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진의 영화 리뷰> ‘두근두근 내 인생’


좀 곤욕스럽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감정 이입에 대한 고통이 심하다고 해야 할까. 아빠, 아니 부모가 된 이후 자식의 고통을 다룬 영화를 보고 있자면 스크린을 똑바로 쳐다보기가 좀 힘들다. 가끔은 제작자나 감독에 대한 적개심까지 생기기도 한다. 한 영화 제작자와는 언성을 높이며 “대체 그렇게 만들 영화가 없는가”라며 따진적도 있다. 그래서 당시 그 영화를 보면서도 내내 얼굴을 잘 들지 못했다. 그냥 평범하게 아니 개념적으로 생각을 해보자. 대체 자식의 고통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는 부모가 세상 천지에 어디 있겠나. 이런 내용을 담은 영화를 보고 눈물을 흘리는 관객들의 모습도 가끔은 가식에 찬 그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솔직히 자기 합리화, 자기 비하 혹은 콤플렉스라고 불러도 할 말은 없다. 장애아를 키우는 부모란 굴레가 날 이렇게 만들었다고 해도, 메마른 감성의 소유자로 만들었다고 해도 할 말은 없다. 그래서 이런 영화들이 정말 싫다.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두근두근 내 인생’도 감성팔이를 넘어 자식팔이란 나 스스로의 개념으로 정립된 영화였다. 글쎄 마지막 평가의 좋고 나쁨을 말할 단계는 내 몫은 아니다. 전적으로 관객들의 몫이고, 판단도 관객들의 몫이다.
영화는 한국영화계 신파성 흐름의 단골 메뉴인 희귀병을 소재로 한다. 인터넷을 통해 여러 차례 소개되고 알게 된 선천성 조로증이 등장한다. 영화 내용을 한 줄로 소개하면 이렇다. 17세에 부모가 된 철없는 부모와 16세에 80세의 신체를 가진 철 든 아들의 삶 속 끝자락에 걸친 얘기가 주요 포인트다. 사실 단순히 한 줄로만 들어도 관객들의 감성을 자극하고 ‘이래도 울지 않을래’란 자극성 이미지가 난무할 것 같은 영화다. ‘두근두근 내 인생’은 선천성 조로증을 앓고 있는 주인공 ‘아름’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가는 아름은 엄마(송혜교), 아빠(강동원)의 보호 속에 살아간다. 산더미 같은 약봉지를 끼고 살아가는 아름이가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창구는 자신의 컴퓨터 한 대가 전부. 벌써 16세나 됐지만 정규교육은 단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다. 남들과 다른 외모가 이 어린 소년을 세상과 강제로 끊게 만들었다. 세상이란 거대한 바다 위에 떠있는 작은 무인도 같은 소년이 바로 ‘두근두근 내 인생’ 속 아름이다.

몸이 늙어갈 수록 아름이의 속도 애늙은이처럼 변해만 간다.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일찍 깨우친 그는 건강하게 자라는 게 부모님에 대한 가장 큰 효도인 것을 알고 있다. 이제 16세밖에 안 된 소년이 언제 죽을지 모르는 시한부 인생인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기보단, 조용히 마지막 준비를 하는 모습에 관객들의 가슴은 서서히 먹먹해져만 간다. 그런 아름이가 마지막을 위해 준비하는 것은 자신의 부모님을 소재로 한 소설 쓰기. 그 소설을 통해 자신이 세상에 있었고, 존재했었다는 것을 인정받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어린 시절 부모님의 모습에서 아름이는 혹시 자신의 꿈을 그리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내레이션과 함께 등장하는 철없는 아빠의 어린 시절 모습은 흡사 아름이가 동경하던 철없는 또래의 모습이었고, 그런 모습에 반하고 아이(아름)를 갖게 된 엄마가 바로 아름이가 그토록 원하던 여자친구(혹은 세상과의 소통)였는지도 모른다. 일종의 대리만족이고, 자신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유언장 같은 소설을 아름이는 담담하게, 그저 담담하게만 적어 내려간다.

