 못했지만, 바다를 오래 다녀본 사람들은 멀리서도 물속의 움직임을 감지하고 겅중겅중 달려가서 장화발로 일단 제압을 한 다음 손으로 큼직한 꽃게를 건져 올리곤 한다. 꽃게를 잡는 기술이란 아무래도 꽃게 특유의 그 커다란 집게발에 물리지 않는 요령이라 할 것이다.

일단 물렸다 하면 집게발을 떼어내도 놓지 않고 기어이 장갑을 뚫고 들어가서 살에 구멍을 내고야 말 정도로 바닷물 속의 꽃게는 힘이 아주 좋다. 그러니 꽃게를 제압해서 건져 올릴 때의 긴장감 플러스 재미란 것은, 옆에서 보기에도 온 몸에 전기가 흐를 정도이니. 잡는 당사자야 두말 할 나위도 없으리라. 그래서인지, 꽃게를 직접 잡은 사람은 아무나 옆에 누가 있으면 그 사람에게 줘버리고 자기는 또 다른 꽃게를 찾아 나선다.

 “요즘 꽃게도 알이 있을까요?”
 “하늘에 달이 없응게, 알이 있지라우.”
 “하늘에 달이 없어서 알도 있다고요?”
 “암만이라.”
 “그럼 하늘에 달이 있으면, 알이 없는 거예요?”
 “그러제.”
 “아니 왜 그런 거예요?”
 “아 그야 뭐, 달밤에 노느라고 그러겠제.”

순간 어리둥절해졌다. 믿어야 하는가? 뻥이라 치부하고 말아야 하는가? 꽃게가 달이 밝으면 노는 재미에 취해서 알을 싣지 못한다는 그 말씀을 내가 믿지 않아야 할 근거는 없지만, 믿기에는 또 뭔가 이상하고, 이상하다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믿고 싶기도 하고, 한참을 어리둥절해 하다가 그냥 웃기로 했다. 나중에 집에 가서 꽃게의 생태에 관한 논문이라도 찾아볼까 했지만, 그것도 그만두기로 했다. 왜냐하면, 아주머니의 그 말씀이 너무나 아름다운 상상력을 최고치로 끌어올리는 동화처럼 여겨졌으니까.

이 양반은 하루에 두 탕, 세 탕, 어떤 날은 다섯 탕까지도 뛰는, 일꾼 중에서도 그야말로 상일꾼이시다. 저녁 물 시간에는 종패 뿌리는 현장에서 두 시간 정도 종패 뿌리는 일을 하고, 돌아오면 밥 한술 게 눈 감추듯이 입에 넣고 바지락을 깐다. 한두 시간 정도 바지락을 까다가 졸리면 그대로 쓰러져서 한숨 자고, 눈을 뜨면 까다 만 바지락을 마저 까서 바지락 젓갈 담그는 곳에 납품을 하고, 돌아와서는 바구니를 들고 고추밭으로 가서 고추를 따고, 낮 물 시간이 되면 다시 갯벌로 나가서 바지락 채취 작업에 동참한다. 돌아와서는 빨래를 하고, 집안 청소를 대충 하고, 다시 바지락을 까기 시작한다. 종패 뿌리는 데서 받는 일당이 삼만 원, 바지락 채취 현장에서 받는 일당은 오만 원, 바지락 한 망을 까는 공임은 일만 이천 원, 고추밭에 나가서 고추를 따면, 그것은 글쎄, 당신 자신의 일이니까 품삯을 계량하긴 어렵지만 하여튼 돈이 된다.




# 사진 찍고 싶다고(?) 버둥대는 꽃게



언제까지 그렇게 일에 파묻혀 살아갈 것인지는 아주머니 자신도 알 수 없겠지만, 어쨌든 아직은 그래야 할 때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시는 것일 게다. 그래야만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내가 구체적으로까지 알 수는 없지만, 짐작하는 바가 없지는 않다. 개인 양식장을 갖고 있지 않은 이 양반은 어촌계에서 추첨을 통해 공급하는 양식장 한 뙈기를 관리하고 있었다.