사실 감성적 신파의 코드가 ‘두근두근 내 인생’에는 차고 넘친다. 하지만 캐릭터 내면 연출의 달인으로 통하는 이재용 감독은 아슬아슬한 그 수위 조절을 통해 영화 전체의 톤을 세밀하게 계산한다. 신파로만 흐르는 것을 막는 ‘둑’의 역할을 중반 이후까지 등장하는 아빠의 철없는 모습과 엄마의 억척스런 생활력이 커버해낸다.

태권도 선수가 꿈이었던 아빠는 택시기사로 일하며 아름이의 건강을 책임지고 있다. 고교 시절 편파 판정의 희생양이 되자 심판에게 돌려차기를 날렸을 정도로 앞뒤 분간을 못하는 막무가내 남자지만, 마음만은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아빠다. 죽음을 앞둔 아름이를 병원에서 퇴원시키는 날 주치의에게 “난 아름이가 좋아하는 일이면 무조건 한다”며 눈시울을 붉히는 장면에서 묘한 찡함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가장 관객들의 심금을 울리는 장면은 단 한 부분이다. 바로 아름의 죽음을 알리는 엄마의 가슴 절절한 모성애다.

죽음이 임박한 아들을 두고 어떤 사건을 겪게 된 아빠와 엄마는 식당에서 국밥 한 그릇을 놓고 마주한다. 아들의 죽음을 인정하지 않는 아빠는 엄마를 나무라며 화를 낸다. 이때 등장하는 엄마의 대사 한 마디. “엄마는 알 수가 있다. 우리 아름이 얼마 안 남았다.”

죽음을 앞둔 아들의 마지막 소원은 바로 제야의 종소리를 듣는 것이다. 아름은 죽음 직전 부모에게 제야의 종소리를 듣고 싶다고 소원을 전한다. 아들의 힘겨운 소원을 들은 아빠와 엄마는 마지막을 예감한 듯 죽어가는 아들을 이끌고 종로 한가운데로 향한다. 아빠의 택시 안에서 아름은 엄마의 품에 안긴 채 조용히 죽음을 맞이한다. 엄마 뱃속에 담긴 자신의 동생을 어루만지면서….

‘두근두근 내 인생’은 이처럼 죽음을 앞둔 철든 아들의 짧지만 강한 삶의 일정을 보여 준다. 한 가족의 조용하지만 행복한 삶을 보여주는 것으로 끝을 맺는 가운데 의미 있는 모습을 군데군데 보여주면서 영화의 메시지는 여러 방향으로 뻗어나간다. 세상과 단절 된 채 죽음을 맞이하는 아름이의 유일한 친구인 70대 할아버지와 나누는 대사 속에 어쩌면 이 영화가 말하고 싶은 진짜 메시지가 담겨 있는지도 모르겠다. “젊은 놈들은 모를 것이야, 그 젊음이 얼마나 소중하고 값진 것인지를.”
어쩌면 이 영화는 죽음을 앞둔 한 소년과 그 가족의 가슴 찡한 짧은 삶의 얘기를 전하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소중한 것에 대해 돌이켜 보는 여유를 전하고자 한 것 같다.

16세의 마음으로 80세의 신체를 가진 어린 소년과 70세의 신체로 16세의 마음을 가진 순수한 노인의 어울림, 그리고 그 노인이 홀로 부양하는 치매에 걸린 90세 아버지의 모습은 죽음에 대한 영화 속 얘기의 포인트가 아닌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며 살아가면 안 된다는 삶에 대한 중요함을 전하고 있다.

살고 싶은 어린 소년의 마음과 젊음을 부러워하는 노인의 모습, 그리고 철없던 시절을 그리워하며 추억하는 철없는 부모의 성장은 ‘두근두근 내 인생’이 갖고 있는 복잡다단한 삶의 한 단편 같다.

최루성 신파의 베이스를 깔고 있지만 선입견과 거부감을 없애고 본다면 ‘두근두근 내 인생’은 참 많은 생각을 전하게 하는 시간이 될 것 같다.

<김범진 님은 언론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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