곰소만 갯벌에는 개인이 양식업 면허를 내서 관리하는 갯벌이 있고, 어촌계에서 일괄적으로 관리하는 갯벌이 있다. 어촌계에서 관리하는 갯벌은 갯벌체험학습장으로 활용되기도 하고, 갯마을 사람들에게 5년 기한으로 임대를 하기도 한다. 개인 양식업 면허가 없으면서 양식업을 희망하는 사람들은 어촌계에 신청을 하고, 어촌계는 심사를 통해 양식장을 불하하기도 하지만, 신청자가 많을 경우는 제비뽑기로 결정한다.

오 년간 사용료가 오백 만원이니까 일 년에 일백만 원인 셈인데, 이 땅에 아주머니는 종패 이천만 원어치를 뿌렸다. 그게 재작년, 그러니까 2년 전이었다. 일 년 뒤까지도 잘 자라던 바지락이 작년 겨울에 태반이 폐사하고 말았다. 남은 것을 모두 캐낸다 해도 팔백만 원어치가 채 될까 말까 하다는 게 아주머니의 판단이었다. 그러니 어쩌랴. 일단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을 해서 이천만 원 빚잔치를 준비하는 수밖에.

작업을 하는 동안에는 거의 무슨 말을 할 수가 없다. 시작했다 하면 물이 들어오기 전에 정신없이 해야만 하는 작업 자체가 힘들어서만은 아니다. 말을 하면 입에 바람이 들어가고, 바람이 들어가면 목구멍이 말라서 물이 마시고 싶어지니까, 그래서 사람들은 가능한 한 입을 꾹 다물고 그저 묵묵히 맡은 바 임무에나 충실하고자 한다. 그래도 가끔 예외는 있는 것이어서, 예외가 한 번 발동했다 하면 상상도 못해본 말이 터져서 그 파동은 며칠씩이나 지속된다.  




# 퇴근길



 “아저씨, 나 이것 좀 봐여, 봐. 잉? 오늘 나 헛일 했당게.”

아무 생각도 없이, 그야말로 몽롱한 상태가 되도록 땀을 뻘뻘 흘리며 맡은 바 임무에나 충실하고 있는 내 앞으로 갑자기 아주머니 한 분이 주저앉은 상태 그대로 다리를 벌려 보이신다. 거기 어디에 구멍이 하나 뻥 뚫려 있다. 이게 뭐냐. 왜 이러시는 거야, 이 양반이 지금? 한참을 어리벙벙해 하고 있다가, 비로소 사태의 진상을 알아차리는 순간 내 입에서 폭포수 같은 웃음이 터진다. 웃고 난 뒤에는 얼굴이 확 달아오르면서 고개가 절로 옆으로 돌아간다.

가슴장화가 비닐제품이다 보니, 굴 껍질 같은 날카로운 것에 걸렸을 때 더러 찢어지기도 하지만, 오늘은 그놈의 굴 껍질이 하필 어쩌다가 그곳을 그렇게 찢어놓았던 것인지, 가랑이 쪽으로 한 뼘도 넘게 찢어진 가슴장화를 보여주며 앞니가 환히 드러나도록 웃고 있는 아주머니의 표정은 그렇게도 천연하게 자연스러울 수가 없지만, 그것을 보고 있는 나는 머릿속에 무슨 그리도 못난 상상이 들어차 있는 것인지 그저 민망하고 난감하기만 해서 웃음조차도 제대로 웃지를 못한다.

다만 그녀의 찢어진 비옷을 보았을 뿐인데도, 얼굴이 확확 달아오른다는 이 바보 같은 느낌은 도대체 어디서 왜 오는 것인지 모르겠다. 갯벌을 드나든 지도 벌써 햇수로 삼 년째, 날수로만 봐도 최소한 일백오십 여일이 넘었건만 나는 아직도 민망한 것이 많고 새로운 것도 많다. 그러면서도 짐짓 에로틱한 갯벌이라고, 말은 또 그렇게 잘하고 있으니, 이러는 나는 대체 누구인가?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 한 편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전북 고창으로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김수복의 시골 살림 이야기’란 제목으로 자연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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